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0 앗수르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나훔 1장 15절)

(설교노트) 20201113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나훔 1장 15절)

우리는 지난 주 금요일 구약성경의 열두개의 소선지서 중 하나인 나훔서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에 들어가기 앞서 지난주에 나눈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겠습니다. 나훔서의 핵심 내용은 이스라엘의 원수였던 앗수르 제국의 심판과 멸망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나훔이란 이름은 ‘위로’ 혹은 ‘위로자’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지자의 이름과 같이,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을 못살게 괴롭히고 억압하던 원수 앗수르에게 하나님께서 앞으로 내리실 심판과 멸망의 메시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습니다.
나훔보다 약 130년 전, 선지자 요나도 앗수르 제국에 가서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요나서에는 앗수르에게 회개하라는 메시지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앗수르가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리실 심판을 돌이키시겠다는 말씀이 함께 선포되었습니다. 그러나 나훔서에는 앗수르를 향하여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가 없고, 오직 심판의 메시지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가 닫힌 것입니다. 선지자 나훔은 니느웨가 저지른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죄악들로 인해 그들의 멸망이 불가피함을 선포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들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분명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지만 영원히 참으시는 분은 아닙니다. 정의로우신 하나님은 절대로 죄를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동시에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나훔은 바로 이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죄악이 범람하는 앗수르와 그 수도 니느웨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선포했습니다. 오래된 원수요 민족의 압제자인 니느웨의 멸망 메시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아름다운 소식이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즉 복음이었습니다. 나훔서를 읽을 때마다 우리는 사단과 그의 졸개들로 이루어진 모든 원수들을 물리치시고, 이 세상의 모든 악의 세력을 꺾으시고 마침내 정의를 완성하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이 책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원수인 앗수르에 대한 심판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하는 모든 오만하고 폭력적인 세력들을 영원히 용인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또한 모든 시대의 폭력적이고 오만한 세력들과 사람들을 꺾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켜 줍니다. 나훔서는 악한 원수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이 신실하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남은 자들에게는 기쁜 소식임을 보여줍니다.

