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01 사도행전 강해 (13) 갈등을 해결하는 교회 (사도행전 6장 1-7절)

         

지난 19세기에 활동했으며, 설교의 황태자라 불리는 영국의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 계십니다. 당대 최고의 설교자이며, 주일만 되면 수 만명의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영국 전역에서 그가 시무하는 교회에 모여들었습니다. 하루는 영국 청년 하나가 스펄전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청년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목사님, 저는 지금 다니는 교회에서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어디 좋은 교회가 없을까요? 서로를 위로해 주고 서로 사랑해주는 그런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까?” 그러자 스펄전 목사님이 대답합니다. “이보게, 사실은 나도 아직 그렇게 완벽한 교회를 만나지 못했다네. 자네가 한 번 열심히 찾아보게나. 그리고 만일 찾으면 내게도 알려주게.” 이 말을 들은 청년은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사무실을 나가려 하는 청년을 향해 목사님은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보게, 만일 자네가 정말 좋은 교회를 발견하거든,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네.” 청년은 어떤 부탁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말합니다. “그런 교회를 찾거든 제발 그 교회는 가지 말게나. 자네가 그 회에 다니기 시작하는 순간, 그 교회는 더 이상 완벽한 교회가 아니게 될 것이라네.”

우리 모두는 완벽한 교회의 회원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실상 이 세상에 완벽한 교회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겉에서 볼 때는 꽤 괜찮아 보이는 교회들도 내부자가 되어 교회의 사정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교회 안에 이런 저런 문제들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행복을 준다는 전설을 가진 파랑새를 찾으려고 하는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우리들은 완벽한 교회를 찾고 싶어합니다. 사랑과 위로가 가득한 교회, 기도와 말씀이 풍성한 교회 등 저마다 그리고 있는 완벽한 교회의 모습이 있을 것입니다.

완벽한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교회가 바로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 교회입니다.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수많은 교회들 중 가장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가는 곳곳 마다 표적과 기사가 나타난 교회입니다. 교회를 찾아온 무수히 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고, 더러운 귀신들이 사람들에게서 떠나가는 역사도 일어났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교회는 급성장했고,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새롭게 구원받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타났습니다. 구제와 선행에도 본이 되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칭찬과 존경을 받는 교회였습니다. 과연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교회로 뽑힐만한 교회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 속 초대 교회의 모습을 보며, 이런 교회의 일원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실상 초대 교회 역시 완벽한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초대 교회 안에도 여러가지 문제가 존재했습니다. 2주전 주일에 살펴본 것처럼 아나니아 삽비라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거짓말하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또한 할례를 받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서로 교리적 논쟁과 다툼도 있었습니다. 리더십에 대한 불만을 갖고 그들의 결정에 대항하는 이들도 있었고, 사도들에게 대놓고 반항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초대교회도 문제가 없는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실상 이 세상에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물론 조금 더 성숙한 교회인가, 아직 미성숙한 교회인가 하는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코너스톤 교회의 문제점을 발견하셨습니까? 어떤 문제입니까? 발견한 그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대해서 반응하고 계십니까? 단순히 교회 내에 다른 누군가를 비난하며 그 사람의 탓으로 돌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타인에 대한 비난과 원망과 불평만으로는 교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끝까지 사랑으로 인내하며, 서로를 용납하고 용서하며, 온유하고 성숙한 태도로 교회의 문제들을 해결해 가야 합니다. 쉽지만은 않겠습니다만, 갈등을 해결할 때 교회가 지향해야 하는 방향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교회, 가장 이상적인 교회, 모든 교회의 롤모델이라고 불려지는 초대 교회에 나타난 성도들 간의 갈등과 분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함께 어떻게 코너스톤 교회 내의 문제들을 해결해 갈 수 있을지, 또한 우리 교회를 더욱 성숙한 교회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 보고, 하나님의 마음과 지혜를 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문제와 갈등 앞에 선 초대 교회

