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08 사명의 발견 (출애굽기 28장 1-14절)

2009년 9월 15일, 영국의 한 병사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작전 수행 도중 적군의 로켓 공격을 받고 전사를 하게 됩니다. [케빈 엘리오트]라는 이름을 가진 이 병사의 나이는 불과 24살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2010년 1월, 그의 장례식은 스코틀랜드 던디에서 엄숙한 분위기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한 젊은이의 죽음에 수많은 애도 인파가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대부분의 장례식이 그러하듯이 애도의 표시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온 시민들이 끝없는 행렬을 이루었습니다. 한참 엄숙하게 진행되던 케빈 엘리오트의 장례식에 우스꽝스러운 여장 차림을 한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연두색 차림의 원피를 입고 있었고, 핑크색 양말을 신고 있었습니다. 장례식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낯선 남자의 등장에 사람들은 웅성대기 시작했고 급기야 화를 냈습니다. 이 청년이 고인과 유족에 대한 아무런 예의가 없다고 생각하고는 ‘이게 무슨 장난질이냐?’며 화를 내며, 그가 고인의 무덤에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죽은 케빈의 다른 친구들이 이 청년을 데리고 무덤 가까이에 갔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장례식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이 희한한 광경을 그저 쳐다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날 우스광스러운 복장을 하고 온 이 청년의 이름은 [베리 델레이니]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은 [케빈 엘리오트]의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사정은 이러했습니다. 케빈은 아프간에 파병을 가기 전 베리와 웃으며 말했습니다. “만일 내가 죽으면 가장 화려한 색상의 여자 드레스를 착용하고 장례식에 참석해죠.” 베리는 케빈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이처럼 우스꽝스러운 드레스를 입고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의 무덤과 묘비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베리가 말했습니다. “케빈 드레스 색깔은 마음에 드니?“ 그 후 베리는 한참 동안 친구의 무덤 앞에서 아무 말도 없는 친구의 묘비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이 장면은 전 세계에 뉴스에 반영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의 진한 우정을 보며 웃으며 동시에 눈물짓게 만들었습니다.

옷이란 것이 때로는 마음을 대변하는 가장 좋은 도구가 됩니다. 우리가 평상시 집에서 편하게 입는 옷과 가족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참여할 때 입는 옷은 다릅니다. 그 이유는 옷을 통해 우리 그 특별한 자리에서 우리의 마음이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결혼 예식에서 신부가 입는 순백의 드레스는 그 예식이 주는 고귀하고 신성한 의미를 표현합니다. 장례식에서 유족들이 입는 검은색 옷은 사랑하는 고인을 잃어버림으로 인해 큰 비탄과 슬픔에 빠진 유족들의 마음을 잘 나타냅니다. 또한 장례식에 참여한 사람들이 입는 검은색 옷들도 그들의 아픈 마음에 공감하고 함께하고 싶은 위로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이처럼 옷은 사람의 마음과 태도를 잘 반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어떠한 옷을 입어야 할까요? 만일 어떤 목사님이 주일 예배에 설교 드리기 위해 강단에 섰는데, 바닷가가 있는 휴양지에서 입을 것 같은 화려한 색상의 나시티를 입고, 허벅지가 다 보일 정도의 짧은 반바지에, 양말도 신지 않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올라와 있다면 다음 달에 그 목사님을 다시 만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사람들은 때와 장소에 맞는 옷을 입기를 요구하고 또 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성막에서 주님을 섬기는 일을 감당하게 될 제사장에게 그들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의미로 거룩한 예복을 지어 입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절 말씀을 봅시다. “(28:3)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구별되어 있기 위하여 특별히 제작한 예복을 입어야 했습니다. 대제사장이 입는 예복은 총 6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4절을 봅시다. “(28:4) 그들의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아론으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할지며” 4절에 나온 대제사장의 의복은 총 3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장 안쪽에 입는 하얀색 속옷입니다. 이게 말이 속옷이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underwear는 아닙니다. 대제사장의 경우 총 three layer로 옷을 입는데, 그 중 가장 안쪽에 입는 옷이라고 해서 이름을 ‘속옷’이라고 부르는 것 뿐입니다. 대제사장이 입는 진짜 underwear는 허리에서 시작해서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옷으로 ‘속바지’ 혹은 ‘고의’라고 불리는 옷이었습니다. Underwear를 제외하고, 대제사장이 입는 three layer로 구성된 옷 중에 가장 안쪽에 입는 옷이 하얀색 속옷입니다. 소매는 손목까지 오는 긴팔이고, 옷의 길이는 발등에 이를 정도로 길었습니다. 그 위에 파란색으로 된 겉옷을 입었습니다. 이 겉옷의 특징은 아래쪽 밑단에 금방울이 달려 있어서 제사장이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났습니다. 이는 제사장이 성막에서 실수로 죽게 된 경우 밖에서 금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것이고, 그 때에는 줄로 그를 끌어내도록 했습니다. 가장 바깥쪽에는 ‘에봇’이라 불리는 조끼를 입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입는 에봇의 가슴 쪽에는 ‘흉패’라는 것이 달려 있었고, 흉패에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이름이 각각 새겨진 열 두개의 보석이 3개씩 총 4줄로 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흉패 에는 주머니 같은 공간이 있는데, 여기에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제비뽑기 형식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우림’과 ‘둠밈’이란 이름의 색깔이 서로 다른 두 돌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대제사장이 입는 옷은 속옷, 금방울이 달린 겉옷, 흉패가 달린 에봇 이렇게 총 three layer로 되어 있습니다. 머리에는 터번 모양의 관을 썼고, 이마에는 금으로 만든 패가 달려 있었는데, 거기에는 ‘여호와께 성결’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입는 거룩한 옷, 참 복잡해 보이죠?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주님 앞에서 주를 섬기게 될 대제사장이 이와 같은 거룩한 예복을 입게 하심으로써 그가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구별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예복을 입지 않고는 아무리 대제사장이라고 해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여러분은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하고 불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입니다. 자 그렇다면, 구약시대 제사장들이 거룩한 예복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다면,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무엇을 입어야 할까요? 갈라디아서 3장 27절을 봅시다.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입고 있는 죄의 더러운 옷을 먼저 벗어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죄악을 하나님 앞에서 회개함으로써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제 예수님의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옷으로 입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함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로 옷 입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부터 우리는 비로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우리가 예배 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예복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날마다 우리 삶 속의 죄악들을 주님께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은 더욱 단단해지고 깊어지기를 축복합니다.

