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1 마가복음 시리즈 (3) 좋은 밭에 뿌려진 씨앗 (마가복음 4장 1~20절)

<서론> – 최고급 씨앗을 뿌려 주신 농부 하나님
시골에 사는 농부 아저씨가 땅에 심는 벼도 품종이 다양합니다. 가을에 금빛으로 물든 논을 머리 속으로 그리면서 최고급 품종의 벼를 심었어요. 때마다 논에 물도 대야죠. 잡초제거 해야죠. 해충방제 작업도 해야죠. 구슬땀을 흘리며 정성으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땅의 토질이 나빠서 그 최고급 품종의 벼가 말라 죽어버린다면 그 농부 아저씨 마음이 얼마나 애가 타겠습니까? 상황이 야속하고 너무 아쉬운 거죠.
이처럼 우리가 무언가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가꾸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까 기대한 만큼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니고, 오히려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오면 사람이 힘이 빠지기도 하고, 화가 날 때도 있지 않습니까? 어떤 대상에게 내 마음과 정성을 쏟아서 일했을 때는 그 만큼의 결과물을 기대하기 마련 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 하나님께서 마치 농부 아저씨처럼 우리의 마음 밭에 씨앗을 뿌리고 계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뿌리신 씨앗은 최고급 씨앗 입니다. 이 씨앗은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이 씨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썩지 아니하는 씨 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벧전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죽은 영혼을 살리는 구원의 능력이 있는 생명의 씨앗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씨가 어디 있습니까? 이 귀한 말씀의 씨앗을 우리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의 밭에 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뿌려진 씨앗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아름답게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정성으로 이 씨앗들이 그렇게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가꾸어 주십니다.
생명의 씨앗이 움트고 새싹이 나고 건강하게 자라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마음 밭의 상태에 따라서 씨앗이 발아도 못하고 그대로 죽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성으로 가꾸시던 하나님 아버지 마음도 매우 안타까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늘도 계속해서 생명의 씨앗, 말씀의 씨앗을 우리 마음 밭에 뿌리고 계십니다. 자, 그렇다면 어떤 마음 밭을 가져야 이 씨앗이 아름답게 열매 맺을 수 있는지, 우리 마음 밭을 어떻게 가꾸어 가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1. 첫 번째 마음 밭: 길가
오늘 본문 말씀은 사람의 마음을 밭으로 비유합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생명의 씨앗을 우리 마음 밭에 뿌리고 계신 것이죠. 그리고 사람의 마음 밭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 됩니다. 길 가, 흙이 얕은 돌밭, 가시떨기 밭, 좋은 땅 이렇게 네 가지 입니다. 먼저 각각의 땅을 좀 살펴봅시다. 가장 첫 번째 마음 밭은 ‘길가’ 입니다. 3-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3-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막 4:3)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막 4: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팔레스타인 지역의 농부들은 씨앗을 뿌리러 나갈 때 허리 춤에 씨앗주머니를 매고 밭에 나갑니다. 씨앗 주머니에 있는 씨앗을 한 주먹씩 손에 쥐고 있다가 논이나 밭 앞으로 걸어가면서 씨앗을 흩어 뿌리는 거죠. 본래 씨앗이 흙이 있는 논밭에 심겨야 하는데, 워낙 가볍다 보니까 바람에 날려가 주변에 있는 길가에 뿌려진 거죠. 길가라는 것은 동네 사람들이나 지나가는 여행객들이 자주 사용하는 길을 말합니다. 부드러운 흙이 있는 땅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며 밟는 길이기에 딱딱하게 굳어있는 땅 입니다. 땅이 너무 굳어 있고 딱딱해서 씨앗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결국 이 씨앗들은 하늘을 날아가던 새들의 먹이감이 되어버립니다.
사람의 마음 밭에 씨앗이 뿌려졌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길가와 같이 단단하다는 것은 그의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듣기는 해도 마음이 단단하게 굳어버려서 말씀이 그 마음 속으로 들어가 뿌리는 내리지 못하는 거죠. 예를 들면 주일날 교회 와서 설교 말씀을 듣기는 하는데, 말씀으로부터 아무런 감동도, 도전도 못 받는 사람 입니다. 말씀의 씨앗은 뿌려졌지만, 말씀이 마음에 들어가지 못하는 거죠. 이 이야기에서 씨앗을 먹는 공중의 새는 사단을 의미합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도록 사단이 씨앗을 거두어 가는 거죠.
이런 마음 밭을 가진 분들의 특징은, 영적 성장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교회를 10년, 20년 넘게 오래 다녀도 삶의 변화가 전혀 없습니다. 교회 다닌다는 사실 하나 빼고는 세상 사람들과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거의 다를 바 없게 됩니다. 말씀이 마음 속으로 들어와서 뿌리 내려야 삶이 변화하는데, 그러지를 못하는 거죠.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대감, 소망함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하고 아무런 상관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혹시 우리 마음이 이렇게 굳어버린 마음은 아닌지요?
