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30 아침마다 깨우치시는 하나님 (이사야 50장 4-11절)


 

 

우리가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농부 아저씨라고 한 번 상상해 봅시다. 길고 추운 겨울이 끝나고 따뜻한 봄이 찾아오면 땅을 한 번 갈아엎습니다. 그리고 밭에 씨를 뿌립니다. 무더운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하루 종일 허리를 숙인 채 밭에 나가 일을 합니다. 쏟을 수 있는 정성이란 정성은 다해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농사라는 것이 열심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비도 식물이 성장할 때 타이밍 맞게 제 때 내려줘야 합니다. ‘올해는 비가 충분히 오려나’ 걱정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장마철에 시작된 굵은 빗줄기가 그칠 줄을 모릅니다. ‘이제 조금 있음 그치겠지’ 했던 비가 지구 온난화 이상기후로 형성된 장마 전선에서 내리는 비가 폭포수 같습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철철 내립니다. 결국 지난 한 해 열심히 심었던 농작물들이 다 물에 잠겨 죽었습니다. 한 해 농사를 다 망쳤습니다. 자, 만일 여러분이 농부 아저씨라면 내년에 또 다시 농사 지으시겠습니까? 정말 먹고 살 길이 따로 없어서, 할 줄 아는 것이 이거 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하기 싫어도 또 농사 해야죠. 어쩌겠습니까?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농사가 3년 연속 망했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럼 여러분 또 다시 농사 지으시겠습니까? 아마 웬만한 사람이면, 이 즈음에서 포기할 것입니다. “아, 더 이상은 못하겠다. 어차피 농사 지어도 또 수포로 돌아갈 것인데, 내가 무슨 영광을 누리겠다고 또 저 힘든 짓을 해야 하나?” 이렇게 반응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정말 먹고 살 일이 이거 밖에 없으면 또 농사 짓고 하겠지요.

자, 이제 우리 주님 예수님의 이야기를 잠시 해봅시다. 예수님은 공생애 3년 동안 쉼 없이 사역하셨습니다. 얼마나 피곤하셨는지 태풍이 일어나 배에 물이 들어와 배에 탄 사람들이 난리법석이 되었는데도 주님은 깨어나지 않고 깊게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전부를 사역에 쏟으셨습니다. 특별히 이 중 예수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온 정성으로 키워내려고 한 사람들이 그의 12명의 제자들입니다. 이 세상에 예수님처럼 제자훈련을 가장 탁월하게 하는 분이 또 누가 있겠어요? 3년 정도 예수님께 배웠으면 이제 예수님도 그 힘든 사역의 열매를 맛볼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공생애 3년이 다 끝나갈 무렵, 12명 중 한 명인 가룟 유다는 주님을 배반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그 밤 나머지 열 한 명의 제자 중 단 한 사람도 예수님 곁에 남지 않고 다 자기 살겠다고 도망쳤습니다. 그토록 믿었던 베드로까지도 말입니다. 게다가 베드로는 예수님 보는 앞에서 자기는 이 사람을 모른다고, 이 사람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3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보면 가슴이 찢어지는 순간입니다. 사람이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도 우리 집에서 나와 3년 정도 지나면 가족이 됩니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병들거나 죽어도 사람들이 슬퍼서 우울증에 걸리기도 합니다. 또 죽으면 강아지 사진 액자에다가 넣어서 보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3년간 동고동락해온 제자들이 예수님 잡히시던 날 밤 그들의 스승을 전부 다 외면했습니다. 단 한 사람도 예수님 곁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때 우리가 예수님의 입장에 서 있었다면 얼마나 서운했겠습니까? 얼마나 마음이 섭섭하고 또 괴롭겠습니까? “내가 다시는 제자훈련하나 봐라. 내가 다시는 사역 안 한다.” 막 이런 마음까지 들지 않겠어요?

