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9 사도행전 강해 (2) 예수의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1장 6-8절)

1. 예수님이 가르치신 핵심 메시지: 하나님 나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시며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 나라로 시작했고, 하나님 나라로 끝마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 사역의 핵심 메시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들어가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이 땅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있습니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와 주인으로 섬기며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아래서 살아가게 될 때 그의 삶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꿈이고 비전입니다. 코너스톤 교회가 예수님이 이루고자 하신,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 지난 3년 동안 12명의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집중적으로 양육하셨습니다. 12명의 제자들과 동고동락하며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그 중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죽었습니다. 11명의 제자들이 남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들 가운데 예수님께서 세우고자 하신 하나님 나라를 이해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예수님께서 집중적으로 가르치신 것이 하나님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제자들 중 하나님 나라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줍니다. 신앙생활을 수십 년 동안 하면서도 제자들과 같이 이미 이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했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가르치신 핵심 메시지가 십자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예수님의 궁극적 목적을 이루고자 사용하신 방법이며 도구일 뿐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핵심메시지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핵심 메시지는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복음서의 시작도 하나님 나라였고, 복음서의 끝도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사도행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행전의 시작도 하나님 나라이고, 사도행전의 끝도 하나님 나라입니다. 먼저 사도행전의 시작에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를 봅시다. “(행 1:3)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이처럼 사도행전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는 모습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가르치신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번에는 사도행전 끝에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를 봅시다. “(행 28:31)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사도행전 28장 31절은 사도행전 마지막장 마지막절입니다. 사도행전의 마지막은 예수의 제자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이 재차 강조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2. 제자들이 오해한 하나님 나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음부터 ‘하나님 나라’를 올바르게 이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예수의 복음’과 연관 짓지 못했습니다. 이 때까지만해도 제자들이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는 정치적, 군사적으로 강대국이 된 이스라엘 나라였습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고 살아왔던 것과 유사합니다. 일본이 한국에 조선총독부를 세우고 일본인 총독을 파견해서 한국을 지배했던 것과 같이 로마 제국도 팔레스틴 땅에 총독을 파견하여 이스라엘 지역을 지배했습니다. 로마는 팔레스틴 주민들에게 높은 세금을 요구했고, 로마의 신들을 섬길 것을 강요했으며, 로마 병사들은 선량한 사람들의 재산을 훔치고, 폭행하고 심지어 억울한 누명을 씌어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로마 제국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손 중에 메시아를 보내사 자신들을 로마 제국의 압제로부터 구원하시고 이전 다윗 왕의 시대처럼 이스라엘에 다시 한번 황금 전성기를 주실 것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께서 바로 이 역할을 하시리라 기대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엄청난 군사력을 동원하여 로마 제국을 무찌르고 세계를 정복하여 지구 상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지난 3년간 제자들이 서로 다투고 싸운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의 나라를 세우실 때 12명 중 누가 더 높은 관직에 오를 것인가?’하는 자리 다툼 때문에 싸웠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 중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직접 와서 자기 아들들에게 좋은 자리를 달라고 청탁까지 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결정적인 이유는 유다 자신이 꿈꾸던 로마 제국 정복에 대해서 예수님이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자신이 기대하던 메시아가 아니란 사실을 깨달은 유다는 실망하여 예수를 떠나 그를 은 30냥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팔았고 그의 스승을 배신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제자들은 그들의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오늘 본문에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여전히 하나님 나라를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단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를 로마 제국으로부터 이스라엘의 민족적 독립과 정치적 자주권을 회복하시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을 보면서, 이제 그 어떤 로마 군대도 예수님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며 더욱 흥분하여 이스라엘의 정치적 군사적 회복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에는 예수님께서 지금 당장이라도 로마 제국을 뒤엎으시고 이스라엘을 세계 정상에 세우실 것이란 기대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제자들은 예수님께 다음과 같이 여쭤 보았습니다. 6절 말씀입니다. “(행 1: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주님, 주님께서 로마 제국으로부터 이스라엘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을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로 착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독립시키고 해방시킬 날이 지금인지 예수님께 물어본 것입니다. 사자성어 중에 ‘동상이몽’이란 말이 있죠? 같은 침상에서 잠을 자도 꿈은 달리 꾼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3년 반 동안 함께 지냈으나, 말 그대로 예수님과 제자들은 동상이몽이었습니다. 전혀 다른 꿈을 바라보고 지내왔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확장하기를 원하셨고, 제자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로마 제국으로부터 독립되고 해방되어 강대국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생각한 하나님 나라는 팔레스틴 지역에 국한되어 있는 나라였고, 이스라엘 민족으로 제한되어 있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는 민족적, 지역적, 혈통적 한계를 뛰어넘은 전세계적 하나님 나라입니다.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살아가면 참여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백부장 고넬료와 같은 이방인도, 디모데와 같은 혼혈아도, 오네시모와 같은 노예도, 바울과 같이 과거에 교회를 핍박했던 죄인도,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든 사람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차별이 없이 열려 있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꿈꾸던 제자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이스라엘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제는 혈통적 아브라함의 자손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가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새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들도 예수님과 전혀 다른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방향이 다른 것은 아닌지 한 번 마음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예수님 믿고 있습니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까? 혹시 잘못된 것들을 신앙의 목표로 삼고 이 자리에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 믿는 이유가 건강하게 오래 살고, 돈 많이 벌고 가정이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것들이 결코 신앙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오늘 우리가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 하는 목적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다르다면 우리들도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완전히 번지수를 잘못 짚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을 잘못 짚어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죠. 