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0 내 백성을 인도하게 하리라 (출애굽기 3장 1-12절)

애굽의 왕자로 40년간 지냈던 모세는, 자신을 죽이려는 애굽 왕 바로의 눈을 피해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게 됩니다. 이후 모세는 그 광야에서 40년간 양을 치며 살아가게 됩니다. 애굽 문명의 가장 화려하고 부유한 모든 것을 누리던 이집트의 왕자에서 광야의 도망자로 전락한 모세는 목자로서 양을 치며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었습니다.
평상시와 같이 양들을 먹이기 위해 좋은 목초지를 찾아 나선 모세는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 도착하게 됩니다. 우리가 시내산으로 알고 있는 바로 그 산입니다. 이곳에서 모세는 불에 타고 있으나, 그 형체가 사라지지 않는 신기한 떨기나무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이 초자연적인 현상에 매료되어 그 떨기나무를 자세히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4-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출 3: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출 3: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모세야 모세야!”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선명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니, 모세가 얼마나 깜짝 놀랐을까요?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에 대답했습니다.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또 말씀하십니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어라.” 하나님은 떨기나무로 걸어오는 모세에게 그가 신고 있는 신발을 벗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따라서 그가 계신 곳은 더러운 세상과 구별됩니다. 후에 이스라엘 제사장들이 성막에서 직무를 감당할 때도 신발은 신지 않았습니다. 제사장들은 제단에 제물을 바칠 때나, 성소에 들어갈 때면 언제나 손발을 깨끗이 씻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광야의 떨기나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면 거룩한 공간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가까이 나오려는 모세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혼을 거룩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영혼을 거룩하게 가꾸어 갈 수 있을까요? 우리도 신발을 벗고 기도하면 될까요? 양말까지 벗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배로운 피로 죄가 씻음 받을 때 거룩해집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우리 입술과 마음을 채우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의 영혼은 거룩해집니다.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살아가길 소망하십시오. 하나님의 영인 성령께서 우리의 몸과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모세 앞에 나타나셨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찾아오셨음을 의미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직접 말씀해 주셨습니다. 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출 3: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이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이 세 사람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제 그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서 모세를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모세에게 찾아오신 이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7절 말씀입니다. “(출 3: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3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고통 받는 것을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라 똑똑히 보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삶에 하나님께서 아무런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종종 있습니다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 순간도 우리를 외면한 적이 없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고통받는 그 순간에도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듣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어떤 큰 신음과 고통 속에서 간절하게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고 난 후 눈을 뜬다고 해서 지금 당장 문제가 해결되고, 고통이 해소되지 않는 경우들이 사실 더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 같다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는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백성들의 기도 소리를 하나님께서 듣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우리의 기도는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은 살아 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주님은 우리의 고난과 근심을 알고 계십니다. 7절 마지막에 쓰인 ‘그 우고를 알고’라는 표현은 ‘내가 그들의 근심하는 것을 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염려하고 있는지 그 마음 속 깊은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삶이 너무 힘들고 어려운 마음을 이끌고 하나님 앞에 나와 눈물 흘리며 “아버지…”하고 한 마디만 기도해도, 이미 하나님은 우리 마음 속 근심과 염려를 다 알고 계십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가장 잘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우리의 근심과 고통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 주님은 우리의 고통을 보고 계시고,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우리의 근심과 염려를 다 알고 계십니다.
이것이 이야기의 끝이 아닙니다. 8절을 봅시다. “(출 3:8)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그의 백성의 고통과 아픔을 보고 계시고, 듣고 계시고,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내려오십니다. 그들의 원수의 손에서 건져 내시고, 그들을 아름다운 땅으로 친히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지금도 이와 같이 역사하고 계십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 일을 80대 노인 모세를 통해서 하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사람을 통해 주님의 뜻을 나타내십니다. 모세는 자신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원하는 일을 결코 감당할 수 없다고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말했습니다. 지난 40년 전, 그가 애굽의 왕자로서 젊고, 힘있고, 부유할 때도 이 일은 실패했습니다. 그러니 모세가 볼 때 40년이 지난 지금 늙고, 연약하고, 가난한 지금 그 일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던 것입니다. “제가 도대체 누구라고 바로에게 간다는 말씀이십니까? 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다는 말씀이십니까?”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모세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모세는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제가 무엇이관대 이 일을 하겠습니까?”하고 말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너와 함께하는 나는 누구냐?”라고 대답하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은 나의 힘과 나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연약한 우리는 못해도 전능하신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다 그가 원하시는 바를 능히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 삶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시고,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며, 우리의 근심과 아픔을 알고 계십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해결하시기 위해 직접 오셔서, 구원해 주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해 가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명하십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다시 하나님과 함께 일어나십시오. 주님의 힘과 능력을 붙들고 주를 위해 살아가십시오. 언제나 신실하신 주님과 동행하며 주를 위해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