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8 베드로전서 강해 (14) 겸손한 자세로 순복하라 (베드로전서 5장 5-6절)

인간이 만든 모든 조직이나 단체는 ‘리더’와 ‘멤버’로 구성이 됩니다. 조직이나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자는 ‘리더’요, 리더의 결정에 따르는 자가 ‘멤버’입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조직 단위인 가족도 리더와 멤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 가족이 어디에서 살지, 어떻게 살아갈지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가장’이 바로 가족의 리더요, 그 가장의 리더십에 따르는 나머지 가족 구성원들은 ‘멤버’입니다. 이처럼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가정’에서도 리더와 멤버로 구성이 되어 있듯이, 인간이 만드는 모든 조직, 단체, 공동체는 그 모임을 이끌어 가는 리더와 리더를 따라가는 멤버가 있습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교회에도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운영되어야 할지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리더들이 있고, 그 결정에 따라 함께 움직이는 멤버들이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리더와 세상 조직의 리더는 자세와 태도가 다릅니다. 이 세상의 조직과 단체들을 보면 피라미드의 정점에 서 있는 자들이 리더입니다. 모든 조직의 운영체계는 바로 이 리더들을 위해서 움직입니다. 가장 많은 혜택을 리더들이 누립니다. 그러나 교회의 리더들은 다릅니다. 교회의 리더십은 ‘거꾸로 된 피라미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더들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사람들이 하기 싫은 일, 기피하는 일, 더러운 일, 어려운 일을 감당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양 무리들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내어주고 헌신하는 사람들이 바로 교회의 리더들입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교회의 리더들이 어떠한 자세와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리더들에게 하나님의 양 무리를 돌보되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고’, ‘더러운 이익을 위해서 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하며’, ‘양 무리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지 말고 오직 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지난 주에는 교회의 리더들이 갖추어야 할 태도와 자세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주에는 교회의 멤버들이 갖추어야 할 태도와 자세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교회의 멤버들에게 두 가지 태도를 권면합니다. 첫째는 교회의 리더십에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모든 사람에게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의 핵심 키워드는 두 개입니다. 바로 ‘순복’과 ‘겸손’입니다.

1. 교회의 멤버들에게 순복과 겸손을 권면하다.
1)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리더들과 그들에게 부여하신 권위에 순복하라
먼저 사도 베드로는 교회의 멤버들이 교회의 리더들에게 순복하라고 권면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 상반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벧전 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본문에서 말하는 젊은 자들은 일차적으로는 나이가 젊은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젊은 자들’이란 표현은 회심한지 얼마 안 되는 초심자를 의미할 수도 있고, 아직 영적으로 어린 자들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문맥상으로 볼 때 본문에 나오는 ‘젊은 자들’은 교회에서 장로들이 다스릴 때, 그들의 리더십에 순종해야 하는 성도들 모두를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의 ‘젊은 자들’은 나이나 신앙의 연수와 관계없이 교회의 리더십의 결정에 따르는 모든 성도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교회의 멤버들을 향해 ‘리더들의 권위에 순복하라’라고 권면했습니다. 설교를 진행하기 전에, 먼저 ‘순복’이란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정의해봅시다. 많은 분들이 ‘순복’(submission)과 ‘순종’(obey)을 헷갈려 합니다. 그러나 이 둘은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먼저 순복은, 하나님께서 교회 위에 세우신 리더들에게 주신 권위를 인정하고, 그 권위를 따르겠다는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리킵니다. 그럼 순종은 무엇입니까? 순종이란, 리더의 권위에 순복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외적인 행위가 바로 순종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한 아버지와 아들이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아버지가 가진 권위를 인정합니다. 그래서 비록 자신이 가진 가치관과 생각과 의견이 아버지와 다를 때도 있지만, 아버지가 자신에 대해서 가진 최종적인 권위를 인정하기에 아버지의 결정에 따르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순복’입니다. 그리고 아들이 실제로 아버지가 결정한 바에 따르면 그 때 그것은 ‘순종’이 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교회의 멤버들이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세운 리더들에게 순복하는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지라고 권면합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사람이 2명 모이면 생각이 2개가 됩니다. 사람이 5명 모이면 의견이 5개, 10명 모이면 10개가 됩니다. 교회를 운영하다 보면, 사람마다 사안을 해결하는 방법과 방식에 대한 태도와 자세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여 결혼한 부부들이 이따금씩 어떤 사안에 대해서 의견과 생각이 달라 싸우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또한 우리들도 그런 시간들을 결혼 생활하며 종종 겪습니다. 하물며 교회의 일을 함에 있어 사람마다 한 가지 일에 대해서 생각이 다른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상대방이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그와 다투어서는 안 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그에 대한 미움과 분노를 가져서도 안 됩니다. 결국 하나님은 교회를 운영함에 있어서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다양한 생각과 의견들을 놓고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위를 교회의 리더들에게 부여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교회의 멤버들이 교회의 리더들의 결정에 따르려는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지라고 권면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순복’입니다.
