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8 낙심과 좌절의 시간에도 하나님의 계획은 이루어진다 (2) (스가랴 9장 9절)

(설교노트) 20201218 낙담과 좌절의 시간에도 하나님의 계획은 이루어진다 (스가랴 9장 9절)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택한 남 유다는 BC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게 됩니다. 그 후 남 유다를 침공했던 바벨론은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성경에서는 페르시아가 ‘바사’란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무너진 성전을 다시 쌓을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이에 제사장들과 다수의 레위 지파 사람들로 구성된 유다 백성들 약 5만명이 귀환자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귀환자들은 BC 536년에 하나님의 성전 재건 공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희망을 가지고 성전 재건을 시작하지만, 여러가지 어려움에 부딪혀 성전 건설은 2년만에 중단된다. 페르시아에서 포로생활 하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보니 성전은 돌무더기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가뭄 때문에 농작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각자 먹고 살기에 급급하여 공동체 의식은 사라지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외부적으로는 주변 세력들이 성전을 짓는 것을 방해했고, 내부에서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것보다도 자신들의 집을 짓고 먹고 사는 일에 주력했기 때문입니다. 이 당시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 당한 이후이기에, 훼파 된 도시로 돌아온 귀환자들은 집과 논밭, 가축을 키울 울타리를 짓는 등 해야 할 일이 끝이 없었습니다. 이에 성전 재건에 대한 열정은 식어갔고, 삶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그 결과 무려 14이란 긴 세월 동안 성전 재건 공사는 중단되어 버립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이 바로 ‘학개’와 ‘스가랴’입니다. 이 두 선지자들은 귀환자들이 하나님의 성전 재건하는 일에 열정을 내도록 격려했습니다. 학개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성전 재건하는 일을 기뻐하시며, 이 일에 함께하고 계심을 알려주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성전 재건 사역은 단순히 하나의 큰 건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장차 오실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한 귀중한 일이라는 백성들에게 일깨워주었습니다. 스가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짓고 있는 성전을 통해 장차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 말했습니다. 이처럼 스가랴 선지자는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세우는 일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이며, 이 영원한 왕국을 다스리실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백성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도우심, 그리고 학개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의 격려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4년만에 성전 재건을 완성하게 됩니다. 이 당시 귀환자들을 다스리고 있던 총독 스룹바벨의 이름을 따서 이 성전을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BC536년에 성전 재건 공사를 시작해서 BC516년에 완공되었으니 약 20년만에 성전 공사가 끝이 난 셈입니다. 학개 선지자의 글을 보면 성전 완공 이전의 스토리만 담고 있습니다만, 스가랴 선지자의 글을 보면 성전 건축 이후에도 사역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전이 ‘하드웨어’라면, 그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는 ‘소프트웨어’입니다. 이제 성전은 다 지어졌으니, 그 안에서 예배드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준비할 차례인 셈이죠. 스가랴 선지자는 중단 된 성전 재건을 다시 시작하라는 권면을 하는 동시에 성전에서 예배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오실 메시아를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권면했습니다. 그래서 스가랴서를 보면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와 그들의 영적인 삶을 개혁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스가랴서에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많이 등장합니다. 신약에서 약 70회 정도 인용될 정도로 중요한 책입니다.
우리는 지난 번 시간에 스가랴서에 등장하는 8가지 환상들을 각각 살펴보았고, 그 환상들의 의미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가장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6장 9-15절에 나오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대관식 장면도 살펴보았습니다. 본래 대제사장과 왕의 직분이 따로 각각 존재하던 이스라엘에서 종교적 지도자인 대제사장이 행정적 지도자인 왕으로 등극하는 여호수아 대제사장의 모습을 통해서, 훗날 신약 시대와 이 세상에 왕이며 동시에 제사장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Part ③ 7장 1절 ~ 8장 23절 (금식에 관한 질문)
1)백성들의 질문: 금식과 애통을 멈추어도 되는가? (7:1-3) 1-3절
오늘은 우리가 스가랴 7장부터 시작해서 나머지 부분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3절 말씀을 먼저 읽겠습니다. “(슥 7:2) 때에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 종자를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슥 7:3)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여러 해 동안에 행한 대로 오월간에 울며 재계하리이까 하매” BC586년에 남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 없어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너진 성전에 대해서 애통하며 금식을 시작했습니다. 그 기간이 벌써 70년이나 됩니다. 70년 동안 쉬지 않고 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진 것을 가슴 아파하며 금식하며 애통했는데, 이제 스룹바벨 성전이 완공된 것입니다. 