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0 재물보다 명예를 (잠언 22장 1-16절)


1절 말씀을 보면,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재물이 주는 편안함과 안락한 삶을 추구하기 보다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좋은 인품과 깊은 인격을 갖추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 중에 하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더 많은 재물을 갖기 위해서 살아가겠으나, 우리들은 날마다 예수님의 훌륭한 인격과 성숙한 인격을 닮아가기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2절 말씀을 보면 “빈부가 섞여 살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느 곳이든지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 공존합니다. 부자가 자신의 부를 자랑하거나 가난한 자를 무시해서도 안 되겠으며, 가난한 자가 부자를 부러워하거나 자신의 가난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해서도 안 됩니다.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부자라고 교만한 마음을 품거나, 가난하단 이유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을 품는 것을 옳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떤 형편에 있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경말씀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은 어떠한 형편에 처해 있든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부족함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이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부자이면 나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가난한 자는 날마다 자신을 도우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3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잠 22:3)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재앙을 보고도 피하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요? 예를 들면 앞에 인도를 향해 달려오는 트럭이 나를 치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도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몸을 날려 피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3절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슬기로운 자는 자신의 탐심을 위해서 약삭빠르게 움직이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동합니다. 슬기로운 자는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좋은 기회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일은 자신에게 결국에는 재앙이란 사실을 깨닫고 그 길을 걸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불법적인 일을 하면서도 그 결과를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슬기로운 자가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신중하게 분별하겠으나, 미련한 자는 하나님의 뜻은 신경 쓰지 않고 경솔하고 무모하게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결국 미련한 자는 무턱대고 살아간 죄악의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5절을 보겠습니다. “(잠 22:5)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 거짓과 속임수로 살아가는 자의 길 앞에는 가시와 함정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는 사악한 방법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는 결국에는 스스로 멸망의 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악의 길을 걸어가는 자는 여러 가지 장애물을 만나 고통을 당하게 되며, 마음에 평안을 빼앗기게 되며, 갑작스럽게 찾아온 멸망으로 삶이 끝나게 될 것입니다. 5절 후반절에 나타나는 ‘영혼을 지키는 자’는 거짓과 속임수를 멀리하는 사람입니다. 바른 믿음과 올곧은 성품을 가지고 의를 행하는 사람으로써 그의 삶이 형통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우리가 의롭고 바른 삶을 살아가기를 권면하며, 그것 만이 우리의 생명을 지키고 형통한 삶을 살아가는 유일한 비결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황금 만능주의에 사로잡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나, 거룩한 삶을 이야기하면 코웃음을 치며 비웃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가 형통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면 조롱 당하는 세상입니다. 돈과 권력만 있으면 그만이며 아무 것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패역한 자는 하나님도, 천국도, 지옥도 믿지 않기 때문에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인생의 목표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고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돈도 권력도 그들을 구원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의미로 8절 말씀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잠 22:8)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 악을 행하며 살아가는 자는 결국 자기 자신이 뿌려 놓은 재앙의 씨앗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8절에 기록된 ‘기세’란 단어는 본래 ‘막대기’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는 말은 “그 분노의 막대기가 부러지리라”는 뜻입니다. 악인들이 무죄한 자들을 해하기 위해서 사용하던 막대기가 부러진다는 것은, 그들이 가진 권력과 힘이 결국 다 부러져버리고 말 것을 가르쳐줍니다. 결국 악인들의 세력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멸망할 것입니다.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잠 22:9)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선한 눈을 가진 자’란, 가난한 자, 연약한 자들을 돌보고 베풀기를 좋아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병들고 가난한 이웃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웃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사랑으로 돌보는 사람은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힘 없고 병들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것을 무척 기뻐하십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이웃에게 베풀고 나누어 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베풀고 나누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웃에게 나눠줄 때 그 상급으로 후히 되어 흔들어 넘치도록 갚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어려운 자들을 돌보는 것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 지 알 수 이는 말씀입니다.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것, 어려운 사람을 보고 고개를 돌리지 않는 것, 상처 입은 자를 치료해 주는 것과 같이 선한 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선행입니다. 이기심과 탐욕에 물든 자는 더 많이 모으고 움켜쥐고 더 많이 쌓아 놓는 데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이웃들을 철저히 외면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받을 벌을 쌓는 것입니다. 지나친 욕심으로 과도하게 재물을 모으는 것은 탐욕의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것들을 나누고 베푸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이웃들과 나누고 베푸는 삶은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재물보다는 명예를 택하라고 했습니다. 더 많은 재물을 얻기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칭찬과 인정받는 영광스러운 삶을 위해 살아가십시오. 오직 그 길만이 영원토록 변함없는 기쁨과 복을 누리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