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04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복음 (갈라디아서 2장 11~21절)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소유하고 있고, 그 법을 준수하며 살아가려고 하기에 유대인들은 의롭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유대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아니하는 이방인들은 죄로 가득한 불의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이해 속에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식사 교제하는 것이 금지하였습니다. 어느 유대인이 이방인과 식사 교제를 하다가 다른 유대인들에게 들키면, 그것은 책망을 받을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구주 예수의 복음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 짓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두 사이의 벽을 허무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비록 유대인이지만 복음을 통해 이방인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교제하며 복음을 전파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떨어져 있는 안디옥 교회에서 머물고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최초로 이방선교를 시작했던 교회입니다. 또한 안디옥 교회는 이방 출신 신자들은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거짓 교사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기 위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교회 대표로 예루살렘 총회에 파송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울이 머물고 있던 이 안디옥 교회에 게바 즉 베드로가 찾아왔습니다. 베드로는 이방인 성도들과 함께 어울리며 식사 교제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이지만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에게 천사가 나타난 사건, 고넬료와 그의 온 가정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하였을 때 저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사건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베드로는 이방인과의 식사교제 하는 것에 대해서 거리낌이 없었을 것입니다.

때마침 예루살렘 교회에서 야고보가 파송한 유대인 그리스도인 안디옥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이방인 성도들과 식사 교제를 하던 베드로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을 보자, 얼른 식사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습니다. 자신이 이방인들과 식사 교제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이 자신을 책망할 것이 두려웠습니다. 이 장면을 한 번 성경에서 볼까요? “(갈 2: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갈 2: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이처럼 유대인들의 시선을 두려워한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식사하던 자리를 급히 떠나자, 도미노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서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던 다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도 자리를 떠났습니다. 급기야는 바울과 함께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했던 바나바까지도 이러한 분위기에 휩쓸려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리더 한 사람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공동체 전체가 무너집니다. 교회도 목회자 한 사람이 넘어지면, 교회 전체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리더 베드로가 보여준 본을 그 아래 사람들이 다 따라갔습니다.

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바울은 저들이 믿고 고백하는 복음의 진리를 따라 행하지 않음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베드로를 책망했습니다. 14절 말씀을 봅시다. “(갈 2:14)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본래 베드로는 율법을 받은 유대인으로써 그 역시 율법에 매여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요구로부터 완전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더 이상 유대인의 옛 방식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런 베드로가 갑자기 예루살렘으로부터 유대인들이 오니까 이방인들과 식사 교제를 함께 하면 안된다는 유대인들의 가르침대로 다시 행동한 것입니다! 즉 자신이 믿고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대로 따르지 않고, 유대교 시절 지켜 행했던 이전 모습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의 식사 교제에서 물러난 행동은 결국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이 아니란 이유로 차별한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이방인들로 하여금 유대교의 생활 방식을 살도록 강요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베드로를 책망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야! 너는 유대인이지만 복음을 통해 자유를 얻음으로써 이제 더 이상 유대인/비유대인 구분을 하지 않고 살아가지 않느냐? 그랬던 너가 어찌하여 비유대인들과의 식사 자리를 피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유대인처럼 살아가게 하려고 하느냐?”하고 말하며 바울은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를 거스려 행동한 부분을 지적하며 그를 책망했습니다. 바울이 사도 베드로를 책망한 사건을 통해, 우리는 여전히 초대 교회 내에 남아 있는 유대교가 가르친 율법주의의 뿌리가 매우 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유대교가 가르치는 ‘율법주의’와 ‘복음’이 가르치는 내용이 어떻게 다른 지 정리해주었습니다. 먼저 15절에 바울은 본래 자기 자신도 율법에 매어 있었던 유대인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바울도 유대인의 삶의 방식인 율법을 준수 해야만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이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유대인의 시각에서 보면 하나님도 모르고 율법도 없는 이방인들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유대인들의 관점을 빌려 15절 말씀에 “(갈 2: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16절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이 강조하는 율법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은 이 편지를 통해 바울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16절에서 3번 반복되는 두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와 ‘의롭다 함’입니다.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유대인들이 그토록 자랑하던 그들의 율법이 그들을 의롭게 만들어 줄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사람을 의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정리하자면, 사람이 의롭게 되는 방법은 율법 조항들을 지키는 행위에서 비롯되는 것 아니라,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바울의 주장입니다. 바울은 16절 중반을 보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나니…”라고 말했습니다. 바울 자신도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했습니다. 왜냐하면 16절 마지막 말씀처럼 “율법의 행위를 지킴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서 사람이 의롭게 될 수 있다’ 이것이 갈라디아서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1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갈 2: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바울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됨을 확신하며 율법의 모든 규례에서 자유를 얻은 사람이 이방인과 음식 먹는 일로 말미암아 죄인이 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계속해서 율법의 모든 요구를 다 지켜야만 의롭게 된다고 가정하면, 결국에는 예수님께서는 그를 믿고 따르는 모든 자들이 죄를 짓도록 만드는 분이시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결코 예수님은 우리가 죄를 조장하는 분이 아니라고 반박합니다.

18절에 바울은 만일 그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허무신 율법주의를 다시 세우면 그 스스로가 범법자가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율법에 대하여 죽었고, 이제 하나님을 위하여 새로운 삶을 살도록 변화 받았음을 고백합니다. 20절 말씀을 봅시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바울은 율법의 행위들을 준수함으로써 의롭게 되려는 모든 시도들을 내려놓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힘으로써 율법에 대하여는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바울이 살아가는 이유는 그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 때문입니다. 바울은 바로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바울은 이처럼 모든 믿는 자에게 의롭다 함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돌아감으로서 폐하지 아니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면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헛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율법주의의 가르침은 유대인의 삶을 방식을 받아들이고 율법의 가치를 따라 살아갈 때에만 의롭게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예수님께 받은 복음이요, 온 교회가 함께 복음을 걸고 사수하며 증거한 복음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감사하고 찬양하며, 오직 구주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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