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20 새 하늘과 새 땅 (이사야 66장 15-24절)

 

우리가 창세기 1장 1절을 보면 온 우주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정확한 연도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심으로써 역사의 시작점이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창조주의 존재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의 경우에도 ‘빅뱅’과 같은 이야기를 통해 세계의 시작점이 있다는 사실은 동의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생겨 났는가?’란 질문에 대해서는 이견이 좁혀 지지 않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우주가 아주 오래 전 특정 사건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는 점은 공유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시작이 있다면 끝도 있을까요? 사람들은 이 주제에 대해서 참 다양한 의견들을 주장합니다. 어떤 이들은 세상이 끝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구 온난화나 또 다른 이유들로 인해 인류의 역사가 끝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성경은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성경은 이 세상에 시작이 있었듯이, 세상의 끝이 있다고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때를 알리는 사건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성경은 그 때가 되면 여태까지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인류, 즉 그 때까지 살아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아담으로부터 과거에 살다가 죽은 사람들까지 모두 부활하여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로마서 14장 10절을 보면, 불신자만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신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전부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말씀을 함께 봅시다. “(롬 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모든 사람들은 하나 같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을 대항하고 예수님을 부인한 불신자들은 판결은 통해 지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비록 완전하지 못한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와 주님으로 믿고 살아간 자들은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세상 마지막에 임하게 될 하나님의 심판과 그로 인해 나눠지는 천국과 지옥의 이야기는 신약성경에서 새롭게 등장한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수 차례 반복되어 나오는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사야에서는 바로 이 최후의 심판을 위해 세상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5절 말씀을 봅시다. “(사 66:15) 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옹위되어 강림하시리니 그 수레들은 회리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로 노를 베푸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견책하실 것이라”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불에 둘러 쌓여 있는 모습으로 강림하시며, 주께서 타고 계신 수레 즉 전차가 회오리바람 같은 모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화산이 폭발하고 나오는 용암의 맹렬한 불길은 닿는 것마다 순식간에 태워버립니다. 그 앞에 만물이 녹아버리고 검은 재밖에 남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죄인들을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진노가 어찌나 무서운지 맹렬한 화염과도 같습니다.

16절을 보면, 이와 같이 맹렬한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심판을 당하게 될 대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 66:16)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살륙 당할 자가 많으리니” 여호와의 불 심판, 칼 심판에 심판을 받게 될 대상이 누구입니까? “모든 혈육”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하늘 높이 혹은 바다 깊이 도망치려 해도 하나님의 심판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여기 말씀을 보니 “하나님께서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살륙 당할 자가 많으리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맹렬한 심판 앞에서 죽게 될 것임을 보여줍니다. 인류 역사상 단 한 순간도 구원받은 사람들의 숫자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숫자보다 많은 적은 없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 인구가 약 78억명인데 그 중 그리스도인은 약 21억명으로 약 33%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무늬만 그리스도인인 사람들, 수많은 미국 사람들과 같이 교회는 다니지 아니하면서도 서류상으로만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실제로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의 숫자는 15% 안팍으로 줄어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류 역사상 기독교 인구가 비기독교 인구보다 많은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최후의 심판 때 하나님의 진노 아래서 영원한 형벌을 받고 지옥에 들어가게 될 사람들의 숫자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오늘 본문 16절에서 “여호와께 살륙 당할 자가 많으리니”라고 했는데, 아담으로부터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모든 불신자들이 심판을 받게 될 터이니 그 숫자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자들이 어떠한 자들인지 17절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사 66:17) 스스로 거룩히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케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 있는 자를 따라 돼지 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 자가 다 함께 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7절 상반절만 읽으면 아주 경건하고 거룩한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입니다. 이 사람들은 몸과 마음을 구별해 놓았습니다. 이와 같이 한 이유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상을 섬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 있는 자를 따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그 가운데 있는 자”는 히브리어로 보면 여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동산 중앙에 놓여 있는 가나안 사람들이 섬긴 우상 바알의 아내 아세라 우상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사람들을 따라 우상을 섬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레위기 11장에서 기록된 부정한 동물로써 먹지 말아야 하는 돼지 고기, 쥐, 그 밖에 다른 부정한 음식들을 먹음으로써 우상을 숭배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우상숭배자들이 “다 함께 망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죄가 십계명 첫 번째 계명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는 것입니다. 두 번째 계명 우상을 만들고 그것들에게 경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우상하면 금과 은 나무와 돌을 깎아 만든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상의 범위는 더 넓습니다. 하나님 외에 더욱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돈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배우자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식들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자신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무엇이든지 하나님보다 더욱 의지하고 사랑하는 그 대상이 나의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와 같이 우상을 숭배하는 모든 자들을 다 함께 불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사야서의 마지막 장 마지막 구절인 66장 24절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선택하여 살아간 모든 이들의 최후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 66:24)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먼저 24절에서 “그들”은 구원받은 백성들입니다. 마지막 날에 구원받은 자들이 보게 될 참혹한 광경이 있습니다. 바로 지옥에 가게 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모습입니다. 여기 24절에 보면 벌레가 죽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벌레는 구더기입니다. ‘구더기’를 실제로 보신적 있으십니까? 어찌나 역겨운지 냄새와 생김새 때문에 구역질이 나옵니다. 지옥에는 온통 구더기 천지인데 심지어 죽지도 않습니다. 또한 지옥에는 하나님의 진노의 불인 맹렬한 화염이 악인들을 심판하고 있습니다. 그 불은 영원토록 꺼지지 않는 불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묘사하신 지옥을 봅시다. 마가복음 9장 47-49절 말씀입니다. “(막 9: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 9: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막 9:49)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진리임을 믿으시죠? 그렇다면 지옥이 있다는 사실도 믿으십니까? 지옥을 믿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가르침도 믿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은 분명 최후 심판에 악인들을 위해 준비된 지옥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 49절을 보면,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 주부분들 집에서 김치 담글 때 제일 먼저 하는게 뭐에요? 배추나 무에다가 소금을 쳐서 절여두죠? 배추를 4시간 정도 소금에 절여두면 숨이 죽어버립니다. 단단했던 무도 말랑말랑해집니다. 49절에서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는 말은 이해하기 힘든 해석이고, 우리 정서에 딱 맞게 바꿔 해석하면 “소금으로 음식을 절이듯이, 꺼지지 않는 지옥불로 사람을 절여버린다”는 말입니다. 섬뜩하지 않습니까?

