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5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려면 (요한복음 9장 18-23절)

예수님과 제자들은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게 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질문 했습니다. “선생님, 왜 이 사람은 나면서부터 눈 먼 사람이 되었습니까? 이 사람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 사람의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이러한 제자들의 질문에는 이 당시 유대인들이 신체장애를 죄의 결과로 인식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따라서 본문에 나오는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 역시 사람들로부터 죄인으로 낙인 찍힌 채 살아왔을 것 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자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의 신체적 장애가 그 누구의 죄 때문도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그의 신체적 장애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대답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한 번 스스로를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며 세상의 어둠에 속한 영혼들을 구원해 주실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맹인의 눈에 바르셨습니다. 그 후 그에게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은 누가 보아도 언뜻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맹인의 눈에 침이 섞인 진흙을 바르는 것이 그의 병을 고치는 것과 어떤 상관성이 있는지 찾아 볼 수 없는 것이죠. 그러나 맹인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실로암에 가서 눈을 씻었습니다. 그러자 맹인은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장면을 보고, 진흙과 침의 성분과 효과가 맹인에게 도움이 된다라고 해석하며 본문을 오해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눈을 뜬 것임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날 때부터 소경 되었던 이 사람이 눈을 뜨고 돌아다니자, 그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이 사람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불과 어제만 해도 맹인으로 길에서 구걸하던 사람이었는데 하루만에 눈을 뜨고 돌아다니고 있으니 사람들이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이게 어찌된 일인가’하고 물어 볼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심지어 사람들 가운데는 이 사람이 그 맹인일 리 없다고 다른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나타났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눈이 뜬 맹인에게 “정말 당신이 그 사람이 맞냐?”라고 물어보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눈이 뜬 사람은 자신이 구걸하던 그 소경이 맞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어떻게 두 눈을 뜨게 되었는가 물어보았습니다. 이에 이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행하신 일을 전했고, 그리고 그 분의 말씀에 따라 순종한 결과 자신이 두 눈을 뜨고 보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평생 맹인으로 어두움 가운데 살아가던 자가, 하루 만에 이처럼 예수님께서 자신을 고치셨음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게 된 것이죠.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 사람의 맹인 된 것은 하나님의 메시아 되심을 증거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두 눈이 먼 사람이 눈을 떴다. 이 얼마나 대단한 사건 입니까? 누구라도 이 사건을 보면, 예수님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기적 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오히려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비난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 사람에게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이 다름 아닌 ‘안식일’이었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소경을 눈 뜨게 하신 사건에 대하여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기적이 아니라고 부인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가 아니며 도리어 죄인이라고 비난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맹인이었던 자에게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그는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대답 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정죄하려고 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바로 볼 수 없었던 것이죠. 이에 바리새인들은 맹인이었던 자의 부모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의 부모에게도 재차 아들이 맹인이었던 것이 사실인지 확인 했습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은 그의 부모에게 아들이 어떻게 다시 보게 된 것인지 해명하라고 말했습니다.
그 누구보다 맹인되었던 부모가 어떻게 된 일인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 입니다. 그럼에도 맹인이었던 자의 부모는 매우 소극적으로 대답 했습니다. ““이 아이는 우리 아들이 분명합니다. 또 그 아이는 정말로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누가 그 아이의 눈을 뜨게 해주었는지는 모릅니다. 나이가 들 만큼 들었으니, 그 아이에게 직접 물어 보십시오.” 왜 이들은 자신들의 아들이 눈을 뜬 것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말하지 못한 것일까요? 이미 유대인들은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한 자는 유대교에서 출교하시기로 결의하였기 때문 입니다. 출교 당한다는 것은 생활의 모든 기반을 상실하는 심각한 문제였음으로 크게 두려움을 느낀 맹인 되었던 자의 부모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담대하게 말할 수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자신들에게 물어보지 말고 맹인 되었던 그들의 아들에게 물어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맹인 되었던 자가 두 눈을 떴을 때, 본인 다음으로 기쁜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부모였을 것 입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그를 고쳐 주셨다는 사실을 알고 감사하며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출교라는 현실의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예수님을 시인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란 이름도 입에 올리지 않고 그를 부인 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을 통해 눈을 떴음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것 입니다.
맹인 되었던 자의 부모처럼, 현실적 불이익이 두려워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 속에서 예수님을 믿는 자신의 신앙을 시인하는 것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 것이 두려워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죠. 교회는 다니지만, 현실적 불이익이 두려워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을 담대하게 시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누구에게라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대상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세상과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부인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나타낼 것 입니다. 날 때부터 눈이 먼 자는 육신의 눈을 떴을 뿐 아니라, 예수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영적인 눈을 떴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육신의 눈은 뜨고 있으나,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지 모르는 영적인 맹인들이 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영안을 열어 주시길 바랍니다. 또한 언제 어디에서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모든 사람 앞에서 시인할 수 있는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가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