우리 몸의 여러 장기 중에 ‘침묵의 장기’라 불리는 곳이 바로 ‘간’ 입니다. 간이 ‘침묵의 장기’라 불리는 이유는 간에 어느 정도 큰 이상이 생기지 않는 한 겉으로 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본래 우리 몸에서 재생이 가장 잘 되는 장기가 바로 간 입니다. 우리 몸에서 해독 작용을 담당하다 보니 재생 능력이 뛰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간이 어느 날부터인가 딱딱하게 굳어갑니다. 이게 바로 ‘간경화’ 혹은 ‘간경변’이라고 합니다. 이 때부터 간의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됩니다. 간경화가 오게 되면 일단 황달이 찾아옵니다. 눈과 피부가 노랗게 변합니다. 위장관에 출혈이 생기고 잘못하면 복막염으로 오기도 합니다. 갑자기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배가 부풀어 오르는 거죠. 하지 부종으로 다리가 심하게 붓기도 합니다. 이미 굳어버린 간은 다시 되돌리는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간경화는 초기에 발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특별히 무엇 때문에 이런 간경화가 시작되었는지 그 원인을 찾아내서 근원을 끊어내야 합니다. 신자들의 마음에 영적 간경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그의 마음을 죄가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마다 간경화 정도가 다른 것처럼, 신자들의 영혼도 굳어진 정도가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런 영적 간경화 현상을 방지할 수 있을까요?
딱딱하게 굳어진 마음을 갈아 엎어야 합니다. 옛날에 시골 내려가면 농부 아저씨가 씨앗을 뿌리기 전에, 딱딱한 땅을 한 번 갈아엎지 않습니까? 소 뒤에다가 쟁기를 달아서 땅을 갈아 엎는 거죠. 표면에 굳은 땅이 촉촉한 습기를 먹은 흙으로 갈아엎어지는 거죠. 우리가 이것을 ‘기경’한다고 합니다. 논밭을 한 번 갈아엎어 주는 거에요. 굳어버린 땅은 ‘삽’이나 ‘쟁기’를 가지고 기경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딱딱하게 굳어진 우리 마음은 어떻게 기경할 수 있을까요?
먼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의 죽으심이 바로 내 죄를 위한 죽음이란 것을 가슴 깊이 새기며 내 마음 속 자리 잡은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이 과정이 바로 ‘영적 기경’의 작업입니다. 본래 신자는 그의 영혼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본성이 새로워진 사람입니다. 즉 성령께서 돌과 같이 딱딱했던 그의 마음을 깨트리시고 부드러운 새 마음을 받은 사람이 바로 신자 입니다. 그런데 부드러워진 그의 마음이 왜 다시 굳어지는 것일까요? 죄 때문 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죄를 지을수록 마음이 굳어지고 영적 간경화 현상이 찾아옵니다. 말씀을 들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고, 은혜를 받지 못하는 거에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내 마음을 새롭게 하는 ‘영적인 기경‘ 작업을 해야 합니다. 마음 밭을 예수의 보혈로 한 번 갈아 엎어야 합니다. 내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선 죄인임을 인정하고 내 속의 죄악들을 회개할 때 돌과 같이 굳어진 사람의 마음이, 말랑말랑한 고기덩이처럼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그 사람 마음에 생명의 씨앗, 말씀의 씨앗이 뿌려지면 건강하게 자라고, 아름답게 열매 맺게 됩니다. 오늘 설교 듣고 계신 분 가운데 내 마음이 혹시 길가는 아닌지 영적 간경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꼭 한 번 점검하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 마음 밭: 흙이 얇은 돌밭
두 번째 마음 밭은 돌밭 입니다. 5-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막 4:5)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막 4:6)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이스라엘은 땅이 석회질 입니다. 미국도 라스베거스나 옐로우스톤 같은 지역 가보면 땅이 석회질 입니다. 이런 석회질 지역의 특징이 뭐냐면, 겉으로 보면 식물이 잘 자랄 것 같은 땅처럼 보여도, 한 삽 흙을 퍼보면 그 아래는 석회암이나 현무암 같은 돌들이 있어서 식물이 뿌리를 깊게 내리질 못합니다. 식물은 뿌리로부터 영양분과 수분을 공급받는데, 돌 때문에 뿌리가 얕다 보니까 잘 자라지를 못하는 거죠. 대낮에 태양이 뜨겁게 내려 찌면 새싹이 말라버립니다.