먼저 초대 교회의 상황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행 6: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초대교회는 날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들이 나타나는 놀라운 부흥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초대 교회의 주측 멤버들은 히브리파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히브리어 내지는 아람어를 주된 언어로 사용하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자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부흥함에 따라 당시 세계 공용어인 헬라어, 즉 그리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새롭게 편입되었습니다. 이들은 출생지가 팔레스타인 지역이 아닌 타국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입니다. 이 중에는 오순절 사건 때 예루살렘을 찾아왔다가 복음을 듣고 회심하게 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타지에서 생활하다가 이제 하나님과 가깝게 지내기 위해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초대교회는 다양한 지역 출신을 갖고 있으며, 서로 자라온 문화와 사용하는 언어까지도 다른,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교회는 매일 구제에 힘써왔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사람들에게 일일이 식량을 나눠주어 그들을 먹여 살리는 일을 교회가 감당했습니다. 이 당시 초대 교회 안에는 전쟁과 질병으로 두 부모를 모두 잃은 고아들, 같은 이유로 남편을 잃은 과부들, 이방인들, 나그네들, 병듦으로 가족들에게 버림받거나 사회적 약자가 된 환자들 등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초대 교회는 문제를 맞이하게 됩니다. 당시 그리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헬라파 유대인들, 아마도 이들은 히브리어와 아람어에 서투르거나 거의 하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바로 이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신들과 같이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과부들은 교회의 구제의 대상에서 누락되었다고 불만을 터트리게 된 것입니다. 교회에서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데, 히브리어나 아람어를 사용하는 과부들에게는 음식이 가고,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과부들은 등한시했다는 고발이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교회 내에서 헬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히브리어 내지 아람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유대인들을 원망했습니다. 교회가 두 쪽으로 나뉘어졌습니다. 이대로 두면 교회 내 성도들이 서로 다투게 되거나, 분열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자, 이처럼 초대 교회 안에서도 문제가 있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초대 교회는 사랑이 많다는 칭찬과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그러나 교회 내에서 자신들이 무시당했고, 차별당했다고 생각하는 헬라파 성도들의 불평과 분노로 인해 교회 분위기는 급격하게 냉냉해졌습니다.

 

  1. 문제와 갈등을 통해 성장한 초대 교회

열두 사도들은 교회 내의 모든 제자들을 불러모았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모든 성도들이 함께 참석하는 ‘공동의회’를 소집한 것입니다. 초대 교회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그들의 공동의회 모습을 함께 살펴봅시다. 2-4절 말씀입니다. “(행 6: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행 6: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행 6: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먼저 열두 사도들은 교회 내 문제를 쉬쉬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아픔과 공동체의 문제를 모든 성도들이 알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모두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온유하고 성숙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모습입니다. 이 때 사도들은 자신들이 맡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하며,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전념하는 것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하며, 2절을 보니 ‘공궤’를 일삼는 것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한글 성경에 번역된 ‘공궤’라는 말은 음식을 주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또한 여기에는 음식을 사기 위하여 ‘재정을 관리하는 일’을 포함합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직접 나서서 성도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거나, 음식을 사기 위해 교회 재정을 관리하는 일을 자신들이 맡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이야기했습니다. 2절에 ‘마땅하다’라는 말은 ‘기쁘게 하다’란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도들이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제쳐 두고, 공궤 하는 일, 즉 성도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사역에 집중하는 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죠. 실제로 나날이 늘어나는 성도들의 숫자를 생각해보면, 사도들이 육체적인 힘과 시간의 제약으로 인해 말씀 사역과 공궤 사역 이 두 가지 사역을 동시에 다 해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3-4절을 보면 사도들은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공동의회에서 다음과 같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들 중에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다고 인정받은 사람 일곱 명을 뽑으십시오. 그 사람들에게 이 일을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일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겠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사도들이 직접 일곱 명을 지목한 것이 아니라, 교회 성도들이 직접 일곱 명을 선출하도록 그 권한을 위임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와 같이 공동체가 그들을 섬길 리더십을 직접 선출하는 것은 이미 오래 전 모세 시대 때부터 이어져 온 전통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리더십을 선출하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접 그들을 다스릴 백부장, 천부장, 그리고 각 지파의 지파장을 뽑았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교회 공동체가 직접 선택하고 한 마음으로 세운 일꾼들을 통하여 교회를 다스리게 하시고, 성도들을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만일 우리 교회의 리더십이 사역을 감당하며 그 책임의 과중함을 느끼게 된다면, 우리는 사역을 함께 짊어질 또 다른 사람들을 리더십의 자리로 함께 세워야 할 것입니다.]

