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9 오직 공의를 물처럼 흘러 넘치게 하라 (아모스 5장 21-27절)

설교노트 20201009 오직 공의를 물처럼 흘러 넘치게 하라 (아모스 5장 21-27절)

● 아모스의 핵심메시지
새벽예배, 금요예배, 주일 예배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석하는 한 집사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 평상시 도박장에 드나드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집사님을 어떻게 평가하실까요?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하나님께 정기적으로 드리는 집사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매년 탈세를 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이 집사님은 어떻게 보실까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찬양하는 집사님이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자기 부모, 형제와는 원수처럼 지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분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요?
오늘날 교회는 공예배를 잘 참석하고, 헌금생활과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을 믿음이 좋고,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는 시각도 그와 같을까요? 아니요. 하나님은 우리 삶 전체를 보시고 우리들을 평가하십니다. 예배는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드리는 예배도 포함됩니다. 교회에서 친절하고 정직한 사람이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서도 친절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이 삶의 전체에서 일관된 모습으로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을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교회에서는 100점짜리로 살아가려고 하지만, 가정이나, 직장과 같은 생활공간으로 돌아가면 0점짜리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실제로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소개하지만, 그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신자와 똑같이 죄악을 저지르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또한 불신자보다 더 악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도 많습니다. 교회 안과 교회 밖의 모습이 다른 것은 위선자요, 가짜입니다. 껍데기 신앙입니다. 하나님 보실 때 가증스러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그러한 모습이 발견되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웃의 고통과 굶주림을 못 본채 하고, 오히려 가난하고 연약한 이웃들을 괴롭히고 억압하는 짓을 저질렀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면서도 술에 찌들어 살아가기도 하고,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이방 사람들보다 더 악랄하게 동족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이중적인 모습에 매우 화가 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사회정의가 무너져 내리고 공법이 무너진 이스라엘의 신앙생활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아모스서의 핵심메시지가 “공법과 정의를 무시한 종교와 예배는 잘못된 것이다” 입니다.
“주일예배만 잘 드리면 무슨 소용이냐? 너희 사회가 완전 썩어 버렸는데?”, “헌금만 하면 무슨 소용이냐? 내 주변에 이웃들은 힘겹게 굶어 죽어가는데 저 사람들 살려야 하지 않느냐?”, “교회 와서 봉사만 하면 무슨 소용이냐? 저렇게 사회에서 너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리스도인이 사회의 불의와 부조리에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 세상의 모습은 하나님의 공의가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흘러가는 세상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지도자들이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의 필요에 눈을 돌리고, 그들을 실제적으로 돕기 위해 정의롭게 행동하는 것.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난하고 억눌린 이웃들을 위하여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실제적인 도움을 주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아모스서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싶은 핵심 메시지입니다.

● 아모스서 핵심구절
아모스서의 핵심구절인 5장 2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암 5:24)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지로다” 이 말씀 바로 앞에 5장 21-2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그들의 예배, 헌금, 찬양 다 멈추라고 하셨습니다. 깜짝 놀랄 말씀 아닙니까? 하나님을 위해 드리는 일들인데 이것들을 다 멈추라뇨? 사실 이것들은 공예배의 요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삶으로 드리는 예배’의 회복입니다. 가난하고 아프고 고통에 처한 이웃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돌보고 섬기는 삶의 회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무엇보다 이스라엘 공동체에 공법과 정의가 회복되는 것을 바라고 원하셨습니다.

