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7 겸손한 지혜 (잠언 3장 1-10절)

만일 지금 우리 삶에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어서 아쉽다고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이 없어 아쉽다고 대답합니다. 내 삶에 돈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질탠데 돈이 없어 그렇지 못한다고 아쉬워합니다. 사람들은 늘 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잠언을 기록한 솔로몬은 인간이 정작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요소는 다른 데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솔로몬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재물이 아니라 지혜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솔로몬 왕은 우리에게 이처럼 지혜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요? 지혜의 유익은 무엇이며, 어떻게 지혜를 찾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바로 이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며 사는 사람에게 복이 임합니다.
첫째로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며 살아가는 지혜자에게 복이 임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보면 솔로몬은 ‘나의 법을 잊지 말고’, ‘나의 명령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그가 말한 ‘법’이란 히브리어 단어는 ‘율법’을 뜻하는 ‘토라’입니다. 물론 여기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주는 교훈을 뜻하기도 합니다만, 잠언을 살펴보면 솔로몬은 자신이 전해주려는 지혜와 하나님의 법을 따로 구별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솔로몬이 말하는 지혜가 곧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와 자세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르치는 법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잊어버리지 말라’는 뜻은 단순히 망각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말씀을 무시하고 냉대하지 말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아무런 상관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말씀을 보지 않고, 살아가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말씀 없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비율이 상당히 높습니다. 지난 2017년 미국의 ‘라이프웨이’라는 기독교 단체에서 ‘왜 성경을 읽지 않는가?’라는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가장 높은 이유가 35%로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 그냥 읽지 않는다가 나왔습니다. 성경을 왜 안 읽느냐고요? 특별한 이유가 없어요. 그냥 읽고 싶지 않아서 읽지 않는다는 거에요. 두 번째 이유로, 27%가 ‘성경 읽기를 삶의 우선순위에 두지 않기 때문에’라고 대답했습니다. 셋째로 15%가 시간이 없어서 읽지 않는다고 했고, 넷째로, 13%가 이미 충분히 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읽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작년 2020년도 7월 코로나가 한참 진행 중일 때 American Bible Society가 발표한 the State of the Bible 2020 report를 보면 팬데믹 기간 동안 성경 보는 비율이 오히려 더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것은 한 가지 앞에서 발표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더 신빙성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없어서 성경을 보지 않는다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코로나 기간 동안 엄청난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성경을 보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은 시간이 없어서 성경을 못 보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마음에 성경을 보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성경을 못 본다는 것이 통계적 사실로 나타났습니다.
이와 같은 시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솔로몬의 권면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잊지 말고 하나님의 명령을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을 버리고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을 버리고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말씀을 소중하게 대하는 태도가 신앙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또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에서 솔로몬은 다시 한번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를 가질 것을 권면합니다. “인자와 진리를 버리지 말고, 것을 목에 걸고 다니며, 마음 속 깊이 새겨두어라!” ‘인자’란 하나님의 사랑을, ‘진리’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솔로몬 왕은 하나님의 사랑과 가르침을 버리지 말고, 마치 귀한 장신구처럼 그것을 목에 걸고 다니라고 했습니다.
프랑스의 작가 기 드 모파상의 단편 소설 ‘목걸이’를 보면 아름답고 매력적인 용모를 가진 르와젤이란 여인이 등장합니다. 어느 날 그녀는 귀한 파티에 초대받게 됩니다. 그녀는 자신의 가난한 신분을 늘 부끄러워했습니다. 비록 단 하룻밤의 파티이지만, 그녀는 자신의 가난을 숨기기 위해서 남편의 비상금을 털어 좋은 옷을 삽니다. 친한 친구에게 찾아가 파티에 차고 갈 값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렸습니다. 드디어 기쁜 마음으로 파티에 참석한 르와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그만 친구가 빌려준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후 부부는 전 재산을 팔아 잃어버린 목걸이와 똑 같은 것을 사서 친구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10년 동안 남은 목걸이 값을 벌기 위해 더욱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르와젤은 그로 인해 고된 육체 노동과 극한 스트레스로 심신이 늘 피곤하여 늙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길거리에서 목걸이를 빌려준 친구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됩니다. 르와젤의 변해버린 용모를 보고 깜짝 놀라 영문을 묻는 친구에게 르와젤은 그 잃어버린 목걸이 때문에 겪은 온갖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친구는 안타까워하며 그 날밤 자신이 빌려준 목걸이는 가짜 다이아몬드 목걸이였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소설 ‘목걸이’의 작가 모파상은 허영심과 욕망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간 르와젤이란 한 여인을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과 거짓됨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목걸이를 차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르와젤과 같이 우리들도 남들에게 잘 보이려는 허영심의 목걸이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또 그것 때문에 스스로 고통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인간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위해서 늘 대가를 지불하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 것 정말 가치 있는 것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욕망의 목걸이, 교만의 목걸이는 결국 다 가짜 다이아몬드 목걸이처럼 하나의 가치가 없는 것들입니다. 이런 거짓 가치들을 위해 하나 밖에 없는 삶을 허비한다면 그 만큼 불쌍한 삶도 없습니다.