교회 내에서 일어난 문제와 갈등을 바로잡기 위해서 음식 분배의 책임을 맡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선출하자고 했습니다. 그 기준을 한번 살펴봅시다. 첫째로, 신자 중에서 뽑았습니다. 3절을 보면 “너희 가운데서”라고 했습니다. 이는 교회 밖에서 데려오지 말고,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성도들 가운데서 책임자를 뽑으라는 뜻입니다. 둘째로, “칭찬을 듣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는 성숙한 성품을 가진 자, 공동체 안에서 평판이 좋은 자여야 함을 의미합니다. 셋째로, “성령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즉 견고한 영성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신앙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믿음이 확실하며, 그 믿음대로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넷째로,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즉 어떤 일을 선택할 때 먼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주님의 뜻에 맞추어 순종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입니다. 한 가지 우리가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초대 교회가 일꾼을 선택하는 기준에 있어서 일처리를 하는 ‘뛰어난 재능’보다 ‘선한 인격’과 ‘성숙한 믿음’을 더욱 우선적으로 보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 보면,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는 순간들을 반드시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부족한 자를 세우신 분이 곧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연약하고, 미련하고, 부족한 자들을 교회의 사역자들로 택하시고 그들을 통하여 크고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주님의 크신 능력을 더욱 확실하게 나타내십니다. 우리가 완벽하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설 자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사역을 감당하기에 완벽했다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교만하게 교회 일을 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은 탁월하지 못하고, 뛰어난 재능이 없고, 부족해도, 주님께 의지할 줄 아는 선한 인격과 성숙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택하시고 그들을 통해 주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일을 기뻐하십니다.

3절을 보면 일곱 명을 뽑으라고 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7명이었을까요? 전통적으로 유대인의 마을에서 회의를 열어 공공의 업무를 처리할 때 필요한 전형적인 인원수가 7명이었습니다. 이러한 유대인의 전통에 따라 교회 공동체의 공공의 업무를 처리하도록 일곱 명을 선출하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은 이 일곱 명이 교회의 행정적인 업무들과 공궤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고, 4절 말씀을 보면 자신들은 기도하는 일과 말씀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겠다고 했습니다. 목회자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미련한 것입니다. 사도들은 교회의 사역들을 성도들과 함께 나누어 짊어지려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도들이 함께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 말씀에 따르면, 구원받은 성도들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도록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따라서 사실 교회의 모든 성도는 어떤 의미로는 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교회 사역에 참여함으로써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활용하여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1. 문제와 갈등을 통해 성장한 초대 교회