실제로 한 때 교회에서 열심으로 사역했던 분들 가운데 마음에 상처 입고 사역의 현장을 떠나거나 그만 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목회자나 전문 사역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헌신적인 평신도 분들 가운데도 정말 많습니다. 지난 수년 동안 교회를 위해서 땀 흘려 봉사했습니다. 집으로 초대해서 사람들 밥 먹이고, 힘든 사람들 찾아가서 위로하고, 교회 늦게까지 남아서 모임 다 참석하고 뒷정리까지 다 하고, 땀 흘리고 남들 잘 안 하려는 사역까지도 도맡아 했습니다. 다 주님을 위해서 한 것이지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시작된 교회 안의 싸움이 결국 교회의 분열을 가지고 왔습니다. 교회가 사분오열로 찢어졌고, 결국 그 동안 정성껏 돌봤던 성도님들, 나와 그토록 친하게 지냈던 성도님들이 하나 둘 교회를 떠났습니다. 수년간 정성으로 교회 사역을 감당했고, 헌신적으로 성도들을 섬긴 결과는 교회의 분열과 그리고 사람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수많은 상처 뿐이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이제는 그 원인도 찾기가 힘들 지경입니다. 이러한 아픔 때문에 한 때는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교회의 일들을 자기 일처럼 도맡아 해온 성도들이 하나 둘 사역의 현장을 떠나는 모습을 보지 않았습니까?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깊은 경우에는 심지어 한인교회를 떠나고, 미국 교회로 들어가 말씀만 듣고 오는, 주일성수만 하는 썬데이 크리스천으로 변해버리는 안타까운 케이스들도 우리는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만일 여러분이 코너스톤 교회를 위해서 쏟은 그 모든 섬김과 봉사와 헌신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갈라지거나, 어떤 큰 문제로 성도들이 떠남으로써 여러분이 뿌린 그 모든 헌신이 굴뚝 위로 날아가는 연기처럼 사라진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소명의 자리에서 사역을 이어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사역을 내려놓고 “이제는 다른 사람이 하겠지.. 나는 더 이상 못하겠다” 하고 말하며 소명을 포기하겠습니까?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연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사야 본문은 바로 이와 같이 맡겨진 사명을 성실히 감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 채 고난을 맞게 된 여호와의 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종을 반겨준 것은 사역의 열매가 아니라, 참기 힘든 모욕과 고통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종은 변함없이 여호와께서 부르신 사역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이 여호와의 종이 누구이십니까?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지난 3년 반 동안 공생애 기간에 최선을 다하여 섬기셨으나, 유대인들은 그를 나사렛 이단이라고 정죄했고, 그의 고향 사람들은 그를 돌로 쳐 죽이려 했으며, 제자들은 모두 그를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로마 군사들은 그를 주먹으로 때리고, 채찍질 했으며, 그에게 침을 뱉었습니다. 지난 3년간 열심히 사역한 결과가 바로 이와 같은 고난 뿐이었습니다. 영광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겨 주신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자기를 배신하고 버린 사람들을 위해서도 십자가를 짊어지는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어떻게 이와 같은 삶이 가능하셨을까요? 예수님이시니까요?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아가기란 불가능한 걸까요?

