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06 내가 고치리라 (이사야 57장 14절~21절)


 

한 어린 유치원생 남자 아이가 하루가 멀다 하고 선생님께 거짓말을 하고, 친구들 물건을 훔치고, 유치원 친구들과 싸웁니다. 이 아들의 어머니는 회초리를 들었습니다. 아이의 종아리를 때리며 어머니는 아이에게 거짓말하지 말 것, 친구들 물건 훔치지 말 것, 친구들과 사이 좋게 지낼 것을 가르쳤습니다. 회초리를 맞은 아이가 아파서 엉엉 웁니다. 어머니 가슴도 찢어집니다. 그런데 어머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몇일 지나지 않아 아이가 또 다시 나쁜 행동을 이어 합니다. 그리고 또 다시 어머니가 혼내는 일, 아이의 우는 일이 반복됩니다. 만일 이 유치원생 아이가 고등학생, 대학생, 취업준비생이 되어서도 어릴 적과 똑같이 맨날 거짓말하고, 친구들 물건 훔치고, 학교에서 아이들과 주먹다짐으로 싸우고 다닌다면 이 아이의 어머니는 얼마나 마음이 힘들까요? 어머니 가슴이 퍼렇게 멍이 들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 속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그러합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우상을 택하고 죄악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이스라엘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들을 원수 바벨론의 손에 넘기셨고,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을 불쌍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훈계하느라 매를 들었을지언정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자녀를 위해 따뜻한 국과 밥을 차려주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하나님께서도 바벨론을 향한 진노와 심판을 거두시고 그들을 원수 바벨론의 손에서 구원하시고 황폐한 땅이 되어버린 이스라엘 땅을 회복하고자 하셨습니다.

바로 이 작업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셔서 이스라엘이 주님께 돌아오는 데 걸림돌과 장애물이 되는 것들을 제거하십니다. 14절을 봅시다. “(사 57:14) 장차 말하기를 돋우고 돋우어 길을 수축하여 내 백성의 길에서 거치는 것을 제하여 버리라 하리라” 길을 걸어가다가 움푹 파여 있는 곳에 발을 잘못 디디면 넘어져서 크게 다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길에 움푹 파여진 땅들을 다시 채워 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망가지고 고장 난 길을 고치라고 하십니다. 또한 땅에 박혀 있는 돌이나 다른 장애물들에 걸려 넘어져도 다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오는 길에 방해가 되는 모든 거치는 것들을 제하여 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있는 교만한 마음, 음란한 생각 같은 모든 죄악들과 또한 그들이 섬기는 우상들을 모두 제거해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걸림돌이 될 만한 모든 것을 제거해야 합니다. 혹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는 걸림돌 같은 삶의 요소들은 없습니까? 죄가 가장 큰 걸림돌이겠으나, 때로는 지나친 염려도 걱정도 반대로 세상의 즐거움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이 됩니다. 만일 지금 내 삶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걸림돌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한 번 이렇게 바꿔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 드리러 나아갈 때 방해가 되는 것은 없습니까? 우리 기도생활을 방해하는 것은 없을까요? 우리의 말씀생활을 가로막는 것은 없을까요? 우리가 형제를 사랑할 때 방해가 되는 것은 없을까요? 바로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와 같이 주님께 나아가는 길에 있는 거치는 것들을 제하여 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며 주님은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존재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사 57:15)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존귀하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사라지거나 없어지지 않으시는 영원한 존재이시며, 거룩하신 분 즉 실수나 흠이 전혀 없으신 완전하신 존재이십니다. 이처럼 영원토록 절대적이고 완전무결한 존재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죄인들과 함께해 주신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한 번 이러한 장면을 머리 속으로 그려보십시오.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한국에서 미국 대통령 내외를 위해서 저녁식사 자리를 준비하는데, 마지막으로 몸을 씻은 지 한달도 더 넘는 냄새 사는 노숙자 바로 옆자리에 앉게 했습니다. 머리는 기름지고 산발이 되었고, 얼굴과 목은 씻지 않아 때가 꼈습니다. 손톱 밑에도 때로 가득합니다. 옷은 다 찢어진 넝마를 입고 있고, 가까이 앉으면 코를 찌르는 악취가 인상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만일 한 나라의 대통령을 식사 자리에 초대해서 이런 노숙자 옆에 앉게 했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엄청난 결례가 되지 않겠습니까? 미국에서 난리가 날 것입니다. 어떻게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을 무시하고, 모욕하고 푸대접을 하 수 있느냐고 화를 내며, 이는 미국 전체를 모욕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전쟁이 나진 않을까 걱정입니다. 사실 노숙자는 아무것도 한 것 없습니다. 대통령 옆에 앉아서 밥이나 먹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더러운 몸에서 나는 냄새와 모습 때문에 그의 존재 자체가 불쾌감을 줍니다.

