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2 십자가 처형장으로 향하는 예수 (누가복음 23장 26-31절)


빌라도에게 사형을 언도 받은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 처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죄수를 도시 바깥에서 처형하는 것은 유대의 오래된 관습이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사형수를 처형장으로 데리고 갈 때 일부로 지역 주민들이 평상시에도 많이 다니는 길거리를 통과하게 했습니다. 끔찍한 사형수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대중에게 로마제국에 대한 반역 의지를 꺾고 피지배민족에게 공포심을 심어 주려 했던 것이죠.
십자가에 필요한 세로 축은 먼저 처형장에 가 있었고, 가로 축은 사형수가 직접 짊어지고 처형장까지 운반해야 했습니다. 가로축은 그 위에 매달린 죄수의 신체 무게를 견딜만큼 단단하고 무거운 통나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받으신 곳은 ‘해골’이라는 이름을 가진 언덕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골고다’란 이름으로 익숙한 바로 그 언덕으로, 예루살렘 성 밖에 있습니다. ‘골고다’는 그리스말로 ‘해골의 장소’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형수들을 이곳에서 죽였기에 그러한 이름이 붙었던 것입니다. ‘골고다’를 ‘갈보리’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골고다’는 그리스어, ‘갈보리’는 라틴어로 모두 ‘해골’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 다 같은 언덕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해골의 언덕 위에 있는 사형장에 가기 위해서 무거운 통나무를 직접 어깨에 짊어지고 가파른 오르막 길을 가셔야 했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밤새도록 한 숨도 주무시지 못하고 쉼 없이 장소를 옮겨가며 수 차례 심문당하고, 또 여러 사람들에게 녹초가 되도록 조롱과 심한 매질을 당하고, 그 이후 채찍질로 인해 온 몸의 피부가 찢기고 그가 입은 옷은 전부 붉은 피로 물들어 버렸습니다. 주님에게는 무거운 십자가 가로대를 옮길 육체적 체력이 더는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십자가를 지고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지쳐 계셨고, 탈진해 있었습니다.
이에 군인들은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예수님을 대신하여 십자가 가로축을 짊어지게 하였습니다. ‘구레네’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도시로서 오늘날로 말하면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입니다. 신약 시대 당시 이 도시에는 이미 수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구레네 시몬 역시 그곳에서 거주하는 유대인으로써 마침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왔다가 자신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로마 군사들에 의해 예수님께서 지고 가셔야 했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훗날 구레네 시몬의 가족은 모두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의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는 사도 바울의 동역자가 됩니다. 심지어 바울은 구레네 시몬의 아내이자 알렉산더와 루포의 어머니를 가리켜 자신의 어머니라고 부를 정도로 구레네 시몬의 가족은 초대 교회에서 잘 알려진 기둥들이 되었습니다.
역사적 자료를 찾아보면, 이 당시 십자가형을 언도받은 죄수들은 후세 사람들이 ‘비아 돌로로사’라고 부르는 길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비아 돌로로사’는 히브리어로 ‘슬픔의 길’, 고난의 길’, ‘고통스러운 길’이라는 뜻입니다. 지금도 예루살렘을 찾는 수많은 순례자들에게는 기념의 장소입니다. 이 길은 당시 본디오 빌라도가 머물던 총독 관저에서부터 십자가 처형 장소인 골고다 언덕까지 이르는 길로써 그 거리가 약 400-500m 정도 됩니다. 또한 성경학자들에 따르면 십자가의 총 무게는 대략 300 파운드 (136 kg) 정도 됩니다. 그 중 당시 구레네 시몬이 짊어지고 간 가로축 십자가의 무게만 따지면 약 70-90 파운드 (35-40kg) 정도로 예상합니다. 저는 이 장면을 머리 속으로 상상해 보았습니다. 굳이 따지면 성인 남성이 40kg 쌀 한 포대를 지고 약 500m 되는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올라간 것입니다. 분명 땀을 흘릴 정도로 힘든 일이지만,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구레네 시몬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먼 북아프리카의 구레네에서 팔레스틴의 예루살렘까지 찾아올 정도로 독실한 유대인이었습니다. 거리로 따지면, 1750마일 (2820km)이고, 차 타고 가도 32시간 이상 걸리는 엄청난 거리입니다. 이 먼 길을 유월절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 정도의 신앙이라면 구레네는 독실한 유대인임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구레네 시몬은 이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서 이단 취급을 당하고 있었던 나사렛 예수를 대신해서 자신이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투덜거리지는 않았을까요? “아, 재수도 없지 하필 내가 군인들 눈에 띄어 이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나?” 구레네 시몬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짊어지고 간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가 그와 그의 온 가족을 구원할 영광스러운 십자가란 사실을 말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짊어지고 싶어했던 생명의 십자가란 사실을 그는 몰랐습니다.
