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3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나훔 1장 15절)

(설교노트) 20201113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나훔 1장 15절)

● 저자:
나훔서 1장 1절을 보면 나훔서의 저자가 누구인지 보여줍니다. “(나 1:1) 니느웨에 대한 중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저자는 ‘엘고스 사람 나훔’입니다. 성경에는 엘고스가 어디인지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엘고스가 정확하게 어느 지역인지 알지 못합니다. 또한 이 부분 외에는 저자 나훔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훔이 어떤 사람인지 자세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의 이름 ‘나훔’의 뜻은 ‘위로자’ 또는 ‘위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을 읽어보면 전혀 위로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니느웨에 대한 심판과 멸망의 메시지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로라는 의미의 선지자 이름과 심판의 메시지가 역설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무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오랜 세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혀왔던 원수 앗수르의 몰락과 멸망에 대한 예언 메시지는 분명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를 오랫동안 괴롭히던 일제 치하 시대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사건이나, 일본의 멸망의 메시지가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독립에 대한 기대로 인한 위로와 기쁨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진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훔서 3장 7절을 봅시다. “(나 3:7) 그 때에 너를 보는 자가 다 네게서 도망하며 이르기를 니느웨가 황무하였도다 누가 위하여 애곡하며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할 자를 구하리요 하리라 하시도다” 멸망하는 앗수르를 보며 애곡하며 “니느웨가 폐허가 되었다. 이를 어찌할꼬?”하고 슬프게 눈물 흘릴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 누구도 앗수르가 멸망하는 모습을 보며 슬퍼하거나 그를 위로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앞서 선지자 나훔의 이름의 뜻이 ‘위로자’라고 했지요? 7절을 다시 보십시오. 말씀 중반에 ‘위로할 자’란 단어가 나옵니다. 즉 앗수르를 향하여 “너에게는 멸망 가운데 너를 위로할 자, 즉 나훔이 없구나?”하고 선지자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뒤집어서 말하면 “우리에게는 나훔, 즉 위로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셔!”하고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위로’란 뜻의 이름을 가진 선지자 ‘나훔’과 이스라엘의 압제자 앗수르의 멸망이 하나의 메시지로 이어집니다. 오랜 원수 앗수르의 심판은 곧 이스라엘에게는 큰 기쁨이고 위로인 것입니다.

● 기록연대:
이 책은 주전 7세기, 정확하게는 주전 620년경 즈음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따가 다시 보겠습니다만 나훔서 3장 8절을 보면 애굽의 도시 중 하나인 ‘노아몬’이란 곳이 멸망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주전 663년경에 일어났습니다. 따라서 나훔서는 주전 663년 이후에 기록된 책입니다. 또한 나훔서가 예언하고 있는 니느웨의 몰락은 주전 612년에 일어납니다. 따라서 이 책은 주전 663년과 주전 612년 사이에 기록되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그와 함께 사역했던 선지자가 바로 예레미야와 스바냐 입니다.