자, 그렇다면 완전무결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가 식사하는 바로 그 자리에 함께하고 계신다고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거룩하신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죄인인 우리들은 얼마나 역한 악취가 날까요?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얼마나 미간이 찌푸려질 만큼 혐오스러운 존재이겠습니까? 하나님은 높고 거룩한 곳에 계신 흠조차 없으신 고결한 분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하시기를 우리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5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사 57:15)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회개하는 자, 그리고 마음이 겸손한 자 즉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자들과 함께 거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엄청난 약속 아닙니까? 그리고 주님은 겸손한 자들의 영혼에 용기를 북돋아 주십니다. 죄를 뉘우치고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는 자에게는 그들의 상한 마음을 아물게 하십니다. 참 이토록 좋으신 하나님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 완벽하시고 무결하신 하나님께서 이처럼 흠 많은 죄인들을 친히 찾아와 주셔서, 우리와 함께 해주시고, 우리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실 불완전하고 연약한 죄인으로서의 인간이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기준을 충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친히 우리를 용납해 주시고 용서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16절을 봅시다. “(사 57:16) 내가 영원히는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장구히는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나의 지은 그 영과 혼이 내 앞에서 곤비할까 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영원토록 심판하지 아니하고, 그들에 대한 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다간 이스라엘의 영혼이 자취도 없이 완전히 사라질 정도로 멸망해 버릴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신 하나님은 진노 중에도 긍휼함을 베풀어 주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참 이스라엘 백성들 정말 구제불능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정도로 혼내셨으면, 나라가 망할 정도로 혼 줄이 났으면 정신을 차릴 법한데,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인해 진노가 또 느슨해지니까 또 다시 패역한 마음을 먹고 우상을 섬기려 합니다. 17절을 봅시다. “(사 57:17) 그의 탐심의 죄악을 인하여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우고 노하였으나 그가 오히려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행하도다” 정말 구제불능이죠? 이에 대한 하나님의 결정은 무엇입니까? 18절을 봅시다. “(사 57:18) 내가 그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의 슬퍼하는 자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 구제불능 이스라엘 개조 프로젝트를 시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고집을 꺾으시고, 그의 영혼을 소생시키실 것입니다. 이 악한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악 된 삶을 직접 고쳐 주실 것입니다. 19절에 등장하는 “먼 데 있는 자”, “가까운 데 있는 자”는 각각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과 멀리 타지에 떨어져 사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디에서 살고 있든지 이들을 향하여 “내가 너희를 고쳐주겠다”하고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평강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누릴 축복입니다.

자, 그러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이 치유와 평강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하나님을 무시하고, 우상을 섬기는 악인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들은 어떤 결말을 맞이합니까? 20-21절입니다. “(사 57:20)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사 57:21)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20절을 보면 악인은 요동하는 바다와 같습니다.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 위에서 배를 계속 타고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어지럽고 구토가 나옵니다. 견디지를 못하고 빨리 배에서 내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악인의 삶을 내릴 수 없는 바다 위의 떠 있는 배와 같습니다. 너무나도 삶이 고통스럽지만 멈출 수가 없습니다. 마음에는 평강이 없습니다. 바닷물이 요동하면 진흙과 더러운 이물질들이 수면 위에 떠올라 더럽히듯이, 악인의 인생에는 늘 그와 같이 불안정하고 악취나는 일들만 가득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친히 주님의 백성을 고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의 치유를 받는 길은 우리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만 붙들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이 하루 우리를 치유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맡기며, 주님 주시는 평강을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