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9 사사 드보라: 철 병거를 이기게 하신 하나님 (사사기 4장 1-24절)

(삿 4:1) 에훗의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삿 4:2) 여호와께서 하솔에 도읍한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는데 그 군대 장관은 이방 하로셋에 거하는 시스라요
(삿 4:3) 야빈 왕은 철병거 구백 승이 있어서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한고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삿 4:4)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삿 4:5)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삿 4:6) 드보라가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 이르시기를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삿 4:7)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 병거들과 그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셨느니라
(삿 4:8)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
(삿 4:9) 가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제 가는 일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삿 4:10)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 게데스로 부르니 일만 인이 그를 따라 올라가고 드보라도 그와 함께 올라가니라
(삿 4:11)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
(삿 4:12)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 산에 오른 것을 혹이 시스라에게 고하매
(삿 4:13) 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병거 구백 승과 자기와 함께 있는 온 군사를 이방 하로셋에서부터 기손 강으로 모은지라
(삿 4:14)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이에 바락이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삿 4:15) 여호와께서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한지라
(삿 4:16) 바락이 그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이방 하로셋에 이르니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남은 자가 없었더라
(삿 4:17) 시스라가 도보로 도망하여 겐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으니 하솔 왕 야빈은 겐 사람 헤벨의 집과 화평이 있음이라
(삿 4:18) 야엘이 나가 시스라를 영접하며 그에게 말하되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 하매 그 장막에 들어가니 야엘이 이불로 덮으니라
(삿 4:19) 시스라가 그에게 말하되 청하노니 내게 물을 조금 마시우라 내가 목이 마르도다 하매 젖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우고 그를 덮으니
(삿 4:20) 그가 또 가로되 장막문에 섰다가 만일 사람이 와서 네게 묻기를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거든 너는 없다 하라 하고
(삿 4:21) 그가 곤비하여 깊이 잠든지라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취하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 살쩍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시스라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삿 4:22) 바락이 시스라를 따를 때에 야엘이 나가서 그를 맞아 가로되 오라 내가 너의 찾는 사람을 네게 보이리라 바락이 그에게 들어가 보니 시스라가 죽어 누웠고 말뚝은 그 살쩍에 박혔더라
(삿 4:23) 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패하게 하신지라
(삿 4:24)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이기어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

사사기는 동일한 구조(패턴)를 가진 이야기가 여러 번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지난 주 이 시간을 통해 사사기의 이야기 구조가 [범죄, 징계, 회개, 구원, 망각]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사사기는 이와 같은 동일한 구조를 가진 여러 개의 스토리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구조 역시 이스라엘의 범죄하는 장면으로 시작 됩니다. 사사기 4장 1절 말씀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사기 안의 또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1절 말씀에 “또”라는 짧지만 강조 되고 있는 이 표현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수차례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혹독한 징계를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였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범죄하자, 그 결과 하나님꼐서도 마찬가지로 또 다시 이스라엘을 징계 하셨습니다. 2-3절 말씀 입니다. “(삿 4:2) 여호와께서 하솔에 도읍한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는데 그 군대 장관은 이방 하로셋에 거하는 시스라요 (삿 4:3) 야빈 왕은 철병거 구백 승이 있어서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한고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고자, 그들을 적군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징계의 도구는 바로 ‘가나안 왕 야빈과 그의 군대장관 시스라’였습니다. 이들은 무려 20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들 위에 군림하고 통치 했습니다. 3절 말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히 학대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못살도록 괴롭힌 것이죠.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사사기 5장 6절 말씀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삿 5:6)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행인들은 소로로 다녔도다” 본문에서 말하는 ‘삼갈의 날’과 ‘야엘의 날’이란 표현은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왕 야빈의 학대를 받고 살아온 20년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그 기간 동안 ‘대로가 비었다’고 했습니다. ‘대로’라는 것은 오늘날로 쉽게 이해하면 고속도로와 같습니다. 