미국의 유치원에서는 소방대원을 초대해서 아이들에게 불이 얼마나 위험한지 설명해주는 수업을 하곤 합니다. 소방대원들은 집에서 불장난을 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 가르쳐주고, 특히 벽난로 불이나, 부엌에서 부모님이 뜨거운 요리할 때 다치지 않도록 주의할 것들을 가르칩니다. 수업이 다 끝나면 아이들이 궁금한 것들을 물어봅니다. “높은 빌딩에서 난 불은 어떻게 꺼요?”, “소방차에는 물이 얼마나 들어가요?”, “소방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되요?” 이제 마지막 학생이 질문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소방관 아저씨는 이 세상에서 뭐가 제일 무서워요?” 그러자 잠깐 동안 생각을 하던 소방관이 말했습니다. “3도 화상”(a third-degree burn) 우리가 부엌에서 요리하다가 실수로 뜨거운 냄비에 손이 닿으면 얼마나 아픕니까? 그게 1도 화상입니다. 여름철 뜨거운 햇빛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몸이 따끔거리며 아픈 것도 1도 화상입니다. 라면 끓이느라 펄펄 끓는 뜨거운 물을 실수로 쏟아 살에 직접 대이면 2도 화상을 입게 됩니다. 심하면 3도 화상도 입습니다. 2도만 입어도 병원 가야합니다.  그럼 3도 화상은 어느 정도냐 하면 난로에 나무 장작 태우는 것마냥 살을 태우는 수준이 3도 화상입니다. 몸의 한 부위가 3도 화상을 입으면 그 부분은 아예 쓸 수 없게 될 정도로 심각한 후유증이 남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 부위는 신경이 완전히 망가져서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전신에 3도 화상을 당하게 되면 매우 치명적입니다.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이처럼 치명적인 3도 화상을 입는 불의의 사고도 불과 몇 초 안에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지옥은 어떻습니까? 영원토록 꺼지지 않는 불 속에서 계속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악인들이 영원히 받아야 하는 그 끔찍한 고통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죄를 예수의 피로 씻으시고 구원해주사, 지옥에서 천국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날마다 진심으로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처럼 이사야서는 마지막 장에서 모든 혈육 즉 온 인류에게 찾아올 피할 수 없는 심판에 대해서 가르쳐줍니다.

이와 동시에 또한 이사야 선지자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전 세계에 선교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18절을 봅시다. (사 66:18) 내가 그들의 소위와 사상을 아노라 때가 이르면 열방과 열족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 18절을 중반을 보십시오. “때가 이르면…” 마지막 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열방과 열족을 모으십니다. 즉 전 세계에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 나라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모든 사람들을 주님께서 모으십니다. 전 세계에 흩어진 수많은 사람들에게 선교사들을 보내셔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주님이 우리를 위해 어떤 위대한 일을 하셨는지 전파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이 주님의 영광 즉 하나님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이 마지막 때인 이 시대에 성취되고 있죠? 지금 저와 여러분 같이 이스라엘과 전혀 상관 없는 한국 사람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접하고 믿게 하시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며, 주의 영광을 예배하게 하셨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온 세계 곳곳에서 주의 구원받은 백성으로 부르신 이방인들 가운데서 제사장과 레위인으로 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1절을 봅시다. “(사 66:21) 나는 그 중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구약시대 때 이 말씀은 매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모세 율법으로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레위인이 되는 것은 레위지파의 혈통에서 태어난 사람들만 가능했고, 제사장이 되는 일은 레위지파 중에서도 아론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들만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제사장과 레위인을 택하여 삼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베드로전서 2장 9절을 보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제사장 직분을 갖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이스라엘의 혈통에 제한되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열린 차별 없는 구원을 이루겠다는 약속입니다. 그 덕분에 저와 여러분과 같이 혈통적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사람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존귀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의 마지막은 어떠할까요? 22절입니다. “(사 66:2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22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나의 지을’이란 표현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아직 하나님께서 창조하지 않은 미래에 존재하게 될 새로운 피조물임을 암시합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기존의 하늘과 땅이 다 사라지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에 따라 새 하늘과 새 땅은 요한계시록 20장 4-6절에서 말하는 ‘천년왕국’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천국’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새로운 하늘과 땅에서 영원토록 살아가게 될 존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씻음 받고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사실입니다. 22절에 보면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고 했는데, 여기서 ‘이름’은 우리의 존재 자체를 나타냅니다. 만약 우리가 죽는다면 우리의 이름이 얼마나 오래 기억되겠습니까? 100년도 채 안되서 이 세상에 “김영목”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따라서 새 하늘과 새 땅에 우리의 “이름”이 항상 있다는 말씀은 우리가 죽지 아니하고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이사야서는 마지막에 나타날 최후의 심판과 지옥의 비참한 모습을 그리고 반대로 새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토록 살아가게 될 영광스런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 중 지옥이 아니라 천국을 선택할 것을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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