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1 성실한 지혜 (잠언 10장 18-32절)

오늘날 직장을 찾고 있는 사람이 회사에 취직하는 과정을 크게 두 가지 단계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자기소개와 이력서와 같은 서류를 접수하는 것입니다. 채용을 담당하는 인사 담당자이 일차적으로 서류를 통해 회사가 찾는 인재가 맞는지 판단합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와 같은 문서들을 통해 사람을 어느 정도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서류만 보고 사람에 대해서 판단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단계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지원자와 회사 관계자와 직접 만나 대면하는 인터뷰 과정이 있습니다. 인사 담당자들은 인터뷰를 통해 심도 있게 지원자가 어떤 사람인지 분석합니다. 구직인들 중에는 첫 번째 서류 심사에는 높은 점수로 통과하지만, 최종단계인 인터뷰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오늘날 두 번째 단계인 대면 인터뷰에서 회사마다 보는 관점이 다 다릅니다. 한 회사는 지원자가 얼마나 창의적인가를 보고, 한 회사는 지원자가 기존의 사람들과 마찰 없이 잘 지낼 수 있을지를 보고, 한 회사는 지원자가 회사에 얼마만큼 열심으로 헌신할 수 있는지를 주로 봅니다. 이는 회사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집니다. 자, 그러나 어느 회사이든지, 어느 인사 담당자이든지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할 때 사용하는 척도가 있습니다. 이미 천년 전 중국 당나라 시절 과거제도 때부터 사용되었던 사람을 고르는 기준을 우리는 ‘신언서판’이라고 합니다. ‘신’은 외모로서 몸 가짐을 의미합니다. 그 사람의 신체의 풍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합니다. 머리는 단정하게 잘랐는지, 손톱은 가지런히 정리가 잘 되어 있는지, 옷은 깔끔하고 단정하게 입었는지 등 신체에서 풍기는 모습을 통해서 사람을 판단합니다. 신언서판의 두 번째 ‘언’은 언변입니다. 이치에 맞는 말을 하는지, 자신의 사고와 감정을 올바로 표현할 수 있는 말솜씨를 이야기합니다. 세 번째는 서로 글씨를 뜻합니다. 요즘 같은 컴퓨터 세대에서는 글씨를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쓴 글을 통해 논리적 사고력과 성품과 인격을 판단합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판’입니다. 사안과 사물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인사 담당자들은 지원자들에게 일부로 선택이 힘들고 곤란한 상황을 가정하여 질문하고, 지원자가 어떻게 그 힘든 상황을 판단하고 스스로 풀어 나가는지 살펴봅니다. 위기상황 속 판단력을 통해서 사람의 됨됨이를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것이죠. 이처럼 한 사람의 ‘몸가짐’, ‘언어생활’, ‘글’, ‘판단력’을 통해 보이지 않는 내면의 인격과 성품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분명 성품과 인격의 측면에서도 성숙함이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생활하고, 똑같은 모습으로 말하고, 똑같은 가치를 나타내는 글을 쓰고, 똑같은 판단을 내린다면 세상 속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 중 오늘은 그리스도인의 언어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 1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잠 10:18) 미워함을 감추는 자는 거짓의 입술을 가진 자요 참소하는 자는 미련한 자니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호감이 가는 사람도 있고, 미워하는 사람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속으로 미워하는 사람들을 만났다고 해서 밖으로 얼굴 표정을 찡그리며,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표시하며 욕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음 속으로 싫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애써 그 앞에서 미소를 보이며, 상냥하게 대하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미덕입니다. 이는 믿지 않는 사람들도 다 아는 바입니다. 물론 이처럼 미워하는 사람에게 따뜻하게 말을 건내며, 미움이란 감정을 추스르고 제어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도 성숙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여기서 한 차원 더 높은 삶을 요구합니다. 바로 우리 마음 속 상대방을 미워하는 마음까지도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겉으로만 상대방에게 부드럽고 친절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서도 상대방을 사랑하기를 힘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만일 마음 속에는 상대방을 한 대 때려주고 싶고, 심지어 죽이고 싶은 독이 묻은 날선 칼 같은 미움을 감추고 겉으로만 미소를 띠며 상냥하고 따뜻하게 있다면 18절 말씀처럼 그 사람은 ‘거짓된 입술을 가진 자’가 됩니다. 진실한 사람이 아니라, 겉과 속이 다른 거짓된 사람이 되는 것이죠. 진리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진실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독기 가득한 미움을 품은 채 사람들에게 겉으로만 상냥하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이는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하는 바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차원을 뛰어넘어 우리 마음이 말과 일치되도록 거짓된 입술을 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어리석은 자의 언어생활 중 가장 큰 특징은 ‘거짓말’입니다. 속에는 미움이 가득하지만 겉으로는 하나도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에게 상냥한 말을 건내는 것은 하나님 보실 때 가식이고 가증스러운 것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과 말이 일치되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만일 지금 이 말씀을 듣고, ‘그럼 나는 앞으로 겉과 속을 일치하기 위해서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를 향한 분노와 미움을 말로 표현하겠다.’