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04 사도행전 강해 (9) 믿음으로 나타난 기적 (사도행전 3장 11-16절)

사도행전 3장에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한 앉은뱅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선천적 앉은뱅이였던 이 사람은 지난 40년 동안 한 번도 자신의 두 다리로 걸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남이 성전에다가 옮겨주지 않으면 구걸조차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보며 속으로 얼마나 자신의 삶을 비참하게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걸을 수 있다는 소망조차 가질 수 없었던 앉은뱅이에게 어느 날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손을 내밀어 그를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앉은뱅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두 다리로 걷고 뛰어다니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날마다 성전에 세 번 기도하러 나올 때마다 앉은뱅이를 지나쳤던 유대인들이 그를 알아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앉은뱅이였던 이 사람이 어떻게 해서 걸을 수 있게 되었는지 궁금해했습니다. 이 때 앉은뱅이는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준 베드로와 요한을 꽉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이 얼마 전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님의 추종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유대인들은 더욱 깜짝 놀랐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앉은뱅이를 일으켰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예루살렘 성 안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 퍼졌습니다.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보기 위해 ‘솔로몬의 행각’이라는 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행각이라는 것은 벽은 없고 지붕과 기둥만 있는 건축물입니다. 솔로몬의 행각은 독립된 단일 건물은 아니고, 성전 동편 벽을 따라 있는 성전의 우회 구실을 하는 공간입니다. 두 줄의 기둥이 나란히 놓여 있고 벽은 없고 지붕만 있는 열린 곳입니다. 평상시에도 유대인 랍비들은 솔로몬의 행각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토라를 강론했습니다. 종교적인 가르침을 주고받는 곳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0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따라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익숙한 장소입니다. 그들의 스승인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던 동일한 장소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성전 내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가르침을 받기에 가장 좋은 장소인 솔로몬의 행각에 모여 앉은뱅이가 치유될 수 있었던 경위에 대하여 듣고자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도대체 앉은뱅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지 사람들은 낱낱이 사건을 파헤쳐보고 싶어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사람들은 많은 실망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의 제자들인 베드로와 요한이 그의 스승의 뒤를 이어 앉은뱅이를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Q1. 왜 이 일로 놀라십니까?

베드로는 많은 유대인 앞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행 3: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2절에서 베드로가 “왜 기이히 여기느냐?”라고 한 말씀을 주목해 봅시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 여러분, 아니 왜 이런 일로 놀라십니까?”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앉은뱅이를 고치신 것이 무엇이 그렇게 놀랍습니까?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앉은뱅이를 고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사실 아닙니까?’ 베드로는 예수를 믿는 자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치료의 은혜가 임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듯 담대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코너스톤 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시고 치유하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기대하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부어 주실 은혜에 대한 아무런 기대와 소망도 없이, 오래된 인생의 문제들을 피할 수 없는 불행한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의외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향한 소망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도는 하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 가운데 놀라운 은혜를 주실 것이란 기대와 소망은 갖지 못하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합니다. 기도하면서도 내심 ‘아마도 이건 안 되겠지…’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 어떤 기대도 소망도 갖지 못하고 하는 이런 기도는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한 번 보십시오. 그는 이 모든 기적이 일어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40년간 한 번도 걸어보지 못했던 선천적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기적을 보며 기이하게 여기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여러분은 왜 놀라하십니까?”하고 반문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고백대로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면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어서 베드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이 사실이라면,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것 즈음은 문제도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골프 치는 사람들의 평생에 꿈이 있다면 홀인원을 한 번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홀인원 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미국프로 골퍼들이 PGA 투어를 할 때 홀인원이 나올 확률이 3천분의 1이라고 합니다. 아마추어 골퍼들이 홀인원을 할 확률은 1만 2천 5백분의 1입니다. 1만 2천 5백분의 1… 어떻게 보면 낮은 확률도 아닌 것 같고, 불가능해 보이진 않는 확률 같습니다만, 실제로 이게 얼마나 낮은 확률인가 하면, 골프를 치는 분 중에는 평생 홀인원 한 번 해보지 못하고 골프 클럽을 놓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골프를 치면서도 홀인원이란 개념은 머리 속에 존재하지만, ‘아마도 나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고 은연 중에 마음 속으로 못을 박고 골프 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며,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게 된 저 놀라운 기적과도 같은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겠지…저건 다 성경 속 이야기지…’하는 부정적인 마음으로 말씀 앞에 반응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병자를 고치시는 치료자 예수’, ‘가난한 자를 도우시는 공급자 예수’에 대한 성경적 개념은 머리 속에 들어가 있지만, 그것은 남의 이야기로만 생각하고, 정작 내 삶 속에서 역사하실 예수님에 대한 소망은 거의 없이 신앙생활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내가 정말 예수님께서 내 삶을 도우실 분이라는 것을 믿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 지 자기 스스로를 점검해 보는 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여러분은 기도할 때 내 삶 속에 나타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만일 기도는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 속에서 역사하실 것이란 ‘기대’와 ‘소망’이 없다면 그 사람의 기도는 헛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아무런 믿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자요, 불신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기도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 삶 속에서 역사하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소망하며 기도하고 있습니까?

