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9 사도행전 강해 (20) 서로 하나된 안디옥 교회 (사도행전 13장 1절)

시각 장애인으로 태어났으나, 장애를 극복하고 뛰어난 가창력으로 세계적인 테너가 된 이탈리아의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 지난 1995년 그의 첫 앨범이 세상에 공개되자, 앨범 수록곡 중 [Con te partirò](콘 테 빠띠로)라는 곡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됩니다. 1년 후, ‘영국이 낳은 최고의 소프라노’, ‘신이 내린 목소리’라 불리는 [사라 브라이트먼]은 [안드레아 보첼리]에게 [Con te partirò]의 제목과 그 제목에 해당하는 가사만 영어로 바꾸어 부르자고 제안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 아래 두 사람이 듀엣으로 녹음하여 재탄생한 곳이 바로 [Time to say goodbye] 입니다. 이 곡은 발표되자마자 독일 차트 톱으로 데뷔하여 무려 14주 동안 정상에 있었습니다. 벨기에 프랑스에서도 차트 1위를 머물며 히트곡이 됩니다. 또한 성악 앨범으로는 달성하기 힘든 3백만장 가까운 판매고를 기록하게 됩니다. 무엇이 이토록 사람들이 이 곡에 열광하게 하였을까요?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두 정상 성악가의 아름다운 화음, 그리고 그들의 노래를 더욱 빛나게 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연주 때문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특별히 [사라 브라이트먼]이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인인 [안드레아 보첼리] 곁에서 그를 도와 무대에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며 이를 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음악이 아름다운 것은 Harmony 때문입니다. 100명이 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함께 연주하고 세계적인 두 명의 성악가들이 부른 한 곡의 노래가 이처럼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든 이유는 harmony 즉 조화가 주는 기쁨과 감동 때문입니다.

이처럼 서로 전혀 다른 요소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그 속에서 진한 감격과 깊은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조화의 원리는 교회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연령, 성별, 출신지, 성장 배경, 삶의 환경 등 정말 무엇 하나 공통점을 찾아보기 힘든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생활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한 번 주변에 앉아 계신 성도님들을 돌아보십시오.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분들이 주변에 앉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서로 다른 존재가 함께 모여 생활하는 공간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안에서는 이따금씩 서로 다른 차이로 인해 소음도 나고 싸움도 납니다. 그러한 모습은 우리 마음을 아프게 만듭니다. 때로는 교회가 분열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에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교회 성도가 서로 하나 되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에게 커다란 기쁨을 안겨줍니다. 세상에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코너스톤 교회가 주 안에서 하나되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기쁨과 감동이 머무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양한 이들이 하나로 아우러진 교회 (1절)

성경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로 어우러진 모습을 보여주는 모범적인 교회가 있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 속 등장하는 안디옥 교회입니다. ‘안디옥’이란 이름을 가진 이 도시는 로마 제국에서 3번째로 가장 큰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 안에는 서로 다른 다양한 종교, 인종,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한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으로 보면 ‘San Francisco’나 ‘New York’과 같이 전 세계 다양한 인종들이 함께 모여 사는 대도시입니다. 이와 같이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에 세워진 안디옥 교회 또한 다양한 출신의 성도들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서로의 다름 때문에 분열할 수 있는 교회였으나, 오히려 안디옥 교회는 서로의 다름을 끌어안고 성숙한 놀라운 교회였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안디옥 교회의 모습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3장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행 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1절 말씀에 나오는 이름들은 안디옥 교회를 이끌어 가는 리더들의 명단입니다. 바나바, 시므온, 루기오, 마나엔, 사울 이렇게 총 5명이 등장합니다. 편의상 이후 사울을 그의 나중 이름인 ‘바울’이라 칭하겠습니다. 여기 명단에 기록된 이름의 순서는 안디옥 교회에서의 영향력이 가장 큰 리더의 이름 순서대로 기록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일찍부터 교회의 지도자로 인정받았던 바나바가 가장 서두에 나왔고, 얼마전 까지만 해도 교회를 핍박하다가 비교적 늦게 그리스도인이 된 바울이 가장 마지막에 기록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리더 5명만 봐도 안디옥 교회가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생활하는 신앙공동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1. 격려와 위로의 리더십 바나바