● 시대상황
“공법과 정의의 회복”이란 메시지를 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아모스 선지자를 택하셨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호세아, 이사야, 미가 선지자와 같이 주전 8세기에 사역한 선지자입니다. 이 당시 국제 정세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을 늘 괴롭히던 두 나라 북쪽에 위치한 앗수르와 남쪽에 위치한 애굽 둘 다 내부적인 문제들로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앗수르나 애굽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었던 것이죠. 그 결과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 땅은 오래간만에 이 거대한 두 제국의 침입과 전쟁 없이 비교적 평안하게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또한 이 당시 북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왕 여로보암 2세와 남 유다를 다스리던 웃시야 왕은 서로 공존, 교류를 통해서 두 나라는 각각 영토확장과 경제적으로 엄청난 부와 풍요로움을 누리는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와 남 유다의 왕 웃시야는 둘 다 40년 이상 장기 집권하고 있음으로 나라 안 정치도 매우 안정적으로 돌아섰습니다. 이처럼 겉모습만 보면 북이스라엘 역사상 최고로 부하고 풍요로운 시대가 펼쳐진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경제성장률이 지난 40년 동안 역사상 최대치를 달려온 것입니다. 나라 안에 돈이 넘쳐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한 꺼풀만 들추고 사회 안을 들여다보면 엄청난 영적, 도덕적 타락이 이 시대 가속화되고 있었습니다. 자세한 모습은 이따 들여다보겠습니다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모스 선지자는 공법과 정의가 사라지고, 불의와 불법이 만연한 북 이스라엘을 향하여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이렇게 형식적으로 껍데기 신앙생활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경고였습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이 곧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이란 메시지를 전했던 것입니다.

● 저자
본래 아모스는 북이스라엘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남유다에 속한 드고아 사람입니다. 아모스서 1장 1절을 봅시다. “(암 1:1)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의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묵시 받은 말씀이라” 드고아는 남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이처럼 남유다 사람인 아모스가 북이스라엘까지 올라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이죠.
그래서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모스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도 아니고 남유다 사람이 올라와서 “너희 나라 멸망할 것이다”하고 예언하는데 어느 사람이 좋아하겠습니까? 아모스가 하도 거듭해서 북 이스라엘 멸망한다 멸망한다 예언하고 다니니까 북이스라엘의 제사장 중에 아마샤라는 사람이 나서서 아모스를 왕에게 고발하고 그의 모든 사역을 비난합니다. 아모스 7장 10-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암 7:10) 때에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 (암 7:11) 아모스가 말하기를 여로보암은 칼에 죽겠고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나겠다 하나이다 하고 (암 7:12)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서나 예언하고 (암 7:13)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왕의 궁임이니라”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는 부패한 제사장이고 정치꾼입니다. 가짜이고 껍데기 종교인입니다. 지금 한참 나라가 경제가 살고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좋은데, 남 유다 사람 아모스가 와서 계속해서 “너희 나라 망한다! 반드시 망한다!”하니까 기분 좋은 잔칫날 초치는 것 같아서 화도 나고 짜증이 났습니다. 그래서 한 마디로 말하면 아마샤가 지금 뭐라고 하는 겁니까? “야 아모스! 너희 나라로 꺼져! 너 말이야 남 유다 사람이 왜 굳이 여기 북 이스라엘까지 올라와서 시비 거는거야? 남유다에서는 사역할 교회가 없어서, 사역지 찾아서 여기까지 온 거니? 너 그러지 말고, 너희 고국 남유다로 돌아가서 거기서 먹고 살면서 사역하면서 지내.” 이렇게 말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 말에 아모스가 뭐라고 대답합니까? 14-15절 말씀을 함께 봅시다. “(암 7:14)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암 7:15) 양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뭐라고 하는 거에요? “난 본래 풀타임 사역자 아니야. 다시 말하면 난 목사도 아니고, 선교사도 아니야. 난 원래 고향 땅 드고아에서 양을 치는 목자고 뽕나무 배양하는 농부였어. 그러니까 난 오늘날로 말하면 평범하게 비즈니스하던 평신도로 살아가던 사람이야. 난 평범한 자영업자였어. 그런데 내가 양떼를 치고 있던 어느 날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게 오셔서 ‘너는 북 이스라엘에 가서 이렇게 이렇게 예언하라’하고 나를 보내셨어. 그러니 내가 어찌 안 갈수가 있겠어?” 그리고 나서 아모스가 이 가짜 껍데기 신앙을 하고 있는 북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인물인 아먀사를 향해 예언을 합니다. 16-17절 봅시다. “(암 7:16) 이제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네가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지 말며 이삭의 집을 향하여 경계하지 말라 하므로 (암 7:17)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는 성읍 중에서 창기가 될 것이요 네 자녀들은 칼에 엎드러지며 네 땅은 줄 띄워 나누일 것이며 너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본토에서 떠나리라 하셨느니라” “아먀사 목사, 당신은 나보고 북이스라엘에 대해서 예언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당신에게도 전하고자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당신이 나를 보고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말라고 하신 그 죄로 인해서, 당신의 아내는 창녀가 될 것입니다. 당신의 자녀들은 모조리 칼에 죽을 것입니다. 당신이 소유한 땅은 다 남들이 나누어 갖게 될 것이고, 당신은 사로잡혀 가서 낯선 땅에서 죽게 될 것이고, 이 나라 백성들도 반드시 사로잡혀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입니다.” 이 시대에 제사장들이나 선지자들이 왜 없었겠어요?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뽕나무 농사짓고, 양 떼 키우는 평신도 아모스를 부르셔서 선지자로 삼으셨을까요? 그만큼 종교지도자들의 삶도 썩었다는 거에요.

