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5 풍요에 빼앗긴 마음 (사사기 2장 11-23절)

출애굽 1세대는 모세와 함께 애굽을 빠져나온 사람들입니다. 출애굽 1세대는 모세와 함께 홍해를 건넜고,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들입니다. 출애굽 1세는 정탐꾼 사건으로 인해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민수기 26장부터 출애굽 2세대가 본격적으로 이야기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출애굽 2세대는 애굽을 빠져나올 때 어린 아이였거나, 출애굽 1세대가 광야 생활을 하며 새롭게 태어난 세대입니다. 출애굽 2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과 함께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됩니다. 출애굽 2세대만 해도 광야 생활을 경험해 보았거나, 가나안 정복 때 일어난 많은 이적과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요단 강이 갈라지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일, 해가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하루 종일 땅에 떠 있는 일 등 이들 역시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경험한 세대입니다.

출애굽 2세대의 가나안 정복이 마무리되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 성경은 가나안 땅에서 살아가는 출애굽 3세대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들은 그들의 부모 세대와 다르게 전쟁을 경험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들의 부모 세대인 출애굽 2세대가 가나안 땅을 어느 정도 정복하였기에 출애굽 3세대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전쟁 없이 평안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가나안 사람들을 남겨두지 말고 그 땅에서 다 쫓아내고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출애굽 3세대는 가나안 족속과 싸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가나안 땅에 남아 있는 이방 민족들과 함께 살아가며 그들과 동화되어 갔습니다. 그러는 사이 가나안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출애굽 3세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들이 약속하는 ‘풍요’와 ‘번영’, 그리고 육체적 쾌락은 출애굽 3세대의 마음 속 자리 잡은 탐욕을 끊임없이 자극했습니다.

반면, 출애굽 3세대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물려준 여호와 신앙이 그들에게 점차 매력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사기 2장 1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사기 2:10)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부모 세대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만, 자녀 세대 와서는 하나님을 잊고 살아가는 안타까운 모습이 우리 시대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함을 요구하는 여호와 신앙보다, 풍요로움과 번영을 약속하는 바알 신앙이 더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거룩함과 순결을 요구하는 여호와 신앙은 그들의 삶을 옭아매는 구습으로만 보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따르는 삶이 추구해야 할 거룩함, 성결함, 절제, 겸손과 같은 성품들은 출애굽 3세대에게는 불필요하고 심지어 불편하게 다가왔습니다.

결국 출애굽 3세대는 가나안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 그리고 신앙에 흠뻑 빠지게 됩니다. 어리석게도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결정을 해버리고 맙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도 완전히 무시하고 지냈습니다. 그리고 이방신들이 섬기는 우상들에게 섬기며 그것들을 따라 섬겼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같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지 불과 한 두 세대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만, 이스라엘은 급속도로 세속화되어 갔습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민족인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 버리자, 이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심히 컸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가나안 사람들의 우상을 섬기자, 하나님은 그들을 보호하고 계시던 주님의 손을 거두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원수들의 손에 넘기시고, 그들이 대적들과 싸워 이기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여태까지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이 그들을 떠나자 그들은 마치 굶주린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철장에 던져진 양처럼 처참하게 짓밟히고 뜯기고 잡아 먹혔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고 괴로움이 심하도록 벌을 내리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대신하여 택한 풍요의 신 바알과 부요함의 신 아세라가 이스라엘을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풍요를 약속했던 바알은 이스라엘에게 빈곤과 비참함을 가져다 주었고, 부요함을 약속했던 아세라는 이스라엘에게 고통과 눈물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우상은 죽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 외에 신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상이 약속하는 것은 거짓이며 아무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외에 우리 인간의 삶에 복 주실 분이 또 누가 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에게 행복을 약속하는 세상의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돈, 명예, 권력, 육체적 쾌락이 가장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들을 목표로 삼고 삶을 살아간다면 그것은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우상들은 인간에게 참된 행복과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 주님께서 그들 위에 두신 은총을 거두셨을 때 이스라엘이 가진 돈, 명예, 권력, 기쁨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의 원수가 모조리 다 빼앗아 갔습니다. 하나님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택한 가나안의 우상들은 풍요의 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있어야 하는 우리들의 마음을 가로채려고 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세상과 그 안에 속한 것들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뺏지 못하도록 영혼을 죄악으로부터 잘 간직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 유혹을 이기는 방법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을 매일 발견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즐거워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갈 때, 세상의 달콤한 유혹도 어렵지 않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시편 84:10)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시편 84: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시편 84: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조금 전까지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맛있게 식하여 배부른 사람에게는 다른 음식들이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이거 드실래요?”하고 권해도 “괜찮습니다.”하고 거절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주일 동안 굶어서 배가 고픈 사람을 떠올려 보십시오. 아무런 잼도 바르지 않은 밋밋한 식빵 한 조각도 맛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부요하신 사랑으로 풍성하게 채워져 있으면 세상이 유혹이 작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으로 영혼이 만족하여 배부른데, 다른 거 채울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 영혼이 하나님으로 채워져 있지 않으면 우리는 영적 허기짐과 굶주림 속에서 살아간다면 어떻겠습니까? 세상이 제공하는 불량식품들로 우리 영혼을 채워 넣으려고 할 것입니다.

