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4 십자가만 자랑하는 새 창조의 복음 (갈라디아서 6장 11~18절)

성경학자들은 아마도 사도 바울의 시력이 나쁘거나, 눈의 질병이 있어 글을 쓰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같은 서신을 읽어보면 사도 바울이 직접 글을 쓰지 않았고, ‘더디오’라고 이름하는 사람이 대신 글을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후서 같은 책들도, 대필자들이 기록했고, 바울은 책 마지막에 친필로 서명만 했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만큼은 바울이 직접 기록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갈 6:11)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바울은 눈이 좋지 않은 자신이 직접 이 글을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기 위하여 직접 붓을 들고 이 편지를 기록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바울이 편지가 바울 자신의 저작이라는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서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갈 6: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 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뿐이라” 여기서 말하는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겉모양을 꾸미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유대인들과의 마찰을 두려워하며 할례를 행하도록 종용하는 거짓 교사들입니다.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복음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것을 성도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바울이 볼 때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던 거짓 교사들은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율법에서 요구하는 할례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나머지 율법의 조항들을 안 지켜도 되는 것처럼 행했기 때문입니다. 13절을 봅시다. “(갈 6:13)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거짓 교사들이 심지어 자신들 조차도 다 지키지 못하는 율법의 요구를 성도들에게 강요하며 할례를 받으라고 주장한 것은, 자신들이 사람들을 할례 받게 했다고 자랑하기 위해 그리하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목회자가 세례를 받는 사람의 영혼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이 “이번 달 몇 명이나 세례를 주었다”는 식으로 자신의 사역 업적에만 관심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거짓 교사들 역시 갈라디아 성도들이 할례를 받게 함으로써 자신들이 사람들 가운데 더 드러나 보이도록 하려 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의 진리를 부인했고,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에게 핍박 당하는 것도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달랐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자랑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죽음이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하였음을 진실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14절을 봅시다.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세상은 나에 대해서 죽었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예수 믿기 전 중요하게 생각했던 세상이 이제는 배설물처럼 여겨질 만큼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세상과 그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서 기쁨과 소망을 찾지 않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모진 수모와 핍박을 당해도 그는 복음을 끝까지 사수했습니다. 그는 거짓 교사들과 같이 십자가 외에 세상의 다른 것들을 자랑거리로 삼지 않았습니다.

15절을 봅시다. “(갈 6: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며, 모든 율법의 요구를 다 완성하셨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이제 더 이상 ‘할례를 받았느냐, 그렇지 않았느냐‘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볼 때 중요한 것은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자인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사람인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바울은 언급했습니다.

16절을 봅시다. “(갈 6: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16절에서 말하는 “이 규례”는 위에서 이야기한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을 가리킵니다. 즉,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로 말미암아 죄사함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믿음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평강과 긍휼이 함께 하기를 축복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침투한 율법주의자들, 거짓 교사들에 대해서 단호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7절을 봅시다. “(갈 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이미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십자가 복음만으로는 죄사함과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바울은 이 거짓 교사들에게 경고하며 이제 더 이상 교회를 괴롭히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여기서 바울은 자신의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말했습니다. 본래 여기 바울이 말한 ‘흔적’이라는 단어는 주인이 자신의 노예의 몸에 소유권을 표시하기 위하여 자기 가문의 문장을 낙인 찍음으로 생기는 ‘흔적’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강력한 시각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됨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그가 받은 핍박과 고난의 흔적이 그의 몸에 남아 있음도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육체에 남겨진 할례의 흔적은 아무도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을 통하여 영혼에 새겨진 예수의 흔적은 능히 모든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바울처럼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의 흔적이 남아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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