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6 주와 그리스도 되시는 예수 (사도행전 2장 22-36절)

오순절 강림하신 성령님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제자들은 다른 지역 언어로 말을 했습니다. 동시 다발적으로 수많은 지역의 언어를 통해 하나님의 큰 일이 선포되었습니다. 몇몇의 유대인들은 이 모습을 보고 제자들이 대낮부터 술에 취한 것이라고 조롱했습니다. 이에 사도 베드로는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제자들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대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셨음을 선포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성령에 충만한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죄사함과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큰 일’을 예언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베드로의 설명을 들은 유대인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 때에 모든 육체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이 어째서 지금 이루어진 것일까? 아직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시지 않았는데 어떻게 지금이 마지막 때일 수 있는가?’ 바로 이와 같은 질문을 명확하게 해결하기 위해서 사도 베드로는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심을 선포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22-36절 말씀의 내용입니다.
오늘 배경을 살펴보면, 때마침 예루살렘에는 유대인 3대 절기 중 하나이며, 민족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오순절을 맞이하여 전 세계 흩어져 살던 수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찾아왔습니다. 무리 가운데는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건을 직접 목격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예루살렘 거주자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아직 예수가 누구인지, 예수께서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 모르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무리 가운데 뒤섞여 있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수많은 유대인들이 함께 모인 이 자리를 기회삼아 예수님께서 온 세상의 주인 되시며 그리스도 되심을 선포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예수로 하여금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행하게 하심으로 그가 메시아 되심을 증거하셨다.
2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행 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예루살렘이 속한 유대지역과 사마리아 지역 그리고 갈릴리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예수께서 살아 생전에 행하신 놀라운 기적과 이사에 대해서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일, 문둥병자들을 고치신 일,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신 일, 베데스다 못의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일,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명을 먹이신 일, 열 두 해 동안 혈루증 앓은 여자를 고치신 일, 두 눈먼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일, 귀신 들려 귀가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신 일,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일,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일 일일이 다 나열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기적들입니다. 요한복음 7장 3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모습을 보고 무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요 7:31) 무리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의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무리가 이렇게 말할 정도로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나사렛 예수가 귀신들의 왕의 힘을 빌려 기적을 행한다고 모욕하고 예수가 메시아이심을 부인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큰 권능을 주셨고, 그로 인해 그가 많은 기사와 표적을 베푸심으로 스스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셨다고 선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하는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그가 행하신 일들을 보고서라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4: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과 권능은 하나님의 능력이 그와 함꼐하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또한 동시에 예수께서 행하신 일들은 그가 선포하신 그의 가르침이 참되고 진리임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은 3년 반의 기간 동안 수많은 권능과 기적들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 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2. 예수가 메시아라면, 그는 왜 십자가에 달려 죽었어야 했는가?
만일 사도 베드로의 주장대로 예수가 메시아라면, 그 다음 유대인들의 반박은 자연스럽게 ‘그럼 왜 메시아인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는가?’라는 질문이 될 것입니다. 신명기 말씀에 따르면 나무에 달려 죽은 자는 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예수가 로마의 사형제도인 십자가 형틀에 달려 죽는 모습을 보며, 그는 메시아가 아니라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의문점에 대한 사도 베드로의 대답이 23절입니다. “(행 2:23)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의 죽음이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뜻에 따른 것이며, 그가 타의로 죽은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죽음을 택하셨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비명횡사’, 즉 ‘뜻밖의 사고를 당하여 제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은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른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23절에 등장하는 “법 없는 자들”은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이 당시 로마의 식민지 백성이 된 유대인들에게는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로마 황제로부터 유대 땅의 총독으로 부임 받은 ‘본디오 빌라도’에게만 죄수의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본디오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를 십자가형으로 사형시킬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고,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요청을 들어주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일어난 이 모든 사건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나무로 된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습니다. 왜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죽으셔야만 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범죄한 인간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이야기의 끝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죽으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선포했습니다. 24절 말씀입니다. “(행 2:24)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베드로는 듣는 모든 이가 놀랄만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본래 24절에 기록된 ‘고통’이란 단어는 ‘덫’, ‘함정’을 의미합니다. 사망은 모든 인간이 한 번 빠지면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도록 만들어진 강력한 ‘덫’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망의 덫을 빠져나올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를 사망의 고통, 즉 그 사망의 덫에서 풀어내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습니까? 24절을 보면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를 다시 해석하면 “예수님은 사망의 세력 아래에 매여 있을 수 없는 존재이시며, 사망의 지배를 뛰어넘어 존재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래 이 세상에 처음 사망이 들어온 이유는 에덴동산에서의 아담의 범죄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아담의 후손들은 죄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결코 사망을 피할 수 없는 저주받은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하나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무죄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이유는 바로 인류의 죄를 대신한 죽음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무죄하시기 때문에 사망의 세력 아래 매여 있을 수 없는 존재이십니다. 