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30 사도행전 강해 (5) 베드로의 설교 ① 요엘 예언의 성취 (사도행전 2장 14-21절)


오순절 즈음,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약 120명의 제자들 위에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지역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오순절을 맞이하여 전 세계 흩어져 살아가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있었습니다. 이들은 제자들이 각각 자기들의 지역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고 있음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한 지역의 특정 언어가 아니라 여러가지 외국어가 동시다발적으로 들렸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어리둥절했습니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이것이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이에 어떤 사람들은 제자들을 조롱하며 “저 사람들이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술에 취한다고 어찌 사람이 외국어가 술술 나온단 말입니까? 영어를 배운 적도 없고, 미국에 가본 적도 없는 사람이 술에 취한다고 갑자기 영어가 술술 나오겠습니까? 어불성설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죠. 그러나 어떤 유대인들은 이와 같이 성령의 역사를 깎아 내리고 제자들을 조롱했습니다.
이에 제자들 가운데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사도 베드로가 사람들 앞에 서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대인들과 관원들이 잡아갈까 두려워서 문을 꽁꽁 잠그고 지내던 제자들이 이제는 담대하게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들의 심령이 변화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먼저 베드로는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제자들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15절을 봅시다. “(행 2:15) 때가 제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하루는 오늘날로 말하면 새벽 6시에 시작합니다. 따라서 제삼시는 아침 9시 즈음 됩니다. 베드로는 ‘지금이 아침 9시인데 어찌 우리가 이른 아침에 술에 취해 있겠느냐?’하고 반박했습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유월절과 오순절 절기가 되면 아침 10시까지 금식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제자들이 술에 취했다고 조롱하는 유대인들의 말은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어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전 세계의 다양한 언어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행하신 일을 듣게 하신 이 일의 배경이 무엇인지 전해주었습니다. 베드로는 제자들에게 일어난 성령 강림 사건은 곧 구약시대 때 선지자 요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이 성취된 것이라는 것을 밝히 전했습니다. 이 당시 유대인들은 요엘서에 기록된 내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가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은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 성취된 것이라고 말했을 때, 쉽게 이들을 조롱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1. 모든 자들에게 부어 주시는 성령
그렇다면 선지자 요엘이 예언한 말씀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17절 말씀입니다. “(행 2: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본래 유대인들에게 있어 말세란 미래에 오실 메시아가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때를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요엘 선지자가 말한 이 말세는 막연히 먼 미래의 어느 때를 가리키고 있을 뿐 아무도 그 때가 언제인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우리는 말세가 언제인지 알 수 있습니다. 말세는, 예수님의 초림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는 기간입니다. 즉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간도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있기에, 우리들은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께서 강림하신 사건은 마지막 때가 시작되었다는 알려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시작된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한 가지 일을 하시겠다고 친히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주의 영으로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시겠다는 내용입니다. 17절을 보면, 베드로는 요엘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면서도 “하나님이 가라사대”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베드로는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약속의 말씀을 주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의 영을 부어 주시겠다고 친히 악속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모든 육체’란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모든 육체’는 누구를 포함하고 있는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진실한 믿음이 있는 자들입니다. 바로 그와 같은 자들에게 주님은 주의 영을 부어 주십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주의 영을 부어 주시리라는 이 약속을, 이미 오순절에 제자들에게서 일어난 단회적, 일회적 사건으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앞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모든 자들에게 계속해서 일어나게 될 미래형 약속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에 따라 본문으로부터 약 2천년이란 기 세월이 지난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우리들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여기서 ‘내 영을 부어 주다’란 표현을 주목하십시오. ‘부어 주다’란 말은 잠겨 있는 수도꼭지에서 물 한 방울씩 뚝뚝 세는 것처럼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 여름에 맹렬하게 쏟아지는 소나기 아시죠? 장마철 쏟아지는 장대비를 떠올려 보십시오. 마치 폭포수 아래 서 있으면 물이 사정없이 쏟아지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육체에게 주의 영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사용하신 단어가 바로 후자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I will pour out my Spirit on all people.” 장대비가 내릴 때는 30초만 밖에 서 있어도 옷이 다 젖습니다. 그와 같이 주의 영을 풍성하게 부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우리 중에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멈출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한 번 내리기 시작한 비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주의 영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어 주시는 역사는 불가항력적입니다. 우리가 주를 믿을 때 주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모든 이들이 받을 큰 축복입니다.

