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06 혀를 제어하라 (야고보서 3장 1-12절)

우리나라 속담에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의 입에서 나가는 말이 얼마나 큰 파급효과를 일으키는 지 잘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말 한 마디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말 한 마디로 사람을 죽일수도 있습니다. 말을 잘해서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말 실수 때문에 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형제와 이웃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사랑하도록 디자인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을 돌아보면 입술을 통해 하나님께 불평과 불만을 터트리고, 이웃에 대해서는 비방하고 거짓을 말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인간은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 하루 동안 혀로 죄를 무수히 많이 짓고 살아갑니다.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죠. 야보고서 1장 26절 말씀을 보면, 아무리 자신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혀를 제어하지 아니하는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말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신중하고 진중한 언어생활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 야고보서 3장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약 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을 알고 선생이 되지 말라” 학교 수업 시간을 생각해 보면 학생 보다는 선생님이 말을 더 많이 하지요? 아무래도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은 말을 많이 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말 실수를 하기 마련입니다. 특별히 선생이 되면 말로만 가르치고 정작 자신은 가르친 대로 행하지 아니하여 거짓말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저와 같은 목회자가 “서로 사랑하십시오.”하고 성도님들에게 가르친 후 형제들을 미워한다면 거짓말하는 자가 되고, 결국 말로 하나님께 범죄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3장 1절 말씀은 ‘선생이 되지 말라’에 포인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말로써 한 것은 반드시 행하고 지키도록 하라’는데 그 포인트가 있습니다. 또한 성경의 진리와 잘못된 가르침을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경우에도 하나님께 받을 심판이 엄중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말씀을 가르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중에는 가르치는 은사가 없어 선생으로서의 소양과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결국 이들 중에는 잘못된 교리와 비성경적인 가르침으로 교회 안에서 모범이 되지 못하고 다양한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따라서 야고보는 가르치는 직분을 탐내는 자들을 경고하며 잘못된 가르침을 주는 선생들이 하나님 앞에서 받을 심판이 크다고 경고 했습니다. 즉 자신에게 가르치는 자로서의 소양과 자질이 부족하다면, 단호하게 선생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금지했습니다. 그것은 본인 자신에게도 유익할 뿐만 아니라 모든 공동체에게 유익이 됩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 된 자가 비성경적인 내용들을 성도들에게 잘 못 가르치는 것도 큰 죄요, 가르친 내용대로 자신이 살아가지 못하는 것도 큰 죄입니다. 따라서 야고보는 누구든지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는 것을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하라고 권면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가르치는 은사를 부여 받지 못하거나, 가르치는 직분에 합당한 사람이 아니면 선생이 되지 말라고 경고 했습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 야보고서 3장 2절 말씀을 보면 언어생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에 굴레 씌우리라” 성경은 언어생활에서 실수가 없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뒤집어 보면, 사람의 죄악과 후회할 일들이 대부분 말 실수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실로 성경적인 관점에서 성숙한 사람은 그의 혀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뒤에서 남 욕하고 험담하는 사람인 미숙한 사람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모든 것들도 능히 절제하고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신중하게 말하는 습관을 훈련해야 합니다. 친한 가족과 친구 사이일수록 서로 함부로 말하다가 상처 주는 일들이 비일비재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나 사랑과 격려와 위로를 북돋아 주는 사명을 말로 감당해야 합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말하기 보다, 말하기 전 한 번 더 깊게 생각해보고 말할 수 있도록 연습해야 합니다.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도록 함으로써 자기 자신도 후회할 일을 차단할 수 있고, 또한 공동체 전체에 유익이 되며, 하나님께도 영광이 됩니다.

이어서 3절 말씀을 읽을텐데요.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3절에 나오는 ‘말’은 지금까지 말한 ‘언어’가 아니라 타고 다니는 ‘horse’ 입니다.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약 3:3)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horse를 타고 다니는 기수는 horse를 제어하기 위해서 그 입에 재갈을 물립니다. 재갈에 연결된 줄을 잡아당김으로써 기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말을 조종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Horse의 몸집 크기에 비하면 재갈은 작습니다. 그러나 horse 전체를 조종할 만큼 큰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작은 것이 그보다 큰 것을 제어하는 예가 4절에 한가지 더 등장합니다.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약 3: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바다 위를 떠 다니는 배를 보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큰 배는 무게 만 약 56톤에 길이가 460m나 됩니다. 그런데 이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키는 겨우 사람 몸만 합니다. 키를 왼쪽으로 돌리면 그 거대한 배가 왼쪽으로 가고, 키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배가 또 오른쪽으로 움직입니다. 이처럼 작은 키가 커다란 배 전체를 움직이는 것과 같이 사람의 세치 혀가 인간의 삶 전부를 움직일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혀를 제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혀를 잘 사용하면 그만큼 복된 삶을 살 수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그만큼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5절 말씀을 봅시다. “(약 3: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등산을 하던 한 시민이 무심코 버린 작은 담배꽁초 하나가 산 전체를 태우는 커다란 화마로 번지는 일을 신문 기사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작은 불씨 하나가 커다란 나무 수백, 수천 그루를 태우는 재앙으로 번지게 되는 것이죠.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입으로 말하는 것이 별것 아니고 작은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하루하루 쌓이다 보면 결국 우리의 인생의 가치와 위치를 결정해버릴 만큼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 갚을 정도가 아니라, 말 한 마디로 우리 인생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언어생활이 중요합니다. 혀는 비록 작은 것이지만, 우리의 인격 전체를 조절할 수 있을만큼 강력합니다. 혀를 제어하지 않게 되면 그 사람의 인격과 삶에는 치명적인 악영향이 생기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혀와 입술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형제와 이웃들을 사랑하고 격려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말 한 마디로 사람의 운명이 달라집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언어를 유심히 듣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보고 계시고, 자세히 듣고 계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기뻐하시는 언어생활, 형제와 이웃들에게 덕과 유익이 되는 언어생활, 내 자신의 인격과 성품을 성숙하게 하는 언어생활을 해야 합니다. 말을 제어함으로써 참으로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