● 선지서의 구성
자, 이제 저와 함께 본격적으로 아모스 말씀을 보실탠데요. 그 전에 지난주에 배운 내용을 한 번 복습해 봅시다. 제가 선지서를 읽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 드린 것 기억나십니까? 지금 내가 읽고 있는 내용이 어떤 부분인가를 구분하면서 읽으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선지서들의 내용은 크게 4가지로 구성됩니다. “죄, 심판, 회개, 구원” 입니다. 기억나십니까? 오늘 여기서 한 단계만 더 나아가봅시다. 괜찮으시죠? 이제 8가지로 내용을 더 디테일하게 구분할 것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예언의 내용이 이스라엘을 향한 것이냐, 아니면 열방을 향한 것이냐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8가지 구분으로 선지서를 보면 ‘이스라엘의 죄 고발,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 경고, 이스라엘의 회개촉구, 이스라엘의 구원선포’ 이렇게 4가지와 ‘열방의 죄 고발, 열방을 향한 심판 경고, 열방의 회개촉구, 열방의 구원선포’ 이렇게 4가지를 더해 8가지입니다. 아모스서를 디테일하게 읽기 위해서는 바로 이 8가지 구분법을 가지고 읽을 줄 아는 눈이 필요합니다. 지금 이것이 이스라엘을 향한 예언인가 아니면 열방을 향한 내용인가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아모스서의 구조
이 관점을 가지고 설교노트에 나와 있는 아모스서의 구조를 한 번 살펴보십시오. 아모스는 크게 4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제일 첫 번째는 열방의 죄를 고발하고 심판을 경고합니다. 두 번째 부분은 본격적으로 북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고 심판을 경고합니다. 세 번째 부분은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확실히 일어날 사건이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시각적인 장치로 다섯 가지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마지막 네 번째 부분은 매우 짧은 4절 밖에 없습니다만, 이 부분은 회복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 아모스서의 전반적 분위기 (암 1:2)
자, 그렇다면 아모스서를 관통하는 전반적인 책의 분위기는 어떨까요? 아무래도 죄를고발하고 심판을 경고하는 메시지니 매우 무겁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성경은 책이다 보니까 오늘날처럼 음성이나 영상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생생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 하나님께서 지금 어떤 어조로 말씀하고 계셨을지 보여주는 단서가 등장합니다. 바로 아모스 1장 2절 말씀입니다. “저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음성을 발하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애통하며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하나님이 부드럽고 온유한 목소리로 말씀하고 계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부르짖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큰 목소리로 부르짖으시자 풀밭이 완전히 시들어 말라버렸습니다. 갈메산 꼭대기는 높은 산을 의미합니다. 그 산도 완전 말라버렸습니다. 그러니 아모스를 관통하는 여호와의 부르짖음이 얼마나 무서운 목소리입니까? 한 번 이런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정글을 한참 탐험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한 마리의 사자가 포효하는 소리가 났다고 상상해보십시오. 등에는 식은 땀이 나고, 정글 전체에 공포로 인한 고요함이 맴돌 것입니다. 우리는 아모스서를 읽을 때 바로 이런 하나님의 포효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모스서를 읽는데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고 부르짖는 천둥소리 같은 주님의 음성이 마치 우리 두 귀를 때리는 것처럼 읽는다면 아모스를 잘 읽고 있는 것입니다.