2. 차별 없이 부어 주시는 성령
본래 구약 시대 때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선지자와 같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하나님의 영이 임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주의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17절을 봅시다. ”(행 2: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여기서 자녀들, 젊은이, 늙은이라는 나이로 구분된 세 집단이 나옵니다. 이 표현은 단순히 자녀들은 예언 담당이고, 젊은이들은 환상 담당이고, 늙은이들은 꿈 담당이란 의미가 아닙니다. 어느 연령이든지 차별 없이 하나님의 영이 임하신다는 표현입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주의 뜻을 계시하실 때 주로 사용하셨던 방법이 바로 ‘예언’, ‘환상’, ‘꿈’이었습니다. 이는 선지자와 같이 오직 소수의 택함 받은 이들에게만 나타나는 초자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말씀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모세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환상을 본 것이 아니라 오직 에스겔, 다니엘과 같은 소수의 인물들만 보았습니다. 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이 주의 영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게 되었고, 또 주의 말씀을 전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이란 본래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또한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동체에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으로 예언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바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라는 사실을 전파하고, 앞으로 미래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자로 오시리라는 사실을 전파합니다.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 곧 미래에 일어날 사건에 대한 예언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공동체에 전하는 예언이 됩니다. 유치원 어린 아이도, 80대 할아버지 할머니도 복음을 전함으로써 예언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전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가 예언자입니다. 성령이 모든 육체에게 임하신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고, 앞으로 온 세상을 심판하러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을 예언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17절에 ‘자녀들’, ‘젊은이’, ‘늙은이’라는 세 그룹이 모두 언급된 것과 같이, 나이와 사회적 지위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복음을 맡아 전파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18절 말씀은 복음이 사회적 신분도 뛰어넘어 역사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18절 말씀도 함께 읽겠습니다. “(행 2:18)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본래 헬라어 성경에는 들어가 있으나, 한글 개역 성경에는 번역하며 빠진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헬라어 ‘게’라는 단어인데, 한글로 해석하면 ‘심지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그래서 18절 말씀을 다시 해석하면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심지어’ 내 남종들과 여종들 위에 부어 주리니 저들이 예언할 것이다” 입니다. 이 ‘심지어’란 단어가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을 보시면 ‘심지어’란 의미를 가진 ‘even’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노예들에게 주의 영이 임한다는 말씀은 당시 성경을 읽는 자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고대사회에서 노예는 사람이 아니라 가축 취급을 받았습니다. 신약시대의 배경이 되는 로마 제국에서는 소나 돼지를 파는 것처럼, 노예를 파는 시장도 있었습니다. 노예는 그 주인의 재산목록에 가축의 하나처럼 기록될 정도였습니다. 노예를 인격적 존재로 보지 않고, 주인을 위해 존재하는 가축처럼 대했던 것입니다. 노예에게는 인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던 시대입니다. 주인은 노예를 마음껏 채찍질할 수 있었고, 지하 감옥에 가두어 굶겨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불로 뜨겁게 대운 인두를 몸에 지지어 노예 표식을 평생토록 가지고 살아가게 했습니다. 노예의 정의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없는 자’입니다. 노예로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비참한 일이었습니다.
노예제도가 폐지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오늘 이 본문이 가지고 이는 충격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미국은 1863년도에 노예 해방이 선언되었으니, 지금으로부터 158년 전 일입니다. 미국에서 노예 제도가 사라진 것이 아직 채 20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남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흑인들을 노예 취급하며 주인들이 총으로 노예를 쏴 죽이고, 심지어 목에 줄을 감아 나무에 매달아 죽이는 일들도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노예를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사회적으로 가득했던 것이죠. 불과 100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2천년 전 아직 ‘인권’이란 말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고대사회에서는 얼마나 노예를 잔인하게 다루었겠습니까?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조선시대 때 이미 양반과 천민이 나눠진 상태였습니다. 또한 천민 중에도 가장 천대를 받는 7계층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고기를 잡는 일을 하는 ‘백정’이었습니다. 백정들이 얼마나 무시를 당했는지 인구 조사에서 제외되었고, 거주 지역도 제한해버렸습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 양반들이 ‘백정’이 함께 나란히 앉아 예배드릴 수 없다고 분노하며 아예 양반만을 위한 교회를 새롭게 세운 사건도 실제로 있었습니다.]
