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0 아들이 되게 하는 복음 (갈라디아서  4장 1-11절)

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것을 상속받습니다. 상속자인 아들은 사실상 모든 것의 주인입니다. 그렇지만 아들이 어릴 때는 그를 훈육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자기 대신에 세운 후견인의 말을 따르며 살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대기업 회장의 아들이라 할지라도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초등학교 선생님 말씀을 듣고 행동해야 합니다. 아무리 대기업 총수의 아들이라도 수업 시간에 자기 마음대로 친구들과 떠들거나, 아무 때나 교실을 이탈할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아들에 대한 훈육을 사실상 선생님에게 위임한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선생님은 아들이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가르치고 훈계할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아들이 성장하여 성인이 되었다면 이제 그는 더 이상 후견인의 말을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자유가 자기 자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는 있는 원리를 가지고 바울은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이전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율법 아래 있었습니다. 율법은 어린 아들을 가르치는 후견인과 같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초등학생이 초등학교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생활해야 하는 것처럼, 율법 아래 살아가던 모든 사람들은 율법의 요구에 따라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이 인간이 율법의 명령에 따라 살 수밖에 없는 모습을 가리켜 우리가 율법에게 ‘종 노릇 했다’라고 표현합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율법을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죠. 율법이 살아가라고 요구하는 대로 살아가지 않으면 그 결과는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 세상 그 누구도 율법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죄를 짓지 말 것을 요구하는데, 이 세상에는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죄가 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죠. 그 결과 모든 인간은 율법 아래서 저주를 받은 상태로 죽어야만 했습니다.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완벽하게 선한 삶을 살 수 없는 무능력으로 인해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그들의 죄가운데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불쌍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율법의 요구로부터 구원하실 해결책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인간을 죄악으로부터 구원할 하나님의 해결책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메시아 곧 구원자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이르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때가 이르자,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대로 온 인류를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주셨습니다. 4-5절 말씀을 봅시다. (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갈 4:5)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가 그분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메시아가 여자에게서 태어났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심으로써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4절에서 바울은 메시아 예수님께서 “율법 아래 태어나셨다”고 설명하십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율법의 요구를 다 지키지 못하면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태로 태어나신 것이죠.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그 어떤 것에도 구속 받지 않으시는 자유로운 존재이십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그 어떤 요구도 들어줄 의무가 없으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왜 굳이 율법 아래에서 태어나신 것일까요? 그 이유가 5절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기 위하여… 성경에는 ‘속량’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며 ‘속량’이라는 단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속량’이라는 단어를 읽어도 이게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속량’이란 말의 뜻은 ‘몸값을 받고 종이나 노예를 풀어주어 자유인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노예 제도가 있었죠? 노예를 파고 사는 노예 시장도 있었습니다. 노예를 사기 위해서는 일정한 값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건강하고 일 잘하는 노예일수록 값이 비쌌습니다. 노예가 자유케 되기 위해서는 그 몸값을 주어야 합니다. 노예상인으로부터 몸값을 주고 노비를 사서 그의 신분을 풀어주어 자유인이 되게 하는 것이 곧 ‘속량’입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죄인들의 죄값 즉 그들의 몸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노예를 사고 팔 때 돈을 주고 거래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율법의 요구와 죄의 저주로부터 속량하시기 위하여 어떤 방법으로 값을 지불하셨을까요? 성경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보배로운 피 값으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지불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가 더 이상 율법 아래서 저주를 받고 살지 않을 수 있는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그 어떤 사람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었던 율법의 요구를 완벽하게 지키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요구를 지키지 못한 우리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값을 담당하셨습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께서 율법의 요구를 완벽하게 이루신 그 의로움을 옷 입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인간은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하신 하나님과 원수 사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 죄값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는 깨끗하게 용서받았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제 예수님의 의로움을 입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우리를 더 이상 죽여야 할 원수로 대하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놀라운 이유는 하나님께서 죄만 용서해 주신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5절에 나와 있는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를 믿는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이제 더 이상 율법 아래에서 종 노릇하지 아니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들을 율법으로부터 속량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통해 자유를 얻은 우리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어서 성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누리게 될 놀라운 축복들을 알려줍니다. 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갈 4:6)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아들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 그 아들의 영이신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또한 이제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이스라엘을 ‘그의 아들’이라고 불린 말씀들을 여럿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오면 하나님을 가리켜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불경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자주 부르셨고,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기도할 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6절을 보시면 ‘아바 아버지’란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단순히 ‘아버지’라고 쓰면 되는데, 왜 굳이 ‘아바 아버지’란 표현을 사용했을까요? 먼저 여기에 사용된 ‘아바’라는 말은 아람어에서 유래한 단어이며, [탈무드]라는 책을 보면 어린 아기가 태어나서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바’는 우리가 하나님과 아버지와 아들로서 누리게 될 친밀한 관계를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아바’라는 단어 뒤이어 사용된 ‘아버지’란 단어는 헬라어입니다. 그러니까 6절에 ‘아바 아버지’란 표현에서 ‘아바’는 아람어로, ‘아버지’는 헬라어로 되어 있는 것이죠. 이와 같이 동일한 의미를 가진 두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한 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아버지와 아들 관계가 성립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 우리가 더 이상 율법의 노예가 아니며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을 강조합니다. 또한 바울은 이에 더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라고 말했습니다. 7절을 봅시다. “(갈 4: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유업을 이을 자’란 말은 ‘상속자’란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상속받게 되는 것일까요? 성경은 성도들이 우리 구주 예수님과 더불어 온 천하만물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 나라의 모든 것을 상속받게 됩니다. 이와 같이 바울은 예수를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엄청난 축복이 주어졌음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바울이 전한 예수의 복음을 버리고, 율법의 종이 되는 길로 돌아갔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자유케 하신 하나님의 이 놀라운 은혜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율법의 노예가 되어 저주 아래 살아가는 삶을 스스로 택하고 있는 갈라디아 성도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8-9절을 봅시다. “(갈 4: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갈 4: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여기서 “하나님이 아닌 자들”이란 이 당시 그리스-로마 세계관에서 신으로 여겨지던 제우스, 아폴로 같은 우상들을 가리킵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대부분 이방인들로써 바울이 전해 준 복음을 듣기 전에는 우상을 섬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상에게 제사 지내고, 우상을 위해 살아가던 우상의 노예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전해 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해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열린 구원의 길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율법 아래로 돌아가서 율법의 노예생활을 하려는 결정을 바울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율법의 노예가 되어 안식일, 금식일, 초하루,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과 같은 절기를 지키고, 할례를 행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바울은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해산하는 수고를 했습니다. 그는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거짓 교사들의 꾐에 넘어감으로써 자신이 그 동안 그들을 위하여 헌신했던 모든 수고와 노력이 헛되이 될까 두렵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하여 율법의 종으로 살아가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혜로 베풀어 주신 복음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살아가라고 가르쳤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율법은 단 한 번도 폐하여진 적은 없습니다. 오늘 이 순간이라도 누구든지 율법의 요구를 다 충족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인정받고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세상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모든 사람은 죄의 저주 아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절망적인 인간의 운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새로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를 그 자신의 구주로 믿기만 하면,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버지가 되어 주시고,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됩니다. 예수와 함께 영원토록 세상을 다스리는 영광을 누리며 영생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계획입니다. 이토록 좋은 복음을 버릴 이유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율법 아래 들어가 노예로 살아가지 마시고, 믿음을 통해 예수의 복음 안에 들어가 자유자로, 상속자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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