자연은 진공상태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공기는 항상 그 무언가로 채워져 있습니다. 우리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영혼도 진공상태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져 있던지 세상의 죄악으로 채워져 있던지 둘 중 하나입니다. 우리 영혼을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채워 두면 세상 유혹이 자리잡을 공간이 없습니다. 날마다 우리 마음을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 두십시오. 그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다윗은 악인의 장막에 VIP 손님으로 초대받아도 안 간다고 했습니다. 차라리 하나님의 장막 앞에서 밤새도록 문지기로 보초 서고 있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쁨이 있고, 주의 우편에 즐거움이 있는데 그 귀한 행복을 버리고 어디로 떠나가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이유도 결국 그들이 하나님 안에 있는 기쁨과 즐거움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알과 아세라가 약속한 풍요를 갈망하며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택하였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습니까? 주님 안에 있는 참된 만족과 즐거움을 발견하셨습니까? 찬송가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의 가사를 떠올려 보십시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유혹과 핍박이 몰려 와도 주 섬기는 내 맘 변치 않아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주 예수 안에서 참된 만족과 기쁨을 발견하면 세상 유혹과 핍박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 유혹에 넘어졌으면 빨리 하나님께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자 하나님께서는 사사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사사기 2장 18절 말씀을 봅시다. “(2:18)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를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의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어늘”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로움을 당하여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을 때 그들을 구원하신 이유를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주의 백성이 회개하며 주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선택했으나,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자 주님은 이스라엘을 다시 받아 주셨습니다. 마치 아버지의 유산을 들고 먼 해외로 도망치듯 떠나 집안 가산을 다 탕진하고 돌아온 탕자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아버지가 그 아들을 다시 안아주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께 돌아오자 주님의 넓은 팔로 다시 안아 주셨습니다.

물론 오늘 본문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호소는 진정한 회개로 보기 어렵습니다.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은 지금 당장 그들이 맞닥트린 괴로움을 모면하기 위한 호소에 가까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 주셨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붙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괴로움을 호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었습니다만, 백성들은 참된 회개, 참된 삶의 변화로 나아가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당장 눈 앞에 괴로움이 사라지고 나면, 금세 마음을 돌이키고 또 다시 가나안의 우상들이 약속하는 거짓 풍요와 쾌락에 잠식되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우신 사사가 죽고 나면, 이전보다 더욱 타락하여 또 다시 우상들을 섬기는 삶으로 돌아갔고 악을 저질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참된 회개에 이르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 것을 포기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시험하시기 위하여 이방 민족을 쫓아내지 않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사사기 2장 19-22절 말씀을 봅시다. “(2:19)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 열조보다 더욱 패괴하여 다른 신들을 좇아 섬겨 그들에게 절하고 그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2:20)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 열조와 세운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은즉 (2:21)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둔 열국을 다시는 그들의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2:22) 이는 이스라엘이 그 열조의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로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성결한 삶을 살아가기를 포기하자,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삶 속에서 이방 민족을 몰아내는 싸움을 멈추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이스라엘 백성의 도움 없이도 가나안 족속들을 그 땅에서 충분히 몰아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의 백성들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이스라엘의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과 같은 삶의 고통들을 먼저 없애 달라고 기도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고통을 없애 주시면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순서를 바꿔서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먼저 하나님께 순종하면 주님의 은총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순서는 먼저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 안에 주어진 기쁨과 복이 뒤따라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죄악의 길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잠시 눈 앞에 있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집중했을 뿐, 근본적인 죄의 문제를 끊어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영적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는 은혜의 기회, 순종의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이 세상의 죄악에 우리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