하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인 셈입니다. 18절 하반절을 봅시다. “중상하는 자는 미련한 자이니라” 미워하는 사람에 대해서 비난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특히 여기서 ‘중상’이란 단어는 상대방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안 좋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들도 함께 미워할 수 있도록 그 사람의 평판을 떨어트리는 말을 옮기고, 그의 수치와 실수를 말로 옮기는 자는 하나님 보실 때 미련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상대방의 약함과 악함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그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로 전달하는 모습을 하나님은 매우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오히려 우리 속에 있는 미움이란 감정을 제거하기를 원하십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사람의 감정이란 것이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컨트롤 하거나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굳은 의지를 가지고 ‘앞으로 저 사람을 미워하지 말야아지. 저 사람을 사랑해야지’하고 결심을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사람 마음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 것에 그 특징이 있습니다. 사랑장이라고 불리는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사랑의 특징에 대해서 제일 처음으로 언급하는 것이 “사랑은 오래 참고”입니다. 또한 사랑에 대해서 제일 마지막으로 언급하는 것은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입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입니다. 이스라엘을 사랑하신 하나님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배신하고, 배신하고, 또 배신해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키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랑,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은 거짓입니다. 마음의 생각과 말이 다른 것은 거짓된 입술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음과 언어가 일치하도록 우리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겉으로 나오는 부드러운 말과 마음이 일치하도록 상대방을 향한 미움이 사라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의 언어생활 중 또 다른 특징은 다른 사람 뒤에서 험담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과 혀에서 비롯된 말은 수술실에서 의사 손에 들린 칼처럼 살리는 칼이 될 수도 있고, 강도 손에 들린 칼처럼 사람을 죽이는 칼이 될 수도 있습니다. 18절 말씀에서 보았듯이 참소하는 자, 즉 다른 사람에 대해서 뒤에서 비난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미련한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 나라 속담에 ‘누어서 침 뱉기’란 말이 있죠? 다른 사람에 대해서 험담을 하고, 타인을 말로 모욕하고 조롱하는 행위는 곧 자신을 모욕하고 조롱하는 것과 같습니다.
19절 말씀을 이어서 읽겠습니다. “(잠 10: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19절을 보면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렵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말이 많다’는 것은 단순히 언어의 양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하루 종일 말로 가르치는 일을 하는 선생님들이 가장 허물이 많을 것입니다. 19절에서 이야기하는 ‘말이 많다’는 것은 자신의 언어를 통제하지 않고 무절제하게 말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상처 되는 말, 아픈 말, 눈물 나게 하는 말, 화나는 말도 분별없이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경솔한 언어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허물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쉽게 화나게 하기도 하고, 공동체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도 합니다. 이런 분들의 특징은 남의 말도 잘 귀담아듣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언어는 그 사람의 성품과 인격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입술과 혀를 통제하지 않고 무절제하게 말합니다. 어리석은 자의 입술은 독을 품은 뱀과 같고, 미련한 자의 혀는 전갈과 같아서 같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래서 언어생활을 제어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 옆에 있으면 그의 어리석은 말로 인해 발생한 분쟁과 다툼이 끊이질 않습니다. 거짓말을 하며, 분별없고, 절제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의 언어는 진실하고, 분별력 있고, 격려와 위로를 주기에 지혜로운 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2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잠 10:20) 의인의 혀는 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불순물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은은 그 가치가 매우 귀합니다. 마찬가지로 그 입에 더러운 것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은 진실한 말은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잠언은 타인에게 유익을 주는 의인의 말은 그 값어치가 순도 100%의 은과 같이 가치가 크고 유익하다고 말했습니다. 거짓이 만연한 세상에서 진실된 말을 하는 사람을 찾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진실한 입술과 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큰 축복입니다. 지혜로운 자의 혀는 우리가 옳은 길로 가도록 도와줍니다. 우리 마음에 기쁨을 주고 힘들고 어려울 때는 위로와 평강을 더하여 줍니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것들이 지혜로운 자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죠.
