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7 숨기시는 하나님, 살피는 왕 (잠언 25장 1-14절)


잠언 25장은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솔로몬의 잠언을 편집하여 하나로 모아 둔 글입니다. 2절 말씀을 봅시다. “(잠 25:2)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 여기서 ‘일을 숨긴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일하시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간의 지혜로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방식으로 역사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다.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여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보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게 됩니다. ‘일을 살핀다’는 것은 비밀을 밝히는 것, 부지런히 연구하여 진실을 찾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여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며, 왕은 그러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부지런히 찾아 하나님의 방법에 맞게 백성들을 인도하는 것이 그에게는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완벽하게 다 이해할 수도 파악할 수도 없겠습니다만, 기도하고 말씀을 연구하는 일에 부지런하고 열심을 내어 하나님의 뜻을 배울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살피고 그 가운데 발견한 진리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영광이 됩니다.
3절을 봅시다. “(잠 25:3) 하늘의 높음과 땅의 깊음 같이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아무리 왕이 크고 높다 해도 위대하신 하나님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비록 왕이 가진 영광이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미약하다고는 하나, 그래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 가지는 지위와 권세는 큽니다. 하늘이 얼마나 높은 지 측량할 수 없고, 땅의 깊이도 다 측량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사람이 왕의 마음 속 깊은 마음과 본심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왕의 마음을 함부로 추측하고 왕의 판결이 있기 전에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또한 왕의 자리에 있는 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겸손하게 살아간다면, 그는 하나님의 지혜와 같이 헤아릴 수 없는 깊이를 가졌다고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게 될 것입니다.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잠 25:4) 은에서 찌끼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 은에 불순물과 찌꺼기가 있으면 가치가 떨어집니다. 그러나 불에 녹여 불순물과 찌꺼기를 제거하면 장인의 손에서 아주 귀한 그릇으로 재탄생할 수 있습니다. 4절은 비유이며 5절에서 그 의미가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찌꺼기를 제거한 은이 귀하게 사용되듯이, 왕의 주변에서 아첨하는 간신들과 자신의 사리 사욕만을 채우려고 하는 악한 신하들을 제거하면, 왕의 위상이 높아지고, 백성들은 왕을 신뢰하게 되고, 왕권이 견고하게 세워질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탐하는 신하들이 어찌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공정하게 사안들을 결정하겠습니까? 이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탐심과 욕망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을 주위에 두면 우리들도 그들을 따라 미련한 길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의와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경건한 자들이 주위에 있으면 우리들도 그들과 함께 지혜로운 길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견고한 왕위를 세우고 싶다면 간신들을 제거해야 하는 것과 같이, 우리가 굳건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죄악을 제거하고, 악인들과의 관계를 끊어내야 합니다.
6-7절을 읽겠습니다. “(잠 25:6)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 하지 말며 대인의 자리에 서지 말라 (잠 25:7) 이는 사람이 너더러 이리로 올라오라 하는 것이 네 눈에 보이는 귀인 앞에서 저리로 내려가라 하는 것보다 나음이니라” 왕은 절대권력의 소유자입니다. 그런 왕 앞에서 자신이 왕보다 더 잘난 것처럼 으스대며 행동하는 신하는 매우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또한 왕 앞에서 자신이 더 높다고 서로 다투는 신하들도 어리석은 사람이겠습니다. 성경은 왕 앞에서 높아지려고 하지 말고, 차라리 왕 앞에서 낮은 자리에 앉으라고 했습니다. 만일 그가 앉은 자리가 낮으면 왕이 그를 더 높은 자리에 앉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왕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가져야 하는 겸손한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은 낮추십니다.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것처럼 사는 사람은 멸시하십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멸시하십니다. 그러나 자신을 낮추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살아가는 자들을 주님은 높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겸손한 태도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인지하며 주님 앞에서 엎드려 살아가는 자가 겸손한 사람입니다.
8절을 봅시다. “(잠 25:8) 너는 급거히 나가서 다투지 말라 마침내 네가 이웃에게 욕을 보게 될 때에 네가 어찌 할 줄을 알지 못할까 두려우니라” 아무리 상대편이 잘못한 경우라도 급한 마음으로 그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똑같은 내용도 온유한 태도를 가지고 부드럽게 전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의 없이 상대방을 비판한다면 상대방에게 미움을 받게 되고 결국에는 뒤에서 욕을 먹게 됩니다. 상대방이 잘못을 했을 때는 먼저 내 자신의 혈기와 분노를 가라 앉히고 차분하게 어떻게 온유한 태도로 이야기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숨을 고르고, 분노의 감정이 사그라질 때까지 가능하면 말을 아끼는 것이 현명합니다. 9절 봅시다. “(잠 25:9)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 여기서 남의 은밀한 일을 누설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인격을 깎아내리는 것, 인신공격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상대방과 다투는 일이 있어도 해서는 안 될 말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선을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말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미움을 사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피해야 할 태도입니다. 상대방과 어쩔 수 없이 다투는 일이 벌어진다고 할지라도 조급하게 분을 내지 말고, 남의 인격을 손상시키는 허물을 들추지 말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10절을 봅시다. “(잠 25:10) 듣는 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또 수욕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우니라” 우리가 이웃에 대해 인신 공격하고 상대방의 비밀을 누설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성품을 깎아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상대방의 비밀을 폭로하고 인신 공격하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신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자기 스스로 살을 깎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때와 장소에 합당한 말을 하는 것, 즉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고, 다툼과 오해를 풀어줄 수 있는 온유한 말을 하는 것은 11절 말씀에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 같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진 은쟁반에 담겨 있는 먹음직한 금사과는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올바르고 때에 합당한 말은 이처럼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유익을 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고, 마음에 기쁨과 용기를 불러 넣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그릇에 보기 좋고 먹음직한 과일을 담아둔 것처럼, 우리 입술에 담긴 말들이 하나님 보실 때에 아름다운 언어가 되게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