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1 골로새서 시리즈 (5)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라 (골로새서 2장 6-7절)

서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거듭나는 삶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는 9개월이 되면 세상에 태어납니다. 생명의 탄생은 신비이고 축복입니다. 한 사람의 영혼도 이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거듭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사람의 영혼은 육신과 다르게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거듭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미국에서 오래 산다고 해서 다 미국인이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교회 다닌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거듭나고 구원받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천국 시민권을 얻을 수 있을까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선행으로도, 봉사로도 얻을 수 없습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닌 모태신앙이라고 해서 얻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다 천국 시민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영접 기도를 따라했다고 해서 거듭나는 것도 압니다. 그렇다면 미국 시민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저 귀한 천국 시민권을 얻는 방법을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천국 시민권 다시 말하면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다음과 같은 복음의 4가지 요소들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주인 됨) 첫째, 하나님께서 세상과 인간과 나를 창조하셨기에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인간의 역사와 나의 주인 되심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둘째, 나의 죄인됨을 인정함) 둘째, 인간은 하나님이 주인이신 것을 거부하고 자신이 스스로 주인 행세를 하고 있고, 나 또한 그러한 내 인생의 주인이 되려고 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음을 받아들임) 셋째로, 창조주에 대한 반역의 대가는 죽음 밖에 없으며,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셨기에 우리가 지불해야 할 죄의 대가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지게 하셨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넷째,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와 주님으로 모시고 살 것을 진실하게 결단함) 넷째,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이제부터 예수를 나의 구원자요 내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복음에 대하여 이처럼 4가지의 진실한 고백을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 거듭난 그리스도인입니다.
장마철 어느 한 남자가 갑자기 불어난 물에 그만 빠져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물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난 분명히 죽겠구나’하는 깊은 공포와 절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이 구조 요청이었습니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이렇게 사력을 다해 외치고 있는데, 때마침 그 주변을 지나가던 한 사람이 밧줄을 던져 이 남자를 건져주었습니다. 물에서 나온 이 남자가 몇 번이나 줄을 건져준 사람 앞에 무릎을 꿇고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선생님, 저는 저 물 속에서 그대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 저는 선생님 아니면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니 제 인생은 이제 선생님의 것입니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은 다 선생님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요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간다는 참된 의미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지 않고, 여전히 내 스스로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죄송하지만 그 분은 아직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아무리 교회를 40년, 50년 넘게 다녀도 예수님을 내 주인으로 고백하는 결정적인 내용이 빠진 사람의 영혼은 40년, 50년 동안 아직도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와 같습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아주 위험한 상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지만,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실제로 그 고백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전도자이셨던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교회 밖에 예수 안 믿는 사람들도 많지만, 교회 안에도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혹시 우리 가운데 아직도 예수님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지 못한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혹시 그 사람이 내 옆에 있는 우리 가족은 아닐까? 혹시 나는 아닐까?’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또 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코너스톤 교회 성도 여러분, 저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신 나사렛 출신 30대 청년 예수가 정말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음을 믿음으로 고백하십니까? 그렇다면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의 소유권을 주장하실 수 있는 주인님 되심을 진실하게 고백하고 계십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권리양도 계약서’(Transfer of rights agreement)를 쓰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가진 집, 내 통장의 잔고, 내 자동차, 내 시간, 내 건강, 내 자녀들, 나의 모든 소유의 사용 권리를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마음껏 사용 하시도록 권리를 양도하는 계약서에 서명한 사람이 성경에서 말하는 거듭나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입니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주되심(Lordship)을 내가 고백하고 있는지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설교는 이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는 분들께만 해당이 됩니다. 왜냐하면 골로새서 2장 6절 말씀이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골 2: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무슨 말입니까? ‘너희가 예수 그리스께 권리양도 계약서를 써서 드렸으니…’ 이런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모든 것의 주인 되심을 진실하게 고백하고 살아간다면…’이란 뜻입니다. 여기 6절에 사용된 ‘주’라는 단어는 본래 로마 제국의 황제에게 붙여졌던 칭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라는 말은 그리스도 예수를 네 삶의 왕으로 모셔 들었으니”라는 고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야할 삶의 태도를 네 가지로 이야기했습니다. 저를 한 번 따라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걸어가라.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내리고 세움을 입으라. 그리스도 안에서 넘치는 감사로 살아가라”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아드린 사람들이 살아가야 하는 세 가지 모습을 하나씩 우리 삶에 적용해 감으로써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고 기뻐하시는 참 천국 백성의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본론 1. 그리스도 안에서 걸어가라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살아가야 할 삶의 태도 첫째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걸어가야 합니다. 골로새서 2장 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골 2: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여기 6절 마지막에 쓰인 ‘행하되’라는 단어가 바로 ‘걸어가다’, ‘walk’ 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걸어간다는 것은 3가지를 의미합니다. 앞서가신 예수님을 따라 걸어가는 것, 곁에 계신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 뒤에서 밀어주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며 걸아가는 것입니다.