사랑하는 코너스톤 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교회의 리더들에게 주신 권위에 순복하는 자세와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까? 비록 리더들의 결정이 내가 가진 생각과 의견 그리고 가치관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위배되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 교회의 리더들에게 주신 권위를 인정하고 따를 마음자세를 갖고 계십니까? 성경은 우리가 가진 의견이 다소 다를 수 있고, 개인의 판단과 맞지 않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교회의 리더들에게 부여하신 ‘행정적 지휘권’과 ‘영적인 권위’에 순복하라고 권면합니다.
만일 어떤 성도가 멤버의 위치에 있을 때, 그의 상위 리더십이 가진 권위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그는 결코 바른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지도하는 리더의 위치에 서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자기 자신이 낮은 자세로 리더에게 순복하고 순종하는 법부터 배워야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영적인 원리입니다. 교회의 리더에게 순복하지 못하는 멤버를 리더의 자리에 세워 두면 십중팔구 그 교회에서는 또 다시 문제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리더의 자리에 서기 전에, 먼저 멤버의 자리에서 권위에 순복할 줄 아는 자세부터 배워야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세움 받은 리더의 권위에 순종하는 자세와 태도를 배움으로써 그 사람은 교회에서 올바른 또 하나의 리더와 지도자로 성숙해져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코너스톤 교회에 세우신 리더들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권위에 순복하는 마음과 태도를 가지실 수 있기를 권면합니다.

2) 모든 성도들에 대하여 겸손한 마음과 태도를 가지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리더들에게 순복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덕목이 바로 ‘겸손’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겸손한 삶을 살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특별히 여기서 겸손의 덕목은 단순히 리더들과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 하반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벧전 5:5)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사도 베드로가 말하고 있는 겸손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겸손’이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앞에 잘 나서지 않고, 없는 듯 조용하게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며, “저는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 저는 부족해요.”하고 말하는 수동적인 모습을 떠올리고는 합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겸손과는 거리가 멉니다. 성경적인 의미로 겸손하면서도 동시에 활동적이고 적극적일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겸손이란, 하나님께서 공동체에 세우신 권위에 순복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교회에서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에 순복하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어느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김 아무게 집사님이 있습니다. 이 분은 일찍 10대 중반에 미국에 이민 와서 한국말도 잘 하고 영어도 잘합니다. 대학교도 명문대에 나았고, 직장도 큰 회사에 들어가 높은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최근에 김 아무게 집사님은 교회에 불만이 많습니다. 교회의 최 아무게 장로님 때문입니다. 최 장로님은 30대가 넘어서 미국에 이민을 왔습니다. 영어를 하기는 하는데 그렇게 썩 잘하지는 못합니다. 학력도 고졸인지 대학교를 나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장로님이 하는 비즈니스도 작은 동네 가게입니다. 김 집사님은 최장로님이 교회의 사안들을 결정하는 것이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김 집사님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 더 똑똑하다. 내가 가진 생각이 저 사람보다 더 사리와 이치에 맞다. 그런데 왜 내가 저 사람의 결정에 따라야 하지?” 김 집사님은 최 장로님이 하는 일마다 무시합니다. 최 장로님이 결정하는 일에 대해서 반기를 들고, 심지어 뒤에서 다른 성도들과 함께 있을 때, 최 장로님에 대해서 안 좋은 이야기들을 합니다. 친한 사람들을 선동해서 장로님을 대적합니다. 그러나 김 집사님은 속으로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은 다 교회를 위한 일이다. 나는 지금 교회를 위해서 올바른 싸움을 하고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겸손이 아니라 교만입니다.