● 아모스서 4부분 내용 파악
이제 아모스서의 4가지 부분을 조금 더 세부적으로 한 번 살펴봅시다. 시간 관계상 다 살펴보지는 아모스서 전체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가장 중요한 구절들을 선택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열방의 죄 고발 및 심판 경고 (암 1:1~2:5)
먼저 아모스서의 ‘파트 1’입니다. 선지자 아모스가 열방의 죄를 고발하고, 그 죄의 결과인 심판을 경고하는 메시지입니다. 다메섹, 가사, 두로, 에돔, 암몬, 모압 총 6개 나라들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번 어떤 죄들을 고발하는지 살펴봅시다. 아모스 1장 3절입니다. “(암 1:3) “이는 저희가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음이라” 다메섹이 이스라엘을 철 타작기로 이삭을 털들이 못살게 괴롭히고 억악한 죄를 의미합니다. 11절을 봅시다. “(암 1:1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에돔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가 칼로 그 형제를 쫓아가며 긍휼을 버리며 노가 항상 맹렬하며 분을 끝없이 품었음이라” 에돔이 그들의 형제 국가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칼로 죽이고 불쌍히 여기지 않은 죄를 가리킵니다. 13절을 봅시다. “이는 저희가 자기 지경을 넓히고자 하여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 암몬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땅을 공격하여 침입했는데, 군사들만 죽인것이 아니라 민간인들도 다 죽여버리고 심지어 임산부의 배를 갈라 이스라엘의 씨를 말리려 했습니다. 이처럼 아모스의 첫 번째 부분은 아모스 선지자가 열방의 죄를 고발하고 그들의 죄에 따른 심판을 경고하는 메시지가 들어가 있습니다. ‘파트 1’의 마지막 부분에는 남 유다의 죄를 고발하고 심판을 경고하는 메시지도 포함됩니다.

2. 북이스라엘의 죄 고발 및 심판 경고 (암 2:6~6:14)
그리고나서 이제 ‘파트 2’에서 아모스는 본격적으로 북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고 그들의 죄악에 따른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경고합니다. 도대체 북 이스라엘이 얼마나 불법을 많이 저질렀기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화가 나신 것일까요? 아모스 2장부터는 구체적인 죄악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3-6장까지는 이스라엘이 저지른 불의와 불법을 고발하고, 껍데기신앙, 형식적으로만 예배하는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과 사회 지도층들을 고발하며 그들이 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전했습니다.

1) 이스라엘의 죄악상: 고발
(1) 뇌물수수와 인신매매 (암 2:6)
아모스 2장 6절을 봅시다. “(암 2: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은을 받고 의인을 판다”는 것은 뇌물을 받고 의로운 사람을 완전 억울한 누명을 쓰게 만들어 죄인으로 취급해 버린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비공정한 사회입니까? 돈만 있으면 죄인이 의인으로 둔갑하고, 돈만 주면 얼마든지 의인도 죄인으로 낙인 찍어버리는 사회… 정의가 무너져 내린 것이죠. 또한 이스라엘 사회 안에는 사람을 돈을 주고 사고 파는 인신매매 범죄가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보니까 궁핍한 사람의 가치가 얼마입니까? 신발 한 켤레입니다. 아니 궁핍한 동족을 위해서 내가 가진 것을 나눠주고 도와줘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 오히려 자기 주머니에 푼 돈 몇 푼이라도 더 벌려고 궁핍한 자를 팔아버렸습니다. 이처럼 북 이스라엘은 돈 몇 푼에 사람을 팔아 넘길 정도로 완전히 사회가 썩어버렸습니다.