2장 니느웨의 멸망을 생생하게 묘사
1) 최전선에 선 바벨론 군대
이제 2장으로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의 원수 국가 앗수르가 어떻게 멸망하게 되는지 그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줍니다. 먼저 앗수르 제국이 얼마나 큰 제국인지 보면, 동쪽으로는 인도, 남쪽으로는 아라비아 북쪽으로는 러시아, 서쪽으로는 이집트까지 뻗은 거대 제국입니다. 그러니 이 엄청난 제국의 수도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 성은 또 얼마나 거대했겠습니까? 성벽 길이만 13km, 8마일입니다. (교회에서 황대감 식당까지 거리와 비슷합니다.) 성벽의 높이가 60m다. 아파트 20층 정도 되는 높이입니다. 성벽두께는 마차가 3대 나란히 달릴 수 있을 정도의 넓이 입니다. 5개의 성벽으로 되어 있고, 심지어 성벽 주변에는 적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인공호수가 깔려 있습니다. 이런 거대 제국의 수도에 사는 사람들이니 앗수르가 멸망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앗수르 사람들은 자신들을 절대로 멸망할 리 없다고 생각하며 교만했고, 앗수르가 영원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바로 이 거대제국의 수도 니느웨를 치는 장면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머리 속에 이런 장면을 상상하며 그려보십시오. 끝을 알 수 없는 크고 웅장한 성이 있습니다. 도저히 아무도 쳐들어오지 못할 것 같은 그 성 앞에 아무도 셀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군대가 서 있는 모습입니다.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 성을 공격하기 위해서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오고 있는 장면입니다. 나훔서 2장 1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나 2:1) 파괴하는 자가 너를 치러 올라왔나니 너는 산성을 지키며 길을 파수하며 네 허리를 견고히 묶고 네 힘을 크게 굳게 할지어다” 이미 수도가 적들에게 공격당하고 있는 모습부터 앗수르의 국경이 뚫렸고, 군사력에서 밀리고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누가 감히 과연 저 거대한 앗수르 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치르려 했던 것일까요? 바로 신흥국가 ‘바벨론’입니다. 본래 바벨론은 이 전쟁에서 메대라는 나라와 손을 잡고 연합군을 형성합니다. 바벨론-메데 연합군에 앗수르 군사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습니다. 영원할 것 같던 제국의 국경이 뚫리고 이제는 수도 니느웨 앞에 저 군대가 서 있는 것입니다. 2장 1절은 자신들은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교만하게 살아가던 앗수르 사람들에 대한 선지자 나훔의 조롱과도 같습니다. “앗수르야! 니느웨야! 너를 파괴하는 자가 너를 치러 올라왔다. 너 어디 한 번 성을 잘 지켜봐라. 허리띠 안 풀리게 단단히 매고 한 번 싸워봐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대목을 읽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원수 앗수르를 무너뜨리는 장면을 보며 얼마나 통쾌 했겠습니까?
원수 앗수르의 멸망은 곧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2절을 보면 앗수르의 멸망 때 맞물려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나 2:2)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회복하시되 이스라엘의 영광 같게 하시나니 이는 약탈자들이 약탈하였고 또 그 포도나무 가지를 없이 하였음이라” 앗수르의 멸망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원수 앗수르가 멸망해야 이스라엘이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미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한 때는 앗수르가 남유다에도 쳐들어와, 남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 성을 둘러쌌습니다. 성이 언제 함락될지 몰라 남 유다의 히스기야 왕도 조마조마 했습니다. 모든 대신들도 숨을 죽이고 지켜봤습니다. 잔인하기로 유명한 앗수르 사람들이라 항복하면 대부분 죽게 됩니다. 그러니 항복할 수도 없습니다. 싸워도 죽음, 항복해도 죽음인 상황이었습니다. 그처럼 이스라엘을 땅에서 쓸어버릴 정도로 위협적인 존재였는데, 그 앗수르가 이제는 적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수도 니느웨 성이 엄청난 군대에게 둘러 쌓여 있는 것입니다.
니느웨 성을 둘러쌓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을 봅시다. “(나 2:3) 그의 용사들의 방패는 붉고 그의 무사들의 옷도 붉으며 그 항오를 벌이는 날에 병거의 철이 번쩍이고 노송나무 창이 요동하는도다” 전쟁 시 가장 중요한 것 중 한 가지가 피아식별(적과 아군을 식별하는 것)입니다. 적인지 아군인지 식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입니까? 옷 색깔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앗수르 군대의 군복은 청색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3절을 보니 니느웨 성을 치러 온 바벨론-메대 군사들의 색깔이 어떻습니까? 방패도 붉은 색, 군복도 붉은색입니다. 바벨론 군사들은 속도가 빠른 철병거를 타고 왔으며, 셀 수 없이 많은 군사들이 서로 사기를 북돋우며 전의를 불태우기 위해 손에 들고 있는 창을 흔들고 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피와 같은 붉은 색 옷을 입은 바벨론-메대 군사들이 성 밖에 진열하고 있는 것을 보고 큰 두려움에 빠졌을 것입니다.

2) 거리를 휩쓰는 병거들
4절부터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됩니다. “(나 2:4) 그 병거는 거리에 미치게 달리며 대로에서 이리 저리 빨리 가니 그 모양이 횃불 같고 빠르기 번개 같도다” 바벨론 군사의 철병거들이 거리에서 앗수르 병사들을 죽이고, 니느웨 병사들에게로 돌진하여 번개같이 진영을 휘젓고 다닙니다. 5절을 보면 “그들이 엎드러짓 듯이 달려서 급히 성에 이르러 막을 것을 예비하도다”했습니다. 즉 바벨롬-메대 연합군의 공격에 와르르 무너진 니느웨 병사들은 넘어질듯이 퇴격하며 이제 최후의 보루인 성벽을 방어하기 위해 태세를 갖춥니다.