대제사장이 입는 three layers 로 된 예복 중에 가장 바깥 쪽에 입는 옷이 ‘에봇’이라고 했습니다. ‘에봇’은 오늘날로 말하면 ‘조끼’나 ‘앞치마’와 그 형태가 유사합니다. 에봇은 나머지 예복들과 다르게 만드는 재료가 좀 독특합니다. 출애굽기 28장 6절을 새번역성경으로 봅시다. “(28:6) 그들은 금 실과 청색 실과 자주색 실과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모시 실로 정교하게 감을 짜서 에봇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 보니 에봇을 만들 때는 금 실, 청색 실, 자주색 실, 홍색 실, 가늘게 꼰 모시 실 등 아주 다양한 재료가 사용됩니다. 이게 왜 독특한가 하면 이 재료들은 ‘성막의 휘장’을 만들 때 사용했던 바로 그 동일한 재료이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이 입는 옷을 성막의 휘장을 만들 때 사용했던 동일한 재료로 제작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을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구별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성막의 휘장과 대제사장의 옷이 같은 재료로 만들어지는 모습을 통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대제사장임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4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제사장 되심을 가르쳐줍니다. “(히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주신 대제사장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오직 대제사장만이 하나님 계신 지성소까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도 아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우리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에봇의 또 한 가지 특징은 두 어깨에 ‘호마노’란 이름의 보석이 박혀 있다는 데 있습니다. 두 개의 ‘호마노’에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중 여섯 지파의 이름이 각각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이름이 새겨진 보석을 금틀에 박고, 그것을 에봇의 어깨 끈에 붙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대제사장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들어올 때마다 그들의 이름이 새겨진 보석도 함께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대제사장이 이와 같이 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늘 기억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8장 12절을 봅시다. “(28:12) 그 두 보석은 이스라엘 지파들을 상징하는 기념 보석이니, 에봇의 양쪽 멜빵에 달아라. 아론이 이렇게 그들의 이름을 자기의 두 어깨에 짊어지고 다니면, 내가 나의 백성을 늘 기억하겠다.”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의 두 어깨에 있는 보석에 새겨진 이스라엘의 이름을 보고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말씀은 하나의 상징입니다. 어찌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까먹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연히 한 순간도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입장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언제나 기억하신다는 사실을 더욱 확실하게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언제나 기억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보물과도 같은 소중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위해 새로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오른편에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8장 34절을 봅시다. “(롬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우리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고 계시고, 대제사장으로써 우리들을 위해서 쉬지 않고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께 기억되고 있고, 하나님의 존귀한 자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주시는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을 통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새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우리가 대제사장이신 주님을 의지하고 날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위대한 은혜를 힘입어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