20200709 완고한 마음을 버리라 (신명기 9장 6-12절)

(신 9:6)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의로움을 인함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신 9:7) 너는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케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으되
(신 9:8) 호렙 산에서 너희가 여호와를 격노케 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느니라
(신 9:9) 그 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들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야를 산에 거하며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더니
(신 9:10) 여호와께서 두 돌판을 네게 주셨나니 그 판의 글은 하나님이 친수로 기록하신 것이요 너희 총회 날에 여호와께서 산상 불 가운데서 너희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이니라
(신 9:11) 사십 주야가 지난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돌판 곧 언약의 두 돌판을 주시고
(신 9:12)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여기서 속히 내려가라 네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내 백성이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도를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었느니라

어린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들이 쓰는 표현 중에 ‘미운 4살’이란 말이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지 만 34개월 정도 접어드는 시기가 되면, 아이는 자신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부모의 간섭에 대해 몹시 반발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3살 때까지는 엄마가 밥 먹이면 먹이는 대로 먹고, 옷 입히면 입히는 대로 입는 말 그대로 아기 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한국 나이로 4살 정도 되면 부모의 압력에 저항하는 반발이 엄청 강해지는 거죠. 이 때 아이와 엄마는 전쟁 같은 실갱이를 매일 반복하게 됩니다. 엄마 말은 하나도 듣지 않고, 막무가내로 일명 ‘미운짓’을 하는 4살 꼬마 아이들… 그래서 ‘미운 4살’이란 표현이 생겨난 거죠.
그래도 그나마 4살짜리는 아직 나이가 어린지라 봐 줄만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성숙하게 변화될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아이가 7살, 10살, 15살, 20살이 되도록 부모 말은 하나도 안 듣고, 막무가내로 행동한다면 부모가 속이 얼마나 상하겠습니까? 이제는 다 큰 성인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하루가 멀다 하고 맨날 밖에 나가서 친구들 하고 싸우고, 학교에서는 사고만 치고, 부모에게 버럭 화를 내고, 쉽게 짜증 내는 자녀… 부모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런 자녀는 얼마나 큰 고충이겠습니까?
흥미로운 사실은 오늘 말씀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보실 때 바로 ‘미운 4살’ 같은 자식이라고 이야기 했다는 것이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6절에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이다”라고 했습니다. 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신 9:6)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의로움을 인함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여기서 ‘목이 곧다’라는 말은 ‘목이 딱딱하다’, ‘마음이 완고하다’란 뜻 입니다. 왜 이 표현이 ‘미운 4살’이랑 같은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분명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이 있는데도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고집부리고 산다는 거에요.
혹시 병원에서 큰 사고를 당해서 목에 깁스를 차고 있는 환자를 보신 적 있으십니까? 의사 선생님이 목에 깁스 차고 있는 환자에게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라.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라.”한다고 말한다고 그들의 목이 돌아가겠습니까? 뻣뻣한 깁스 때문에 전혀 돌아가질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건 하지 말아라, 저건 하지 말아라 말씀 하셔도 목이 뻣뻣한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도 듣지 않고 하지 말라는 것만 주구장창 하고 살아왔습니다. 따라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됨에 있어, 이것이 이스라엘의 공로나 의로움 때문이라는 생각을 절대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죄악의 삶에서 돌이키지 않는 완악한 백성이라고 말했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도대체 어떤 죄악들을 하나님께 지었길래 이처럼 모세는 그들이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불렀던 것일까요? 아무런 구체적인 근거나 이유도 없이 이와 같이 목이 곧은 백성이라 불리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세는 이스라엘이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죄악들을 지었는지 하나씩 열거하기 시작 합니다. 먼저 모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역한 것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첫날부터 시작되었고, 지금 이 자리까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7절 입니다. “(신 9:7) 너는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케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으되” 자 이제 한 번 그 죄악의 목록들을 살펴봅시다. 8절을 보니 모세가 호렙산 즉 시내산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합니다. 도대체 이 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모세가 하나님께 율법을 받기 위하여 시내산에 올라가게 됩니다. 백성들은 모세가 40일이 되어도 좀처럼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기다리지 못하고 모세가 죽은 것은 아닐까 생각 했습니다. 불안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형 아론을 불러 아우성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자, 당신은 이제 우리를 앞장서서 이끌어 줄 신을 만들어 주시오.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모세는 지금 어찌되었는지 깜깜소식이 아니오.” 지난 400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에서 살았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우상을 조각해서 신으로 섬겼습니다. 이러한 우상 문화에 익숙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신들이 섬길 신을 금으로 된 우상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죠. 백성들의 아우성을 견디지 못한 아론은 백성들로부터 금고리를 모아 그것들을 녹여 수송아지 형상을 한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신 것이 출애굽기 20장 입니다. 그리고 이 수송아지 사건은 출애굽기 32장에 나옵니다. 즉 이들은 하나님께서 하늘이나 땅이나 바다에 있는 그 어떤 형상으로도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을 얼마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들었습니다. 게다가 십계명이 끝난 후에는 반드시 그 계명을 지키고 살겠다고 약속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금을 녹여 만든 수송아지를 보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낸 우리의 신이다!”하고 찬양하며 우상에게 절하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수송아지 우상 사건이 바로 8절에서 호렙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격노케 한 사건 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모세에게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 판을 친히 주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계명을 잊지 않고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의 돌 판을 받기도 전에 이미 십계명 언약을 어긴 것입니다. 12절을 봅시다. ”(신 9:12)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여기서 속히 내려가라 네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내 백성이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도를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었느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 부패하였고 자신들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내산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체결한 장소 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축복의 장소였습니다. 바로 그 아름다운 언약을 맺는 그 장소, 바로 그 시간에 이스라엘 백성은 이미 하나님을 말씀을 버리고 우상을 만들어 절하고 제사를 짓는 커다란 죄를 짓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어떤 느낌이냐 하면요, 신랑과 신부가 신성한 결혼식을 하고 있는데, 예식 중에 신부가 딴 남자랑 눈이 맞아서 바람 피우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세상에 어떤 신랑이 화가 안 나겠습니까? 그리고 신랑을 버린 그 신부는 신랑에게 얼마나 큰 죄악을 저지른 것입니까? 그 신부는 신랑에게 잊지 못할 수치를 준 것이고, 신랑의 가슴에 평생 남을 대못을 박은 것이죠. 신부 되는 이스라엘이 신랑 되시는 하나님께 그러한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이 엄청난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시기에, 이스라엘의 죄악을 용서해 주시고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오늘 모세는 이 사건을 언급하며 절대로 이스라엘이 교만하게 자신들의 의로움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목이 곧은 백성입니다. 고집스럽고, 완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는 오늘 이스라엘에게 다시 한 번 이러한 완고한 마음을 버리라고 말합니다.
혹시 우리 안에도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는 삶의 모습은 없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목을 곧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싫어하시는 우상을 세워두고 그것들이 하나님보다 더 소중한 듯 꼭 껴안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완고한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100가지 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정말 싫어하는 것 한 가지를 끊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사랑의 표현이 될 때가 있습니다. 죄악을 끊어내는 것은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랑의 표현이 됩니다. 우리 삶에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악들을 제거하는 것이 예배 입니다. 오늘 이 하루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완고한 죄악들을 끊어버리고,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