오늘 본문 속 돌덩이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말씀이 마음 속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게 막는 삶의 고통과 문제들 입니다. 돌밭은 길가보다는 낫습니다. 말씀을 들으면 감동도 있고, 은혜도 받습니다. ‘앞으로는 새롭게 살아 봐야지’하고 결심도 합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에요. 말씀대로 살려다가도 현실적인 삶의 문제들 앞에서 받은 은혜들을 다 까먹습니다.
라면을 끓일 때 ‘양은 냄비’에다가 넣고 끓이면 물이 금방 끓습니다. 그런데 양은 냄비의 특징에 뭐에요? 또 금방 식습니다. 라면만 그런 게 아니라 찌개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어떤 분들은 천천히 식으라고 뚝배기에다가 국을 끓이는 분들도 있고, 무뇌 솥을 사용하는 분들도 있지요. 우리의 신앙생활도 어쩔 때는 양은 냄비 같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기도할 때는 뜨겁게, 찬양도 뜨겁게 하는데 예배 끝나면 그 때부터 금방 식어버리는 거죠. 그래서 예배 때 보면 가장 은혜 많이 받은 사람 같아 보였는데, 예배 후에는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똑같이 이전이랑 똑같이 그렇게 죄짓고 살아가는 거에요. 이게 바로 ‘냄비 신앙’이죠. 교회 와서는 뜨겁게 반응하는 것 같은데, 삶에서는 온도 차가 너무 많이 나는 거에요. 우리의 신앙이 ‘냄비 신앙’이 아니라 ‘뚝배기 신앙’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있으면, 그 은혜 까먹지 말고, 묵상을 통해 마음에 새기고 또 받은 은혜 대로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 치는 그런 복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어느 여 집사님이 있습니다. 이 집사님 남편 분은 교회를 안 다니세요. 그래도 아내가 교회 가는 것 반대하지 않습니다. 집사님이 새벽예배 가는 것, 금요예배 가는 것 다 오케이에요. 어느 날 이 여자 집사님이 금요일 저녁이 되어서 금요예배 드리러 교회 가야하는데, 가기가 너무 귀찮은 거에요. 하루 종일 일하고 나니까 몸도 피곤하고, 날씨도 왠지 가고 싶은 날씨가 아니에요. 안 갈 핑계거리를 찾는 거죠. 그래서 저녁 먹고 거실에서 쇼파에 앉아서 TV보고 있는 이 불신자 남편 옆에 자기도 앉아서 물어보는 거죠. “여보, 나 오늘 교회 가지 말까?” 그럼 남편이 불신자니까 자기한태 “그래 오늘 가지마, 그냥 오늘은 쉬어” 이럴 줄 알았는데, 남편이 자기를 보고 “그래도 교회 가야지. 사람이 말이야 한결 같아야지. 피곤하다고 교회 안 가면 되겠어?” 이러는 거에요. 이 아내 분이 신자인 자기는 교회 안 가려고 물어 본건데, 불신자인 남편이 가라고 권유하니까 너무 황당한 거에요. 그래도 남편 말 따라서 교회 갔어요. 그리고 교회 가서 찬양도 부르고 기도도 하고, 역시 오길 잘 했다 생각하고 은혜 받고 왔어요.
이 여자 집사님이 나중에 시간이 흐른 후에 남편에게 물어봤어요. “아니 자기는 교회도 안 다니는 사람이 왜 나보고 그 때 교회 가라고 했어?” 그랬더니 이 남편 분이 하는 말이, 자기가 교회는 다니지 않지만, 내 아내가 교회만 갔다 오면 어딘가 모르게 달라진다는 거에요. 사람도 더 상냥해지는 것 같고, 자기한태 화를 낼 만한 일이 있는데도 오히려 더 친절하게 해주는 것 같데요. 그래서 자기는 교회는 안 다니지만, ‘이 사람이 교회 가면 이 사람이 달라지는구나’ 생각이 들어서 교회 가라고 했다는 거에요. 사람이 은혜 받고 변화하면 불신자 남편도 알아봅니다.
신앙생활은 나 혼자 감동 받고 눈물 흘리려고 하는 것 아니에요. 교회 문을 열고 주자창으로 나서는 순간 까먹는 은혜가 아니라, 그런 냄비 신앙이 아니라, 내 가정까지 그 은혜가 계속 흘러 갈 수 있도록, 한 주간의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도 주일에 받은 그 은혜의 말씀이 떠 오르고, 그래서 힘을 내고..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이지만, 말씀을 통해 받은 은혜 때문에 내 삶이 조금이라도 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열매 맺는 삶의 비결 입니다.
