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6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좀 더 눕자 (잠언 24장 23-34절)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가 편파적인 판결을 내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자신과 친분이 있거나 이해관계에 얽혀 있다고 해서 범죄한 자의 형벌을 낮추거나 죄를 면제해 주는 것은 부당한 판결입니다. 24절 말씀처럼 악한 사람을 가리켜 아무런 잘못이 없고 저 사람이 옳다고 판결하는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따라서 부정한 방법으로 판결을 내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이와 같이 악인을 옳다 하고 편파적이고 부당하게 사안을 대하는 것은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나와 친한 사람이라고 봐주고, 나와 이해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악행을 눈감아 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비록 불의로 가득 찬 이 세상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공의와 정의가 지켜질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불의에 눈 감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친한 사람과 불편한 관계로 변화하기도 하고, 손해를 봐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악을 악이라 정직하고 판결하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야 하는 모습입니다.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직 그를 견책하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요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불의한 자를 용기 있게 책망하는 자는 하나님께 칭찬을 받습니다. 민수기 25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인들과 음행을 행하며 이방신을 섬기다 그만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때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이스라엘 가운데 전염병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무려 24,000명이 죽었습니다. 이처럼 무서운 기세로 수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슬피 울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바로 그 때 ‘시므리’라는 이름의 남자가 당당히 미디안 여자를 데리고 이스라엘 진영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전염병이 돌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미디안 여인과 음행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차마 시므리를 책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시므리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중 시므온 지파의 지도자로서 백성의 우두머리였기 때문입니다. 시므리가 분명 음행과 우상숭배로 범죄하고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진영에 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나서서 그의 죄를 지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죠. 아무도 나서지 않는 상황 속에서 제사장 비느하스가 창을 들고 장막에 들어가 시므리와 모압 여인을 찔러 죽였습니다. 바로 이 때 이스라엘 진영 사이에 퍼지던 전염병이 그쳤고, 하나님의 진노가 풀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비느하스를 칭찬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비느하스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토록 제사장 직분을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악인을 악하다 판결하는 것, 공의를 이 땅에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 칭찬과 축복을 받습니다. 악한 자의 잘못을 벌이나 훈계로 바로잡는 것은 쉬운 일은 분명 아닙니다. 지독한 악인을 잘못 건들면 불똥이 나에게 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부분 악을 보고도 묵인하거나 못 본 척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악을 보고도 눈을 감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해야 합니다. 죄악은 잘못된 것임을 나타내야 하며, 이 세상이 하나님의 정의대로 흘러가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26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잠 24:26)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 여기서 말하는 ‘적당한’이란 말은 ‘옳다’, ‘바르다’란 뜻입니다. 재판관이 판결을 내릴 때 친분과 이해 관계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옳은 것은 옳은 것이다 말하고,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다 이렇게 바르게 말해주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26절에서 이와 같이 올바른 판결을 내리는 대답은 ‘입맞춤’과 같다고 했는데, 이는 법과 원칙에 따라 정당하게 판결을 내리는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2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잠 24:27)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밭에서 예비하고 그 후에 네 집을 세울지니라” 27절 말씀은 우선순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차로 “네 일을 밖에서 다스려야 합니다.” 이는 일터에서 하는 일을 잘 마무리할 것을 의미합니다. 2차로 “밭에서 예비하라”는 것은 농사일을 성실하게 해서 경제적인 준비를 하라는 뜻입니다. 3차로 “그 후에 네 집을 세울지니라”고 했습니다. 집을 세운다는 것은 결혼하여 가정을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은 청년이 먼저 자신의 일을 잘 감당하고 경제적으로 준비가 된 후에 결혼하라는 말씀입니다. 잠언의 배경이 되는 사회에서는 10대 후반에도 결혼하는 조혼이 성행하던 시대입니다. 또한 이 당시 결혼 풍습을 보면 신랑이 신부 가족에게 결혼 지참금을 주기 위해서 많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채 결혼했다가 어려움을 당한 가정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잠언은 이와 같은 어려움에 당하지 않도록 우선순위를 잘 세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욕심만 앞세우면 화를 당하기 마련입니다. 욕심만 앞서서 아무런 준비 없이 일만 벌리고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자는 결국 수치를 당하고 인생도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목표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철저하게 계획하고 성실하게 일하라고 가르칩니다. 또한 조급한 마음, 자기 분에 넘는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을 감사하고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혜라고 가르칩니다.
30-34절은 게으름에 대한 경고입니다. 하루는 지혜자가 게으른 자의 포도원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포도원을 가꾸지 않아 가시덤불이 덮였고, 잡초가 무성하고, 돌담도 무너졌습니다. 이 포도원의 농부를 만나보지 않더라도 그의 포도원만 보고도 우리는 그가 얼마나 게으른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지혜자는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지 못한 자, 부지런하지 못한 자는 결국 가난해지고, 빈궁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게으른 자에게는 가난이 ‘강도 같이 온다’고 했습니다. 예기치 못한 날에 불행이 찾아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부지런한 삶을 살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버리고 게으르고 빈둥거리는 삶은 하나님께 책망을 받게 됩니다. 땀 흘려 일하고, 정성을 다해 힘쓰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삶에 게으름이란 잡초와 가시덤불을 제거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성실하게 살아감으로써 튼실한 삶의 열매가 가득 넘치는 복된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