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5 베드로전서 강해 (15) 고난 중에도 믿음을 굳게하라 (베드로전서 5장 7-9절)


베드로전서는 고난 속에서 살아가는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쓰여진 편지입니다. 베드로전서의 마지막 부분인 5장 12-14절은 문안인사와 축도가 기록되어 있음으로, 사실상 오늘 본문이 베드로전서의 마지막 권면입니다. 과연 베드로는 어떤 권면으로 그의 편지를 끝내고 있을까요? 사도 베드로는 비록 성도들의 삶 가운데 여러가지 고난이 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그들의 믿음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믿음을 굳게 지킬 것을 권면했습니다. 베드로는 성도가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2가지 자세를 구체적으로 권면했습니다.

1. 모든 염려를 주께 위탁하라
사도 베드로는 성도가 고난 중에도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해서 첫째로,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버리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을 향하여 “여러분의 모든 근심을 주께 맡기십시오.”하고 권면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마음 속에 염려가 있습니다.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어린 아이에게 물어보십시오. 어린이들에게도 염려가 있습니다. 은퇴 후 한가로이 정원생활하고 계신 분들에게 가서 여쭤보십시오. 그 분들 안에도 나름 인생에 대한 염려가 있을 것입니다. 아마 우리 중에 염려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요즘 어떤 일들로 고민하고, 무엇을 염려하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성경에 쓰인 ‘염려’란 단어는 마음이 여러가지 조각으로 나누어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직장이나 가게에서 일하는 중에 불쑥 마음에 염려가 떠올라서 일에 집중하지 못한 경험은 없으십니까? 아니면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식사를 하는 중에 마음 속에서 염려가 불쑥 떠올라서 얼굴 표정은 미소를 띄고 웃고 있지만, 마음 속에서는 풀이 죽은 경험들을 한 적은 없으십니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불쑥불쑥 마음 속에서 튀어나와 나를 괴롭히는 생각이 바로 염려입니다. 염려는 그 자체로 어떤 긍정적인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염려는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고, 삶을 지치게 만들며, 우리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무엇보다 염려는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결여되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우리 마음 속 염려의 크기와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크기는 서로 반비례합니다. 내 마음 속 염려가 클수록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작아집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커질수록 우리 마음 속 염려는 작아집니다. 우리 마음 속 저울에 한쪽에는 내가 가진 염려를 올려놓고, 다른 한쪽에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올려보십시오.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습니까? 혹시 저울이 염려 쪽으로 확연하게 기울어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마음 속 염려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거울 속 비친 우리 모습이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염려로 축 쳐져 있지는 않습니까? 염려는 믿음을 죽입니다.
이제 막 유치원에 들어간 5살짜리 어린 아들을 키우는 가정이 있습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저녁에 퇴근에서 집에 돌아와 보니 아이가 장난감도 다 바닥에 팽개쳐 놓은 채 거실의 큰 창 밖을 바라보며 한 숨을 쉬고 있습니다. 아빠가 엄마에게 무슨 일인지 눈치로 물어봐도 엄마도 모르겠다는 듯 두 어깨를 올렸다 내립니다. 아빠가 아들에게 물어봅니다. “주호야, 오늘 유치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왜 창 밖을 보고 이렇게 한숨을 쉬고 있어?” 아빠의 얼굴을 쳐다본 유치원생 아들의 두 눈에 어느새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합니다. “아빠, 내년에는 코로나로 인해서 유치원 등록금이 5%나 더 오른데요. 다음 달 유치원 급식비도 3천원이나 인상한데요. 제가 벌써 키가 또 자라서 바지가 짧아졌어요. 바지를 하나 더 사야 해서 걱정이에요.” 만일 우리집 아이가 이런 고민하며 한숨을 짓고 있다면, 여러분 어떻게 반응하시겠어요? 한편으로는 나이도 어린 아들이 벌써부터 이런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어이가 없기도 할 것이고, 한편으로는 얘가 아버지를 뭘로 보고 이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나 자존심이 상하고 화도 나지 않을까요? “아니 아들! 그걸 너가 왜 고민해? 아빠가 다 해결해 줄건데!” 그런데 유치원생 아들 녀석이 한 술 더 뜹니다. “아니에요. 아빠… 안 그래도 아빠도 먹고 살기 힘든데… 요즘 같이 힘든 세상에 유치원 등록금은 제가 알아서 해야죠…” 우리가 이런 아들의 부모라면 화도 나고 자존심 상하지 않겠어요? 어린 아들에게 이해하지도 못할 통장 잔고라도 보여주면서, “아들 걱정하지 마! 아빠가 너 하나는 책임질 수 있어!”하고 설명해주고 싶은 심정이 되지 않을까요?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신의 어린 자녀가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대신 고민하며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겠습니까?