동상이몽의 또 다른 뜻은, ‘겉으로는 같이 행동하면서 속으로는 각기 딴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교회 나와서 예배 드리고 있다고 다 같은 예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하여 진심으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확장되는 것을 소망하는 마음으로 예배 드리는 분들이 계신가 하면, 다른 분들은 세상적인 욕망과 내 안의 탐심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하나님을 이용하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사,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살아가는 주의 백성으로 살아감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막 교회 나온 신앙의 초보 수준에서야 잘 살고 복 받기 위해서 예수 믿는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말씀을 제대로 배울수록 그것이 올바른 대답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다시 봅시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고백은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죽으시고 지금도 내 안에 계시며, 나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삶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요즘 우리가 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어떤 일에 우리 마음과 시간을 쏟고 있습니까? 그것이 하나님 나라와 관련되어 있습니까? 겉으로는 다른 이들과 같이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속으로는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기의 잇속만 챙기려고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그러한 개인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욕망과 탐심을 채워주지 않는 하나님을 향해 결국 원망과 불평을 하며 시험에 빠질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같은 꿈을 꾸고 있습니까? 예수님과 전혀 다른 꿈을 꾸는 동상이몽의 그리스도인들 되시지 마십시오. 예수님과 함께하고 있다면, 이제 구주 예수께서 가지신 꿈, 즉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꿈을 꾸며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3. 하나님만 아시는 때와 기한
하나님 나라를 오해했던 제자들의 잘못된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봅시다. 7절입니다. “(행 1:7)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본문에서 사용된 ‘때’란 종말까지 이어질 말세를 가리킵니다. ‘기한’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 임할 세상의 끝, 이 세상의 마지막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7절에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풀이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말세가 얼마나 지속될지, 마지막 심판이 언제 시작될지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알고 계신다. 그것은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다. 너희의 알 바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마지막 날 하나님 나라는 완성됩니다. 그러나 그 날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릅니다. 마가복음 13장 32-3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막 13: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막 13: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 이곳에서 시작되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 나라는 완전히 임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재림하시는 날, 즉 이 세상의 마지막 때에 하나님 나라는 완전한 모습으로 임하게 됩니다. 그 때가 언제인지는 오직 성부 하나님만이 알고 계십니다. ‘종말의 때가 언제인가?’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종말의 때를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분명한 것은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 끝에 완전히 임하실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며 그 날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살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 성령이 임하시면 일어나는 두 가지 현상: ‘권능’과 ‘증인의 삶’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예수님은 우리가 성령을 받고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8절을 읽겠습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8절은 사도행전의 핵심구절이자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모든 주의 백성들에게 남기신 예수님의 최종 명령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유언처럼 남기시고 하나님 우편으로 떠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기에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면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로 권능을 받습니다. 둘째로 부활하신 예수의 증인이 됩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성령을 통하여 받은 권능은 그들로 하여금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게 하고, 병자를 치유하고, 귀신을 제어하며, 원수들을 대적할 수 있게 하는 등 하나님 나라 확장에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었습니다. 이 땅 위에 남겨진 제자들이 해야 할 사명은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8절 말씀은 제자들에게 매우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예수님과 제자들의 사역은 대부분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이따금씩 예수님을 따라 이방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가서 틈틈이 사역을 하기는 했습니다만, 예수님과 제자들의 사역의 주 대상은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습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 훈련 보내실 때면 항상 이방인의 도시로 보내지 않으시고, 이스라엘 민족들에게로 보내셨습니다. “(마 10:5)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마 10:6)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이처럼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사역을 이스라엘 민족으로 제한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복음 전파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명령하시면서, 그 대상을 예루살렘이나 유대 지역에 제한시키지 말고 땅 끝까지 이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마리아 사람들하고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왕래하지 않았고, 같이 식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자녀들은 절대로 같은 학교도 안 보냈고, 같은 동네에 살지도 않았습니다. 장보러 가는 마트도 다르고, 식당도 유대인용, 사마리아인용 따로 있는 셈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인들하고 결코 서로 섞여 살지 않았습니다. 열왕기하를 보면 바벨론에 의해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바벨론 왕이 사마리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열방에 흩어 놓았고, 대신 이방 민족을 사마리아로 이주시켰습니다. 그 결과 사마리아인들은 순수 이스라엘 혈통이 아니라, 이방인과 결혼하여 태어난 혼혈이 많게 되었고, 유대인들을 이러한 사마리아인들을 동족으로 취급하지 않고, 이방인과 같이 대우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경계를 이스라엘 민족으로 제한시키는 장벽을 허물었습니다. 예수의 복음을 유대인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사마리아인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상종하지 않으려 하는 이방인들과 땅 끝까지 전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은 사람은 언어, 문화, 혈통, 민족의 장벽을 모두 허물고 뛰어넘어 복음을 잔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실제로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유대 지역에서 사마리아로, 사마리아에서 로마 제국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로 인해 팔레스틴 지역 뿐만 아니라 소아시아와 유럽에서도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 나라가 전세계적으로 확장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말하는 땅 끝은 어디일까요? 이 당시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땅 끝은 지도 서쪽 끝에 위치한 스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사용된 ‘땅 끝’은 단순히 스페인이나 로마 제국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모든 지역과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땅 끝’은 지리학적인 의미를 뛰어넘어, 영적인 의미로 아직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지역, 아직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민족과 나라 그리고 사람들이 바로 땅끝입니다. 우리 가족 중에 예수를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 친구 중에, 이웃 중에, 직장 동료 중에 아직 부활하신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의 ‘땅 끝’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에게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납니다. 첫째는 권능이 임합니다. 둘째는 부활하신 예수의 증인이 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할 때 이미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셨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받았으며,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갈 사명도 함께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 속 예수님의 시선은 ‘땅 끝’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관심은 팔레스틴 지역과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에만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시선은 무엇을 향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시선과 일치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