혹시 우리들의 마음 밭이 돌밭은 아닌지요? 예배 때는 뜨겁게 예배 드리지만, 돌아서면 까먹는 냄비 신앙은 아니었는지 다시 한번 우리 신앙을 점검해 봅시다. 교회 밖을 나서는 순간 받은 은혜 까먹고, 한 주 동안에는 바쁜 직장 일, 가게 업무, 가정일을 핑계로 하나님과 소홀이 지내는 신앙생활은 아니었는지 살펴봅시다. 씨앗이 자라면 열매를 맺게 되듯이, 신앙이 자라면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은혜가 자라면 내 자신이 성숙하게 됩니다. 이런 복된 말씀의 열매가 있기를 바랍니다.

3. 세 번째 마음 밭: 가시떨기 밭
세 번째 마음 밭은 가시떨기 밭 입니다. 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막 4:7)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치 못하였고” 이따금씩 미국 TV를 보면 ‘민들레 제거’하는 제품들 광고를 볼 때가 있습니다. 미국은 싱글 하우스 앞에 잔디가 있다 보니까 ‘Dandelion Killer’ 가 잘 팔리는 거죠. 서양 민들레는 번식력이 매우 왕성하고, 환경오염에도 강합니다. 그래서 도시에 가봐도 길가에 민들레가 핀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잔디에 핀 민들레는 사실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만, 농작물 키우는 농부 입장에서 보면 민들레는 큰 골치거리 입니다. 왜냐하면 이 민들레가 번식력이 워낙 강하다 보니까 땅의 영양분을 다 빼앗아 간다는 거에요. 곡식이 땅에서 양분을 먹고 자라야 하는데 민들레가 다 가지고 가는 거죠.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시떨기가 바로 이처럼 생명의 씨앗이 자라지 못하도록 영양분을 빼앗아갑니다. 그리고 무럭무럭 자라난 가시떨기들이 햇볕까지 막아서 곡식이 건강하게 자라질 못하는 거에요. 예수님은 이러한 가시떨기들처럼 우리의 마음 밭에 하나님의 말씀이 열매맺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들이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총 3가지 인데요. 바로 무엇을 먹고 살아가야 하는 염려, 돈에 대한 유혹, 그리고 더 가지고 싶은 욕심 입니다. 마가복음 4장 1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막 4:19)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세상의 염려: 무엇을 먹고 사나… 재리의 유혹: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까… 기타 욕심: 어떻게 하면 더 많이 가질 수 있을까? 사람들에게 인정 받을 수 있을까? 저 자리에 올라갈 수 있을까? 예수님은 이러한 것들이 우리 마음 속에 가시떨기 같아서 말씀의 씨앗이 자라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염려의 가시떨기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보지도 못하게 하고,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재물의 가시떨기는 우리를 불만족한 상태로 만들어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게 합니다. 욕심의 가시떨기는 하나님을 향한 사모함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진지한 구도자의 삶을 살지 못한 채, 아무런 영적 열매와 성장을 얻지 못한 채 끝날 수 밖에 없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이러한 가시떨기를 싹둑 잘라버릴 수 있는 큰 가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가위가 바로 마태복음 6장 3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만 더 찾아봅시다. 빌립보서 4장 6-7절 말씀 입니다.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오늘 이 말씀의 가위를 가지고 염려의 가시떨기, 욕심의 가시떨기를 잘라 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안에서 참 만족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아름다운 말씀의 열매를 맺게 만들어 줍니다.

4. 네 번째 마음 밭: 좋은 땅
네 번째 마음 밭은 좋은 땅 입니다. 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막 4: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좋은 땅은 앞서 이야기한 세가지 땅에 있는 단점들이 모두 제거된 땅 입니다. 흙이 부드러워서 씨앗이 뿌리 내린 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돌덩어리가 없어서 뿌리가 깊이 뻗어 물과 양분을 충분히 공급 받습니다. 새싹의 줄기를 가로막는 가시떨기가 없습니다. 그 결과 좋은 땅에 뿌려진 말씀의 씨앗은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믿고, 삶이 성숙하게 변화하고,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최고급 씨앗을 우리 마음에 뿌려 주신 농부 하나님은 우리가 생명의 열매, 말씀의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 말씀을 함께 봅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을 가진 자는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 입니다. 요한복음 15장 8절도 봅시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우리의 마음이 옥토가 되어 많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될 때 풍년을 맞은 농부가 기뻐하듯이, 우리 하나님은 기쁨으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소망하는 복된 삶 입니다.

<결론> – 영적 거목으로 자라나라
마가복음은 우리 모두가 좋은 땅이 되어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생명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기를 바라시던 주님의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마가복음 4장 30-3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막 4:30) 또 가라사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꼬 (막 4:31)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막 4:32)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영적인 성장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 주님의 소원은 우리 마음 밭에 심겨진 생명의 씨앗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지금은 겨자씨 같이 작은 씨앗이라 할지라도, 주님의 은혜의 단비를 머금고, 계속해서 성장하여 많은 이들을 먹이고 살리는 영적 거목으로 자라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의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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