풍자적으로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만, 혹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 유치원생 아들 같지는 않았을까요? 관점을 바꾸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근심하고 염려하며 살아가는 것을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겠습니까? “아무게 집사야, 너 요즘 왜 그렇게 한숨 쉬고 살아가고 있니?” “네, 하나님 요즘 먹고 사는 문제로 인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사랑하는 아들아, 너 그거 걱정 안 해도 된단다. 너는 내 아들이 아니냐? 너의 인생은 내가 다 책임질 것이다. 너가 가지고 있는 고민과 염려 다 내게 맡기렴. 내 앞에 너의 마음의 짐을 다 내려 놓으렴.” 이 때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삶을 책임지실 것을 믿음으로 반응하며, “하나님, 정말요? 감사합니다!”하고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도 큰 영광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의 인생을 능히 돌보시고 모든 필요를 능히 공급해주실 수 있는 위대하신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고 우리 인생을 돌보시겠다고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염려의 보따리를 또 우리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간다면,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유치원생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얼마나 섭섭하시겠습니까?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을 향하여 “여러분의 모든 근심을 주께 맡기십시오.”하고 권면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가장 흔히 하는 걱정이 바로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25-34절 말씀을 함께 읽을탠데요. 너무 익숙한 말씀이라 이번에는 다른 번역번으로 읽어보려고 합니다. 우리말성경 버전으로 함께 읽겠습니다. “(마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생명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고 자기 몸을 위해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생명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마 6:26) 공중에 나는 저 새들을 보라. 씨를 뿌리지도 거두지도 창고에 쌓아 두지도 않지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먹이신다. 너희는 새들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마 6:27) 너희 중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목숨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할 수 있겠느냐? (마 6:28) 어째서 너희는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저 백합꽃이 어떻게 자라는지 보라. 일하거나 옷감을 짜지도 않는다. (마 6: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모든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도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는 못했다. (마 6:30) 오늘 있다가도 내일이면 불 속에 던져질 들풀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입히시는데 하물며 너희는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마 6: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마 6:32) 이 모든 것은 이방 사람들이나 추구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에게 이런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마 6:33) 오직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너희에게 더해 주실 것이다. (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맡아서 걱정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이 세상 사람들은 의식주 문제를 비롯하여 생활에 대한 문제들에 대해서 아무도 도와줄 이 없는 것처럼, 자기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책임져야 하는 것처럼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구주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주의 자녀들에게 고아와 같이 그렇게 염려하며 살아가지 말라고 당부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천부가 계십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모두 다 공급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살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런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있을 때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을 때 비로서 우리 마음을 짓누르던 무거운 삶의 염려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가진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버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맡기다’란 표현은 ‘위를 향해 던져버리다’란 뜻입니다. 먹고 사는 일에 대한 염려는 우리가 해결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해결해 주실 문제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도 베드로가 권면한 것처럼 의식주와 생활에 대한 염려들을 하나님께서 받으시도록 위를 향하여 던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염려를 어떻게 위로 던질 수 있습니까? 그에 대한 해답이 바로 빌립보서 4장 6-7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빌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는 기도함으로써 우리가 가진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게 됩니다. 분명 성경은 우리가 염려하지 말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우리 구하는 것을 아뢸 때, 우리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평강이 찾아올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혹시 염려가 우리 마음을 독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로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버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탄의 거짓말입니다. 오늘 본문 베드로전서 5장 7절로 다시 한번 돌아가봅시다. 함께 읽겠습니다.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여기서 사도 베드로는 우리의 염려를 다 주님께 맡겨버리라고 이야기하며, 그 뒤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애정을 가지고 함께하고 계십니다.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힘든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고, 인생이 자기 뜻대로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미워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브라함이 거주하는 땅에도 가뭄이 찾아왔습니다. 이삭은 가는 곳마다 블레셋 사람들이 찾아와 우물을 빼앗아 갔습니다. 야곱은 수십년 동안 삼촌 라반에게 속아가며 밤낮으로 일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갔습니다.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고, 룻도 남편을 잃었습니다. 다윗은 십대와 이십대를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도망치며 살았습니다. 다니엘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자굴에 갇혔고, 욥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하루 아침에 가족, 재산, 건강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누가 하나님께서 이들을 미워하신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습니다. 비에 젖지 않고 피어나는 꽃도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꽃들도 다 바람에 흔들리면서 비에 젖으며 피어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 중에 흔들리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고, 눈물에 젖지 않는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 고난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찾도록 만들어주지 않았습니까? 삶의 고난이야말로 교만한 우리들을 겸손케 하였고, 세상을 좇아가던 우리 마음이 하나님만을 붙들고 살아가도록 성숙케 하였습니다. 고난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눈물 없이 사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고, 내 기도는 안 들어주고, 나는 안 도와주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오늘 사도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He cares for you.” 하나님은 우리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의 평생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를 따라다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고백하며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염려를 맡길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2. 근신하고 깨어서 마귀를 대적하라
둘째로, 사도 베드로는 고난 중에도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근신하고 깨어 마귀를 대적하라고 권면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 5:9)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8절에 ‘근신하라’는 말씀은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말이고, ‘깨어라’는 말은 ‘잠에 들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8절은 단순히 잠에서 깨어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 경각심을 가지고 매순간 하나님을 꼭 붙들고 신뢰하며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의 대적 마귀가 굶주린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으면서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하며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으라 했습니다.