오늘 본문에는 여호와의 종이신 예수님께서 사역 가운데 찾아온 극심한 모욕과 고난을 참아내신 비결이 담겨 있습니다. 4절 말씀을 봅시다. “(사 50:4)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학자’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림무딤’으로 학문적인 권위자가 아니라, 스승으로부터 교훈과 훈련을 받는 ‘제자’를 가리킵니다. 여호와의 종은 단지 가르치는 일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멈추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배움을 이어갔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종을 가르치사 그의 입술에 곤란에 빠진 사람들을 어떻게 위로할 것인지 지혜를 넣어 주셨습니다. 또한 여호와의 종은 하나님께 귀를 기울여 주님의 마음을 깨우쳤습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의 종은 하나님의 마음과 말씀을 배우는 일을 매일마다 반복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과 그분의 말씀 배우기를 그만둔다면 여러분은 결코 사역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Gas가 떨어진 차가 결국 멈추듯이, 밥을 먹지 않은 인간은 결국 고장나 버리듯이,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가르침을 배우지 않는 자는 결국 지쳐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도쿄 올림픽에서 일어나는 많은 화제 중 아시아 수영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평가받는 인물이 바로 18살의 황선우 선수입니다. 남자 자유형 100m 준결승에서 아시아 신기록을 작성한 그는 결승에서 5위로 레이스를 마쳤습니다. 처음 나간 올림픽에서 이미 박태환 선수를 넘어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단한 기록이고 대단한 선수임에는 분명합니다. 전문가들은, 황선우 선수가 근력을 더 키우면 다음 올림픽에서는 메달도 가능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사역도 체력이 필요합니다. 육체적인 체력도 필요하지만, 영적인 근력도 필요합니다. 마지막까지 Finishing well 하고 싶으시다면 영적 근력을 키워야 합니다. 어떻게 키웁니까? 이미 방법은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10-10-10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근력을 키우는 방법은 다른 것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 있는 것, 주님의 임재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그리고 성경책을 가지고 계신 분은 4절에 나오는 “아침마다”라는 단어에 밑줄을 치거나 동그라미를 쳐보십시오. 여호와의 종은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과 1대1로 독대하는 고요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그 모진 십자가 고통과 사람들의 조롱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의 길을 걸어가실 수 있었던 비결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영적 체력을 키우는 일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별것 아닌 일, 오늘 하루 넘어가도 되는 일, 대충 지나가도 되는 일 즈음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 하루 중 하나님 앞에 나 홀로 서 있는 시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고, 주님의 임재 앞에 엎드리는 시간이 없다면, 그 사람은 고난을 이겨낼 힘이 없어, 마음에 시험에 들고 중도에 포기할 것이 분명합니다. 아니면 사역을 하기 하면서도 기쁨과 즐거움이 없이, 정말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듯 끌려가듯 교회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올림픽 여자 탁구 국가대표 신유빈 선수의 나이가 화제입니다. 불과 11살입니다. 대단하죠? 11살에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나간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입니다. 이번에 신유빈 선수가 주목받은 이유 중 하나가 그녀의 엄청난 체력 때문입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강한 체력으로 탁구 강호 중국을 무찔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탁구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한 번 보십시오. 맨날 밖에 나가서 달리기 합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보면 육상선수인지 탁구선수인지 헷갈립니다. 그런데 탁구만큼 체력이 중요한 게 또 없습니다. 탁구공 크기는 지름 4cm, 무게는 2.7g 밖에 안되는 작은 공입니다. 테니스 공이나 야구공에 비교해도 정말 작고 가볍습니다. 그 작은 공 한 번 네트 위를 통과하여 상대편 테이블로 넘기는데 뭐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런데 탁구는 그 작은 공을 끊임없이 쳐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탁구 선수들 말을 들어보면, 나중에는 체력이 지치면, 탁구채에 맞는 공이 무겁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탁구는 결코 기술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체력이 없으면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경기가 결국 무너지게 됩니다.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만의 노하우, 사역의 기술만 갖고 하는 사람은 한 두 번은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하지는 못합니다. 오늘 본문 4절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이번에는 우리말성경 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사 50:4) 주 여호와께서 내게 가르치는 혀를 주시고 어떻게 하면 지친 사람을 말로 되살릴 수 있는지 알게 하신다. 아침마다 내 귀를 깨워 주셔서 마치 제자를 대하듯 들려주신다.” 아침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깨우쳐 주시도록, 하나님 앞에 나가서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말씀을 꾸준히 배우십시오. 그 시간이 우리들의 영적 체력을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며, 그 영적 강함이 있을 때만, 우리는 사역 후 찾아오는 고난도 조롱도 모욕도 모두 인내하며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루 아침 일어나면 제일 먼저 무슨 일을 하십니까? 오늘 아침에는 제일 먼저 무슨 일 하셨어요? 요즘에는 하루 일과 중 제일 첫번쨰 일이 스마트폰으로 뉴스 확인하는 것이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하나 도전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스마트폰 보기 전에 하나님 말씀 먼저 보기로 결단하십시오. 이것도 어렵다 싶으면, 스마트폰에다가 성경 어플 설치하시고, 아침부터 스마트폰 붙잡고 인터넷 하지 마시고 가장 먼저 성경 보십시오. 이제 8월이 시작되죠? 8월 한달만이라도 도전해 보세요. “내가 이번달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나님 말씀보고 하루를 시작한다!” 한 번 해보세요. 작심삼일이라도 좋아요. 삼일이라도 하세요. 그리고 실패하면 또 삼일 도전하세요. 제발 하나님 말씀 보는 일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이거 무시하면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 국가 대표로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꼭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자, 여호와의 종이 아침마다 자기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채워 놓고, 날마다 주님의 마음을 배우는 삶을 살아감으로 영적 체력을 강하게 만들었을 때 어떠한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까? 그는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되었고, 그를 조롱하고 심지어 폭력을 행하사는 원수들 앞에서도 굴복하지 아니하고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이 내용이 5-6절에 있습니다. “(사 50: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 내가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사 50: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5절 봅시다.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 다시 말하면 “내가 아침마다 주님의 말씀으로 얻은 깨달음을 나의 마음에 채워 놓았음으로”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내가 왜 이거 해야해요? 나 이거 못해요. 딴 사람 시키세요. 난 이렇게 더럽고 힘든 일 못해요.” 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끝까지 맡겨 주신 일을 묵묵히 감당합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함께하시니 뒤로 물러가지도 않습니다. “나 여기서 포기하지 않을 거야.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길이니, 나 끝까지 해야 해.” 이런 굳은 의지가 발휘됩니다. 6절 보세요. 여호와의 종을 때리는 사람들, 그의 수염을 뽑는 사람들, 심지어 뺨을 때리고, 갖은 욕을 하고, 얼굴에 침까지 뱉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역하다가 이 정도로 핍박 받으면 정말 그만두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여호와의 종은 어떻게 했습니까? 담대합니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갑니다. 이게 보통 사람은 이렇게 못합니다. 여러분 오늘 지나가던 사람이 여러분 얼굴을 때렸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얼굴에 침을 뱉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최소 몇 달은 하루 중에 몇 번씩이나 불쑥불쑥 생각이 나서 화가 나고, 억울하고 분이 나서 밤에 잠도 못 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종은 그를 때리려는 자들에게 “때려랴” 하고 등 대줍니다. 수염을 뽑으려는 자들에게 “뽑으라”하고 뺨을 맡깁니다. 그를 향해 사람들이 온갖 욕을 퍼붓고 침을 뱉는데도 묵묵히 하던 일 계속해서 합니다. 고난 당하는 여호와의 종의 속마음을 한 번 살펴볼까요? 7-9절입니다. “(사 50:7)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은즉 내가 수치를 당치 아니할 줄 아노라 (사 50:8)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뇨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뇨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사 50:9)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뇨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에게 먹히리라” 7-9절을 새번역 성경으로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사 50:7) 주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니, 그들이 나를 모욕하여도 마음 상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각오하고 모든 어려움을 견디어 냈다.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겠다는 것을 내가 아는 까닭은, (사 50:8) 나를 의롭다 하신 분이 가까이에 계시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나와 다투겠는가! 함께 법정에 나서 보자. 나를 고소할 자가 누구냐? 나를 고발할 자가 있으면 하게 하여라. (사 50:9) 주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실 것이니, 그 누가 나에게 죄가 있다 하겠느냐? 그들이 모두 옷처럼 해어지고, 좀에게 먹힐 것이다.”