● 시대상황:
선지자 나훔이 활동하기 약 130여 년 전, 선지자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니느웨에 가서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40일 뒤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 때 니느웨에서는 도시 전체가 철저하게 죄를 회개하는 일이 벌어졌고, 그 결과로 하나님은 니느웨를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신 계획을 철회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시간이 흘러 약 한 세기가 지났습니다. 나훔이 활동할 당시 니느웨는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렸고, 또 다시 죄악이 가득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선지자 나훔을 통해 니느웨를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서와 나훔서의 공통점은 둘 다 니느웨를 향한 예언이란 점입니다. 그러나 두 선지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요나서에서는 니느웨를 향한 심판과 회개의 메시지가 함께 주어진 반면에, 나훔서는 오직 심판의 메시지만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지자 나훔은 니느웨가 저지른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죄악들로 인해 그들의 멸망이 불가피함을 선포했습니다.
● 핵심메시지:
거대 제국이었던 앗수르는 막강한 군사력과 막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무려 1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을 괴롭혀 왔습니다. 앗수르 사람들은 매우 잔인했습니다. 기록을 살펴보면, 이들은 정복지에 반역의 의지를 원천부터 꺾어 버리고, 다른 민족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고자 전쟁 시 적의 피부를 벗겨 성벽에 붙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머리를 잘라 피라미드처럼 높게 쌓았습니다. 말뚝을 가지고 사람 위에 올려놓고 망치로 찍어서 사람을 죽였습니다. 죽은 병사들의 시체로 높은 더미를 쌓아 놓고 자랑했습니다. 얼굴과 신체의 일부를 잘라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게 했고, 때로는 남편의 머리를 잘라 아내가 들고 행진하게 했으며, 또한 아버지의 머리를 잘라 자녀들이 들고 거리를 돌게 함으로써 지배국가와 민족에게 반역을 저지를 수 없도록 엄청난 공포심을 심어주고자 했습니다. 이 앗수르 사람들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그들의 수도 니느웨의 별명이 ‘the blood castle’(피의 도성)입니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악명높으면, 선지자 요나도 니느웨 사람들에게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기 싫어서 반대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자신의 사명을 버리고 도망을 쳤겠습니까?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모든 주변 국가들이 앗수르 앞에 벌벌 떨면서도, 속으로는 누가 제발 앗수르를 무너뜨려 주기를, 자신들이 당한 끔찍한 일들을 보복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앗수르는 너무나도 막강했기에 그 누구도 이 나라를 건들지 못했습니다. 이 당시 앗수르 제국의 땅이 얼마나 컷는가 하면, 오늘날로 말하면 이집트, 이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요르단 그 밖에도 수많은 나라가 앗수르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바로 그 막강해 보이는 원수 앗수르를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하시고 멸망시키시겠다는 것이 바로 나훔서의 주제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사람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통쾌한 메시지고 큰 기쁨과 위로의 말씀입니까? 그래서 우스개소리로 “선지자 요나가 가장 좋아할 구약성경이 ‘나훔’이다”라고까지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들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분명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지만 영원히 참으시는 분은 아닙니다. 정의로우신 하나님은 절대로 죄를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동시에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나훔은 바로 이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죄악이 범람하는 앗수르와 그 수도 니느웨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선포했습니다.
오래된 원수요 민족의 압제자인 니느웨의 멸망 메시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아름다운 소식이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즉 복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나훔서의 핵심구절인 1장 15절을 보면 니느웨의 멸망 소식에 대하여 아름다운 소식, 화평 즉 평화를 전하는 자라고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함께 1장 15절을 읽겠습니다. “(나1:15)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보하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원수의 멸망은 우리의 기쁨입니다. 훗날 사도 바울이 그 유명한 로마서를 쓰며 바로 이 말씀을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로마서 10장 1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롬 10: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모든 인류를 괴롭혀왔던 오래된 원수 사단의 나라가 멸망하는 것, 죄의 통치가 무너지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좋은 소식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 일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음을 선포하는데 이 말씀을 사용함으로써 예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로써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것이 우리에게 가장 아름답고 좋은 소식 즉 복음임을 가르쳐줍니다. 나훔서를 읽을 때마다 우리는 사단과 그의 졸개들로 이루어진 모든 원수들을 물리치시고, 이 세상의 모든 악의 세력을 꺾으시고 마침내 정의를 완성하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 나훔서의 특징:
나훔서는 언뜻 읽으면 이스라엘의 가장 큰 압제였던 앗수르 제국과 그 수도인 니느웨의 몰락을 선포하는 내용으로만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나훔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1장 그 어디에서도 니느웨와 앗수르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니느웨와 앗수르 이야기는 2장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이 책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원수인 앗수르에 대한 심판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하는 모든 오만하고 폭력적인 세력들을 영원히 용인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또한 모든 시대의 폭력적이고 오만한 세력들과 사람들을 꺾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켜 줍니다. 나훔서는 악한 원수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이 신실하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남은 자들에게는 기쁜 소식임을 보여줍니다.

● 나훔서의 구조
1장 여호와의 위대하심을 선포
1) 열방 중의 악을 심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출현
이제 본격적으로 나훔서의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순서적으로 1장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만, 그전에 한 번 전체적인 구조를 봅시다. 구조를 보면, 2장에서는 니느웨의 멸망을, 3장에서는 앗수르의 멸망을 다루고 있습니다. 1장에서는 바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심판에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열방에 맞서서 그들의 악함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란 내용입니다. 1장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 1:2) 여호와는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투기’라는 단어는 ‘질투’라는 뜻입니다. 질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원래 주님께서 받으셔야 했던 사랑과 영광을 이방 나라들이 우상을 섬김으로써 빼앗아간 일이 대하여 반드시 보복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참 창조주이신 주님을 버리고 거짓 우상들과 거짓 신들을 섬긴 자들에게 진노를 내리십니다.
분명 우리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영원히 참기만 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그 크신 권능으로 모든 악인들의 죄를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열방을 심판하시기 위해 임하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모스서의 경우, 하나님께서 음성을 발하시매 풀밭이 시들고 가장 높은 산의 꼭대기가 메말라 버리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미가서의 경우,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 위해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시자 산들이 녹아버리고 골짜기가 갈라져버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훔서도 이와 같이 악한 세력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오시는 하나님의 출현으로 인한 자연적 변화를 보여줍니다. 3-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 1:3)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죄인을 결코 사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 발의 티끌이로다 (나 1:4) 그는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우시며 모든 강을 말리우시나니 바산과 갈멜이 쇠하며 레바논의 꽃이 이우는도다 (나 1:5) 그로 인하여 산들이 진동하며 작은 산들이 녹고 그의 앞에서는 땅 곧 세계와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이 솟아오르는도다 (나 1:6) 누가 능히 그 분노하신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 진노를 감당하랴 그 진노를 불처럼 쏟으시니 그를 인하여 바위들이 깨어지는도다” 하나님께서 회오리 바람과 광풍으로 임하십니다. 4절을 보니 하나님께서 꾸짖으시니 바다가 마르고, 모든 강이 마릅니다. 홍해가 마르고, 요단강이 바른 것처럼 하나님께서 임하시면 바다도 힘을 못 씁니다. 4절에 바산과 갈멜, 레바논 세 도시가 등장하는데요, 이는 당시 가장 비옥하기로 소문난 땅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 위해 오시면 그 비옥한 땅들이 메마르고 꽃봉오리가 시들어버립니다. 5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오시니 산들이 진동합니다. 작은 산들이 아예 녹아버립니다. 6절을 보니 하나님의 불 같은 진노로 인하여 바위들이 깨져버립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장면입니까? 나훔은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통해 하나님께서 죄악을 싫어하실 뿐만 아니라, 그 죄악을 심판하시고 정의를 회복하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악인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임하시지만, 주님의 심판은 무차별적인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악인을 심판하시지만, 주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7절 말씀입니다. “(나 1:7)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의뢰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선지자 나훔은 6절까지 천지를 진동시키고 산을 녹일만큼 두려운 하나님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의지하고 따르는 백성들에게는 그들이 어려움을 다할 때에 친히 피난처가 되어 주시는 선하신 하나님을 그려줌으로써 이스라엘에게 다시 한번 그의 이름 뜻대로 ‘나훔’ 즉 ‘위로’를 주고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자신을 대적하는 악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심판하십니까? 8절입니다. “(나 1:8) 그가 범람한 물로 그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쓰나미나 홍수가 나면 물이 도시 전체를 쓸어가 버리죠?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거처를 마치 홍수와 쓰나미가 지나간 것처럼 완전히 멸명시키고, 그들을 어둠으로 쫓아내버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심판이 앗수르에게 적용되고, 앗수르와 같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세력들에게도 적용됩니다.

