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7 매일 하나님을 신뢰하라 (출애굽기 16장 1-21절)

친구와의 우정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어려울 때 판가름 납니다.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외면하는 친구는 가짜친구이지만,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러 오는 친구는 진짜 친구입니다. 이처럼 참된 우정은 어려운 상황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로 신뢰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우리 삶에 고난이 찾아올 때 드러나게 됩니다. 삶에 어려움이 찾아올 때 쉽사리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은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한 불신이 있음을 밝혀지게 되며,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끝까지 붙드는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이 그 안에 자리잡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처럼 참된 믿음은 고난 속에서 밝히 드러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 찾아오는 어려움과 아픔 가운데 우리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이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어려운 상황 속에서 불평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십니까? 아니면 고난 가운데서도 여전히 내 삶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속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한지 이제 한 달이 지났습니다. 이들은 ‘신 광야’라는 지역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먹을 양식이 하나도 없는, 식물이 자리지 못하는 거칠고 메마른 불모지였습니다. 먹을 것이 떨어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답답한 마음에 불평하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출애굽기 16장 2-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출 16:2)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출 16:3)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양식이 떨어지자,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을 원망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실상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홍해를 건너며 하나님을 향해 기쁨의 노래를 부르며, 승리의 춤을 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그 동일한 입으로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불평의 소리를 내며 투덜거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애굽에서 강제 노역하며 살던 고된 노예의 삶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도리어 ‘왜 우리를 애굽에서 잘 살고 있던 우리들을 데리고 와서 이 광야에서 굶어 죽게 만들었느냐?’하고 소리치며 하나님께 배은망덕한 망언을 했습니다.

한 번 생각해봅시다. 만일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이었다면 우리는 이 상황 속에서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우리는 양식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도 과연 하나님 원망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먹을 것이 부족하다는 것은 생계의 문제 이상으로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진영에는 몸이 약한 노인들도 있었고, 갓난 아이들, 한창 먹고 자랄 10대 청소년들도 있었습니다. 나는 굶어도 괜찮지만, 가족이 굶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사람이 가만이 있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고, 오히려 정당해 보이지 않습니까? 없어도 되는 사치품이 아니라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먹을 양식이 떨어졌습니다. 우리 나라 옛날 속담 중에 ‘사흘 굶어서 남의 담 안 넘는 놈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 참을 수 없는 고통 중 하나가 ‘배고픔’ 아니겠습니까? 내가 배고픈 것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가족이 배고픈 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더더욱 고통스럽습니다. “하나님, 내가 애굽 나오고 싶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모세 통해서 우리 애굽에서 꺼내 오셨으면 먹을 것은 주셔야죠? 하나님, 나 하나 굶는 것은 괜찮아요. 그래도 내 처자식들은 먹여주세요!” 이렇게 대들듯이 하나님께 반항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 한편으로는, ‘그래 이스라엘이 그렇게 반응할 만했네’하고 어느 정도 수긍도 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다 주시지 않았습니다. 항상 하나님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결핍을 겪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야곱은 대인 관계를 잘 맺는 스킬이 부족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배신당했습니다. 형들의 사랑이 없었던 것이죠. 다윗은 가난했고, 바울은 몸이 아픈 환자였습니다. 다니엘은 조국이 멸망하여 노예로 끌려갔고, 욥은 재산, 자식, 아내, 가족 말 그대로 다 잃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다 주시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 교만하게 살 것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모든 것을 다 가지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 것을 하나님은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아는 것보다 하나님이 우리 내면의 숨은 마음과 동기까지도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람의 인생을 살펴보면 한 두 가지는 결핍한 상태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의 결핍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경제적인 결핍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관계의 결핍이 있습니다. 자녀의 결핍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도, 겉으로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삶 속에 반드시 한 두 가지 아픔과 결핍을 갖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자체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성도님들은 삶 속에서 어떤 결핍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건강의 결핍입니까? 경제적인 결핍입니까? 사랑의 결핍입니까? 어떤 어려움과 아픔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까? 무엇이 우리를 한 숨 짓게 만들고, 우리 가슴을 답답하게 만듭니까? 우리는 그 아픔과 결핍 속에서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갑니까?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을 불평하며 내심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양식의 결핍을 겪게 하셨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생계 수단을 끊어 버리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는 화가 날만도 합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먹을 것이 없다니요? 굶어 죽을 위기라뇨? 처자식이 꼬르륵 거리는 배를 움켜쥐고 배가 고파 잠에 못드는 상황인데, 오히려 인간이 아무런 불평과 원망이 없는 것이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상황 아닙니까? 이스라엘 백성들도 커다란 결핍을 겪고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고픔을 경험하게 하셨을까요?