모든 성도들이 사도들의 의견을 기뻐하였습니다. 성도들은 사도들의 의견대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사람을 선출하였습니다. 5-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행 6: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행 6: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5절에 나오는 일곱 집사들의 이름들을 유심히 보십시오. 우리가 한글 성경으로 보면 잘 알 수 없지만, 사실 이 이름들은 모두 그리스식 이름입니다. 물론 이름만 보고 이들 모두가 헬라파 유대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습니다만, 아마도 일곱 명 중 대부분은 헬라파 유대인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초대 교회는 앞서 구제 사역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공정하게 사역이 돌아갈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일곱 명을 헬라파 유대인들 중에서 뽑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온 교회가 함께 선택한 일곱 명의 성도들을 사도들 앞에 세웠습니다.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여 교회 내의 구제와 공궤의 사역을 담당하게 하였습니다. 사도들이 일곱 집사들에게 안수한 이유는 그 기원이 구약에 있습니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임명할 때 안수하였고, 대제사장 아론이 레위인들에게 직무를 맡길 때도 안수를 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구약 성경의 전통에 따라 사도들은 피택 된 일곱 명에게 안수를 하였습니다. 이것은 초대 교회가 이 일곱 명을 공식적으로 임명했다는 것을 공동체적으로 공포하는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축복과 능력을 부여한다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가 뽑은 일곱 명 중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이 바로 스데반입니다. 그는 일곱 명 중 특히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의 활약상은 우리가 다음주 주일에 더욱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증거하다가 순교했습니다. 두 번째로 소개되고 있는 빌립은 스데반과 함께 일곱 집사 중 유일하게 사도행전에 기록된 탁월한 전도자입니다. 사마리아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고쳤고, 특별히 에디오피아 내시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번째 인물, ‘브로고로’는 교회 전승에 의하면 사도 요한으로부터 요한복음을 받아 기록한 서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네번째 인물 니가노르’는 전승에 의하면 스데반과 같이 말씀을 전하다가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섯번째 인물 디몬’은 ‘보스트라’라는 지역의 감독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섯번째 인물인 바메나’는 훗날 로마의 트라얀 황제 때 빌립보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일곱 번째 인물은 니골라’입니다. 먼저 5절에 그를 소개하며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라고 했습니다. 그는 시리아의 안디옥 혹은 비시다의 안디옥 태성의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로 입교하였고, 훗날 복음을 듣고 회심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니골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예수님께 칭찬받거나 책망을 받는 소아시아의 일곱교회가 나옵니다. 이 중 버가모라는 교회는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유로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일곱 집사였던 ‘니골라’가 예수님께 책망받은 니골라 당의 창시자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물론 이름만 같은 ‘동명이인’일 것이다’라는 성경학자들의 주장도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일곱 명의 집사들을 일꾼으로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구제와 공궤 사역을 감당케 함으로써 교회 안의 불만과 불평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사도들은 자신들이 맡은 바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초대 교회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7절을 봅시다. “(행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교회가 새로운 일꾼들로 든든히 세워져 가고, 사도들이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고 전파하는 일에 열심을 내자,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새롭게 믿고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 숫자를 일일이 다 셀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아졌고, 유대 종교의 핵심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는 제사장들까지도 이제는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놀라운 일들이 이어졌습니다. 한 역사학자에 따르면 이 당시 제사장 직책을 갖고 있던 사람들의 숫자가 약 8천 명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중 허다한 사람들이 이 도에 복종했다고 한다면, 적어도 수천 명의 제사장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특히 유대교 제사장들은 매일 같이 동물 희생 제사를 드리는 일을 관여하는 사람들입니다. 제사 드리는 일로 생계를 유지했던 사람들입니다. 그에 비해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모든 제사가 완성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제사장들이 기독교로 넘어오면 더 이상 제사를 드리지 않음으로 생계가 끊어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더 이상 희생 제사가 불필요한 기독교 신앙에 복종하게 되었다는 것은 실로 매우 놀라운 사건입니다. 이와 같이 사도들이 교회의 분쟁과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들은 계속해서 기도와 말씀의 사역에 전념한 결과 초대 교회는 크고 위대한 부흥을 이루어 냈습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들은 저마다 갈등과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연약하고 불완전한 죄인들로 구성된 교회 안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심지어 성경 속 초대 교회도 여러가지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 입니다. 코너스톤 교회의 연약한 부분을 보셨습니까? 비난과 불만만 가지고는 교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을 손가락질하고 불평하는 것만으로는 교회가 성숙해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함께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방법을 가지고 문제들을 풀어가 봅시다. 비록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나도, 포기하지 말고 사랑으로 인내하며 계속해서 우리 교회를 아름답고 성숙한 교회로 만들어 갑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해서 퍼져 나가서 더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로 세워가는 복된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