여호와의 종의 담대함을 보십시오. ”그래? 어디 한 번 해봐.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 주시는데 내가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선한 양심을 가지고 성실함과 정직함으로 사역하고 있는데 내가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너희가 헛되이 나를 정죄하고, 조롱하고 모욕하고, 심지어 법정에 나를 고발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시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여호와의 종이신 예수님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사역하셨어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사역에 다 쏟아부으셨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찾아온 결과는 조롱과 모욕, 욕설과 폭력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사람들에게 조롱당하고, 욕을 먹고, 뺨을 맞고, 등을 맞고, 침 뱉음을 당하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면서도 이 모든 고통을 인내하실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아침마다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말씀을 배우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10절 말씀을 봅시다. “(사 50:10)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뇨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영적 체력을 키우는 일을 절대로 무시하지 마십시오.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께 배우기를 멈추는 순간, 여러분의 섬김도 사역도 함께 멈추게 될 것입니다. 열심만 가지고는 사역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심령이 언제나 말씀의 은혜에 젖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없는 매마른 영혼은 넘어지고, 시험에 빠져 중도 포기할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우리의 입술과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과 말씀으로 가득 채워 놓으십시오. 주님의 은혜의 식탁 앞에 나아가 말씀을 충분히 배불리 먹으십시오. 여호와의 종의 본을 배워 우리 모두가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