1) 앞서 가신 예수님을 따라 걸어가라
먼저 나보다 앞장서서 걷고 계신 예수님을 따라 걸어가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등산을 할 때는 아무 곳이나 밟으며 걷지 않습니다. 나보다 먼저 앞서 갔던 사람들이 밟고 갔던 길, 닦아 놓은 길을 따라 걷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처음 가보는 산이라도 닦여 있는 길만 계속 따라가면 길 잃어버릴 염려가 없습니다. 크게 보면 생명길을 가장 먼저 걸어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길을 걸어가셨는지 알기 위해서는 성경을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route(루트)를 밟으며 살아가셨는지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배운 말씀대로 예수님을 따라 걸어가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 안에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예전에 서울에서 자취할 때 저희 집 바로 뒤편에 ‘우면산’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동안 운동삼아 우면산에 올라 정상에서 멋진 서울 경치를 보고 내려오곤 했습니다. 답답한 도시 속에서 갇혀 살다가 산 정상에 올라가 사방이 뻥 뚫린 파란 하늘과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시원합니다. 저는 예수님 따라 살아가는 사람의 삶의 마음에도 이런 기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속에서 지지고 볶고 살다 보면 마음이 답답합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가신 길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삶에 확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천국 기쁨이 그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걸어가라고 했습니다. 이는 앞서 가신 그리스도를 따라 걸어가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2) 곁에 계신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라.
그리스도 안에서 걸어가라는 것은 우리 곁에 계신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길이라는 것이 혼자 걸으면 편한 것 같지만, 사실 많이 외롭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의 동반자를 찾습니다. 동반자는 내 배우자가 되기도 하고, 친한 형제자매, 또는 친한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같은 여가생활이나 취미활동을 공유하는 사람들도 동반자가 되기도 합니다. 인생이란 혼자 보다 함께 하는 것이 더 즐겁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신앙생활 하는 것이 재미가 없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에 기쁨이 없다고 합니다. 십중팔구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느 곳이 다 천국입니다. 삶의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는 세상이 주지 못하는 위로와 평안이 찾아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과 함께 걸어갈 수 있을까요? 기도와 말씀입니다. 순간순간 때마다 기도하며 “예수님”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루를 보내십시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주님이 늘 내 오른편에 서 계시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도 내 오른편 조수석에 앉아 계신 것처럼 생각하며 주님과 대화하십시오. 부엌에서 요리를 할 때도 주님은 내 오른편에 함께 서 계시다 생각하며 대화하듯이 기도하고, 직장에 나가서 일할 때도 비어 있는 의자가 있으면 주님이 거기에 앉아 계시다는 마음으로 주님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또한 오늘 아침에 묵상한 말씀, 암송한 말씀을 마음 속으로 되뇌이며 예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시편 1편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복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걷는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이와 같이 그리스도와 함께 걸어가는 삶을 살아가기를 권면합니다.

3) 뒤에서 밀어주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며 걸어가라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걸아가라는 것은 뒤에서 밀어주시는 예수님을 의지하여 걸어가라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중간중간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꿈틀꿈틀거리며 찾아오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보다 예수님 안 믿는 세상 친구들처럼 살아가는 것이 더 즐겁고 재미나게 보이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인생의 무게가 내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어서 삶 자체를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할 때마다 우리 등 뒤에서 여전히 우리를 밀어주시고 계신 분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군대에서 행군을 하는데 육군은 행군이 평지를 걷는데 비해 공군은 행군이 산을 넘어갑니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곳곳에 분포해 있기 때문에 훈련 강도가 있습니다. 20kg (약 45 파운드) 완전 무장하고 계속해서 걷다 보면 뒤로 쳐지는 병사들이 하나 둘 속출합니다. 이 때 진짜 전우애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뒤쪽에 서 있던 병사가 앞에서 힘들어 하며 주저 앉으려 하는 병사의 등을 밀어줍니다. 그러면 힘겨워 포기하고 싶어도, 그 전우의 손길이 힘이 되어 한 걸음 한 걸음 또 걸어가며 가파른 산을 올라 넘어갑니다.
복음성가 중에 [일어나 걸어라]라는 찬양은 한 번 즈음은 들어 보셨을 겁니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 나의 인생 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 매일처럼 주저 앉고 싶을 때 / 나를 밀어 주시네 / 일어나 걸어라 /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 내 너를 도우리” 사람은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되면 세상에 나 혼자인 것처럼 외롭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지금도 주님께서 이 가파른 인생, 고난의 언덕 끝까지 잘 넘어갈 수 있도록 우리 등 뒤에서 밀어주고 계십니다. 주저 앉고 싶을 정도로 삶이 지치고 힘들어도, 우리 주님께서 우리 뒤에서 은혜의 손길로 밀어주시면 또 다시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인생길을 뒤를 돌아보면, ‘내가 저 가파른 길을 어떻게 통과했나? 아, 그 때 주님이 나를 도와주셨구나! 내 등 뒤에서 주님이 은혜의 두 손으로 밀어주셨구나?’하고 깨닫게 됩니다. 시편 121편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 121: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시 121:2)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힘들어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주님께서 힘 주시면 주와 함께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걸어가야 합니다. 어제 걸었다고 해서 오늘 쉬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주님의 사람들은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계속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걸어가야 합니다.