제일 먼저, 바나바는 구브로 섬 출신의 헬라파 유대인입니다. 헬라파 유대인이란 말은, 팔레스타인 본토에서 사용되던 아람어가 아닌 당시 국제 언어인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입니다. 예수님도 베드로도 다 아람어를 사용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달리다굼’, ‘에바다’, 십자가에서 외치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런 말씀들이 다 아람어입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헬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에 있는 한국이민교회 상황으로 비유해서 말하면, 안디옥 교회의 담임 목사인 바나바는 한글을 사용하는 1세 목회자가 아니라 영어가 더 편한 2세 목회자인 셈입니다. 이와 같이 헬라어를 사용하는 바나바가 리더의 자리에 있다 보니 더 다양한 이방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 안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들 중 하나는 바나바의 신앙과 성품 때문이었습니다. 바나바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성경의 기록들을 찾아봅시다. 먼저 사도행전 4장 36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쉬운성경 번역으로 읽겠습니다. “(행 4:36) 믿는 사람 중에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그 사람을 바나바라고 불렀습니다. 바나바란 이름의 뜻은 ‘격려하는`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는 사역을 했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어 낙심하는 성도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힘을 북돋아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핍박으로 인해 믿음이 흔들리는 성도들을 찾아가 함께 기도하며 그들의 믿음을 잡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에 빠진 성도들을 돕기 위해 그가 가진 밭도 팔아 나눠줄 정도로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할 때에도 이와 같이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아끼지 않고 성도들을 격려하고 위로하였을 것임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의 희생과 섬김으로 인해 안디옥 교회를 구성하는 서로 다른 성도들도 더욱 하나로 똘똘 뭉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성도가 서로 하나 되는 교회에는 다른 성도들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섬김과 희생하는 성숙한 바나바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어서 사도행전 11장 2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행 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바나바는 성품이 축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착하다’는 표현은 ‘높이 평가하다’란 뜻으로 다른 사람들이 바나바를 보면서, “저 사람 참 괜찮은 사람이다”, “저 사람 참 훌륭한 사람이다”하고 평가받는 인물이란 사실을 보여줍니다. 성령이 충만한 바나바의 믿음은 그의 언어, 표정, 사고, 삶을 통하여 흘러나와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을 했습니다.

코너스톤 교회도 바나바와 같이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할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믿음이 성숙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위로를 받고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위로 받으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위로할 사람은 없나?”, “내가 찾아갈 사람은 누구인가?”하고 묻는 태도와 자세로 살아갑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교회의 한 사람 한 사람 찾아가 위로하며 살아갑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제2의 바나바, 제3의 바나바가 나타나는 코너스톤 교회 되기를 축복합니다.

 

  1. 인종의 차이를 품은 교회

두번째 인물인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을 봅시다. 여기서 ‘니게르’라는 표현은 라틴어로 ‘검은색’(black)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흑인을 칭하는 영어단어 ‘negro’가 여기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보아 본문에 나오는 시므온은 흑인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오늘날 미국 내에서도 인종차별은 얼마나 빈번하게 일어납니까? 지금도 미국에서 인종차별 때문에 얼마나 많은 혐오 범죄들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우리들도 미국에서 살면서 피부색이 다른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또는 영어를 잘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식당이나 가게 혹은 직장에서 미국 사람들에게 부당하게 차별당한 경험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의 피부색 또는 언어의 차이 때문에 사람들에게 차별당하는 경험은 얼마나 기분 나쁩니까? 신약시대도 차별은 있었습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에게 조롱 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했고,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성도들 간에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차별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달랐습니다. 피부색이 다른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도 교회의 핵심 리더가 될 정도로 이 교회는 외적인 요소를 두고 차별하지 않는 교회, 매우 성숙한 공동체였습니다.

