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6 이방에 정의를 베풀 종 (이사야 42장 1-25절)

하나님은 온 세상에 가득히 정의가 시행되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일을 위해서 하나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절을 봅시다. “(사 42: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신 사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택하신 사람, 하나님께서 주의 영을 주신 사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이방에 공의를 베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 임금과 권력자들은 힘의 원리로 사람들 위에 군림합니다. 폭력과 억압이 그들의 통치 방법입니다. 약한 자들 앞에서 큰 소리로 호통을 치고, 손으로 때리고, 발로 짓밟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통치 방법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정의로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그는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해 큰 소리로 외치지 아니하십니다. 사람들을 때리거나 밟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도리어 꺼져가는 불빛처럼 연약한 자들, 상한 갈대처럼 축 쳐진 힘 없는 자들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돌보십니다. 이와 같은 주님의 능력은 시간이 지나도 쇠하지 아니하며, 마침에 정의를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4절 후반절 말씀처럼 온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가르침과 정의로운 다스림 아래 살아갈 것을 앙망할 것입니다.

5절에 기록된 하나님을 소개하는 글을 보십시오.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열매를 내시고, 땅 위의 백성들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신”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정의를 이루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세워 하나님과 백성 사이 언약의 중재자 그리고 이방을 밝히는 빛이 되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실 일이 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십니다. 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 42:8)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온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셨기에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주님께 올려드려야 할 영광을 우상에게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받아 마땅한 영광과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와 같은 일을 위해서 주님은 예수님을 언약의 중재자로 삼으셨고, 이방의 빛으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은 온 열방이 주님을 찬양하게 하실 것입니다. 16절을 봅시다. “(사 42:16) 내가 소경을 그들의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의 알지 못하는 첩경으로 인도하며 흑암으로 그 앞에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소경은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정의를 세우시기 위해 먼저 주인이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김으로 멸망당하여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 있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생각해 본적도 없고,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놀라운 방법으로 주님은 그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흑암에 처한 그들의 앞에 큰 빛이 임하게 되고 굽어진 길이 곧게 펴집니다. 이 모든 표현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포로로 살아가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16절 후반절을 다시 보십시오.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은 자신을 버리고 우상을 택한 이스라엘이지만, 그들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이스라엘을 버리거나 포기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전쟁의 포로로 끌려가게 되지만, 그것 역시 그들이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기 위한 목적이지, 결코 그들을 버리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주의 종들을 보내어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시고 그들로 주님께 돌아오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맹인처럼 하나님의 뜻을 보지 못했고, 귀머거리처럼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소경이라 부르시고, 귀머거리라 부르셨습니다. 18-19절 말씀을 봅시다. “(사 42:18) 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너희 소경들아 밝히 보라 (사 42:19)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 같이 귀머거리겠느냐 누가 나와 친한 자 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 같이 소경이겠느냐” 이스라엘만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보고 또 자주 들은 사람들이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살아갔고, 주의 말씀도 듣지 않고 살아갔습니다. 마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평생 교회 안에서 자랐지만, 정작 하나님에는 관심도 없고 말씀과 멀리 떨어져서 살아가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20절 말씀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사 42:20)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 오늘 하나님께서 혹시 우리들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주의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면서도 이 말씀에 유의치 아니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의 말씀은 많이 듣기는 하지만 그 말씀대로 실천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그럼 우리들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이 영적인 소경이요, 영적인 귀머거리인 셈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사 그들이 주님의 말씀 안에서 기쁨을 누리며 존귀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택하고 죄악을 지으며 살아감으로써 그들은 복이 아니라 벌과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22절 말씀입니다. “(사 42:22) 이 백성이 도적 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 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도다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도로 주라 할 자가 없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죄악을 지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벌을 주신 분도 하나님 자신이심을 밝히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으로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불같이 쏟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25절 말씀을 보면 사방에서 불이 난 것처럼 여호와의 진노가 타오르고 있었고, 그들의 몸이 불에 타 들어가고 있는 것과 같은 고난 중에도 이스라엘은 이 모든 심판이 자신들의 죄악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배를 아무리 많이 드려도, 말씀을 아무리 많이 들어도 영적 소경과, 영적 귀머거리가 된 사람의 영혼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처럼 멸망할 뿐입니다. 그래서 주의하십시오. 20절 말씀의 경고를 다시 한번 되새기십시오. 혹시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못 본 척 무시하고 살아가는 영적 소경은 아닐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듣고도,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영적 귀머거리는 아닐까요?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배우십시오. 그리고 오늘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교훈을 따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