이와 같이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그 어떤 기대와 소망도 갖지 못하고 의심하고 불신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야고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6-8절을 새번역성경으로 함께 읽겠습니다. “(약 1:6)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믿고 구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마치 바람에 밀려서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약 1:7) 그런 사람은 주님께로부터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약 1:8) 그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이요, 그의 모든 행동에는 안정이 없습니다.” 기도는 하면서도 마음 속으로 ‘과연 나에게도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찾아올까?’ 의심하며 기도하는 사람은 이미 기도에 실패하였습니다. 야고보서는 이와 같이 하나님을 의심하고 그분의 역사하심을 불신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는 기도하는 자가 가져야 할 태도와 자세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 속에 그의 놀라운 은혜를 주실 것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곧 믿음입니다. 우리들은 기도하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그 하나님께서 자신을 찾으며 기도하는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주일마다 예배 시간에 사도신경을 고백합니다. 그 시작이 무엇입니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정말 이 내용을 마음 속으로 진실하게 믿으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또한 그 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셨음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이 역사적인 사실임을 깨닫는다면 우리 인생의 나머지 모든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은연 중에 속으로는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그 어떤 기대도 소망도 없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앉은뱅이처럼 저마다 각각 인생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오래된 문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문제가 육신의 질병일 수도 있습니다. 가난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미숙한 성격에서부터 오는 인간 관계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가족 간의 불화나 어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무슨 문제이든지 그 문제가 오래 지속되다 보면, 그 상황과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오히려 ‘그냥 이것이 내 삶의 일부구나…’하고 포기하며 자신의 문제를 겸허히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골프 홀인원의 확률은 1만 2천 5백분의 1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실 확률은 얼마나 됩니까? 1대1입니다. 100%입니다. 골프로 따지면 기도할 때마다 홀인원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그 응답이 우리가 원하던 방향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 받을 확률이 100%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하는 자마다 받고, 찾는 자마다 찾을 것이고,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문이 열린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고 있는 우리 모두의 심령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리라는 새로운 기대감과 소망이 풍성하게 넘치길 축복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Q2. 우리의 능력이나 우리의 경건함 때문에 이 사람이 걸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베드로는 선천적으로 앉은뱅이였던 이 사람을 고친 것은 자신들의 개인적인 권능이나, 경건함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부인했습니다. 12절 말씀을 다시 한번 봅시다. “(행 3: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그렇다면 도대체 그 누가, 그 무엇이 이 기적을 가능케 했을까요? 그에 대한 해답이 바로 16절 말씀입니다. “(행 3: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사도 베드로는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이름에 대한 그들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앉은뱅이가 걷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설명했습니다. 베드로가 사용한 바로 이 믿음의 원리를 우리의 삶 속에서 그대로 적용하면 됩니다. 먼저 능력 있는 이름 예수를 믿으십시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나 다시 부활하신 생명의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 예수가 능히 내 삶의 문제들을 고치시고 해결해주실 것이란 사실도 믿으십시오.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주님께서 내 삶 속에서 일하시고 놀라운 은혜를 주시며 기적을 일으키시기라는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앉은뱅이를 고친 것은 베드로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경건함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앉은뱅이를 불쌍히 여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였습니다. 연약하고 불행한 우리 삶의 상황과 환경을 변화시키시고,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도 오직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밖에는 없습니다. 성경에는 바로 이 예수를 믿음으로 인해 인생이 놀랍게 변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삶의 기적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진행중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켰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베드로는 16절에서 말했습니다. “구주 예수님의 이름과 그 이름을 믿음으로 이 사람은 완전하게 치유된 것입니다.” 앉은뱅이의 삶 속에 나타난 놀라운 기적처럼,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얼마든지 예수님은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여, 예수를 증거하는 증인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더 이상 남이 만난 예수님 말고, 우리가 직접 만나고 체험한 예수님의 은혜를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삶의 기적은 우리가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시는 영역입니다. 우리 개인의 능력이나 경건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기적은 시작됩니다. 매너리즘에 빠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아무런 기대도 없이 습관적으로 신앙 생활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주님께서 우리 삶 속에서 놀라운 은혜를 주시리란 새로운 기대감과 소망을 가지십시오. 새로 시작한 7월에도 능력의 구주 예수의 이름을 붙드시고, 굳건한 믿음으로 주의 은혜를 구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맛보아 누리며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