노예를 가축처럼 여기던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심지어 남종들과 여종들 위에도 주의 영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천한 가축 같은 노예들에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 임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초대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초대 기독교 인구 가운데는 노예 출신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노예들이 성령을 받아 부활하신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갔습니다. 사회에서 가장 천하고 낮은 계층이라 여겨지던 노예들도 성령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나 같은 사람에게는 성령이 오시지 않겠지?”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 같이 몸이 아프고 육체가 병든 자에게 성령이 오지 않으시겠지…”, “나 같이 가난한 자에게는 성령이 오지 않으시겠지…”, “나 같이 학식이 부족하고 배움이 짧은 자에게는 성령이 오지 않으시겠지…”하고 성령께서 자신과 같은 자에게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주의 영을 심지어 남종과 여종들에게도 부어 주어 저들로 예언을 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 충만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임하십니다. 저를 한 번 따라해 주시겠습니까? “성령은 심지어 나 같은 자에게도 임하신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선물인 성령을 이미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영은 연령이나 신분 등 사회적 장벽과 인간적인 모든 요소를 뛰어넘어 찾아오십니다. 가난해도, 병이 들어도, 소유가 적어도, 배움이 짧아도, 나이가 어려도 상관없습니다. 주의 영이 역사하는 일에 인간적인 요소는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진실하게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 주십니다.

3. 마지막 날 일어나게 될 일들
19-20절 말씀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행 2: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사도 베드로가 인용한 요엘서 2장 30절을 보면, 19절 말씀과 같이 ‘위로’, ‘아래로’란 말이 없습니다. 베드로가 첨가한 표현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심판이 전 우주적으로 일어날 것임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마지막 심판 때에 일어나게 될 징조인 ‘피, 불, 연기’는 무엇일까요? 종말의 시작을 알리는 이 세가지 표적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성경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피’, ‘불’, ‘연기’가 종말에 일어날 커다란 전쟁을 상징한다고 해석합니다.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이 세가지가 공통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피, 불, 연기를 전쟁으로 말미암은 재앙과 화를 의미한다고 해석합니다. 반면 어떤 성경학자들은 피를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 불을 성령의 역사, 연기를 하나님의 임재로 해석합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피, 불, 연기를 종말에 나타날 또 다른 초자연적인 현상일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20절에는 종말에 일어날 또 다른 사건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행 2: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의 날, 즉 심판의 날입니다. 그 날이 이르기 전 해는 장례식 때 입는 상복과 같이 검게 변해버릴 것이고, 달은 피로 물든 것과 같이 붉은 달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오시는 그 날에 초자연적이고 우주적인 대격변이 일어나게 될 것이란 것은 예수님께서도 직접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마 24: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마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마 24:31)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우리는 사실 어떤 사건들을 통해 해가 검게 어두워지게 될 것인지, 달이 그 빛을 어떻게 잃어버리게 될 지, 별들이 어떤 사건을 통해 하늘에서 떨어지게 될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오직 하나, 이러한 초자연적이고 전우주적인 사건이 주님 오시는 종말의 때가 임박하게 될 때 약속하신 대로 일어나게 될 것이란 것 뿐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천재지변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하는 것에 포커스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종말에 일어나게 될 이와 같은 대격변의 심판 속에서도 예수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구원해 주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행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여기서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마치 ‘열려라 참깨’처럼 예수님의 이름을 주문 같이 외우는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통한 죄사함을 믿으며, 그로 인해 예수를 전인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영접하여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들은 마지막 날에 반드시 구원을 얻으리라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살아가는 우리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을 통한 죄사함과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 심판자로 다시 오심을 예언하며 살아가야 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날마다 성령 충만하여 부활하신 예수, 다시 오실 예수의 증인들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