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8 원수를 먹이라 (잠언 25장 15-28절)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자기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자세로 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이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15절 말씀은 두 가지를 권면합니다. 인내와 온유함 입니다. 상대방이 마구 짓누르는 불리한 방법을 대할 때 먼저 우리는 인내하며 온유한 자세를 잃지 않고 그를 대해야 합니다. 15절 말씀에 부드러운 혀가 단단한 뼈를 꺾는다고 했습니다. 친절한 말 한 마디가 철문과 같이 단단하게 닫힌 마음을 열 때가 있지 않습니까? 물론 상대방이 잘못이 명백한 경우, 우리가 화를 내지 아니하고 침착하고 차분하게 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친 말보다는 부드러운 말이 상대방의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제압하듯이, 때로는 온유함이 가장 강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악에 대해서 악으로 갚을 것이 아니라, 인내와 온유함으로 대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16절입니다. “(잠 25:16) 너는 꿀을 만나거든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식하므로 토할까 두려우니라” 꿀은 “신이 내린 완전식품”이라고 불릴 정도로 몸에 좋습니다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과유불급이듯이 꿀도 과하게 먹으면 좋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에 좋은 것들도 지나치게 탐하면 우리 영혼에 해롭습니다. 잠은 좋은 것이지만, 지나치게 자면 게으름이 됩니다. 식사하는 것은 기쁨을 주지만, 지나치게 먹으면 병을 낳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선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끝없는 욕심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악한 것으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돈도 잘 사용하면 유익하지만, 지나치게 집착하면 우상이 됩니다. 성경은 꿀과 같이 몸에 좋은 것도 과도한 욕심을 내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꿀과 같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요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부분에 있어서는 그 즐거움을 적절히 누리되, 절제 없이 그것에 빠져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1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잠 25:18) 그 이웃을 쳐서 거짓 증거하는 사람은 방망이요 칼이요 뾰족한 살이니라” 거짓말로 이웃을 속이는 것과 거짓 증거들로 이웃을 어려움에 빠트리는 것은 살인행위나 다름없습니다. 사람을 방망이나, 칼이나 뾰족한 화살로만 죽이는 것은 아닙니다. 이웃에 대한 거짓 증거는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을 만큼 파괴적인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십계명 가운데 아홉 번째 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입니다. 거짓말과 위증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하는 자들이 둘째 사망에 던져질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거짓말로 남을 속이는 것, 속임수로 상대방을 위험에 빠트리는 모든 행위는 상대방을 살해하는 것과 다른 없는 큰 죄라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이웃에 대해서 거짓 증거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19절을 봅시다. “(잠 25:19) 환난날에 진실치 못한 자를 의뢰하는 의뢰는 부러진 이와 위골된 발 같으니라” ‘진실하지 못한 자’는 ‘배신자’를 가리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버리고 떠나갈 사람을 의뢰하는 것은 이가 부러진 것과 같이 아프고, 딱딱한 곳에 부딪혀서 발의 뼈가 다치고 어긋난 것과 같습니다.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기본적인 행위가 먹는 것과 걷는 것입니다. 환난 날에 진실하지 못한 사람을 의지하는 것은 이와 같이 기본적인 생활마져도 불가능하게 될 정도로 큰 위기를 자초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우리가 환난 날에 의지할 만한 자를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동시에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20절 말씀입니다. “(잠 25:20)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음 같고 쏘다 위에 초를 부음 같으니라” 노래 자체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노래도 불러야 할 때가 있고, 부르지 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마음이 아프고 다친 사람 앞에서 경쾌하고 신나는 노래를 부르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그것은 따뜻하게 입어야 하는 추운 날에 옷을 벗기는 것과 같이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행위입니다. “쏘다 위에 초를 부음 같다”는 말은 고대 사회에 비누 대용으로 사용하던 소다 위에 식초를 붓게 되면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마음이 상한 자 앞에서 노래를 부르면 분노의 감정이 부글거리고 더욱 강해지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21-22절 말씀입니다. “(잠 25:21)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잠 25:22)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 하나님은 주의 백성이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심지어 원수가 배고파 할 때 그에게 먹을 것을 가져주고, 목말라 할 때 마실 것을 주는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참 사랑의 모습입니다. 이는 우리가 원수에게 온유하고 따뜻하게 대해줌으로써 그 사람의 마음이 변화되어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기 위함 입니다. 그러나 만일 악인이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불이 피어 있는 숯을 사람 머리에 올려 놓았을 때 겪게 될 고난과 아픔과 같이 악인의 삶에 큰 환난과 고통이 따르도록 심판하실 것입니다.
27절을 보겠습니다. “(잠 25:27) 꿀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못하고 자기의 영예를 구하는 것이 헛되니라” 꿀은 몸에 좋은 것이지만, 앞서 16절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과하게 먹으면 도리어 몸에 좋지 않습니다. “영예를 구한다”는 말은 자기 스스로 영광을 구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명예롭고 칭찬과 인정 받는 삶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꿀을 너무 많이 먹으면 몸에 해롭듯이, 자기 스스로를 사람들 앞에서 높이려고 하고, 사람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으려는 지나친 탐심은 결국 사람의 인생을 망치게 만들어 놓습니다.
28절입니다. “(잠 25:28)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 성벽이 없는 도시는 적군이 쳐들어오면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적군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의 탐심과 육체적 정욕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은 원수 사탄의 유혹에 철저하게 무너지고 넘어갑니다. 그 결과 그는 멸망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솔로몬은 우리 마음의 성벽에 넘어지지 않도록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우리의 마음을 지키라고 말하여 생명의 근원이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