본론 2.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내리고 세움을 입으라
둘째로,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내리고 세움을 입어야 합니다. 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골 2: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1) 뿌리내리라
좋은 나무로 잘 자라나기 위해서는 뿌리를 깊게 내려야 합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기반이 든든하여 비바람이 몰아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만일 나무의 뿌리가 얕으면 바람에 나무가 이리저리 휘청거립니다. 그런 경우 나무가 꽃을 잘 맺지 못하고 열매도 잘 피지 않습니다. 그러나 뿌리가 땅 속 깊이 뻗어갈수록 나무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꽃도 좋아지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깊이 뿌리내리지 않으면 각종 시련과 유혹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신앙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내린 뿌리가 얕으면 재물의 유혹이 찾아올 때 신앙의 양심을 지키지 못하고 마구 흔들립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내린 뿌리가 얕으면 죄악이 주는 쾌락에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내린 뿌리가 얕으면 예수님이 내 삶의 공급자 되심을 신뢰하지 못하여 세상 살아가는 근심에 빠져 결국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깊게 뿌리를 내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배워가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리는 비결입니다. 아름다운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뿌리를 깊게 내려야 하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좋은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깊게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사시사철 푸르고, 철을 따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리고 살아갈 때 아름다운 열매와 같은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세움을 입으라
이어서 7절에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세움을 입으라 했습니다. 나무가 땅 아래로 뿌리만 내면 되겠습니까? 땅 위로 줄기도 자라고 가지도 뻗어가고, 푸른 잎사귀도 맺어가고 향기로운 꽃도 피고 아름다운 열매도 맺어야 합니다. 7절에서 바울이 사용한 “세움을 입는다”는 말은 건축물이 세워지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건물을 짓기 위해 기초공사가 튼튼히 진행되었으면, 이제 그 위에다가 건물을 높이 지어가야 합니다. 몇 달 전만 해도 코로나 때문에 건물 공사가 중단된 곳이 많았습니다. 만일 그런 기간이 한 3년 넘게 이어진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기초 공사만 하고, 건물을 계속해서 짓지를 못하니까 건물이 버려진 폐허처럼 보일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렸으면, 이제 위로 건물을 세워가듯이, 계속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세움을 입는 것일까요?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해서 자라갈 수 있을까요? 말씀을 통해 교훈을 받은 대로 날마다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순종이 없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성장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갈수록 우리 삶은 더욱 성장하게 됩니다.

본론 3. 그리스도 안에서 넘치는 감사로 살아가라
셋째로, 그리스도 안에서 넘치는 감사로 살아가야 합니다. 7절 후반절을 보십시오.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져야할 삶의 태도로 ‘감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풍성하게 넘쳐나는 감사의 삶을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감사는 외부적 환경이나 상황에 따른 감사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직장에서 승진하거나,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갔을 때 나오는 그런 감사가 아닙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감사는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은 감사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우리들의 삶을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보호하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가심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입니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이나 환경이 좋지 않다 하더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자만이 진실된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내 삶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뿐만 아니라, 앞으로 베풀어 주실 은혜에 대한 감사를 포함합니다. 불안과 염려가 가득한 이 세상에서 감사로 넘치는 삶을 사는 것은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 없이 불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를 주인으로 고백한 사람들은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아가야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걸어가는 삶,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내리고 세움을 입는 삶, 그리스도 안에서 넘치는 감사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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