지난 금요일에 중국 헤이룽장성 미산시에서 백두산 호랑이가 마을까지 내려온 일이 있었습니다. 마을을 어슬렁거리던 호랑이는 급기야 길거리에 서 있는 주민에게 달려가 덮쳤습니다. 주민은 큰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마을로 내려온 백두산 호랑이는 그 뒤로도 한동안 민가 옆에 머물렀고 주민들은 내내 공포에 떨었습니다. 중국 경찰이 차를 타고 동네를 다 돌아다니며 방송을 합니다. “창문과 문을 꼭 닫으세요. 밭에서 일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으면 즉시 전해주세요.” 동네 사람들은 마을 어딘가에 웅크려 숨어 있을 호랑이 때문에 집 밖에도 못 나가고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누가 이럴 때 낮잠을 자겠습니까? 지금 짐 밖에 백두산 호랑이가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는데 오던 잠도 다 달아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베드로는 굶주린 사자가 어디 잡아먹을 것 없나 하고 으르렁거리고 돌아다니는 것처럼 우리의 대적 마귀가 삼킬 자를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마귀의 표적이 되지 않도록 기도로 깨어, 믿음을 굳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라고 권면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지금 베드로가 우리에게 주는 이 권면은 과거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권면과 같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결국 베드로와 제자들은 잠들어 버렸고, 기도에 실패하게 됩니다. 그 결과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지우고 싶은 실패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던 베드로이기에, 베드로전서의 마지막 권면은 마귀에게 삼키어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동일한 과오를 범하지 말라는 사도 베드로의 가슴 절절한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겟세마네 동산에서 권면 받았던 그 심정으로 성도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로 깨어 있어 마귀의 밥이 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분명 마귀는 백두산 호랑이처럼 우리 힘만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강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9절 말씀에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즉 우리의 믿음을 굳게 하면, 마귀를 능히 대적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믿음을 굳게 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 잘 믿어야지. 하나님 더 잘 믿어야지’ 하는 식의 자기 주문이나 자기 결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믿음’은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를 가리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리는 성도의 삶만이 마귀를 능히 대적하게 만들어줍니다. 우리가 기도로 깨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때 마귀는 우리를 떠나가게 됩니다. 야고보서 4장 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약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때, 마귀는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를 피하게 됩니다.
백두산 호랑이가 얼마나 무섭습니까? 약 크기가 3M나 됩니다. 동네 사람들이 호랑이가 무서워서 10시간이 넘게 집 안에 꽁꽁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동네에 마취총이 도착하니까 상황이 급격히 반전됩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호랑이 때문에 자취도 안 보이던 사람들이 마취총이 도착했단 소식을 듣자마자 너도나도 저 멀리 서서 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호랑이가 마취총에 맞고 쓰러지자, 그제서부터는 동네 여기저기서 주민들이 다 나와서 가까이서 팔짱을 끼고 호랑이 잡혀 가는 것을 구경합니다. 마취총 하나에 상황이 완전히 역전된 것이죠. 그런데 사실 마취총의 총알로 쓰이는 주사기는 약 10-15cm 밖에 안됩니다. 그 작은 것이 몸무게 250Kg이 넘고 몸집이 3M가 넘는 백두산 호랑이를 잡았습니다.
삶의 커다란 고난 앞에서 우리의 기도가 때로는 무력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조그맣게 보이는 기도가 집채 만한 파도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을 이겨내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우리 삶에 가져줍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도록 반드시 지켜 주십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자는 소망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에게는 최후의 승리가 주어집니다.
사랑하는 코너스톤 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가진 염려는 무엇입니까? 우리 마음 속 모든 염려를 기도로 하나님께 위로 던져 드리십시오. 또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날마다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살아가십시오. 그리할 때 우리는 마귀와의 영적 전쟁에서 날마다 승리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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