과거에 대로는 장거리를 여행하는 사람들이나, 상인들이 다니는 길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대로가 비었다’는 것은 더 이상 이 길이 여행이나 상거래를 위해 사용되지 못하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가나안 왕 야빈이 이스라엘을 압제하고 약탈과 폭행을 저지름으로 이처럼 대로가 텅텅 비어 있을 정도로 백성은 두려움에 떨고 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나안 사람들의 약탈과 폭력을 피해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잘 뛰지 않는 ‘소로’로 다닌 것이죠. 여기서 ‘소로’란 꼬불꼬불한 길을 말하며, 가파르거나 경사가 있어 사람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길을 의미합니다. 대로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쉽고 빠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사람들의 눈에 띄어 어떤 곤욕을 취할 줄 말라 두려워하며 큰 길로 다니지 못하고, 숨어서 뒷길로 다니는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 대부분의 마을들은 성곽이 없어서 가나안의 침략과 약탈에 그대로 노출되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마을에 살던 주민들은 요새화된 성읍이나 피난처로 피난을 갔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지경 내의 작은 마을들은 사실상 폐허처럼 변해버렸고, 황무하고 텅 빈 마을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한 번 이 당시 상황을 살펴봅시다. 분명 여호수아 때에 가나안 땅 대부분을 점령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왕 야빈에게 이처럼 굴복하고 고통 당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적군이 가진 철 병거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수아 당시 가나안 사람들은 이미 청동기를 넘어서 철을 사용하는 문명에 진입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가나안 왕 야빈은 철로 만들어진 병거를 900대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철로 된 무기가 없었습니다. 사사기 5장 8절 말씀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삿 5:8)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그 때에 전쟁이 성문에 미쳤으나 이스라엘 사만 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고” 이스라엘 군사 4만명 가운데 방패와 창을 가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창과 방패는 병사의 기본 무기 입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4만명이 모여도 손에 이런 제대로 된 무기를 쥔 병사가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철기 무기를 들고 싸우는 가나안 사람과의 전쟁에서 어찌 승리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호수아서를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정복을 할 때 땅을 전부 차지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가나안 사람들의 철 병거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수아서 17장 16절 말씀을 봅시다. “(수 17:16) 요셉 자손이 가로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에게는 벧스안과 그 향리에 거하는 자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하는 자든지 다 철병거가 있나이다” 여기 보면 에브라임과 므낫세 두 지파가 연합하여 싸워도 가나안 족속이 가진 철 병거 때문에 기업을 차지 할 수 없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사사시대까지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사사기 1장 19절을 봅시다. “(삿 1:19)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신고로 그가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 대부분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철기 무기를 가지고 있었던 가나안 왕 야빈의 세력을 무찌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점차 흘러감에 따라 전쟁의 승기를 잡은 가나안 왕 야빈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탄압하고 압제하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고대 전투에서 ‘철 병거’는 오늘날 현대전의 ‘탱크’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가나안 왕 야빈은 철 병거를 무려 900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엄청난 군사력 입니다. 이스라엘은 훗날 사사시대가 종식되고 다윗 왕의 시대가 올 때까지 철 병거를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앞서 살펴봤듯이 이 당시에 이스라엘 군대는 창과 방패 같은 기본적인 군사 무기도 없었으니, 마치 오늘날로 치면 가나안은 탱크에 맞서 이스라엘 병사들은 권총 한 자루 들고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왕 야빈은 도저히 이길 수가 없는 적이었습니다. 그 결과 20년 동안 가나안은 맘 놓고 이스라엘 백성의 도시들을 약탈하고 못살게 괴롭힌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이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요 징계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극심한 압제 가운데 신음하며, 비로소 자신들이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인해 이 모든 재앙이 초래되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간절한 목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오늘 본문 3절 말씀 입니다. “(삿 4:3) 야빈 왕은 철병거 구백 승이 있어서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한고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여기 보면 “심히 학대한 고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라는 표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특징이 하나님께 크게 한 대 맞아야 정신을 차리고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이 있다면 빨리 회개하는 밤 되기를 바랍니다.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크게 한 대 맞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이 있으면 빨리 회개하고 주님께 다시 돌아오실 수 있는 복된 이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왕 야빈의 극심한 학대를 참지 못하고, 하나님을 버리고 살았던 지난 날의 죄악들을 눈물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이 역시 사사기에서 반복되는 구조(패턴) 입니다. 사사기의 이야기 구조가 [범죄, 징계, 회개, 구원, 망각]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지금 이야기가 구조의 어느 부분까지 온 거죠? ‘범죄’, ‘징계’, ‘회개’까지 왔습니다. 자 그 다음 구조가 무엇입니까? 바로 ‘구원’ 입니다.