물론 김 집사님의 생각처럼 그가 가진 생각과 견해가 더 좋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그가 가진 의견이 더 지혜로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생각과 의견이 다르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교회에 세우신 리더의 권위에 순복하는 마음가짐과 태도를 갖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여기서 멤버의 위치에 있는 분들이 떠오르는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 목사님 리더의 결정이 미련하다고 해도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앞서 리더들에게도 겸손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겸손은 서로 가져야합니다. 즉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자신의 생각과 의견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늘 인지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경청하고 의견을 굽힐 수 있는 겸손을 가져야합니다. 또한 멤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리더가 가진 생각과 자신의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그를 무시하거나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교회의 리더가 지혜롭고 바른 선택을 해 나갈 수 있도록 곁에서 그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리더라고 해서 완벽한 사람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돕도록 아론과 훌을 세우신 것처럼, 리더들의 부족함을 곁에서 채워주고 그가 교회를 더 올바르게 이끌 수 있도록 함께 지혜와 힘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많은 경우, 멤버가 리더들을 돕지 않고 도리어 리더들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모습을 더 자주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교회의 분란과 분열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저는 성경에 나오는 두 명의 인물을 통해 부족한 리더십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와 올바르지 못한 태도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먼저 부족한 리더십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를 가진 인물로 다윗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리더는 사울 왕이었습니다. 사울은 누가 봐도 부족한 면모가 많았습니다. 이 때 다윗이 취한 자세는 무엇이었습니까? 사울이 이스라엘을 잘 다스리는 왕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그를 돕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천부장으로 장군으로 블레셋 사람들과 나가서 싸워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고 사울을 도왔습니다. 사울은 리더로서 해서는 안 되는 여러가지 어리석은 선택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다윗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 사울을 사랑하려고 했고, 그를 도우려고 했습니다. 비록 사울은 부족한 리더였으나, 그가 죽었을 때 다윗은 얼마나 많이 슬퍼했습니까? 그를 위해서 애가를 지어 부를 정도였습니다. 다윗은 여러모로 부족한 리더 사울 곁에서 끝까지 그를 사랑하고 그를 도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전해줍니다. 부족한 리더를 대하는 방법은 그를 끝까지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해주고, 그가 하나님의 방법대로 올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그의 곁에서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부족한 리더십을 대하는 올바르지 못한 태도를 가진 인물은 바로 압살롬입니다. 압살롬은 흥미롭게도 우리가 조금 전 이야기한 부족한 리더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를 지닌 다윗의 아들입니다. 다윗과 압살롬은 아버지와 아들인데 리더를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달랐습니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방식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다윗과 같은 훌륭한 리더 밑에서도 불만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습니까? 이처럼 교회에는 리더십에 반발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주의하십시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아들이니까, 그의 최측근으로써 남들보다 다윗이 왕으로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리더로서 부족한 자질과 면모가 더 잘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다윗이 이스라엘을 더 잘 다스릴 수 있도록 위해, 다윗의 부족한 리더십을 도와줄 생각을 갖지 못했습니다. 압살롬은 다윗이 왕의 자리에 있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압살롬은 자신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되면 아버지 보다 더 뛰어난 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당시만 해도 이스라엘에는 왕이 직접 백성들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고, 재판을 진행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재판은 두 여인이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신이 아이의 엄마라고 주장하여 아이를 칼로 반으로 나누라고 했던 솔로몬의 재판이죠? 다윗이 왕으로 다스리고 있던 시절에도 이와 같이 왕이 직접 백성들의 사건을 맡아 재판했습니다. 다윗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압살롬은 꾀를 냈습니다. 그는 아침 일찍부터 성문의 입구에 나가 서 있었습니다. 이 당시 재판할 문젯거리가 있어서 다윗 왕을 찾는 사람들은 그 성문 입구를 지나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오면 압살롬은 그 사람을 불러 세워서 말을 걸었습니다. “당신은 어느 성에서 사는 사람입니까? 