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6 변함 없는 예수님의 사랑 (요한복음 21장 15-25절)

(요 21: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 21:16)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요 21:17)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요 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요 21: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요 21: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
(요 21: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요 21: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요 21: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요 21:24) 이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요 21:25)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신을 버리고 부인했던 베드로를 다시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을 위해 친히 아침 식사를 먹이셨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맡기시기 전, 한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바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 질문을 물어 보셨을까요? 예수님의 양을 먹일 수 있는 자격이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는 자신이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 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똑 같은 질문을 물어보실 때, 우리들도 베드로와 같이 “네 주님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주저함 없이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이 베드로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자신의 양을 먹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주님의 일을 감당하려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자신의 양을 부탁하신 후, 베드로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 거인지 말씀 해주셨습니다. 18절 말씀을 함께 봅시다. “(요 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베드로는 젊은 시절 갈릴리 바다를 마음껏 누비던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을 위해 살아가기로 결단한 베드로 앞에 펼쳐질 인생은 그가 원하지 않는 곳에서 원하지 않는 일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18절에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라는 말은 훗날 베드로가 십자가에 달리어 처형 당하게 될 것을 보여줍니다. 기독교 전승에 의하면 심한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났던 베드로는 다시 로마로 되돌아가 복음을 전파하고 사역하다가 체포 당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채 처형 당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면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꿈을 다 이루어 주신다고 잘못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짜 신앙은 하나님을 통해 내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내가 가진 시간, 물질, 에너지, 대인관계, 비즈니스, 목숨까지도 내려놓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예수님은 베드로가 원치 않는 곳으로 끌려가 죽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때로는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핍박 당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 제대로 믿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큰 손해 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제자도의 댓가를 각오하고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19절을 봅시다. “(요 21: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베드로의 죽음을 예언하시면서 그가 핍박과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주님을 따라올 것을 권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당하는 수난과 죽음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 당하는 모든 수고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흘리는 눈물과 땀을 다 보고 계십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이가 아빠와 엄마를 위해 삐뚤거리는 글씨로 카드를 쓰고, 낙서와 비슷한 수준의 그림일지라도 아빠 엄마는 자랑스럽게 냉장고 문 앞에 붙여 놓습니다. 왜냐하면 자식이 부모를 생각하며 해준 그것이 부모에게는 큰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 드린 섬김과 헌신이 비록 부족함이 많은 것일지라도 여전히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실 때는 커다란 기쁨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바로 이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되는 삶, 기쁨이 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주님을 따라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이 죽은 영혼들을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셨듯이, 우리들도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고통이요,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먼저 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과 함께한다면 바로 이러한 고난의 길도 영광의 길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을 위한 모든 사랑의 수고는 인생의 가장 큰 보람과 행복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시려고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고난에 빠트리고 아프게 하려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이야 말로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자신에게 가장 큰 기쁨이 주어지는 길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한 가지 베드로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은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이라면, 또 다른 제자 요한은 어떠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요한은 어떻게 될 것인가 여쭈어 보았습니다. 21절 말씀을 봅시다. “(요 21: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학자들에 따라서는 베드로가 요한에 대한 질투심으로 물어본 질문이라고 보기도 하고, 아니면 요한에 대한 염려로 물어본 질문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든 베드로는 예수님의 또 다른 제자인 요한이 자신과 같은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인지 무척 궁금 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요한이 어떠한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것은 베드로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시며 다시 한 번 22절에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며 주위 사람들이 신경 쓰일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 믿으면서 ‘누가 더 성공하는가?’, ‘누가 더 많은 복을 받는가?’하는 신경전이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것에 우리가 신경을 빼앗기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또 다른 형제들이 우리보다 더 성공한 삶을 살던지, 더 부유한 삶을 살던지 그것이 우리의 주안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그러한 삶 때문에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투기하는 자가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오직 예수님만을 사랑하고 끝까지 주님만 바라보며 따라가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시고 그에게 ‘나를 따라오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도 저와 여러분을 찾아오시는 주님은 우리에게 ‘나를 따라오너라’고 초청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삶은 고난이 따릅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한 모든 사랑의 수고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우리 인생의 가장 큰 기쁨과 보람을 가져다 줍니다. 예수님은 이 복된 제자의 길로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나를 따라오너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날마다 주님만을 따라 살아 갈 수 있는 참 제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