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0 선백받은 자, 흩어진 나그네 (배드로전서 1장 1-2절)

서론. 고난 중에 살아가는 자들에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고통은 있습니다. 과연 이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초대교회 당시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당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인이란 이유로 직장을 잃었고, 마을 사람들에게 추방을 당하기도 했고, 심지어 사람들에게 끌려가 폭행을 당하고 사형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환난과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들이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키기가 참으로 힘들어 보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통해서 위로하고, 고난 가운데도 소망을 잃지 않도록 격려합니다. 그 편지가 바로 베드로전서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베드로는 다양한 지역에 흩어져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라는 이처럼 다양한 지역에 살고 있는 성도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사는 지역은 달랐으나, 다들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핍박으로 인해 지친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이들의 영적인 정체성을 가르칩니다.

본론 1. 성도들의 정체성
1) 택하심을 받은 자
첫째로 베드로는 성도들을 향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라고 불렀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삼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고 택함 받은 자들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위대한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죄인들을 사랑하사 친히 우리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택해 주셨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감동입니까?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를 선택하셨을까요? 우리가 남들보다 착해서일까요?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거룩하고 어딘가 잘 나서 뽑아 주실 것일까요? 성경은 구원의 기준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의 미리 아심
성경은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가 택함 받은 이유는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 밖에 모르는 비밀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착하게 살면 천국가고, 악하게 살면 지옥에 간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오랫동안 교회 다니신 분들 가운데도 그렇게 잘 못 생각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성경은 결코 ‘착하게 산 사람이 천국 간다’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누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어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놀랍게도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조차 하나님의 택하심이 있기에 가능했음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즉 눈으로 보면 우리의 의지적 결정으로 예수를 믿은 것 같으나, 그것은 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선행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9-3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구원의 시작이시며 완성자이십니다. 우리가 볼 때는 내가 예수 믿기로 선택해서 구원 받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정하여 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왜 어떤 사람들은 주의 자녀로 불러 주시고, 어떤 사람들은 안 불러 주십니까?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예를 들면, 그릇을 만드는 토기장이가 자기 마음대로 하나는 귀한 그릇으로 만들고, 다른 하나는 천한 그릇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물가에서 약숫물을 담아 마실 쓸 바가지로 만들고, 하나는 일반 가정용 식탁에서 쓸 그릇으로 만들고, 하나는 청와대에서 쓸 귀한 그릇으로 아주 예쁜 무늬도 넣어 만들었습니다.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은 토기장이가 왜 그런 식으로 만드느냐고 비난할 수 없습니다. ‘그릇을 어떻게 만들까?’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토기장이의 마음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주님의 자녀 삼아 주시고 택해 주신 것도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아시고 택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고난 당하는 성도들을 향하여, 이들이 바로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 받은 자들임을 소개합니다.