사망이 그를 잡아 둘 수 없었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하심은 갑작스럽게 임의로 이루어진 사건이나 또는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아닙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해 놓으셨고, 주의 종들을 통해서 말씀해주신 예언의 성취입니다. 이를 증거하기 위해서 사도 베드로는 다윗이 기록한 시편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25-28절 말씀은 시편 16편 8-11절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먼저 2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행 2:25)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여기 25절 말씀에 “다윗이 저를 가리켜”라고 했을 때 “저”는 다윗 스스로를 지칭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오실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다윗의 예언 속 메시아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메시아는 항상 그 앞에 계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가 흔들리지 않도록 언제나 그의 오른편에 함께하고 계십니다. 2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행 2:26)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26절에서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라는 말에 주목하십시오. 이는 메시아의 육체가 죽어 장사 지낸 후에도 그 육체가 죽음으로 인해 부패되거나 소멸되지 않고, 다시 부활할 것이기에 가지고 있는 희망입니다. 메시아는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언제나 함께하고 하시기에 그의 육체를 다시 살리신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더욱 확실하게 보여주는 말씀이 27절입니다. “(행 2: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7절에 나온 ‘음부’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가는 곳을 의미합니다. 우리 나라 말에도 사람이 죽으면 “저 세상으로 떠났다”와 같은 표현을 쓰죠? ‘음부’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머무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27절에서 메시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그 음부에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육체가 무덤에서 썩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베드로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선지자 다윗의 예언 속 나타난 메시아, 분명 죽임을 당했으나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메시아가 바로 나사렛 예수라는 사실을 증거했습니다. 먼저 베드로는 시편 16편에서 다윗이 언급한 메시아가 다윗 본인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이미 죽었고, 그의 무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2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행 2: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전통적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실로암 연못의 남쪽에 있는 무덤을 다윗의 무덤으로 추정합니다. 베드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존경하는 다윗도 결국에는 죽음을 보았고, 그의 육체는 부활하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무덤에 누워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베드로는 다시 한번 시편 16편을 기록한 다윗의 글이 다윗 자신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그의 자손 중 미래에 나타날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베드로는 다윗이 예언한 메시아가 바로 부활하신 예수라고 증거했습니다. 30-32절 말씀입니다. “(행 2: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행 2:31)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행 2: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다윗은 왕인 동시에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의 자손 중 한 사람을 메시아로 세우실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30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미 맹세하셨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가문에서 메시아가 탄생하시는 것과 그 메시아가 죽게 되고 부활하는 것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일을 이루실 것을 친히 맹세해 주신 것입니다. 또한 성령에 충만한 선지자 다윗은 미래에 자신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가 죽임을 당하나 그의 영혼이 음부에 버림 바 되지 아니하고 그의 육체가 썩음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을 보았습니다. 32절은 베드로 설교의 클라이막스입니다. ‘도대체 다윗이 예언한 그 메시아가 누구냐?’ 이 질문에 대해서 베드로는 다윗이 예언한 이 메시아가 바로 자신들의 스승인 예수이심을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베드로는 그와 제자들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목격한 증인들이라고 말했습니다.
33절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이후에,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셨음을 이야기했습니다. 3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행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3절 말씀을 보면 성령을 보내주신 분이 예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고, 친히 성령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제자들에게 보내셨습니다. 특별히 베드로는 제자들이 여러 다른 지역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게 된 사건의 경위에 대해서 유대인들이 조롱하는 것과 같이 대낮부터 술에 취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받으신 성령을 저희에게 부어 주셨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을 밝히 이야기했습니다.
34-3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행 2: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행 2: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베드로는 예수님의 승천을 증거하며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했으나, 메시아 되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고 증거했습니다. 34절 말씀을 보면,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여기 ‘주’가 두 번 등장합니다. 처음 주는 하나님을, 두 번째 주는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다윗의 입장에서 보면 메시아가 육적으로 자신의 후손이지만, 존재로 보면 영원부터 계신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과 동일한 존엄을 나타내기 위해 ‘주’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래서 35절 말씀을 다시 해석하면 성부 하나님께서 승천하신 예수님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굴복시키기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발등상’이란 발을 올려놓는 받침대(footstool)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 꿇게 하셨습니다. 사망도 그를 가둘 수 없었습니다. 원수 사탄도 그 발 아래 굴복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같은 권위와 능력을 가지셨음을 나타냅니다.
베드로 설교의 결말이 36절 말씀입니다. “(행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베르도가 유대인들에게 전해준 긴 설교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박은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사용한 ‘주’라는 말은 ‘주인’이란 뜻으로 예수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인 되심을 뜻합니다. ‘그리스도’란 ‘기름부음 받은 자’란 뜻으로 히브리어 메시아를 헬라어로 번역하면 그리스도가 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신성모독죄를 물어 십자가에 예수를 못 받아 죽게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그 예수를 다시 살리셨으며,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고 선포했습니다. 이를 통해 베드로는 예수가 바로 본질적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며, 이스라엘 백성이 오랜 세월 동안 기다려 온 다윗의 자손 메시아 되심을 선포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베드로가 전한 설교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가 부활하셨고 승천하셨으며, 그 분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예수는 곧 하나님이시며, 그는 만물의 주인 되시며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구세주 그리스도 되십니다. 우리는 예수가 누구인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날마다 예수의 주 되심,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묵상하며 예수를 찬양하고 섬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날마다 예수가 우리의 주 되시며 구원자 곧 그리스도 되심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댓글이 닫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