혹시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 구레네 시몬과 같이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타의로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계신 분은 없습니까? “아, 주님 제가 왜 이 일을 해야 합니까?”하고 내키지 않지만 주의 일을 감당하고 계신 분 있으십니까? 힘들어도 끝까지 그 길을 걸어가십시오. 여러분이 짊어지고 계신 십자가는 고난이 있어도 주님께서 영광의 십자가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사랑과 섬김의 십자가, 수고와 헌신의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영광을 주실 줄 믿습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 골고다 언덕을 향해 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여자들이 예수님 십자가 처형당함을 슬퍼하며 가슴을 치며 주님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돌이키시고 그들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두고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두고 울어라. 보아라, ‘아이를 배지 못하는 여자와, 아이를 낳아 보지 못한 태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되다’ 하고 사람들이 말할 날이 올 것이다. 그 때에, 사람들이 산에다 대고 ‘우리 위에 무너져 내려라’ 하며, 언덕에다 대고 ‘우리를 덮어 버려라’ 하고 말할 것이다. 나무가 푸른 계절에도 사람들이 이렇게 하거든, 하물며 나무가 마른 계절에야 무슨 일이 벌어지겠느냐?” 먼저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딸들을 향하여 십자가에 처형당하러 가는 자신을 위해 울지 말고, 그들 자신과 그들의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앞서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시던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비극적인 운명을 예언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들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그날은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주님의 이 예언은 주후 70년에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멸망시키면서 성취됩니다. 티투스 장군은 예루살렘 성을 공격하는 로마 병사들에게 말하기를 “예루살렘 성에 사람이 한 번도 산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일만큼 철저하게 파괴시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결과 로마 병사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조리 죽였습니다. 아이를 밴 임산부들도 죽였습니다. 젖먹이 아기들도 다 칼에 죽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자가 복되고, 아이를 배지 못하는 여자가 복되다고 말할만큼 끔찍한 대량학살이 예루살렘에서 일어났습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자료에 의하면 로마 군사들의 칼에 죽은 유대인의 숫자만 약 110만명 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칼에 찔려 죽었습니다. 포로가 되어 타국으로 끌려간 노예의 숫자만 약 9만 7천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신 후, 불과 40년 뒤에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사건을 앞서 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오며 울고 있는 예루살렘의 딸들을 향하여, 주님을 위해 울지 말고 그들 자신과 그들의 자녀들을 위해서 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십자가 처형장을 향해 가시는 길에도, 예수님의 마음 속에서는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죽어가는 백성들 생각 뿐이셨습니다. 주님은 진실로 그의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셨습니다.
31절 말씀에 예수님은 자신을 푸른 나무로 비유하시며 ‘푸른 나무와 같이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에게 이와 같이 끔찍한 십자가 처형의 고통이 주어졌다면, 과연 마른 나무와 같이 영적으로 메마르고 불의한 유대 백성들에게는 얼마나 더 잔혹하고 처참한 고통과 죽음이 주어질 것인가‘하고 안타까워하시며 백성들에게 비극과 슬픔이 찾아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푸른 나무는 잘 타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른 나무는 그 안에 수분이 하나도 없기에 순식간에 불에 다 타버립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마른 나무에 대한 예언은 1차적으로는 주후 70년에 임할 예루살렘의 멸망을 가리킵니다. 또한 2차적으로는 앞으로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세상의 종말에 임하게 될 불 심판을 상징합니다. 세상 마지막 날에 유대인들과 같이 그들의 심령이 영적으로 메마른 나무 같은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 아래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구주 예수를 믿는 자들은 생명의 근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수로 말미암아 불 심판도 능히 통과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아무든지 자기를 따르려면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셨으나, 실상 그의 제자들에게 십자가에 메달리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 주신 예수님을 위해 짧은 인생 잠시 십자가를 지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을 위해 살아가십시오. 세상 모든 것은 불 심판으로 다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 살아간 자들은 영광스러운 부활로 주님과 함께 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께 감사하며, 날마다 주를 위해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