(2) 성령님의 거룩하게 하심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성령께서 거룩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는 우리 스스로 씻어낼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새롭게 하심, 거룩하게 하심으로만 씻어집니다. 디모데후서 3장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딛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예전에 집안에서 어머님께서 사용하시던 더러워진 걸래를 빨래하시는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걸래는 아무리 수없이 빨아도 걸래입니다. 수건처럼 깨끗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어딘가 더럽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천국 가려면 선행을 하고, 도도 닦고, 좋은 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하는 선행이란 것은 그의 존재가 본질 상 죄인이라는 사실을 바꾸지 못합니다. 마치 걸래를 아무리 빨아도 수건 못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바꾸실 수 있는 분, 우리의 본질적인 죄악을 씻어내시고 새롭게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십니다.
베드로는 성도는 택하심을 받은 자로서 그 안에 성령께서 역사하사 그들의 마음을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여 살아가도록 만드신다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날이 갈수록 거룩한 모습으로 빚어져 변화해가는 현상을 신학적 용어로 ‘성화’라고 부릅니다. 성령께서 날이 갈수록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들을 바꾸어 주십니다.
중고등부 학생들이 얼굴에 나는 여드름이나 피부 트러블 때문에 고민하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요즘 약국에 가면 여드름 없애는 약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바르고 발라도 그 때 뿐이고 또 여드름이 납니다. 사실 얼굴에 나는 피부 트러블은 대부분 피부 자체가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신체 내부적인 원인 때문에 발생합니다. 얼굴뿐만 아니라 몸에 여드름이 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기혈순환에 문제가 있거나, 몸의 내부인 오장육부의 불균형 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혹 변비나 장 건강에 문제가 있어 여드름이 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피부과 가면 바르는 약만 주는 것이 아니라, 장을 치유하도록 약을 줍니다. 속부터 건강하게 관리해야 겉에 보이는 피부도 활짝 달라지는 것이죠
죄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살인, 강간, 도둑질, 사기 그리고 마음에 있는 교만, 미움, 시기, 질투 이러한 죄들을 아무리 뽑아봐도 뽑히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본질 상 나 중심으로 살아가려는 죄의 뿌리가 깊게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선행으로도, 그 어떤 수행으로도 이 죄의 뿌리를 뽑을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으로만 가능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택하심을 받은 백성 안에서는 바로 성령께서 그와 같이 거룩하게 하시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음을 가르칩니다. 우리성도들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제 죄악을 이겨내고 하나님 아버지께 믿음과 순종으로 응답할 수 있는 놀라운 본질적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3) 예수님의 피로 죄를 씻겨 주심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하심 안에서 주님의 자녀로 택하심을 받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게 됩니다. 여기서 ‘피 뿌림’이란 죄인들을 용서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흘리신 피가 우리에게 뿌려졌음을 의미합니다. 레위기 16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씻기 위해서 소와 양 같은 짐승들의 피가 뿌려진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그를 믿고 따르는 백성들의 죄를 씻어 주십니다. “(요일 1:7 후반절)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모든’이란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씻어내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그 어떤 죄라도 예수님 앞에 가지고 나아오면 주님은 능히 씻어 주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예수님께서 구원하시지 못할 죄인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가 나를 돌아볼 때 아무리 더럽고 추악한 죄인처럼 느껴진다 할지라도 예수님 앞에 나가면 능히 그 사람의 모든 죄를 하나도 남김 없이 씻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지는 ‘완벽한 죄 사함’이야말로 바로 택하심을 받은 성도가 하나님께 받은 가장 큰 은혜 중의 은혜요,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이처럼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이야말로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요, 구원받은 자들임을 소개함으로써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이 위로를 받기를 원했습니다.

2) 흩어진 나그네
베드로는 성도들을 향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라고 불렀습니다. 둘째로 베드로는 성도들을 향하여 ‘흩어진 나그네’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나그네’란 단어는 ‘한 지역에 오래 머무르지 아니하고 짧게 머무르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성도가 이 땅에 살고 있으나, 영원히 이 땅에 속해 있지 않은 존재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나그네’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영원히 속한 자들이 아니라, 세상에 잠시 머무르는 영적 나그네들입니다. 만일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인생이 영원할 것인냥 세상을 살아가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잊은 채 이 곳에서의 삶이 영원할 줄로만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최대한으로 이 세상에서 자신의 탐욕을 이루기 위해서 악착같이 재물을 모으고, 더 많이 물질을 쌓아 두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실 때 이 세상에서의 삶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며 재물에 집착하여 살아가는 인생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12장 20-21절 말씀입니다. “(눅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 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삶을 영원한 관점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잠시 머무는 세상에 매여 물질에 사로잡혀 바쁘게 살아가느라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데 소홀한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 세상에서의 삶이 한시적인 것임을 깨닫고 영원한 삶을 위해 준비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참 청제성은 ‘나그네’라고 했습니다. 나그네의 모습을 머리 속으로 그려보십시오. 그는 잠시 이 세상에 머물다가 떠나 갈 사람입니다. 그는 세상에 미련을 갖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재물을 쌓고, 명성을 얻고, 권력의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결코 그의 인생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하나님 나라 백성 답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하며 거기에 자신의 가치관을 맞추어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리적으로는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고 있으나, 실상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을 날마다 준비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결론. 고난 가운데서도 기억해야 할 성도의 정체성
지금 베드로의 편지를 받아 읽고 있는 성도들 중에는 핍박으로 인해 가산을 몰수당한 자들,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린 자들, 자기 자신이 물리적 정신적 폭행과 박해를 받아 고통 당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극심한 고난이 그들의 영혼을 감싸고 있었을까요? 베드로는 고통받는 성도들이 그들의 참 정체성을 잊지 않고 살아가기를 원했습니다. 베드로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택함을 받은 자요 흩어진 나그네들이라 했습니다. 이는 성도가 가진 ‘이중 정체성’을 보여줍니다. 장차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갈 구원받은 영광스러운 자들이지만, 지금 당장은 나그네와 같이 이 세상에서 고난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이 세상에서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어떤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 받은 자들,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아가기에 우리가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 미래에 우리가 받을 구원의 기쁨과 영광은 우리로 하여금 고난을 인내할 힘과 소망을 가져다줍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 나라에 살아갈 거룩한 소망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나그네와 같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