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8 물에서 구원받은 모세 (출애굽기 2장 1-10절)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며 부르짖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출애굽기 2장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 ‘모세’의 출생 스토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모세는 레위 지파 출신입니다. 오늘날로 비유하면,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난 아들이라고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아들이 태어났으니 얼마나 큰 경사입니까? 그러나 모세의 부모는 태어난 아기가 아들인 것을 알자마자 큰 근심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인즉슨 애굽의 왕 바로가 히브리인이 낳은 아기가 여자인 경우에는 살려 두고, 남자인 경우에는 나일강에 던져버리라고 명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미 이 당시에는 대규모 유아 학살이라는 엄청난 비극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애굽 병사들이 히브리인의 아이가 아들이면 빼앗아 나일강에 던졌습니다. 아들을 잃은 히브리인 부모의 가슴 저린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만일 모세의 부모가 사내아이를 살려 두고 있다가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엄벌에 처하게 될 위험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그 어느 어머니가 자신이 낳은 아이를 쉽게 물 위에 버릴 수 있단 말입니까?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아들을 낳은 후 그를 석 달 동안 숨겨가며 키웠습니다. 아이가 우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밤낮 때를 안 가리고 웁니다. 행여 애굽 병사들이 지나가다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기라도 한다면 온 집안에 화가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모세의 가족이 얼마나 가슴 조리며 석달을 보냈을까요? 그래도 모세의 부모는 사랑하는 피붙이 아들을 절대로 버리지 못하고 꼭꼭 숨겨가며 지난 100일을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아이를 숨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차마 자식을 나일강에 빠트려 죽일 수 없었던 모세의 부모는 궁여지책으로 갈대로 된 바구니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 안에 아기 모세를 담아두고 나일강에 띄어 보냈습니다. 모세의 누나 미리암은 자신의 동생이 어떻게 될까 보고자 하여 멀리서 갈대 바구니를 바라보았습니다.
때마침 애굽의 왕 바로의 딸이 목욕을 하기 위해서 나일강 하수에 내려와 있었던 참이었습니다. 바로의 딸은 갈대상자를 발견하고는 시녀들에게 그것을 가져오라 했습니다. 바구니를 열어보니 그 안에 있던 아기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애굽의 공주는 그 아기가 히브리 사람의 아이인 줄 한 눈에 알아보았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던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바로의 딸 앞에 나왔습니다. “제가 가서, 히브리 여인 가운데서 아기에게 젖을 먹일 유모를 데려다 드릴까요?” 이에 애굽의 공주가 대답하였습니다. “그래, 어서 데려오너라.” 그 말은 듣고 모세의 누나 미리암은 가서 모세의 어머니를 불러왔습니다. 공주가 모세의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이 아이를 데리고 가서, 나를 대신하여 젖을 먹여 다오. 그렇게 하면, 내가 너에게 삯을 주겠다.” 이에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자신이 낳은 아들을 데려다가 젖을 먹이며 아이를 키웠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히브리인 남자 아기가 다 죽어가는 위기 상황 속에서 아기 모세로 하여금 애굽 공주의 양자가 되도록 만드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훗날 모세를 통하여 애굽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공주는 그 아이의 이름을 모세라고 지었습니다. ‘모세’란 이름은,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신묘막측 합니다. 우리 인간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모세의 어머니의 입장이 되어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갈대상자에 떠나 보내며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요? 분명 두 번 다시는 모세를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그녀는 애굽의 공주가 삯을 받아가며, 자신의 아들에게 젖을 먹이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갈대상자에 놓인 모세가 구원받는 이야기는 어쩌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와도 같습니다. 모든 것이 다 끝나버린 것과 같은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여전히 소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지혜와 능력을 뛰어넘어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게벳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애굽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힘없는 여인이 무슨 수로 자기 아들을 구한 단 말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자, 바로의 딸이 직접 삯을 주면서까지 그녀가 낳은 아이를 길러 달라고 손수 부탁을 했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만, 이 날 집으로 돌아간 요게벳은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요? 제가 요게벳이었다면, 내 아들을 살려주시고 나에게 다시 보내주신 하나님이 너무 고마워서 집에 가서 엎드려서 하나님 앞에서 한참을 엉엉 울었을 것 같아요. 우리 삶에 주어지는 예측하지 못한 하나님의 사랑,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일강에 빠져 죽어야 했던 모세가 하나님의 은혜로 물에서 건짐을 받은 것과 같이, 죄로 인해 이 세상에서 죽어야 했던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우리가 바로 또 하나의 모세인 셈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상황이 힘들고 어려워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실패 없이 주님의 구원 역사를 펼쳐가고 계십니다. 모세가 물에서 구원을 받은 것과 같이 우리들도 반드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셨음을 날마다 찬양하며, 역사와 생명의 주인 되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날마다 섬기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