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3 소외를 끝내시는 예수님 (누가복음 5장 12~26절)

예수님 앞에 한 나병환자가 엎드려 있습니다. 그는 간절한 목소리로 예수님께 요청했습니다. “주여, 원하신다면 저를 깨끗하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 12절에 보면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라고 했으니까 지금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 안에 계십니다. 나병은 무서운 전염병입니다. 사람들 가까이에 나가면 돌에 맞아 죽습니다. 이렇게 나병환자가 예수님 계신 마을 안까지 들어왔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병환자는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에게는 예수님께서 나병을 치유하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병환자도 긴장을 놓을 수 없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나병에 걸린 자신을 더럽게 여기시고 멀리 떠나가라고 하신다면, 그는 사람들이 던지는 돌에 맞으며 피를 흘리며 어둠과 절망의 굴 속으로 다시 몸을 숨겨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주변에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은 나병환자의 모습을 보고 있었던 사람들은 마음 졸이며 조마조마 했을 것입니다. 만일 오늘 우리 교회 새벽예배에 코로나에 확진 된 한 성도님께서 오셔서, 코로나가 나을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부탁한다면 교회 안 공기가 긴장감으로 채워져 있지 않겠습니까? ‘목사님도 코로나 옮기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이 있지 않겠습니까? 목회자인 저 역시도 ‘코로나에 걸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염려가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는 백신이라도 있죠, 나병에 걸리면 치유할 방법이 없던 시대입니다. 나병 걸리면 몸이 썩어지고, 피부에서 고름과 짓물이 나고, 그렇게 죽어갑니다. 얼마나 비참한 병입니까? 그러니 제자들도, 사람들도 예수님 앞에 무릎 꿇고 있는 저 나병환자를 끌어다가 옮길 자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아주 놀라운 광경이 벌어집니다. 13절 말씀을 봅시다. “(눅 5:1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영어 성경으로 보니까 “Jesus stretched out his hand and touched him” 예수님께서 손을 쭈뼛쭈뼛하신 것이 아니라, 확 펼치시고 나병환자의 몸에 직접 손을 대주셨습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주변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부정한 자에게 닿은 자는 부정해집니다. 따라서 나병에 걸린 사람의 몸에 손을 얻는다는 것은 그 사람 역시 부정해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게다가 전염성의 위험이 높은 나병으로 인해 나병환자들은 사랑하는 그의 부모도, 형제도, 자녀도 만지지 못했습니다. 나병을 앓은 이후 그 누구도 그의 몸에 손을 댄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된 나병환자에게 주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의 몸에 대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손이 그의 몸에 닿았을 때, 온 몸에서 전율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눅 5:1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문둥병이 곧 떠나니라” 나병환자가 치유되기를 간절히 바랬던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도 그의 삶이 치유되고 완전하게 회복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나병환자의 더러운 몸에 아무도 손대지 않으려 했던 것처럼, 사실 세상 그 누구도 우리들의 인생의 문제에 잘 관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 자기만의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도 바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해결해 줄 시간도 부족할 뿐더러 사실 해결할 능력도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어쩌면 나병이라는 아무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인생의 아픔을 앓고 오랜 세월 끙끙거리며 신음하고 살았을 저 나병환자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아무도 손 대지 않으려는 인생, 아무도 고쳐줄 수 없는 문제를 앓고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비참한 인생의 상황에 봉착해 있다 할지라도, 주님은 우리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니다. 우리 스스로가 삶이 회복되고 치유 받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과 같이, 주님도 우리 삶이 영육으로 강건하고 잘 되기를 바라고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 앞에 엎드린 나병환자처럼 우리가 삶의 문제들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면 주님은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주님 앞에 우리 삶의 모든 문제들을 가져오십시오. 만군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우리 삶에 권능의 손, 치유의 손, 은혜의 손을 뻗어 주시고 우리 인생을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건 이후 ‘문둥병도 능히 고치시더라’하는 소문을 듣고 수많은 병자들과 무리들이 전국 방방곳곳에서부터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1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눅 5:15)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자 하여 모여 오되” 이 때 예수님의 행적을 한 번 살펴봅시다.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나 좀 도와 달라고 찾아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밤낮을 안 가리고 찾아오고, 퇴근 시간도 따로 없으니 세상에 예수님보다 더 바쁜 사람도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때 예수님께서는 뜻 밖의 행적을 보여주십니다. 16절을 봅시다. “(눅 5: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예수님은 자신을 찾는 수많은 무리들을 눈 앞에 두고도, 먼저 기도의 자리를 찾으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일에 치여 하나님과의 교제를 소홀히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기도하지 못하는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 이유가 ‘바빠서’, ‘피곤해서’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가장 바쁘시고 피곤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중요시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가 끝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갑시다. 아무리 바쁘고 피곤한 하루라도 기도 없이 사는 하루가 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한적한 곳, 고요한 곳, 방해받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으로 충만하게 채워지는 저와 여러분이 되야 합니다.
이후에도 예수님은 한 중풍병자를 고치셨습니다. 특별히 그의 병만 고쳐 주신 것이 아니라 그의 죄가 사함 받았음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의사이실 뿐만 아니라 영혼의 의사이십니다. 우리 육체의 질병만 고치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질병인 죄의 문제도 해결해 주십니다. 오늘 이 주님 앞에 나아오십시오. 주님께서 능히 모든 아픔을 고쳐 주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바쁜 이민 생활 가운데 살아가지만,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 한적한 곳에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 우리 삶의 모든 필요와 문제들을 주님께 맡겨 드림으로 주님의 크신 은혜를 공급받는 저와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