이에 백성들은 스가랴 선지자에게 물었습니다. “새로운 성전이 완공 되었으니, 이제 우리가 여러 해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던 것을 멈추어도 되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질문에 스가랴 7장 5절에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슥 7:5)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70년 동안 이어진 금식과 애통은 하나님을 향한 진심 어린 마음은 빠진 형식만 남은 금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짓으로 울고, 회개하는 척하며 금식하는 것은 별로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이 공정하게 재판하고, 서로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과부, 고아, 나그네, 가난한 사회적 약자들을 억누르지 말고, 서로 폭력을 일삼는 등 해치려는 악한 마음을 버리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경건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이와 같이 살아가라고 거듭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등을 돌리고 듣기 싫어 귀를 막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선지자들에게 주의 영을 부어주시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을 가르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듣지 않았고, 그래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큰 노를 발하시고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황폐해지고 예루살렘은 불타버렸고, 백성들은 타국에 전쟁 노예로 팔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말씀을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백성들에게 들려주심으로써, 그들이 조상들이 저질렀던 잘못과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경고하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사회의 모습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시 백성들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계속해서 금식해야 합니까? 애통해야 합니까?’에 대해서 “하나님은 공의를 행하고, 서로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어라.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잘 듣고 그에 순종해서 살아가라”고 대답해 주신 것입니다. 금식일을 선포하고 애통하는 척하는 퍼포먼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8장으로 넘어가서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을 그가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사랑 고백을 하셨습니다. 스가랴서 8장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슥 8:1)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슥 8:2)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 여기서 ‘크게 질투한다’라는 말을 새번역성경은 ‘열렬리 사랑한다’라고 해석했습니다. 2절에서 시온은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시온을 매우 사랑하십니다. 시온을 공격하는 사람에게 불 같이 화를 낼 만큼 그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은 황폐한 땅이 되어버린 예루살렘을 다시 회복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3절을 봅시다. “(슥 8: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왔은즉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 스가랴서 8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회복하시는 것이 단순히 옛날 바벨론에게 멸망 당하기 이전의 모습 정도가 아닙니다. 동방과 서방에서 사람들이 수많은 민족들과 강대국들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몰려오게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22-2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슥 8:22)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슥 8:23)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이와 같이 지금은 황무지 같은 예루살렘이지만,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서 돌아온 주의 백성들과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세상 모든 열방이 예루살렘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사모 할만큼 이 도시는 위대한 곳으로 변화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좋은 소식입니까? 그렇다면 70년 전에 성전이 무너짐으로 인하여 시작되어 지금까지 내려온 금식과 애통하는 종교행위를 지속할 필요가 있을까요? 없는 것이죠. 스가랴 18-19절 말씀을 봅시다. “(슥 8:18)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슥 8:1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과 시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찌니라” 참 이스라엘 백성들 금식도 많이 했지요? 그만큼 나라를 잃은 슬픔이 어마어마 했다는 것입니다. 성전이 이방민족에 의해 불타 없어졌다는 것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존심도 많이 상했고, 큰 수치를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새롭게 건축한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너희의 애통하던 날들이 변화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될 것이다! 이제는 금식하던 절기가 희락의 절기, 기쁘고 즐겁고 유쾌한 절기가 될 것이다!”하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가고 서로 하나님 앞에서 사랑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가랴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준비가 된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인가?”하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Part ④ 9장 1절 ~ 14장 21절 (메시아 나라의 모습)
9장으로 넘어가면 하나님께서 열방들을 심판하시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9장 1-8절까지 기록된 나라들은 이스라엘 동서남북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근접국가들로 이스라엘을 계속해서 괴롭혀오던 나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핍박하고 조롱하던 열방들을 모두 심판하십니다.

1) 장차 오실 메시아 왕 (9-10장)
그리고 9장 9절에서 메시아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것이란 예언을 기록합니다. 9-1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슥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슥 9: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스가랴 선지자는 나귀를 타고 오는 왕이 통치하는 범위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땅 끝까지 미친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스가랴가 예언한 내용이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들어오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모습을 보고 스가랴 말씀을 떠올리면서 얼마나 감격했을까요? 또한 그 영원한 구원자요 왕이라 믿고 따르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처형당하시는 모습을 보며 군중들은 얼마나 큰 실망과 좌절을 경험했을까요?

2) 자신의 백성들에게 거절당하는 목자 (11장)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는 메시아가 그의 백성들에게 배척당하고 심지어 팔리는 장면까지 구체적으로 다 예언되어 있습니다. 스가랴 11장 12절을 봅시다. “(슥 11:12)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 하나님께서 그의 양 떼들을 위해서 선한 목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양 떼들은 선한 목자의 품삯으로 은 30개를 주었습니다. 은 30냥의 가치는 소에 받쳐 죽은 노예 한 사람의 목숨을 대신할 정도로 매우 작은 액수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은총으로 돌보았건만 양 떼들이 선한 목자를 따르지 않고 그를 버리고 거짓 목자들을 따라갑니다.