솔로몬 왕은 우리가 ‘인자’와 ‘진리’로 만들어진 목걸이를 매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목걸이를 맨다는 것은 값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소중하게 여기고 간직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말씀을 늘 우리 마음 속에 소중하게 모시고 살아가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3절 후반절을 보면 마음 속 깊이 새겨두라고 다시 한번 반복해서 권면하고 있는 것이죠.
오늘 여러분께서 이 자리에 백 만불자리 목걸이를 차고 앉아 있다고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아마 시시 때때로 손이 목에 갈 것입니다. 목걸이가 잘 있나 보기 위해 두 눈이 주기적으로 향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기를 값비싼 보석이 박혀 있는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잇는 것처럼 소중하게 대하라고 말했습니다. 말씀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은 계속 말씀을 보게 될 것입니다. 잠언은 하나님의 말씀이 금은보화보다도 진주와 그 어떤 세상 보물보다도 더 귀하다고 말했습니다. 솔로몬이 말씀을 ‘목에 매고 마음에 새기라’고 한 이유는 말씀을 잊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귀중한 장신구를 목에 걸고 다니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고 한 시라도 잊지 말고 말씀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가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자, 그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2절을 봅시다. 하나님께서 두 가지 복을 주십니다. 첫째로 장수의 복을, 둘째로 평강의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오래 살고 마음 편히 사는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풍성한 날들이 오래토록 이어지는 삶, 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복입니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신앙의 중심을 지키는 자들이 누렸던 축복입니다. 저를 한 번 따라해 보시겠습니까? “우리가 말씀을 지키면, 말씀이 우리를 지켜준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시고 돌봐 주십니다. 그 결과 그의 인생은 적과 원수들로부터 보호받고, 재앙과 삶의 고난으로부터 구원을 받습니다. 솔로몬 입장에서 보면, 이 좋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죠.
4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며 말씀 중심대로 살아가는 자가 받는 복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은총을 입고, 사람들 가운데 귀중히 여김을 받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나라 욕 중에 “쓸모없는 사람아!”하는 표현이 있지 않습니까? 세상에 내 자신이 아무런 쓸 데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모욕적인 말입니까? 그 말은 내가 지금 당장 세상에서 사라지고 먼지처럼 되도 나쁠 것이 하나도 없을 만큼 나의 존재 가치가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쓸모없는 사람아’란 말이 우리 귀에 매우 기분 나쁘게 들리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이와 같이 한 사람을 가리켜 쓸모 없다고 평가하신 적이 있습니다. 바로 가룟 유다를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인자를 배반하는 그 사람에게는 저주가 있을 것이다! 그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게 나았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 주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는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나았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삶이 쓸모 없는 인생이 되는 것만큼 큰 저주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가치가 있는 삶입니까? 솔로몬 왕은 우리에게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비결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 그 말씀을 삶의 최우선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자가 하나님께 호의를 받고, 사람들에게도 존귀한 삶이라고 평가받는 인생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기고 소중하게 간직한다는 말은 단순히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암송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욕심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일상 속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혹시 신앙생활과 일상생활이 나누어져 있지는 않습니까? 신앙과 일상이 분리되어 있다면, 그것은 매우 심각합니다. 말씀이 생활화가 되어야 하고, 신앙이 일상화가 되어야합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어디에 있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신앙이 삶의 현장 속에서 꽃 피어나야 합니다. 그 시작점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백만불자리 목걸이를 잃어버린 사람을 떠올려보십시오. 오늘 밤 한 숨도 자지 않고 다음 날 해가 밝아올 때까지 밤새도록 집안 곳곳을 찾아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만큼 목걸이가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목걸이를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에이 귀찮아. 피곤하다. 그냥 내일 찾아보자.”하고 넘겨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내일이 되어도 또 반짝이는 세상의 유혹의 목걸이에 정신이 팔려 말씀의 목걸이는 또 다시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날마다 일상의 현장 속에서도 말씀의 목걸이를 차고 살아가십시오. 말씀이 일상화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십시오.