2) ‘오만하고 폭력적인 민족들의 운명’과 ‘하나님께 충성된 신실한 자들의 운명’ 대조
이어서 9절부터는 오만하고 폭력적인 민족들의 운명을 보여줍니다. “(나 1:9) 너희가 여호와를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그가 온전히 멸하시리니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나 1:10) 가시덤불 같이 엉크러졌고 술을 마신 것 같이 취한 그들이 마른 지푸라기 같이 다 탈 것이어늘” 나훔이 묻습니다. “너희가 여호와를 대항해 음모를 꾸민다 하여도 그것이 통할리가 있겠느냐? 하나님께서 완전히 멸하실 것이다. 그분의 대적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원수들은 마치 담장에 친 가시덤불처럼 엉크러진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수들은 술 취한 자들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마른 지푸라기처럼 완전히 불에 타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심판을 받을 자가 니느웨로부터 나왔다고 말씀하십니다. 11절입니다. “(나 1:11)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너희 중에서 나와서 사특한 것을 권하는도다” 니느웨는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계획을 꾀하고 사악한 조언자들의 말을 듣고 있습니다. 12절을 봅시다. “(나 1:1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비록 강장하고 중다할지라도 반드시 멸절을 당하리니 그가 없어지리라…” 하나님께서는 앗수르가 아무리 강하고 병사들의 숫자가 많다하더라도 반드시 멸망시키실 것이라 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은 남 유다의 남아있는 자들에게 약속하십니다. “(나 1:12)…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게 하였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12절 후반부에서는 하나님께서 남 유다 백성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유다야, 내가 너를 심판했지만 다시는 너를 심판하지 않겠다. 그들이 네게 지운 멍에를 내가 꺾어 버리겠다. 너를 묶어 놓은 사슬을 내가 끊어 버리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앗수르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백성을 향해 영원토록 노를 품고 계신 것은 아닙니다. 이제 앗수르가 지운 멍에를 주님께서 꺾어 버리시고, 사슬을 끊어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원수 니느웨를 어떻게 멸하시는지 봅시다. 14절입니다. “(나 1:14) 나 여호와가 네게 대하여 명하였나니 네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않을 것이라 내가 네 신들의 집에서 새긴 우상과 부은 우상을 멸절하며 네 무덤을 예비하리니 이는 네가 비루함이니라” 선지자 나훔이 선포합니다. “여호와께서 너에 대해 명령을 내리셨다. ‘네 이름을 이어 갈 후손이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네 신전에 있는 새겨 만든 우상들과 녹여 만든 우상들을 내가 없애 버리겠다. 너는 아무런 쓸모가 없고 악하기에 내가 네 무덤을 만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악인을 심판하실 무덤까지 다 준비해 두셨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단의 세력을 무찌르시고 승리하셨다는 것을 알리는 복음과 같습니다. 원수 사단은 멸망했습니다. 우리는 승리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15절을 보겠습니다. “(나 1:15)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보하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15절은 이미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원수 니느웨의 멸망 소식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아름답고 좋은 소식이 됩니다. 평안을 선포하는 소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이기셨음은 너무 기쁘고 좋은 소식이라, 이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산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마라톤이 전쟁의 승리를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간 이유와 같다.)
이제 유다는 앗수르의 침략이나 압제로 인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축제의 절기를 지키고, 앗수르 사람들 눈치 않보고, 그들에게 조롱당할 염려없이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마음껏 지키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15절 후반부에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원수들과 악인들을 완전히 멸하셨음으로 이제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1장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출현과 오만하고 폭력적인 민족들의 파멸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구원자요 피난처 되심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