놀랍게도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이 모든 것이 이스라엘을 연단하기 위한 하나님의 시험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신명기 8장 2-3절 말씀을 봅시다. “(신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신 8: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세를 따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들이 걸어간 광야 길은 마실 물, 먹을 양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삶의 요소들인 물과 양식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불평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섬기는 여호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에, 마음만 먹으면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이후 그들이 가는 모든 길을 꽃 길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물과 양식이 부족한 광야 길을 걸어가게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와 같이 고되고 힘든 광야 길을 걸어가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워하셨던 것일까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기뻐하셨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믿음을 훈련하는 시간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걷게 하심으로써 그들의 교만함을 꺾으시고, 마음을 겸손하게 하사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도록 그들을 연단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이스라엘이 고통 당하는 것을 기뻐하시거나 그들을 미워해서 그들을 광야에 두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영혼이 풍성한 복을 받기에 합당한 모습으로 성숙하고 자라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려 40년 동안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연단하셨습니다. 40년은 긴 시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연단이 이와 같이 길어진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대로, 겸손한 마음으로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이 찾아올 때마다 불평과 원망으로 반응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향한 연단은 끝나지 않았고 무려 40년 동안이나 이어졌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와 같은 고통과 결핍을 우리 속에 주셨다고요? 우리가 그 결핍 속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지 시험하고 연단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 삶에서 경험하고 있는 아픔과 결핍은 하나님께서 주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 계시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 속 자리잡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신을 버리고, 신속하게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도우심을 믿는 태도와 자세로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우리 속에 확실하게 나타날 때 비로서 광야의 시험은 끝납니다.

출애굽기 16장 4절 말씀을 봅시다. “(출 16:4)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 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하나님께서는 광야 속에서 양식의 결핍을 겪게 하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같이 하나님만 바라봐야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날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실 것을 신뢰하며 살아가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픔과 결핍 속에서도 하나님을 변함없이 신뢰하며 살아가는지 시험하셨습니다. 광야는 시험의 자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가는지, 우리 믿음을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광야를 통과하게 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이 결핍을 겪게 하셨고, 그 속에서도 이들이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는지 그렇지 않은 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시험하셨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했던 원인은 배고픔이었습니다. 양식이 부족하고 생계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을 꿰뚫어 보고 계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향한 불신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께서 마실 것과 먹을 양식을 주시리라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광야는요, 시험의 무대입니다. 시험지에서 묻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굶어 죽을 수도 있다고 느껴지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가?’ 이와 같은 질문을 하나님께서 소리 없는 음성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묻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양식을 주실 것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두 눈에는 사방을 돌아봐도 먹을 것이 나올 길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원망했습니다. 신 광야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식이 없다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이전에 경험한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 마라의 쓴물이 단물로 변화하는 기적을 은혜로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양식이 없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지금 현실 속에서 경험하는 결핍 때문에 이전에 경험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시다.

우리가 한 가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결핍을 주실 때는 반드시 해결책이 보이지 않도록 꽁꽁 숨겨두고 결핍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 섰을 때는 바다가 반으로 갈라질 것이란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광야에서는 먹을 것이 없을 때 만나와 메추라기를 옵션이 보이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먼저 이스라엘이 절대적 결핍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 머리로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문제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을 토대로 살아가지 않고, 보이지 않지만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토대로 살아가도록 연단하십니다. 이와 같은 시험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 삶에 해결하기 힘들어 보이는 아픔과 결핍을 주십니다.

우리의 인생은 광야 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흡사합니다.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살다 보니 우리들에게도 어려움과 아픔이 찾아옵니다. 어떤 사람은 광야로 인도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차라리 애굽에 남겨두시지 왜 광야로 데리고 왔냐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불평과 원망은 하나님을 향한 불신의 표시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을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매일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고 공급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동시에 이것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매일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지 시험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매일 하나님만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때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광야 길로 인도하셨는지 기억하십시다. 신명기 8장 14-1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신 8:14)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신 8: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신 8:16)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걷게 하심으로써 그들의 교만한 마음을 낮추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연단하사 마침내 그들에게 풍성한 복을 주려고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비록 아무것도 심을 수 없고 거둘 수 없는 광야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아침 저녁으로 굶기지 않고 기적적으로 그 많은 20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다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아침에는 만나를 먹이셨고, 점심에는 메추라기를 먹이셨습니다. 이 놀라운 기적을 통해 다시 한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의 백성들의 생명을 붙드시고 필요를 채우시며, 돌보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속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일주일치 혹은 한달 치 양식을 한꺼번에 주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매일 그 날 하루 먹을 양만큼만 만나를 거두어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조금 깊게 생각해 보면, 인간의 불안감과 탐욕은 결국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통하여 그들 안에 있는 염려와 불안 그리고 욕심을 내려놓는 훈련하셨습니다. 내일에 대한 염려와 불신으로부터 오는 탐심 대신 날마다 삶의 공급자 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용할 만큼의 만나만 가지고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불신하고 탐욕으로 다음 날까지 먹을 양식을 더 가지고 갔고 남겨두었습니다. 그 결과 남겨 둔 양식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부패하고 벌레가 생겨 악취가 났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탐심과 불신이 하나님 보실 때 부패하고 더러운 악취가 나는 것임을 나타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날마다 우리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시는 공급자 되심을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자족하며 감사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결핍의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돌보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믿음으로 인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