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1 부르짖는 자의 샘 (사사기 15장 1~20절)

 

 

삼손은 블레셋 여인인 자신의 아내를 찾고자 딤나에 사는 장인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장인은 황당한 답변을 주었습니다. 장인은 삼손의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주었으니, 그녀의 동생을 아내로 취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삼손이 결혼식 때 수수께끼로 30명의 남자들과 내기를 했을 때 아내가 수수께끼의 정답을 알려주는 바람에 삼손은 내기에서 패했습니다. 이 때 삼손이 화를 내며 자리를 떠났기에 장인은 삼손이 그의 딸을 미워하는 줄 알고, 자신의 딸을 삼손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주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장인의 설명을 들은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것을 당당하게 선언합니다. 삼손은 나실인으로서 공적인 소명 즉 그가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해서 싸움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단지 블레셋 사람들을 향한 개인적인 적개심으로 인해 블레셋 사람들을 공격했습니다.

삼손은 꼬리가 묶인 여우 두 마리 사이에 횃불을 달아 두었습니다. 여우가 가는 곳마다 포도원과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등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 불이 붙었습니다. 이로 인해 블레셋 사람들은 큰 농작물 피해를 입게 됩니다. 화가 난 블레셋 사람들은 범인을 찾았고, 결국 삼손이 범인으로 지목되고 그가 이런 일을 저지른 이유가 그의 장인이 삼손의 아내를 빼앗아 그의 친구에게 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이 농작물에 피해를 준 것에 대하여 장인 탓을 하며 그와 그 딸을 불살라 죽였습니다. 아무리 논밭에 불이 났다 한들 한가족을 불살라 죽이는 블레셋 사람들은 얼마나 잔인합니까? 이 당시 블레셋 사람들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잔인했으며 그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큰 죄악을 범했는지 엿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이웃이 마음에 안 들면 법 없이도 바로 죽여버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삼손은 이와 같이 장인과 그 딸을 죽여버린 블레셋 사람들의 행동을 자신을 향한 도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블레셋 사람들의 정강이와 넓적다리를 쳐서 그들을 죽였습니다. 삼손이 블레셋과 싸웠으나 그는 한 번도 공적인 사사로서 움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복수의 차원에서 행동해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계속해서 블레셋을 치고 계셨습니다. 물론 그러하더라도 자신의 탐욕을 따라 살아가는 삼손의 잘못된 행동이 긍정적 평가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는 시대입니다. 따라서 블레셋은 삼손이 자신들의 동족을 죽였다는 소식에 삼손을 붙잡기 위해 올라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괴롭히며 삼손을 내놓으라고 협박했습니다. 이로 인해 유다 사람 3천명이 에담 바위에 있는 삼손에게 찾아갑니다. 유다 사람들은 삼손을 도와 블레셋과 싸울 의도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원수인 블레셋과 싸워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없었습니다. 도리어 유다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하고 말하며 삼손을 책망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통치를 당연히 여기는 모습을 보십시오. 오랜 세월 이방의 압제에 익숙해져 삼손이 적군과 싸워 이겼음에도 그를 쓸데없는 분란을 만들어 자신들을 어려움에 처하게 만든 불량배 취급하고 있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삼손을 잡아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줄 심산이었습니다. 즉 자기들의 평화와 유익을 위해서라면 동족도 얼마든지 잡아 넘겨줄 정도로 유다 사람들은 매우 이기적이었습니다.

삼손은 같은 이스라엘 사람인 유다 민족과 충돌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순순히 유다 사람들에게 결박 당하여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졌습니다. 숨어 있던 삼손이 에담 바위에서 줄에 꽁꽁 묶인 채 잡혀 나오자 블레셋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그를 죽이러 나왔습니다. 자신들의 재산을 망치고, 동족을 죽였던 원수 삼손이 줄에 묶여 나오니 승리를 만끽하며 소리를 지르며 나온 것이죠. 그러나 이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임하며 삼손은 자신을 결박한 새 밧줄을 쉽게 끊어버렸습니다. 결박을 끊어버린 삼손은 ‘나귀의 새 턱뼈’를 집어 들었습니다.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나귀의 마르지 않은 턱 뼈를 사용했다는 뜻입니다. 칼이나 창에 비하면 나귀 턱 뼈는 분명 무기로는 별로 효과적이지 않은 도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이 함께한 삼손은 그 나귀 턱뼈로 블레셋 사람 1천명을 죽였습니다. 그 후 그는 보잘것없는 이 무기로 자신이 천 명을 죽인 것을 자랑하듯 노래했습니다. 16절을 보면 삼손이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는 “내가 천 명을 죽였다.”하고 말하며 자신이 행한 업적을 스스로 치켜 세우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삼손의 삶에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없었습니다.

18절을 보면, 싸움 이후 목이 심하게 마른 삼손은 하나님께 물을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러니까 삼손은 언제 하나님을 찾습니까? 자신이 필요할 때만 찾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예배나 감사나 찬양은 없고, 오직 자신이 무언가 도움이 필요할 때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짖었습니다. 삼손은 적과의 싸움에서 승리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삼손은 전형적인 ‘잘 되면 내 탓, 안 되면 하나님 탓’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8절 목이 마르고 나서야 그는 이제 자신의 승리를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으로 고백합니다. 이처럼 삼손은 자신이 위급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삼손은 자기 눈에 좋은 대로 행했습니다. 이는 이 당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축소판이었습니다. 삼손이 하나님을 찾은 것은 그분을 예배하거나 감사와 찬양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개인적 곤경을 벗어나기 위한 부르짖음이었습니다.

20절 기록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무려 20년 동안 사사로 지냈습니다. 삼손 이전에 모든 사사들은 그들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 땅에 평안이 찾아왔고, 이방의 압제로부터도 해방되어 자유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유명무실한 사사였습니다. 삼손은 사사기에서 가장 힘이 센 사사로 기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대 이스라엘은 여전히 블레셋의 통치 아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압제를 당하며 사는 전쟁 노예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도 이를 당연하게 여겼고, 사사 삼손도 자신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나설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삼손이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고, 개인의 탐욕을 따라 행하며 살아가자, 삼손은 사사기에서 가장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도 결국 민족을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전쟁을 하지 못했던 기드온도 300명을 데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했것만, 삼손은 초자연적인 힘을 가지고도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압제에서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자신의 뜻에 따라 살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그가 사사로 지내는 20년 동안 블레셋의 압제 아래 고통 당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개인의 탐욕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우리 삶을 드리고 주님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