어디 지파 사람입니까? 무슨 일로 왕을 찾아왔습니까?” 재판을 하러 온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압살롬이 다윗의 아들이고 왕자이니까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며 이야기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럼 압살롬은 그 사람에게 “듣고 보니 당신이 말이 옳소! 참으로 딱하고 억울한 사연을 당했구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 성에는 당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왕에게는 없소. 누가 나를 이 나라의 재판관으로 세워주기만 한다면, 누구든지 나를 찾아와서 판결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나는 그에게 공정한 판결을 내려 줄 것이오.” 그리고서는 상대방이 엎드리고 절하려고 하면, 압살롬이 그에게 손을 내밀며 그를 일으켜 세우고 그를 위로 했습니다. 압살롬이 이런 식으로 무려 4년 동안 다윗에게 향한 백성들의 마음을 훔쳤습니다. 압살롬이 무엇을 한 거죠? 백성들과 다윗 사이를 이간질했습니다. 압살롬의 마음에는 ‘다윗은 우리의 리더로 부적합하다. 내가 저 자리에 올라가야 한다.’하는 교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세우신 리더들도 결국에는 다 사람입니다. 부족한 모습들이 왜 없겠습니까? 연약한 부분들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리더에게 부족한 면모가 있다하여 압살롬과 같이 그를 미워하고, 리더를 대적하는 자가 바로 교만한 사람입니다. 물론 리더가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때에는 상황이 다릅니다. 예외적이 상황이 언제든지 있을 수 있음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대량학살을 명령한 히틀러 같은 사람이 리더가 되면, 그리스도인들은 두 손을 들고 강력하게 대적해야 합니다. 분명하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거든요.
그러나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과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비록 하나님께서 세우신 리더에게 부족한 면모가 있다고 해서, 그리고 멤버인 우리가 그 사람보다 더 뛰어난 부분이 있다고 해도, 그를 무시하거나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세우신 리더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온유한 자세와 태도로 그들을 섬기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들을 끝까지 사랑해주고, 기도해줘야 합니다. 여러분은 저를 포함해서 코너스톤 교회의 리더들이 가진 부족한 면모를 이미 보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부족한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택은 여전히 여러분의 몫입니다. 우리의 리더들을 사랑해주십시오. 그리고 리더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리더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교회를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곁에서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십시오.
5절 말씀에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교회에 세우신 리더들의 권위를 무시하고 교만하게 행동하는 자들을 대적하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서 ‘대적한다’는 표현은 군사용어입니다. 적을 흔적도 없이 멸살시키기 위한 군사 작전 때 쓰는 단어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들을 얼마나 미워하시는지요, 그런 자들은 이 세상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지도록 멸망시켜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압살롬은 그래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5절을 보면 반대로 겸손한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말씀대로 부족한 리더 사울 밑에서도 끝까지 그를 사랑하고 그를 섬기었던 겸손한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다윗과 같이 부족한 리더에게 순복하고, 겸손하게 대한 자가 복을 받는 모습은 오늘 본문 말씀 6절과 잘 맞아 떨어집니다. “(벧전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은 우리들을 리더의 권위 아래 두심으로써, 우리가 그 권위에 겸손한 자세로 순복하는 훈련을 하게 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의 권위도 순복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권위에 순복할 수 있겠습니까? 권위에 순복하지 못하는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서 그가 반드시 멸망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세우신 리더들과 그들의 권위에 순복하는 마음을 가진 겸손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그들을 하나님의 양 무리를 이끄는 또 다른 리더로 사역하도록 세워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교회 공동체의 리더들에게 주신 권위가 있습니다. 우리의 리더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한 그에게 그 권위가 있습니다. 리더들은 자신들을 따르는 자들을 위해서 희생하며 섬겨야 하고, 리더를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께 리더들에게 주신 권위에 순복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한 면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리더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다윗과 같이 끝까지 그들을 사랑으로 품어주십시오.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그리고 곁에서 함께 올바른 길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도록 함께 해주십시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리더들에게 주신 권위에 겸손한 자세로 순복하십시오. 이것이 우리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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