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6 가정 안에서 하나님의 질서 세우기 (신명기 21장 18-23절)

(신 21:18)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신 21:19) 부모가 그를 잡아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신 21:20)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거든
(신 21:21)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의 중에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신 21:22)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신 21: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십계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의무 조항이 있고, 제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사람에 관한 의무 조항입니다. 이 중 사람에 대한 의무조항 중 첫 번째 계명이 바로 제5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는 삶을 매우 중요시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가 부모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것으로 여기십니다. 그래서 자녀가 부모를 거역하는 일은 결국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불복으로 여기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가정에서 부모를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자녀가 있는 경우 그를 어떻게 처벌하였는지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18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신 21:18)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만일 고집이 세고 아버지나 어머니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아무리 타일러도 듣지 않는 아들이 있으면 부모는 그를 성문에 있는 장로들에게 데리고 가라 했습니다. 그리고 부모는 장로들에게 이 아들의 악한 행실을 고했습니다. 20절입니다. “(신 21:20)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거든” 이 말씀을 다시 해석하면 “우리 아들은 고집이 세고 제멋대로 하려하고 우리 말은 전혀 듣지 않습니다. 먹고 마시기만 좋아하고 언제나 술에 취해 있습니다.”하고 고발한 것이죠. 부모가 아들 때문에 얼마나 속이 상했겠습니까? 자녀가 안하무인이에요. 부모고 뭐고 눈에 보이는게 없습니다. 자기 멋대로 삽니다. 이처럼 부모에게 패역한 자식은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한 것이나 마찬가지었습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자에 대한 심판은 무엇입니까? 21절을 봅시다. “(신 21:21)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의 중에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아들이 받는 심판은 돌에 맞아 죽는 것이었습니다.
부모 가운데 자식이 돌에 맞아 죽는 것을 원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얼마나 부모 말을 안 듣고 사고 치고 속을 썩였으면, 부모가 장로들에게 고발하여 돌에 맞아 죽게 했겠습니까? 하나님은 가정의 파괴를 결코 가볍게 보시지 않았습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대한 거역 행위로 다루셨던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만,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면 이를 통하여 장수와 번영의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는 주제에 대해서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22절부터는 또 다른 주제가 등장합니다. 바로 죄수를 나무에 매달아 사형시키는 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날은 사형수를 죽일 때 약물이나 가스를 사용하기도 하고, 총을 쏴 죽이는 나라도 있고, 전기의자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경우 가장 일반적인 사형 방법은 돌로 쳐죽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극악한 범죄자들을 죽일 때는 이 방법대신 나무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그리한 것은 죄수로 하여금 수치심과 공포심을 느끼며 죽게 하기 위한 것이며, 동시에 사람들로 하여금 나무에 매달려 고통 당하며 죽어가는 죄수를 보며, 죄의 경각심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극악한 범죄자라 할지라도 나무에 매달려 죽은 죄수의 시체는 해가 지기 전 나무에서 내려야 했습니다. 22-2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신 21:22)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신 21: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사형수가 나무에 매달려 죽거든 그를 밤새도록 나무에 매달아 두지 말고, 당일 나무에서 내려 장사를 지내도록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땅을 더럽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나무에 달려 죽은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구속사적으로 너무나도 중요한 본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구속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라는 나무에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극악무도한 죄인인 우리들이 받아야할 저주와 죽음을 대신 받으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실 사도 바울이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믿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그가 나무에 달려 죽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나무에 달려 죽은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존재이기에, 바울은 십자가에 달린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바울이 회심한 이후에 그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사 우리 죄인들이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지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의 대가는 죽음입니다. 부모에 대항하는 자녀의 죄가 죽음이듯이,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살아간 우리들도 모두 죽어 마땅한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든 죄는 사함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저주와 사망 아래 놓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대신 나무로 만들어진 십자가에 달리사 죄의 저주와 사망을 짊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이 주님께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하며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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