(2)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강자의 폭행 (암 2:7)
아모스 2장 7절을 봅시다. “(암 2:7)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하며 부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낸다” 무슨 말입니까? 가난한 사람의 머리를 땅에 짓밟아 흑 속에 처박는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가난한 것이 뭐가 죄에요? 힘 없는 것이 무슨 죄겠어요?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함부로 대했어요. 이거 오늘날로 표현하면 한 단어로 뭡니까? 갑질입니다.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하며…” 연약한 사람들이 먹고 살아갈 길을 아예 막아버렸어요. 사회에서 경제활동 다시 하지 못하도록 매장시켜 버렸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사회입니까?

(3) 성적타락 (암 2:7)
7절 후반절 보니까 “부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자를 같이 폭행하고 겁탈에 버렸어요. 참으로 입에 담기에도 힘든 사건입니다. 이게 전부가 아니었겠죠. 이것은 단편적인 모습일 뿐이니 북 이스라엘이 얼마나 성적으로 타락했겠습니까? 성적인 무법천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화 나실만하죠? 북 이스라엘 멸망할만하지 않습니까?

(4) 신앙생활 변질과 타락 (암 2:8)
8절을 봅시다. “(암 2:8) 모든 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저희 신의 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 8절에 나오는 ‘단’이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단’을 의미합니다.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워 있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없으니까 마지막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자신이 가진 물건을 저당 잡고 돈을 빌리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겉옷은 평상시에는 옷이지만, 가난한 사람의 경우 추운 밤에는 겉옷이 그가 덮고 자는 이불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2장 26절 말씀을 보면, 아무리 저당 잡은 겉옷이라 해도 해가지기 전까지는 돌려주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처럼 가난한 이웃에게 귀중한 겉옷을 저당 잡아서 지금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제단 옆에 깔아 두고 그 위에 누워 있습니다. 한마디로 불법과 불의를 행하면서, 그 불법으로 갈취한 물건을 제사드릴 때 써먹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성전에서 나온 돈으로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술사 마시고 흠뻑 취해 있습니다. 껍데기 신앙입니다. 형식만 남은 타락한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은 하나도 없습니다. 제사도 불법과 불의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이유가 있는 것이죠.
(5) 지도층의 부패
① 북이스라엘의 권력층/상류층 부인들의 타락상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지도층의 부패함과 그들의 죄악상을 고발하십니다. 4장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암 4:1) 사마리아 산에 거하는 바산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며 궁핍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사마리아는 북 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이 산에 거하는 “바산 암소”는 누구일까요? 이것은 비유적인 표현인데요. 먼저 바산 지역은 목축이 잘 되기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바산의 암소들은 피둥피둥 살찐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여기서 ‘사마리아 산에 거하는 바산 암소들’이란 포동포동하게 살이 찐 사마리아 상류층/권력층 부인들을 가리킵니다. 우리나라말로 바꾸어 말하면, “이 강남에 사는 살찐 횡성 한우들아!”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부정적인 별명을 지어 부르고 계신 것이죠. 도대체 이 부녀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기에 화를 내시는 걸까요?
“사마리아 산에 거하는 바산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며 궁핍한 자를 압제하며” 그러니까 이 사마리아 권력층/상류층 여인들은 사회에서 고관대작을 차지하고 있는 그녀들의 남편의 권세/위세를 등에 엎고, 힘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학대하고, 가난한 자들을 억압했습니다. 우리나라 대한항공 오너 집안의 갑질 뉴스 얼마 전에 TV에 나왔잖아요? 아모스서에 그와 똑 같은 내용 기록되어 있는 거에요. 아니 남편이 권력자고/부자면 그 힘 가지고 억울한 사람들 보호해주고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것 나눠주며 자비를 베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살아가면 사회가 얼마나 멋지고 아릅답겠습니까? 그런데 이 복부인들이 온갖 부정과 비리로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으니, 사회에 정의가 사라져버린 것이죠.
점임가경이라고 이 여인들 갈수록 꼴불견입니다.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무슨 말입니까? 집에서 남편에게 “술 가져와!”하고 종 부리듯 시키는 거에요. 아니 돈 좀 있다고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난 줄 알고 남편 꼭대기에 올라서서 남편까지도 종부리듯 좌지우지하는 이런 모습이 우리가 봐도 얼마나 꼴 보기 싫습니까? 이 부인들이 은덕을 베풀어서 음으로 양으로 자신이 가진 것으로 가난한 사람들 도와주고, 어려운 사람들 위로하고 살아가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사회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낮에는 가난한 사람들 괴롭히고, 저녁에는 술파티하고 아주 난리부르스를 치고 있는거죠. 하나님께서 이 여인들을 향해 “사마리아 산에 거하는 바산 암소들아!”하고 부르시면서 이들을 오히려 모멸감을 느끼게 하시는 거죠.