비록 이미 수 차례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떠나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이들이 또 다시 진심으로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 제발 좀 살려달라고 간절히 부르짖자, 하나님은 또 한 번 이스라엘 백성들을 긍휼하게 여겨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변함없는 사랑이며, 무한하신 자비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셀 수도 없이 반복해서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났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하고 용서를 빌면 또 다시 언제라도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고, 징계의 손을 거두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는 다함이 없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극악무도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달려가면 그의 죄를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 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입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못할 죄가 없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지 못하실 죄인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을 찾으면 만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참 염치도 없습니다. 이들은 셀 수도 없을 만큼 하나님께 범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다시 나와 살려달라고 구원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자신들을 가나안 왕 야빈의 학대 속에서 구원해 주실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진정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을 이와 같이 온전히 의지했기에 그들을 구원하시기로 선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우신 사사가 누구입니까? 바로 그 유명한 여선지자 ‘드보라’ 입니다.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삿 4:4)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사사기에 나오는 사사 드보라는 매우 독특한 인물 입니다. 먼저 말씀을 통해 드보라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드보라는 성경에 기록된 유일한 여성 사사 입니다. 또한 그는 유일하게 예언자이며 동시에 사사였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스라엘 역사상 예언자이며 동시에 이스라엘 민족을 다스린 인물은 드보라를 포함해서 세 명 밖에 없습니다. 모세, 드보라, 사무엘 이렇게 세 명 입니다. 드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뛰어난 영적 지도자인 동시에 사사로 활동한 유일한 사람 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모세나 사무엘은 민족을 이끄는 영적 지도자이지만 예언자이기에 자신들이 직접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경우 여호수아가 대신 군대를 이끌어 전쟁에 참여 했고, 사무엘의 경우 사울 왕이 대신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참여 했습니다. 드보라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녀의 경우 바락이라는 인물이 대신 전쟁에 참여 했습니다. 따라서 드보라가 직접 전쟁에 참여하진 않았다는 이유로 그녀의 영적 지도자 자격과 사사 자격이 충분하지 않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드보라는 사사기에 등장하는 그 어떤 사사들보다도 뛰어난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5절 말씀을 이어서 봅시다. “(삿 4:5)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본래 ‘사사’라는 말은 ‘재판관’이란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사기의 영어 이름이 ‘the book of judges’ 입니다. ‘재판관들의 책’ 즈음으로 직역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사사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재판을 한 인물은 드보라 밖에 없습니다. 5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그녀에게 나아와 재판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그녀가 거한 자리를 ‘드보라의 종려나무’라고 부를 정도로 그녀의 명망이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드보라는 모세나 사무엘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 모두로부터 인정받는 지도자요, 재판장이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위대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예언자인 모세나 사무엘이 직접 전쟁에 나서지 않고 다른 이들을 전쟁에 내보낸 것과 같이, 예언자 드보라 역시 자신을 대신해서 ‘바락’을 전쟁에 보냈습니다. 6-7절 말씀입니다 “(삿 4:6) 드보라가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 이르시기를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삿 4:7)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 병거들과 그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셨느니라” 드보라는 바락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왕 야빈과 그의 군대 장관 시스라를 붙여주셨다고 선포하며 그들과 전쟁을 치르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바락은 드보라의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가나안 족속과의 전쟁에서 승리케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왜 바락이 사사 드보라의 말을 믿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가나안 왕 야빈은 철 병거만 900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탱크 900대 기억나시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제대로 된 무기 하나 없습니다. 게다가 여호수아 때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가나안의 철 무기에 대항해서 싸웠으나, 승리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바락의 입장에서 보면 여호수아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싸워서 승리한 적이 없는 강한 적군과 싸워야 하는 엄청난 부담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락은 드보라에게 자신은 이 전쟁에 혼자서는 갈 수 없다고 거절 했습니다.