반대로 20절 말씀에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고 했습니다. 본래 ‘가치가 적다’는 말은 ‘오물 같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쓰레기와 오물은 우리의 미간을 찌푸려지게 하고, 불쾌하고, 혐오스럽습니다. 가까이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물은 밖에 갔다가 버려야 할 정도로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오히려 가까이 두면 나만 더러워지고, 불쾌해지고, 피해만 봅니다. 잠언은 거짓을 말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 험담을 하는 사람들은 오물과 같다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자들은 그 마음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며, 사람들을 의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악인은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는 분별력이 없기에 다른 이들을 가르치지 못하고 자기 자신조차도 구원하지 못하고 파멸의 길에 이르게 됩니다.
이어서 솔로몬은 지혜로운 자의 입과 어리석은 자의 입을 비교하며, 그들의 언어생활이 각각 어떤 결실을 맺고,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 보여줍니다. 31-32절 말씀입니다. “(잠 10:31) 의인의 입은 지혜를 내어도 패역한 혀는 베임을 당할 것이니라 (잠 10:32) 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알거늘 악인의 입은 패역을 말하느니라”’ 의인의 입술은 지혜를 내어 하나님과 사람들 모두에게 기쁨을 줍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악인의 입술은 거짓과 속임수만 내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31절을 보면 사악한 자의 혀가 잘려 나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거짓을 말하며, 다른 이들을 험담하는 이들에게 임할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언어로 상대방을 폭행을 행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 뻔뻔스러운 사람들, 고집스러운 사람들, 자기중심적이고 독선적인 사람들… 하나님은 그들의 오만과 독선을 심판하시고 결국 혀를 잘라 버리십니다. 지혜로운 입술과 혀를 가진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언제나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의 입은 언제나 거짓과 속임수, 그리고 이웃에 대한 험담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입술과 혀를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가 타인과 만나 대화를 나눌 때 주된 주제가 무엇입니까? 그 자리에 없는 제3자를 흉보는 어리석은 혀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습니까? 마음에도 없는 거짓을 말하는 미련한 자는 아니었습니까? 만일 어떤 사람하고 만나면 계속 다른 누군가를 험담하고 불쾌한 대화가 이어진다면 그 사람은 어리석은 자임을 주의하십시오. 그런 사람하고 하는 대화는 아무런 유익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품어주는 대화, 겸손함 가운데 상대방 격려와 위로가 넘치고 감싸주는 따뜻한 언어…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들에게서 듣고 싶어 하시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한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의 진실함’, ‘언어의 절제 여부’가 곧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됩니다. 한 마디 말이 평생토록 한 사람의 가슴에 향기로운 한송이 꽃과 같이 남아 그에게 격려가 되고 위로를 주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한 마디 말이 평생토록 한 사람의 가슴에 꽂힌 비수가 되어 그를 괴롭게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 입술과 혀를 통해 나오는 따뜻하고 인자한 말을 통해서도 상대방을 섬길 수 있습니다. 말 한 마디가 천냥 빚만 갚아 주는 것이 아니라,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말 한 마디가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입술과 혀를 지혜롭게 사용하여 말로 사람을 세우고, 말로 사람을 살리고, 말로 사람을 섬기는 저와 여러분의 복된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댓글이 닫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