② 북이스라엘의 지도층의 부패함
지도층/상류층/권력층의 부인들만 부패한 것이 아니라, 남편들도 똑같이 부패했습니다. 이들의 문제는 자기 실속과 주머니 이익 챙기는데만 혈안이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아픔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는 거에요. 지금 북 이스라엘이 경제적으로는 최고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그 막대한 자금이 기득권자들이 사치와 향락을 즐기는데 다 사용되고 있는 거에요.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있습니다. 아모스서 6장 4절, 6절을 봅시다. “(암 6:4)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암 6:6)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 이스라엘의 지도층들의 침대가 무엇으로 만들어졌습니까? 코끼리 상아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그 당시 상아가 얼마나 비싼 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이거 얼마나 큰 사치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매일 아침 상아침대에서 일어나 양 스테이크, 송아지 스테이크 먹고 사는 거에요. 6절에 대접으로 술 마시고, 몸에 좋은 오일을 바를 정도로 자기 몸에 엄청 신경쓰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면 좋은 차도 탈 수 있죠. 좋은 집에도 살 수 있겠죠.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에요? 6절 후반절 보세요.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 요셉은 북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주 값비싼 상아 침대에서 살고, 여름 별장, 겨울궁 지으면서 호사를 누릴 정도로 잘 살았습니다. 문제는 지금 창밖 길가에 백성들이 굶어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신경도 안쓰는 거에요. 애초에 백성들이 고생하는 것은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는 거에요. 나라가 망하든, 백성들이 고통 당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일신의 평안과 번영만이 유일한 관심이요 어떻게든 더 부유하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사는게 인생을 사는 목표입니다. 나의 이익과 쾌락을 위해 흥청망청 사치를 부리고 먹고 마시고 쾌락을 즐기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통하고 눈물 흘리는 것은 아예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신문이나 TV 메스컴을 보면 그 나라의 정치, 사회, 도덕성을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아모스를 보면 북이스라엘의 정치적인 면, 사회적인 면, 도덕적인 면을 다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북 이스라엘을 멸망하게 하셨습니까? 공의가 무너지고 정의가 사라진 사회, 불법과 불의가 가득한 이 사회를 하나님은 더 이상 가만히 지켜 보고만 계실 수 없었습니다. 종교행위만 남고 이웃에 대한 사랑은 사라진 사회, 공예배는 드리지만 삶의 윤리는 바닥을 치고 있는 사회… 하나님은 북 이스라엘을 역겹게 생각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모스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한 원인들을 보면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반드시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예배는 삶의 윤리로 나타나야 하며, 하나님의 사랑은 사회의 공의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껍데기 신앙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교회에서만 신앙생활 잘 하는 것은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보시기 원하시는 것은 삶으로 이어지는 예배입니다. 정말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이웃 사랑으로 나타내십시오. 정말로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에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면, 사회의 불의를 무시하지 마시고 적극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이웃들을 도우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공법과 정의가 무시된 신앙생활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같이 공의가 물처럼 흐르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는 우리들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댓글이 닫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