우리는 바락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눈에는 가나안의 철 무기, 철 병거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강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에 쌓여, 승리를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나서기를 주저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바락과 같이 눈에 보이는 악조건 때문에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지 못하는 때가 있지 않습니까? 현재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이 힘들고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불신하고 의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이라도 도와주실 수 없다고 믿는 ‘철 병거와 같은 인생의 문제들’은 무엇입니까? 건강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 가정의 문제, 진로의 문제, 관계의 문제 등 그 어떤 철 병거 같은 문제들이 우리들을 괴롭히고 있습니까? 오늘 이 밤 내 인생의 커다란 철 병거 문제를 주님께서 해결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바락처럼 “하나님 난 그 약속 난 믿을 수 없습니다. 과거에도 안 되었던 일이 갑자기 되겠습니까?”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심하시겠습니까? 믿음을 구하십시오. 육신의 눈으로 보면 900대의 철 병거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아무리 철 병거가 강하다 한들, 하나님 앞에서는 무용지물 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문제가 아무리 산과 같이 크다 하여도, 산보다 크시고, 하늘보다 높으신 우리 주님이 도와주시면 그 문제도 해결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복된 믿음 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바락은 사사 드보라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의 약속을 믿지 못했습니다. 겁에 질린 바락은 드보라가 그와 함께 하여 주기를 간청 했습니다. 만일 드보라가 함께 가면 자신이 전쟁에 참여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드보라는 바락의 요청대로 그와 함께 전쟁을 치르러 가겠으나, 그로 인해 바락이 영광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영광’이란 적군의 우두머리를 사로잡거나 죽이는 최고의 명예를 의미합니다. 드보라는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이라고 예언 했습니다.
바락과 함께 출전한 드보라는 가나안 왕 야빈과 싸우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 모았습니다. 10절 말씀을 보니까 그 숫자가 만명 입니다. 많은 것 같지만 실상은 매우 적은 숫자 입니다. 민수기만 봐도 이스라엘 전력이 60만명이 넘었는데 만명 밖에 안 모였으니, 이스라엘 전력의 1/60도 채 안 되는 적은 병력 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가나안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왔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생각하여 죽음이 두려워 드보라와 바락의 부름에 응하지 않은 것이죠. 12절 말씀을 보면, 드보라와 바락은 일만명 밖에 되지 않은 작은 병력을 데리고 ‘다볼산’이란 장소에 올라가 진을 치게 됩니다. 다볼산은 높이가 해발 575미터로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닙니다. 그러나 왜 굳이 이들이 낮은 평지가 아닌 산 위에다가 진을 친 것일까요? 지금 이스라엘 군대가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이 뭡니까? 가나안 군대의 철 병거 입니다. 낮은 평지에 진을 치면, 언제 철 병거가 나타나서 이스라엘 군대를 칠지 모릅니다. 그래서 철 병거가 두려웠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경사가 급하여 철 병거가 올라 올 수 없는 다볼산 위에다가 진영을 친 것이죠.
이 소식을 듣게 된 가나안의 군대장관 시스라는 쾌재를 불렀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산 위에다가 진영을 쳤다는 것은, 이 산만 에워싸면 한 사람도 남김없이 쉽게 전멸 시킬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스라가 볼 때 다볼산 위에 올라간 이스라엘 백성은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에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시스라는 모든 철병거를 대동하고 온 군사를 동원하여 출전합니다. 이번에 아예 이스라엘의 병사들을 전멸시켜서 저항의 싹을 싹둑 잘라버리겠다는 심정으로 출전하고 있는 것이죠. 13절 보니까 시드라는 ‘기손 강’에다가 전력을 배치 했습니다.
뒤에서 살펴보겠습니다만, 바로 이 선택이야말로 시스라가 전쟁에서 패배한 가장 큰 원인이 되었습니다. 기손 강 지역은 건기와 우기가 상당히 차이가 많이 납니다. 우기 때는 땅 전체에서 물이 올라옵니다. 땅이 머금고 있는 물의 양이 상당히 많은 것이죠.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니까 오늘날에도 이 기손 강 부근 지역은 우기가 되면 진흙탕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기 때 이 지역을 걸으면 신발이 진흙탕에 빠지고 달라 붙어서 걷기가 매우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건기였습니다. 땅이 바싹 말라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스라도 마음 놓고 기손 강 부근에 철 병거를 가지고 온 것이죠.
