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0 도피성의 은혜를 기억하라 (신명기 4장 41-49절)

(신 4:41) 때에 모세가 요단 이편 해 돋는 편에서 세 성읍을 구별하였으니
(신 4:42) 이는 과거에 원혐이 없이 부지중에 오살한 자로 그곳으로 도피케 하기 위함이며 그 한 성읍으로 도피한 자로 그 생명을 보존케 하기 위함이라
(신 4:43) 하나는 광야 평원에 있는 베셀이라 르우벤 지파를 위한 것이요 하나는 길르앗 라못이라 갓 지파를 위한 것이요 하나는 바산 골란이라 므낫세 지파를 위한 것이었더라
(신 4:44)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선포한 율법이 이러하니라
(신 4:45)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증거하신 것과 규례와 법도를 모세가 선포하였으니
(신 4:46) 요단 동편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서라 이 땅은 헤스본에 거하는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속하였더니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그를 쳐서 멸하고
(신 4:47) 그 땅을 기업으로 얻었고 또 바산 왕 옥의 땅을 얻었으니 그 두 사람은 아모리 족속의 왕으로서 요단 이편 해 돋는 편에 거하였었으며
(신 4:48) 그 얻은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의 아로엘에서부터 시온 산 곧 헤르몬 산까지요
(신 4:49) 요단 이편 곧 그 동편 온 아라바니 비스가 산록 아래 아라바의 바다까지니라

법률 용어 중에 ‘무죄추정의 원칙’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범죄 혐의를 가진 피고인이라 할지라도, 사법부의 재판을 통해 유죄판결로 확정될 때까지는 피고인을 무죄로 추정한다는 원칙 입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피고인이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징벌을 받게 되는 상황으로부터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 합니다. 다시 말하면 죄 없는 자가 처벌받을 수 있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무죄추정의 원칙 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는 바로 이와 비슷한 원리로 제정된 율법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도피성’ 제도 입니다. 도피성은 ‘과실로 인해 사람을 죽인 자를 복수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지정된 성읍’을 의미합니다. 도피성은 이스라엘 전체에 총 6개가 있었습니다. 요단강을 기준으로 동쪽에 세 곳, 서쪽에 세 곳 이렇게 총 6개 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중 요단강 동쪽에 있는 세 곳을 지정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41절과 4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신 4:41) 때에 모세가 요단 이편 해 돋는 편에서 세 성읍을 구별하였으니”, “(신 4:43) 하나는 광야 평원에 있는 베셀이라 르우벤 지파를 위한 것이요 하나는 길르앗 라못이라 갓 지파를 위한 것이요 하나는 바산 골란이라 므낫세 지파를 위한 것이었더라” 이와 같이 모세는 요단 강 동편에 위치한 세 성읍(‘베셀’, ‘길르앗 라못’, ‘바산 골란’)을 도피성으로 지정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도피성을 세우신 목적을 본문에서 무엇이라고 기록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42절 말씀 입니다. “(신 4:42) 이는 과거에 원혐이 없이 부지중에 오살한 자로 그곳으로 도피케 하기 위함이며 그 한 성읍으로 도피한 자로 그 생명을 보존케 하기 위함이라” 앞서 이야기했듯이, 도피성을 선정하는 목적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살인으로부터 살인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런 원한도 없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부주의한 행위로 사람을 죽인 경우 입니다. 살인이 고의가 아닌 불의의 사고가 해당됩니다. 예를 들면, 도끼를 들고 나무를 베는 작업을 하던 사람이 있습니다. 벌목하려고 도끼를 휘두르는데, 그만 도끼날이 자루에서 빠져 곁에 있던 이웃을 맞혀 그를 죽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계획적이거나 악의를 가진 사건이 아니라, 우발적인 사건 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연에 의한 살인 사건이라 하더라도, 죽은 이를 위해 복수 하려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 입니다. 따라서 도피성 제도는 이와 같이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사람을, 피의 보복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와 같이 도피성 제도를 만드셨을까요? 아무리 한 사람이 실수로 이웃을 죽였다 할지라도, 그에게 복수하려는 피해자 가족이 생기기 마련 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린 피해자 가족의 분노를 그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자신의 가족을 죽인 자에 대한 복수의 피를 봐야 끝이 나는 거죠. 또한 이번에는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자의 가족들도 억울한 사연으로 인해 살인자가 된 그들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맞서 싸울 수도 있는 상황 입니다.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끊임없는 피의 복수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가정 대 가정의 피의 복수일 수 있으나, 작은 불이 산을 덮는 화염으로 커지듯이, 지파 대 지파의 싸움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 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이러한 분쟁을 막기 위해 도피성 제도를 허락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도피성은 적법한 절차를 통해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자의 신변을 보호하고, 그가 보복 당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절차 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이 그 이웃을 미워하여 엎드려 매복하여 기다리다가 일어나서 상대방을 돌로 쳐 죽인 경우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와 같이 고의적이고, 계획적이고, 악의적인 살인자는 “잡아다가 보수자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하라”는 것이 신명기 19장의 내용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연약하기에 누구든지 실수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도피성 제도를 통해 실수로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만, 도피성 제도를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민수기 35장을 보면 이와 같이 도피성에 피한 우발적인 살인자의 공소시효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의 죽는 날까지 입니다. 민수기 35장 2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민 35:25) 피를 보수하는 자의 손에서 살인자를 건져내어 그가 피하였던 도피성으로 돌려 보낼 것이요 그는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거기 거할 것이니라” 대제사장이 죽은 이후에는 도피성에 피한 자가 피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기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대제사장의 죽음과 살인자의 죄를 연결시켜서 생각하는 아주 독특한 말씀 입니다. 즉 대제사장의 죽음이 고의성 없는 우발적인 살인죄에 대한 대속적인 죽음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중재자로 죄를 속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존재였기 때문에, 그의 죽음을 통해 살인자의 죄를 대신한다는 원리입니다. 율법에 따르면, 살인은 저지른 자의 죄는 그의 죽음으로만 속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원래대로라면 살인을 저지른 자가 자신의 죗값을 치뤄야 그의 죄가 용서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의 죽음을 살인자의 죽음을 대신함으로 그의 죄값을 대신 치뤄주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결국 거룩한 대제사장이 죽음으로 인하여 살인자는 죄의 멍에를 벗고 살인에 대한 보복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자신의 가족이 살고 있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의 대제사장은 신약 시대의 누구를 예표합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따라서 오늘 도피성에 들어간 살인자를 대신한 대제사장의 대속적인 죽음은 이 땅에 진정한 대제사장으로 오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짊어지셨음을 예표 합니다. 율법대로라면 우리 모두는 죄로 인해 징벌 받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도피성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주님께 피하는 자를 주님께서 친히 사망과 저주의 권세로부터 보호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꼐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값은 대신 지불되었고,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죄를 지어 사망과 저주의 심판 아래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 죄의 보복의 손길에서 벗어나야만 참된 평안과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죄의 문제를 가지고 어디로 가야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도피처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도피처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곤경에 처한 죄인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케 하십니다. 이와 같이 영혼의 도피성 되시는 주님 안에 영원토록 머물러 참된 평강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