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5 안식일 바로잡기 (누가복음 6장 1~11절)


안식일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밀밭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 때 제자들은 이삭을 잘라 비벼 먹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노동이 금지된 안식일에 추수와 탈곡 행위를 했다고 비난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율법을 어긴 것이라 책망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의 행위를 비난한 것은 구약의 율법에 나온 내용이 아니라, 휴대에 유대교에서 추가된 규례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제자들이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다고 정죄하고 있었던 것이죠.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성경에 기록된 다윗의 일화를 언급하셨습니다. 사울 왕을 피해 급하게 도망치던 다윗은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이에 다윗은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장에게 먹을 것이 없는지 물어보았고, 제사장은 율법에 따르면 오직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다윗에게 내어주었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서 바리새인들에게 묻고 계신 것이죠. ‘만일 제자들이 안식일에 손으로 이삭을 잘라먹은 것이 죄라면,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는 빵을 먹은 다윗도 죄를 지은 것 아니냐? 그렇다면 너희는 다윗도 죄인이라고 책망할 수 있느냐?’ 예수님 말씀대로 따지고 보면 다윗은 오직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빵을 먹음으로 율법을 어긴 것이죠. 그러나 아무리 바리새인들이라도 메시아의 모형인 하나님의 사람 다윗을 정죄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5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예수님은 다윗보다 더 높으신 권위를 가지고 계십니다. 허기진 다윗이 제사장에게만 허락된 빵을 먹은 것에 대해서 성경이 죄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예수님은 허기진 제자들이 이삭을 손으로 비벼 먹은 것에 대해서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마치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근본적인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안식일에 대한 예수님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던 바리새인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혹시 또 안식일 규례를 어기지는 않을지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이어지는 본문 역시 안식일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때마침 그곳에 오른손이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7절 말씀을 보니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저 사람을 고치실지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제 바리새인들도 예수님께서 능히 병자를 고치실 것이란 기대를 은근히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의 치유의 능력은 인정하고 있던 것이죠. 다만 저들은 비록 병자를 고치는 좋은 일이라도 예수님께서 그것을 안식일에 일으키시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는 응급 처치만 했고, 실제 치료는 안식일이 지나야 시작할 정도로 안식일 규례를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따라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을 규례를 지키지 않았다는 증거를 잡아 저를 법정에 세우려고 했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속을 훤히 꿰뚫어 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바리새인들의 시선과 판단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손 마른 사람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한 가운데 서라고 하셨습니다. 회당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이 손 마른 사람을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또 다시 치유의 능력을 일으키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먼저 바리새인들에게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9절입니다. “
(눅 6:9)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예수님의 이 물음에 바리새인들은 아무런 말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예수님께서 하고 계시는 일이 옳은 일임을 저들도 부정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안식일에 소가 물에 빠지면 유대인들은 그 소를 구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치려 하시니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이단자요, 죄인으로 정죄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이 안식일이라고 해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 치료하는 일, 회복하는 일을 내일로 미룰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손이 마른 사람에게 “네 손을 내밀어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저 손 마른 사람이 자신의 손을 내밀자 여태까지 펴지지 않았던 구부러진 손이 확 펼쳐졌습니다. 손이 회복된 것입니다. 이 광경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얼마나 놀랐을까요? 탄성을 자아내며 이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손이 펼쳐진 사람도 큰 기쁨에 휩싸여서 환호성을 지르지 않았으까요? 그러나 오직 바리새인들만은 얼굴이 분노로 붉어졌습니다. 11절을 봅시다. “(눅 6:11) 저희는 분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처치할 것을 서로 의논하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사람을 고치고 살리신 일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그 날이 안식일이라는 이유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못 해석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도 이처럼 분노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쉼과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생활은 ‘하루에 성경 몇 장 보느냐, 기도 몇 시간 하느냐? 새벽예배는 나오느냐? 헌금은 잘 하느냐?’과 같이 종교활동이나 규칙 수행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바리새인들이 하던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과 자비로 사람들을 대하셨고,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셨습니다. 나만의 종교의식에 사로잡혀 내 기준과 내 신앙색깔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옆에 있는 다른 성도들을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주님의 사랑과 평강을 누리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을 우리들도 이웃들에게 베풀고 나누어 줌으로써, 저들이 하나님의 참된 안식으로 들어가도록 주님의 마음을 따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