 

  1. 지역의 차이를 품은 교회

세번째 인물은 “구레네 사람 루기오”입니다. 구레네는 북아프리카 리비아 지역에 있는 도시입니다. 즉 이 사람은 출신지가 전혀 다른 아프리카 사람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출신지와 성장 배경이 전혀 달랐던 루기오 같은 사람도 리더십으로 섬기며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성숙한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11장 20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행 11: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행 11: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성경학자들은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지기도 전에 헬라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담대히 전파했던 구레네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바로 이 루기오였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비록 그는 고향 구레네로부터 멀리 떨어진 안디옥에서 살고 있었으나, 그곳에서도 열심으로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3장 1절로 돌아가면 지금 여기에 기록된 다섯 사람은 모두 ‘선지자’ 혹은 ‘교사’들입니다. 누가 선지자인지 누가 교사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혹 다섯 사람 모두가 선지자이자 동시에 교사일수도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직분 세 가지가 바로 ‘사도’, ‘선지자’, ‘교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 바나바 뿐만 아니라 피부색이 다른 시므온, 저 멀리 북아프리카에서 온 루기오에게도 이 귀한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사람을 세우실 때 그 사람의 출신 성분, 그의 인종 등 외적인 모습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주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교회 리더로 세웠습니다.

 

  1. 신분의 차이를 품은 교회

네번째 인물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입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젖동생’이란 말은 ‘아무개와 함께 양육 받은 사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마나엔은 그 당시 갈릴리 지역과 베레아 지역을 다스린 분봉 왕 헤롯과 어려서부터 함께 왕궁에서 자라난 사람입니다. ‘젖동생’이란 단어가 ‘유모의 아들’이란 뜻도 있지만, ‘헤롯 왕가의 일원’이란 뜻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성경학자들은 마나엔이 ‘왕족 혹은 귀족이 아니었을까?’하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젖동생이란 단어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든지, 마나엔은 분봉 왕 헤롯과 어려서부터 친형제처럼 함께 왕궁에서 자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왕족과 함께 자란 사람들은 대게 왕자가 통치자가 되면 그의 신뢰할만한 최측근 인물로서 왕의 통치를 돕는 왕국의 신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나엔은 왕궁에서 왕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성도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젖을 먹고 자란 분봉 왕 헤롯은 세례 요한을 죽이고, 예수님을 재판한 악인으로 역사에 남은 반면, 마나엔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간 위대한 성도로 그 이름을 남겼습니다. 어쩌면 헤롯 왕가의 피가 흐르는지도 모르는 마나엔은 세상의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안디옥 교회에서 성도들을 섬기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몇몇 성경학자들은 어쩌면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인 마나엔이 왕가에서 자랐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그가 나름 부유한 귀족은 아니었을까 추측해보기도 합니다. 이에 비해 1세기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 대부분은 노예 출신이 많았고,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쩌면 앞서 언급한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 구레네 사람 루기오도 다 가난한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사람을 그들의 사회적 신분으로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1절에 기록된 안디옥 교회 리더 5명의 이름이 기록된 순서는 안디옥 교회 안에서 그들이 가진 영향력의 순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왕족 또는 귀족 마나엔 보다 피부 색이 다른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타국 북아프리카 출신의 루기오가 교회 안에서 더욱 큰 영향력을 가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안디옥 교회는 사회적인 출신성분으로 성도들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적인 기준들을 뒤로한 채 오직 서로 함께 교회를 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2장 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약 2: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약 2: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약 2: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약 2:4)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야고보서 2장 8-9절을 이어서 보겠습니다. “(약 2:8)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약 2:9)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분명 야고보서는 성도들이 사람을 그의 외모와 사회적 신분 때문에 차별 대우하는 것을 악한 행위로 규정하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도들을 대할 때 외적인 요소들을 기준으로 놓고 사람을 차별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큰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을 차별하지 아니하고 사랑으로 품고 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1. 박해자 사울”을 불러온 교회