3) 무너진 성벽으로 혼란에 빠진 도시
그러나 결국 그 성벽도 무너지게 됩니다. 6절에 드디어 성문이 열립니다. “(나 2:6)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소멸되며” 강들의 수문이 열린다는 말은니느웨 성벽을 둘러싸고 있는 호수(해자)를 건너도록 문이 열렸다는 말입니다. 이후 성벽이 뚫림으로 무차별적이고 일방적인 살육이 이어집니다. 선지자 나훔은 이를 왕궁이 아예 소멸된다고 표현했습니다. 7절을 봅시다. “(나 2:7) 정명대로 왕후가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가며 그 모든 시녀가 가슴을 치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우는도다“ ‘정명대로’라는 말은 ‘이미 정해진대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심판하시기 위해 정해 놓으신 대로 왕비가 벌거벗겨져 포로로 끌려갑니다. 뒤에서 왕비의 시녀들이 비둘기 울음소리처럼 구슬프게 울며 가슴을 치고 있습니다. 앗수르의 왕비가 나체로 적국에게 비참하게 끌려가는 장면은 앗수르의 완전한 멸망과 수치를 의미합니다.

4) 니느웨 사람들이 학살되고 도시가 약탈당함
니느웨 성을 가득 채운 살육이 끝나자 이제는 군인들이 도시 전체를 약탈하기 시작합니다. 8-9절을 봅시다. “(나 2:8)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못 같더니 이제 모두 도망하니 서라 서라 하나 돌아보는 자가 없도다 (나 2:9) 은을 노략하라 금을 늑탈하라 그 저축한 것이 무한하고 아름다운 기구가 풍부함이니라” 8절에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못 같다”는 말은 니느웨가 과거에 누린 풍요로운 모습을 상징합니다. 모든 물이 바다나 호수로 모이는 것같이, 세상의 모든 부귀가 니느웨에 집결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니느웨가 멸망하자 다들 자신들의 삶의 터전도 버린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고 있습니다. “서라! 서라”해도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뿔뿔이 흩어지며 도망친다. 9절을 봅시다. 병사들이 은이고 금이고 니느웨 사람들이 모아둔 막대한 재물을 다 훔쳐갑니다. 이 때 니느웨 사람들 표정을 한 번 볼까요? 10절입니다. “(나 2:10) 니느웨가 공허하였고 황무하였도다 거민이 낙담하여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히며 모든 허리가 아프게 되며 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 풍요로웠던 거리에 시체가 굴러다니고 있고, 성문은 불타고 있고, 모든 것을 약탈당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는 니느웨 사람들 무릎은 서로 떨다가 부딪치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습니다.
미국을 상징하는 동물은 독수리입니다. 앗수르를 상징하는 동물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자입니다. 11-13절 말씀을 봅시다. “(나 2:11) 이제 사자의 굴이 어디뇨 젊은 사자의 먹는 곳이 어디뇨 전에는 수사자 암사자가 그 새끼 사자와 함께 거기서 다니되 그것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었으며(나 2:12) 수사자가 그 새끼를 위하여 식물을 충분히 찢고 그 암사자를 위하여 무엇을 움켜서는 취한 것으로 그 굴에 채웠고 찢은 것으로 그 구멍에 채웠었도다 (나 2:13)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너의 병거들을 살라 연기가 되게 하고 너의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내가 또 너의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너의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사자는 앗수르를 상징합니다. 앗수르 왕들은 자신들을 용맹하고, 민첩하고, 힘이 센 사자로 비유했습니다. 실제로 동물의 세계에서 사자를 누가 상대해 이기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사자 같은 앗수르를 완전히 멸하여 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지 못할 나라는 없습니다.

