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09 해산하는 수고로 전한 복음 (갈라디아서 4장 12~20절)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민족이라는 높은 긍지와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전혀 모르는 이방인들을 대놓고 무시했고 그들을 더러운 죄인처럼 취급했습니다. 그 결과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식사 교제를 하지 않았고, 생활 교제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입니다. 따라서 원칙상 그가 이방인들과 교제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누구보다 열심히 이 원칙을 지키며 평생토록 살아왔습니다. 그런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했습니다. 복음으로 인해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사라지고,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이러한 복음의 원리를 토대로 이방인들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바울은 유대인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버리고 이방인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사실을 언급하며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도 바울 자신과 같이 되기를 구한다고 말했습니다. 복음에서 떠나 율법에 치우치지 말고, 바울이 그들에게 전한 복음을 받아 달라는 권유입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회는 그를 우호적으로 대해주었습니다. 바울에게는 숨길 수 없는 육체의 질병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는 없으나, 분명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도 바울이 가진 육체의 약함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13절 말씀입니다. “(갈 4: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여기서 말하는 바울의 육체의 약함에 대해서 성경학자들은 간질 혹은 말라리아 혹은 안질로 보기도 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 15절에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안질’이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바울이 가진 육체의 약함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그가 복음을 전파하는데 얼마나 큰 장애가 되었을 지 우리는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바울은 무시하거나 그를 업신여기지 않았습니다. 14절 말씀을 봅시다. “(갈 4: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육체의 약함을 다 보았음에도 그를 미워하거나 버리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환영해주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과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의 관계는 아름답고 감격을 주는 좋은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원수가 되었습니다. 바울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16절을 봅시다. “(갈 4:16)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거짓 교사들이 와서 바울이 전한 복음을 왜곡시키고, 그의 사도권을 부인하는 등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바울을 거짓말쟁이로 오해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거짓 형제들의 열심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향해 좋은 뜻을 가진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17절을 봅시다. “(갈 4:17) 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내게 하려 함이라” 거짓 교사들은 바울과 성도들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하여, 성도들이 자신들을 열심히 섬기게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의 영적 유익이 아니라, 자기 자신들의 유익을 위한 악한 동기를 가지고 열심을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18절을 봅시다. “(갈 4: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복음은 바울만 전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얼마든지 전할 수 있습니다. 만일 율법주의자들이 선한 동기를 가지고 좋은 일을 위하여 열심을 내었더라면 바울이 반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자신들을 따르도록 만들기 위한 열심을 내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이기적인 동기로 열심을 내는 저 거짓 교사들의 행위가 결코 선하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19절입니다. “(갈 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바울은 한 영혼을 전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그들 안에 이루어지기까지 해산하는 수고를 하였습니다. 바울은 잘못된 거짓 가르침에 빠진 성도들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하여 이제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20절을 봅시다. “(갈 4: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그가 전해준 복음을 이처럼 빨리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이것이 정녕 사실일까?’ 하는 의심과 당혹감을 가졌습니다. 또한 갈라디아 교회를 향하여 엄중한 자세로 글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제라도 그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고 잘못된 가르침을 바로잡아 이전과 같이 부드럽고 온유한 태도로 그들을 칭찬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믿고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바울과 같이 누군가의 땀 흘린 수고와 눈물 어린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무명의 전도자들이 해산하는 수고로 전한 복음이 우리를 구원케 한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들이 복음을 전할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