훗날 이러한 스가랴서의 말씀은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을 그의 양무리에 있던 제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대제사장에게 은 30냥에 팔아넘김으로써 그대로 성취됩니다. 그러나 후에 가룟 유다는 죄 없는 자신의 스승 예수님께서 총독 빌라도에게 끌려 가서 심문 당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몸 값으로 받았던 은 30냥을 대제사장에게 도로 돌려주려고 찾아갑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그 돈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자 유다는 은 30냥을 성소에 던져버리고는 목매달라 삶을 마감합니다. 한편 유다가 성전에 던지고 간 은 30냥을 대제사장들이 거두게 됩니다. 과연 대제사장들은 이 돈으로 무엇을 했을까요? 토기장이가 소유한 밭을 하나 사서 가족과 친치 없는 나그네들을 묻어주는 데 쓰려고 묘지로 삼게 됩니다. 마태복음 27장 3-8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마 27:3)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마 27:4)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마 27: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마 27:6)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가로되 이것은 피 값이라 성전고에 넣어둠이 옳지 않다 하고 (마 27:7)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마 27:8)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역사적 사건들이 이미 예수님 탄생 약 500년 전에 기록된 스가랴서에 다 구체적으로 예언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은 30냥에 팔리실 것은 앞서 스가랴서 11장 12절에서 보았습니다. 이제 스가랴서 11장 13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슥 11:1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바 그 준가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이처럼 스가랴서는 예수님께서 얼마에 팔리실지, 그 팔리운 돈이 어디에 사용될지까지도 상세하게 예언 되어 있었고, 역사는 말씀대로 펼쳐지게 됩니다.

3) 모든 악과 불순종이 제거된 새예루살렘 (12장):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한 군병이 그가 죽었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 창으로 그의 옆구리를 찌릅니다. 본래 십자가에 달린 죄수들이 빨리 죽게 하기 위해서 그들의 다리 뼈를 부러트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극심한 고통으로 예상 시간보다 빨리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가 죽었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 다리의 뼈를 부러뜨리지 않고, 창을 찔러본 것이죠. 이러한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스가랴서 12장 10절 말씀의 성취입니다. (로마 병사들이 예수님의 뼈를 꺾지 않는 것은 ‘시 34:20’ 말씀의 성취다. “그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이 말씀이 요한복음 19장에서 어떻게 인용되고 있는지 함께 보겠습니다. “(요 19:33)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요 19:34)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요 19:35)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요 19:36)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요 19:37) 또 다른 성경에 저희가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마지막 37절에 나오는 ‘찌른 자를 보리라’가 바로 스가랴 12장 10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4) 생명수가 흐르는 새예루살렘 (14장):
전체적으로 스갸라 12-14장은 메시아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에 대한 모습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가 되면 하나님의 공의가 마침내 모든 민족의 악을 대적하고 물리치십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고 그 이름만 높임을 받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님의 영을 부어 주셔서 백성들에 안에 있는 불순종의 죄를 회개하게 하십니다. 메시아께서 다스리시는 새 예루살렘은 모든 민족들이 모이는 장소가 됩니다. 새 예루살렘, 새 에덴이라고도 불리며, 그 곳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도 전혀 없고, 죄도, 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20-2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슥 14:20)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슥 14:21)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취하여 그 가운데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새 예루살렘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며 모든 죄악을 제거하셨기 때문에, 그 도시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성물이며, 오직 여호와를 향한 거룩만이 남아 있습니다. 메시아를 대적하는 세력들은 단 한 사람도 들어오지 못합니다. 새 예루살렘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강은 모든 피조물의 치유를 가져줍니다(8절). 이는 요한계시록에서 나타나는 구원받은 주의 백성들이 들어가게 될 새 예루살렘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70년간의 긴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가뭄 같은 고된 현실 문제들로 가로 막혀 성전 공사는 15년간 중단됩니다. 그 후 학개,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격려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드디어 성전 재건에 박차를 가하게 되고, 돌아온 지 20년 만에 성전을 건축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스가랴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백성의 모습으로 거룩하게 살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그리할 때 메시아의 통치가 백성들의 삶에 나타날 것이고, 그들의 모든 죄가 용서받고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 하나님과 영원토록 살게 될 것을 보여줍니다. 이 모든 말씀이 사실 다 우리들에게 해당되는 말씀 아닙니까? 우리들은 모두 교회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성령님의 말씀에 따라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가십시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서 살아가고, 마침내 임하실 주님의 나라를 소망하십시오. 우리 모든 죄는 예수로 인하여 사함 받고, 마침내 새 예루살렘 저 천국에 들어가서 생명수를 마시며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