3장 앗수르의 멸망을 묘사
1) 거짓말, 약탈, 노략질이 사라지지 않는 피의 성 니느웨에 화가 임함 (3:1-3)
3장에서는 왜 앗수르가 멸망할 수 밖에 없었는지 죄를 고발하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앗수르가 어떻게 멸망했는지 그 최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1절을 봅시다. “(나 3:1) 화 있을진저 피 성이여 그 속에서는 궤휼과 강포가 가득하며 늑탈이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심판하신 이유는 앗수르가 너무나 잔인하고 포학하기 때문입니다. 거짓, 포악, 탈취로 악명높았습니다. (피부를 벗겨 성벽에 바르고, 사람 머리통을 모아 기둥 만들고, 얼굴과 신체의 일부를 자르고, 내장과 식도를 꺼내서 길을 덮는 등 야만적이고 잔인한 행위를 하며 통치했습니다.) 고대 중방지방에서 얼마나 잔인하게 행했는지, 그 성의 별명이 ‘피의 성’입니다.
2-3절은 앗수르가 멸망하는 광경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나 3:2) 휙휙하는 채찍 소리, 굉굉하는 병거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나 3:3)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살륙 당한 떼, 큰 무더기 주검,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2절에 채찍 소리, 바퀴 흔들리는 소리, 달리는 말, 거침없이 달려오는 전차와 같이 전쟁에 대한 묘사를 보여줍니다. 3절을 보십시요. “돌격하는 기마병, 번쩍이는 칼과 번개같이 빛이 나는 창, 죽은 사람들과 시체 더미, 수없이 많은 시체들! 그리고 사람들은 시체에 걸려 넘어진다.” 이처럼 나훔은 생동감 넘치는 묘사를 통해 앗수르의 최후를 보여줍니다. 지금까지 열방의 많은 도시들을 피로 물들이고, 시체를 더미로 쌓아놓고 자랑했던 앗수르…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자기들이 한 일을 똑같이 고스란히 당하게 됩니다. 심판 때에는 니느웨에서는 시체에 걸려 넘어지지 아니하고서는 거리를 다니지 않을 수 없을만큼 멸망하게 됩니다.

2) 앗수르가 수치를 당하게 되지만 구원할 자(위로할 자)가 없음 (3:4-7)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심판하시며 그들로 하여금 수치와 조롱을 당하게 하십니다. 5-6절입니다. “(나 3:5)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서 네 치마를 걷어쳐 네 얼굴에 이르게 하고 네 벌거벗은 것을 열국에 보이며 네 부끄러운 곳을 열방에 보일 것이요 (나 3:6) 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로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니” 고대사회에서는 매춘부에게 벌을 줄 때, 공개적으로 벌거벗겨 창피를 주었습니다. 이러한 매춘부를 향한 풍습처럼 우상을 섬기며 영적 간음을 저지른 앗수르가 멸망할 때는 열방의 모든 나라들이 다 알 수 있도록 앗수르의 치부를 보여주고 그들이 멸망하는 것을 보이십니다.
아무도 앗수르가 멸망하는 것에 대해서, 수도 니느웨 성이 불타 없어지는 것에 대해서 슬퍼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들을 위로하는 사람도 없고, 그들을 구원할 자도 없습니다. 7절에 나훔 선지자의 외침을 들어보십시오. “(나 3:7) 그 때에 너를 보는 자가 다 네게서 도망하며 이르기를 니느웨가 황무하였도다 누가 위하여 애곡하며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할 자를 구하리요 하리라 하시도다”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앗수르를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다. 특별히 여기 너를 ‘위로할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선지자 ‘나훔’의 이름 뜻이 ‘위로자’입니다. 앗수르에게는 ‘나훔’이 없다 즉 위로자가 없다는 언어유희가 됩니다. 이는 또한 원수 앗수르를 심판하시고 멸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참된 위로자 되심을 선포하는 역할을 합니다.

