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4 순결한 지혜 (잠언 6장 20-35절)


전쟁에 나가는 군인에게 총은 필수품입니다. 군인이 적군과 싸우기 위해서 전쟁터에 출전하는데, 총을 두고 간다는 것은 ‘죽으러 간다’는 말과 똑같습니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병사가 손에 총도 없이 싸우거나 적군을 무찌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들입니다. 우리의 적은 사탄이요, 마귀입니다. 사탄의 무기는 ‘거짓’과 ‘속임수’입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사탄은 거짓말로 사람들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만들고 있습니다. 인류의 첫 번째 범죄는 사탄의 거짓말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날 뱀이 에덴동산에서 살고 있는 하와를 찾아와 물어봅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동산 안의 어떤 나무의 열매도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그러자 하와가 대답합니다. “우리는 동산 안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어.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마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죽을지도 모른다’라고 말씀하셨어.” 이 때 뱀이 거짓과 속임수로 하와를 유혹합니다. “너희는 죽지 않아.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고 너희 눈이 밝아지면, 선과 악을 알게 되어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될까 봐 그렇게 말씀하신 거야.” 뱀은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오해하게 만들었습니다. 뱀은 하나님을 마치 좋은 것은 혼자 먹고 ‘아담’과 ‘하와’하고는 나누지 않는 욕심쟁이처럼 묘사했습니다. 또한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악과를 먹지 않는 것보다, 오히려 금지된 선악과를 먹는 것이 그녀에게 더 큰 행복과 만족을 가져줄 것이라고 유혹했습니다. 거짓과 속임수가 하와의 마음에 들어가자, 선악과가 다르게 보였습니다. 열매가 너무나도 먹음직스러워 보였고, 아름다웠습니다. 게다가 뱀의 말처럼 이 열매를 먹기만 하면 하나님처럼 지혜롭게 해줄 것처럼 탐스러워 보였습니다. 결국 유혹을 참지 못한 하와는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는 그 열매를 자기 옆에 있는 남편에게도 주어, 아담도 그 열매를 함께 먹었습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뱀의 달콤한 유혹과 교묘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불순종하고 죄악을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범죄 사건입니다. 사탄은 인간을 유혹하는데 성공했고, 그들이 죄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사탄은 그때에도 거짓과 속임수를 쎴고, 지금 이 시대에도 거짓과 속임수로 사람들이 죄를 짓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고 있는 것처럼, 사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다 사탄의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무기 없이 사탄과 싸우면 반드시 패배합니다. 맨 손으로 싸우면 아담과 하와처럼 우리들도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게 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의 원수 거짓의 아버지인 사탄을 이길 수 있는 무기는 무엇일까요? 거짓말을 대항하는 무기가 바로 ‘진리’ 아니겠습니까? 사탄의 거짓과 속임수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고, 사탄을 무찌를 수 있는 공격무기가 바로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이 반드시 총을 들고 참전하듯이, 영적 전쟁터인 이 세상을 살아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들인 우리들도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야 합니다. 솔로몬은 우리 목숨이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는 것과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간직하며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솔로몬은 우리가 말씀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곧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지도가 되어 인도해줍니다. 말씀이 우리의 보호막과 방패가 되어 세상과 죄악으로부터 보호해줍니다. 이처럼 말씀은 우리 삶의 인도자, 보호자가 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말씀은 우리를 가르치는 교사요,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위로자요, 상담가입니다.
23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등불’이고, ‘빛’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컴컴한 밤, 끝을 길을 걸어가야 한다면 반드시 손전등을 들고 갈 것입니다. 빛이 없으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게 되고, 앞에 벽에 부딪치고, 평평한 땅인지 높은 땅인지 알 수 없어 발을 헛디디어 넘어져 크게 다치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영적으로 암흑 시대입니다. 따라서 환하게 빛나는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제대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인생의 방향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멀리하는 자는 결국 지혜에서 떠나 삶이 혼란스러워지고, 달콤한 세상 유혹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우리 마음에 언제나 말씀을 새겨두고, 말씀을 목에 걸고 다니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전쟁터에서는 총이 없는 군사가 제일 먼저 죽게 되듯이, 영적 전쟁터에서도 말씀의 검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은 쉽게 쓰러지고 죄악의 길에 또 다시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말씀을 가까이하며 지키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울타리’가 되어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탄이 그를 쉽게 쓰러트리지 못합니다. 날마다 치열하게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찌 음행의 유혹에 넘어가겠습니까? 유혹 앞에서 자신을 과신하는 자는 반드시 넘어집니다. 그러나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갈 때 세상의 욕심을 끊어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은 그대로 두면 진공상태로 있지 않습니다. 공기가 우리 눈에는 비어 있는 것 같아도 78%의 질소와 21%의 산소와 1%의 기타 다른 기체들로 꽉 차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꽉 차 있습니다. 비어 있는 공간이 없습니다. 사람의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절대로 진공상태로 있지 않습니다. 사람의 영혼은 항상 무언가의 지배를 받고 살아갑니다. 말씀을 지배를 받고 살아가든지 아니면 욕망의 지배를 받고 살아갑니다. 우리들은 무엇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고 있는 지배력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아니면 세상에 대한 욕구입니까? 육체의 정욕, 소유하고자 하는 탐욕, 남보다 더 뛰어나고자 하는 성취욕, 다른 사람 위에 서려고 하는 권력욕 등 우리 안에 있는 지배력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에 있는 죄악의 본성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인간 스스로 그것이 죄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오히려 더 많습니다. 심지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연약한 죄인이기에 죄의 욕구에 지배당하며 살아가면서도, 그것이 죄인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선과 악을 가르쳐줍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 지 구별할 수 있는 지혜와 분별력을 길러줍니다. 솔로몬은 이와 같은 지혜를 가진 자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할 때, 이 말씀의 저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친히 보호해 주십니다.