2.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길을 지도하며 인도하시는가?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길을 지도하며 인도하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사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다 인도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갑니까? 오늘 본문 5절 말씀처럼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6절 말씀처럼 범사에 즉 일상의 크고 작은 모든 일에 하나님을 초대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주님은 찾아오셔서 그들이 복된 길로 걸어가도록 친히 지도해 주십니다.
잠언을 통해서 솔로몬 왕은 우리에게 살아가면서 신뢰해야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할 것을 주문합니다. 사람은 신뢰할 대상이 아닙니다. 될 수도 없습니다. 여기에는 우리 자신도 포함이 됩니다. 특히 솔로몬은 우리가 가진 지혜, 경험, 견문, 기술, 지식 이 모든 것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가르칩니다. 물론 여기서 솔로몬이 말하는 것이 인간의 이성이나 판단을 배제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지식도, 지혜도, 경험도, 견문도, 기술도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솔로몬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무리 뛰어난 인간의 지식과 지혜, 아무리 풍부한 경험과 연륜일지라도 그것을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자질들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여 삶을 이끌어 나가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주도권을 먼저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용규 선교사님이 쓰신 책 ‘내려놓음’은 다 아실 것입니다. 책에 한 문구가 기억에 남습니다. “당신이 내려놓으면 그 때부터 하나님이 움직이신다.” 이 책의 정확한 제목은 그냥 ‘내려놓음’이 아닙니다.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결심 내려놓음’입니다. “너는 내려놓으라! 내가 채워주리라!” 삶의 주도권을 주님께 드리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뒤로한 채 자꾸만 내 짱꾸만 굴려보고, 내 계산기만 두들겨 보고, 내 지혜와 경험으로만 살아가려고 하지는 않으십니까? 우리 중에 홍해를 가를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우리 중에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우리 중에 300명의 병사로 수십만명의 적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우리 지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가진 지혜로는 우리 개인의 삶의 문제들도 다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솔로몬은 우리가 가진 지혜, 노하우, 삶의 주도권을 다 주님 앞에 ‘내려놓으라’고 주문합니다. 그리고 온전히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을 신뢰하며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그러할 때 주님의 인도하심이 시작됩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주도권과 결정권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인정하고, 주님의 뜻을 살피며 우리의 모든 일상 속 상황과 환경을 다스리시는 주님의 지혜와 능력을 마음 다해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먼저 ‘인도’하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지도와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보다 내 마음의 ‘겸손’과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우선 되어야 합니다. 잠언에서 말하는 ‘악’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경외할 수는 없다. 교만 자체가 악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지금도 내 경험과 명철만을 의지하여 해결하려 하는 교만한 삶의 영역이 있지는 않습니까? 내 진로의 문제, 가정의 경제적 상황, 자녀들의 문제 등등 사실 생각할 것이 많은 것이 우리 삶입니다. 그러나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을 경외하며 공경하는 자에게 복이 임한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갈 때 다양한 복이 찾아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히브리인들은 영적인 복과 육적인 복을 나누어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때 따라오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8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는 우리 몸에 보약이 되어, 상처가 낫게 하고 아픔이 사라지게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 모든 뼈가 윤택하게 되는 유익을 얻게 됩니다.
특별히 솔로몬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되, 마음만으로 하지 말고 물질적 헌신을 통해 그 마음을 고백하라고 권면합니다. 9절을 보면 우리의 재물과 소산물의 첫 열매로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쳣 열매’는 땅에서 나는 모든 곡식 중 최고와 최상의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첫 소산물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내 모든 소유와 소산의 궁극적인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동시에 내가 가진 모든 소유를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겠다는 믿음의 고백이자 응답입니다.
솔로몬은 이와 같이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물질로 고백하며 살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 큰 물질적 축복을 주실것이라고 선포합니다. 10절을 보면 그 사람의 창고가 가득 차고, 포도주 통에 포도주가 넘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보다 더 풍성한 것으로 다시 주실 것입니다. 최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또 다시 최상의 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는 악에서 떠나는 것만 아니라, 소산의 첫 열매를 드리는 것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요한 표현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지혜에 우리의 모든 삶을 의탁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은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넉넉하게 체워주시고 넘치도록 갚아주실 것이다. 마땅히 주닝믜 것을 주님의 것이라고 인정했을 뿐인데 하나님은 더 넘치는 복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향한 참된 경외와 일상 속에서 주님과 함께 하는 경건의 보상은 우리 삶에 놀라운 치유를 가져줍니다. 또한 우리 마음 속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케 하여 참된 만족과 평화를 누리게 합니다. 일상 속에서 순간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로 살아가는 자가 복된 사람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참된 지혜를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