3) 앗수르의 강력한 군대도 큰 성읍도 쓸모 없게 됨 (3:8-17)
8-11절을 봅시다. “(나 3:8) 네가 어찌 노아몬보다 낫겠느냐 그는 강들 사이에 있으므로 물이 둘렸으니 바다가 성루가 되었고 바다가 성벽이 되었으며 (나 3:9) 구스와 애굽이 그 힘이 되어 한이 없었고 붓과 루빔이 그의 돕는 자가 되었으나 (나3 3:10) 그가 포로가 되어 사로잡혀 갔고 그 어린 아이들은 길 모퉁이 모퉁이에 메어침을 당하여 부숴졌으며 그 존귀한 자들은 제비 뽑혀 나뉘었고 그 모든 대인은 사슬에 결박되었나니 (나 3:11) 너도 취한바 되어 숨으리라 너도 대적을 인하여 피난처를 찾아보리라” ‘노아몬’은 고대 이집트의 도시 이름입니다. 호수로 둘러 쌓여 있어 섬과 같은 천연의 요새요, ‘난공불락’의 성이었습니다. 1400년을 버틴 도시입니다. 그 위대한 성을 다름아닌 앗수르가 멸망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를 향하여 “너희들도 너희가 멸망시킨 노아몬과 똑같이 망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니느웨는 현재 폐허로 변해버렸습니다. 도시가 자취도 없어 사라져 지난 1842년 고고학자들의 발굴을 통해서야 비로서 그 성벽의 크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12절 봅시다. “(나 3:12) 너의 모든 산성은 무화과나무의 처음 익은 열매가 흔들기만 하면 먹는 자의 입에 떨어짐과 같으리라” 앗수르 군대가 얼마나 힘을 잃었는지 이제는 나무를 살짝만 흔들기만 해도 땅에 떨어지는 무화과 나무처럼 떨어집니다. 앗수르 군대가 천하무적 같았습니다만, 이제는 13절에 망하는 모습을 보니 장정들이 힘없는 여성들과 같다고 합니다. 성문은 이미 적에게 활짝 열려 적군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14절은 선지자 나훔이 앗수르를 조롱하는 목소리입니다. “(나 3:14) 너는 물을 길어 에워싸일 것을 예비하며 너의 산성들을 견고케 하며 진흙에 들어가서 흙을 밟아 벽돌 가마를 수리하라” “앗수르야 너 물 좀 많이 비축해서 포위될 때 오래 살아남고 잘 버텨봐라! 성벽을 더 튼튼히 쌓아서 잘 견뎌봐라.” 선지자는 아무리 그렇게 한다한들 하나님의 심판 앞에 모두 다 무용지물이 되고 반드시 그들이 멸망할 것이라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치명상을 입은 앗수르 왕을 향한 조롱함 (3:18-19)
18-19절은 앗수르 왕에 대한 조롱입니다. “(나 3:18) 앗수르 왕이여 네 목자가 자고 네 귀족은 누워 쉬며 네 백성은 산들에 흩어지나 그들을 모을 사람이 없도다 (나 3:19) 너의 다친 것은 고칠 수 없고 네 상처는 중하도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인하여 손뼉을 치나니 이는 네 악행을 늘 받지 않은 자가 없음이 아니냐” 이는 앗수르 왕에 대한 조롱이다. 왕을 지킬 사람이 없습니다. 백성들은 다 뿔뿔이 흩어지거나 이미 죽었습니다. 역사 속 앗수르라는 나라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되고, 앗수르에게 잔인한 일을 당했던 사람들은 이제 저 나라가 멸망하는 모습을 보고 손뼉을 치며 기뻐합니다. 나훔서의 결말에 나오는 앗수르의 멸망과 앗수르 왕의 조롱당하는 모습은 실상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의 나라가 멸망하는 것과 원수 사단이 수치와 조롱을 당하며 완전하게 패배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는 하나님 백성들에게는 큰 기쁨의 소식이자, 커다란 위로가 됩니다. ‘나훔’은 이름의 뜻과 같이 원수의 멸망 소식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위로’를 전해줍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참 된 위로자’ 되심을 선포합니다. 주님과 원수를 맺는 사람들을 결국 다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편에 끝까지 서 있는 자는 반드시 큰 위로를 받게 됩니다.

댓글이 닫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