그런데 시스라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 전쟁에 누가 이스라엘과 함께하고 계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돕고 계십니다. 14절 말씀을 함께 봅시다. “(삿 4:14)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이에 바락이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자, 여기 보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군대보다 앞서 행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신 것일까요? 건기는 결코 비가 올 때가 아닙니다. 그래서 마음 놓고 시스라가 철 병거를 가지고 기손 강 부근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뚝뚝 무엇이 떨어졌을까요? 하늘에서 뚝뚝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 했습니다. 빗줄기는 점차 굵어지더니 온 땅을 적시는 엄청난 폭우로 변화했습니다. 지금은 건기 입니다. 비가 올 때가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시스라가 예기치 못한 엄청난 양의 폭우를 내리셨습니다. 이것이 사사기 5장 드보라의 노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5장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삿 5:4)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도 새어서 구름이 물을 내렸나이다” 이 날 얼마나 많은 양의 비가 내렸는지, 사사 드보라는 “하늘에서 구름이 몰려오더니 비를 쏟았다”고 노래했습니다. 사사기 5장 21절을 봅시다. “(삿 5:21) 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 강은 옛 강이라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 여기서 ‘그 무리를 표류시켰다”는 말은 “그 기손 강물의 급류가 시스라의 군사들을 휩쓸어 갔다”는 뜻 입니다. 갑자기 내린 폭우로 인해서 불어난 기손 강물이 시스라의 철 병거와 가나안 군사들을 모조리 휩쓸어 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폭우를 쏟으심으로 가나안 족속이 자랑하던 철 병거는 진흙탕에 빠져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모습을 누가 보고 있습니까? 다볼산 위에 있는 드보라와 바락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폭우를 쏟으심으로 가나안의 자랑이었던 철 병거 900대가 모두 불어난 기손 강에 휩쓸려 가는 모습에 이들의 가슴은 얼마나 숨가쁘게 두근두근 뛰고 있었을까요? 이 때 드보라가 외쳤습니다. 14-15절 말씀 입니다. “(삿 4:14)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이에 바락이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삿 4:15) 여호와께서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한지라” 일만 명이라는 소수의 군대로 불가능해 보이는 가나안 군대의 철 병거 900대를 상대하여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싸움은 여호수아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상대하여 이긴 적 없는 가나안 철 병거와 싸워 이긴 첫 번째 전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선봉에 서서 친히 싸워 주셨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탱크와도 같은 철 병거 900대와의 싸움에서 제대로 된 무기도 하나 없이 싸워 승리하는 기적적인 승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이라 할 수 있는 바락은 하나님께서 철 병거를 상대로 승리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처럼 엄청난 폭우를 통해 가나안 군대를 맥 못 추게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이 대승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바락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창도 방패도 없기에 가나안을 상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사사기를 보면 가나안의 군대장관이 어떤 무기에 죽게 됩니까? 21절 말씀을 봅시다. “(삿 4:21) 그가 곤비하여 깊이 잠든지라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취하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 살쩍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시스라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가나안의 군대장관은 이스라엘 군사가 들고 있는 칼이나 창에 찔려 죽은 것이 아니라, 한 가정주부가 평상시 장막을 치기 위해 사용하던 말뚝과 방망이, 즉 한 주부가 일상 가운데 늘 사용하던 가재도구에 의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에게 철제 무기가 없어 전쟁에서 가나안 군대와 싸울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나안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죽인 말뚝과 방망이는 나무로 만들어진 가재도구 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한 여인의 손에 들린 나무로 된 말뚝과 방망이를 통해 철 병거를 지휘하던 적장을 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 누가 한 여인의 손에 들린 나무 말뚝이 여호수아 시대 때부터 아무도 이기지 못한 가나안 족속의 군대장관을 죽이는 도구로 사용되리라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참으로 우리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도와주시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우리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이 없으십니다. 우리 위대하신 주님께서 함께 싸워 주시면 계란으로도 바위를 쳐 부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고 따르는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 놓인 철 병거 같은 견고한 문제는 무엇입니까? 과거에도 안 되었기에 지금도 안 될 것이라 생각하는 산과 같이 커다란 문제는 무엇입니까? 오늘 이 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주님께서 그 견고하고 큰 문제들도 능히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진실로 우리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주님의 방법은 우리의 지혜를 초월합니다. 사람은 불가능하나, 하나님은 가능하십니다. 따라서 이 위대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 범죄하는 삶을 주의하십시오. 혹시 죄를 지었으면 어서 빨리 회개하고 돌아오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이 위대하신 하나님만을 한 평생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주님의 위대하심을 풍성하게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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