솔로몬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육신의 정욕 특별히 음행의 유혹에 빠진 자의 최후를 보여줍니다. 그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재물을 다 음녀에게 탕진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26절 말씀을 보면,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된다고 했습니다. 떡 하나 남았다는 말은 이거 하나 남겨두고 그가 가지고 있던 다른 것은 다 빼앗겼다는 말입니다. 죄악을 벗삼아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망하게 하십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26절 후반절을 보면 자신의 귀한 생명까지 음녀에게 사냥당합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을 저지른 자는 이처럼 자신의 하나뿐인 생명마저 빼앗기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처럼 솔로몬은 음행과 간음을 저지른 자가 치뤄야 하는 심각한 대가를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에게 그 길을 가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버리고 육체의 정욕대로 살아가는 자를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심판하십니다.
솔로몬은 음행을 하는 자는 불을 품은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뜨거운 커피를 몸에 쏟았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우리 몸은 화상을 입으면 약으로도 잘 낫지 않습니다. 화상의 정도가 심하면 평생 남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음행을 하는 자는 불을 아예 껴안고 있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가 당할 고통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음녀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찰나의 쾌락을 선택한 대가는 곧 극심한 고통과 죽음입니다. 사람이 맨발로 뜨거운 숯불을 밟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역시 두 발이 불에 녹아버리거나 온 몸이 불타 죽게 될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이와 같이 생생한 비유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를 넘어가버리는 성적 비행과 죄악은 그 죄를 지은 사람에게 수치와 가난 그리고 삶의 파괴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가 쓴 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 그는 누나의 남편이 죽은 후 남겨 진 일곱 명의 조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되자 일자리가 사라지게 되었고, 결국 그와 그의 조카들은 굶주리게 되었습니다. 이에 장발장은 사랑하는 조카들을 먹이기 위해서 빵을 훔치다가 그만 잡혀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도둑질이 나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빵을 훔쳐야만 했던 장발장의 마음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됩니다. 우리 나라 속담에도 “사흘 굶어서 남의 담 안 넘는 사람 없다” 하지 않습니까? 그는 굶어가는 어린 조카들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사람이 먹을 것이 없어서, 빵을 훔쳤다 하면 이처럼 동정심이라도 받을 수는 있을지 모릅니다. 게다가 물건을 훔친 경우, 배상이 가능합니다. 또 용서해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음녀와 음행을 저지른 대가는 이와 다르게 매우 혹독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절대로 이들에 대해 동정하지 않고 그들을 욕할 것입니다. 행음한 자의 인격은 산산조각나 버립니다. 그의 영혼은 끝을 모르고 추락하게 됩니다. 그는 상처와 수치를 싸매고 평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음행으로 인해 피해를 본 가족들의 용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분노가 평생토록 화살처럼 따라다니게 됩니다.
이처럼 솔로몬은 육체의 정욕 하나를 채우기 위해서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왜 음녀를 따라가는 자가 어리석은 자인지 깨닫게 해줍니다. 육체의 정욕을 위해 죄를 지으면 당사자의 영혼만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영혼도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예를 들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목회자의 성적 범죄들을 보십시오. 수많은 가정들이 상처를 입게 되고, 수많은 영혼들이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한 사람이 간음의 죄를 저지르게 되면 그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사람들과 다시 회복할 수 없고, 해결할 수 없고, 없던 일로 돌이킬 수 없는 죄가 음행의 죄입니다. 솔로몬은 우리의 육체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 죄악을 따라가면 결국 맞이하게 될 비참한 최후를 기억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아가면 파멸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면 참된 만족과 기쁨이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그 무엇이 여러분 삶의 주인입니까?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이 우리들의 주인이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