마지막 다섯 번째 인물인 사울 곧 바울은 다소에서 태어난 유대인입니다. 바나바와 마찬가지로 해외에서 태어난 바울은 그 당시 국제 언어인 헬라어에 능통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아람어, 로마 사람들이 사용한 라틴어, 율법을 배우면서 익힌 히브리어까지 총 4개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유대인 율법 학자입니다. 당시 유대교 최고의 학파라 불리는 가말리엘 학파 사람입니다. 바울은 유대교의 엘리트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이렇게 보면 분명 바울은 대단한 사람입니다만, 사실 그는 다가가기 쉽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소문난 박해자였습니다. 바울은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는 현장에도 있었고, 다메섹에 사는 성도들을 잡아 가는 무리에도 선봉장으로 나설 정도로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히고 혐오하던 사람입니다. 이 당시 바울은 아직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입니다. 그러하다 보니 성도들은 그가 과거에 교회를 핍박하던 무서운 모습을 잊지 못하고, 그와 함께 하기를 두려워했습니다. 분명 바울도 성도이긴 한데, 차마 함께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하자고 말을 꺼내기가 힘든 사람인 거죠. 그러나 바나바는 그런 바울을 만나기 위해 자기가 직접 다소로 찾아가, 바울을 데리고 왔습니다. 사도행전 11장 25-26절을 봅시다. “(행 11: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행 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컫음을 받게 되었더라” 바나바는 아무도 찾아가지 않았던 바울을 안디옥 교회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바울은 점차 성숙해져 갔고, 결국 교회의 성도들을 섬기고 이끄는 리더가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고슴도치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가가면 내 마음이 다치고, 상처 입을 것 같은 유형의 사람들입니다. 자기 자신이 고슴도치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대부분 그 사실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은 늘 교회 안에서도 외롭습니다. 상처주는 말을 쉽게 또는 함부로 하는 사람,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고슴도치 같은 사람들입니다. 바울도 한 성격 하는 사람입니다. 성격이 불 같아서 다가가기 힘든 고슴도치 같은 성도였을 것입니다. 바울은 사람 눈치 보지 아니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하는 직설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사람들에게 차가운 사람으로,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으로 오해도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이처럼 다가가기 힘든 사람, 대화 나누기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아무도 찾으려 하지 않았던 그 고슴도치 바울을 찾으러 몸소 다소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그와 함께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안디옥 교회 공동체와 생활하면서 서서히 그의 모난 부분들이 다듬어져 갔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가진 위대한 사랑의 힘입니다. 사람은 잘 변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식물은 비를 머금고 자라는 것처럼, 사람은 사랑을 머금고 자라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과 같이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포기하지 말고 사랑을 베풀어 주십시오. 그 때 그들은 주님의 사랑 안에서 성장하게 될 것이며, 인내하며 사랑을 나눠준 우리들도 함께 주님 안에서 성숙하게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피아노 건반을 보면, 7개의 하얀색 건반과 5개의 검은 건반 총 12개의 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음계를 가진 피아노의 건반을 마구잡이로 누르면 소음이 됩니다. 피아노를 배운 적 없는 어린 아이들이 피아노 치는 소리를 들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소음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음악을 제대로 배운 사람이 화성학을 따라 도미솔, 파라도, 솔시레 등 다양한 음을 질서 있게 연주하면, 서로 전혀 다른 소리를 내는 다양한 건반들이 조화를 이루어 우리 마음에 기쁨과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화음이 나타납니다. 음악이 우리 마음에 평안함을 가져주는 이유는 바로 이런 다양한 음계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음악과 같이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인간에게 기쁨과 감동을 선사합니다.

똑같은 피아노이지만 조화를 잃어버리면 듣기 싫은 소음이 되고, 조화를 이루면 아름다운 화음이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질서와 배려가 사라지면 서로 다투고 분열하지만,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조화롭게 살아가면 기쁨과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성도들을 섬기며, 격려하고 위로하며, 끝까지 인내하고 사랑함으로써 주 안에서 하나 되는 아름다운 코너스톤 교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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