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3 교만한 마음을 갖지 말라 (고린도전서 4장 6-13절)

(고전 4: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고전 4:7)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
(고전 4:8)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 노릇 하였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 노릇 하기를 원하노라
(고전 4:9)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고전 4:10)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고전 4:11)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고전 4: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고전 4:13)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학식이나 교양이 있고 성숙한 사람일수록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실속이 없고 실력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 교만하거나 허세를 부리는 경우가 바로 이러한 속담에 해당합니다.
사도 바울과 아볼로는 이 두 가지 속담 중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에 살아있는 모범이 되었습니다. 비록 바울이나 아볼로는 권위를 가진 교회 리더의 위치에 있었으나 결코 교만하거나 거만하게 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겸손하게 자신들을 낮추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섬겼습니다.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러한 ‘겸손의 본’을 보여주었다고 말했습니다. 6절 말씀 입니다. “(고전 4: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바울과 아볼로는 서로 자신이 더 잘났다거나 혹은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대적한 적도 없고 다툰 적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둘다 겸손 했기 때문 입니다. 바울이나 아볼로의 삶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 했습니다. 결코 말씀 밖을 넘어서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 자신과 아볼로가 이러한 겸손의 본을 보인 것과 같이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서로 대적하거나 다투거나 교만한 마음을 품고 살지 말 것을 권면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이 거만하거나 교만한 마음을 품고 다른 성도들을 무시하거나 대적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이러한 한 개인의 거만함은 교회를 무너뜨리고, 더 나아가 교회가 하나되지 못하게 막습니다. 고린도교회가 분열과 분쟁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 였습니다.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가 보여준 겸손의 본과는 다르게 스스로 왕 노릇하고 있는 고린도 교인들의 영적 교만을 지적 했습니다. 먼저 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고전 4:7)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세요.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에요.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이 말은 “누가 여러분은 특별대우를 받아야 하는 사람처럼 구별했습니까?” 이 말 입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 가운데 “난 저 사람과는 달라. 난 더 소중한 사람이야.”하고 생각하며 교만하게 신앙생활 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바울은 책망하는 목소리로 7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는 특별하게 내세울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가진 것들 가운데 하나라도 하나님께 받지 않은 것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가진 것들이 모두 하나님께 받은 것이라면, 어떻게 받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자랑하고 잘난 체 할 수 있습니까?” 바울은 서로 자신이 더 잘났다고 다투고 싸우고 파벌을 형성하여 분열하고 있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그들이 정말 그렇게 잘난 사람인가?’하고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가진 것이 많아도 그것은 결국 다 하나님께서 받은 것들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만한 자들은 그것을 마치 하나님께 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이나 힘으로 얻은 것처럼 떠벌리며 자랑하는 태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8절을 이어서 봅시다. “(고전 4:8)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 노릇 하였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 노릇 하기를 원하노라” 고린도교회의 교만한 자들이 어떻게 행동 했습니까? 그들은 먹을 것이 많아 배부르고, 부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마치 교회 내에서 자신이 ‘왕’이라도 된 듯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처럼 교만한 사람들을 꼬집어 말하듯 “여러분이 정말 왕처럼 되었으면 좋겠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온 우주만물을 유업으로 받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온 세상을 다스릴 왕들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들이 진짜 그런 왕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사실 지금은 그렇게 왕 노릇할 때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지적하며 책망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거만하고 교만하여 함께 신앙생활하고 있는 형제 자매들을 무시하고 서로 다투고 있는 고린도교회의 모습을 보며 매우 통탄해 했습니다.
바울은 교회 안에서 스스로 왕인 채 살아가는 교만한 자들을 향하여, 그 자신과 다른 사도들이 복음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해야 했는지 열거 했습니다. 9절 입니다. “(고전 4:9)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먼저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세상의 가장 말석에 처하게 하셨습니다. 이 사회에서 가장 낮은 자처럼 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도들은 가난했고, 그 어떤 세상의 권력이나 힘이나 지위도 전혀 없었습니다. 9절에 ‘구경거리’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죄수들이 사자와 같은 맹수들에게 찢겨 죽어갈 때 관중들이 환호하고 조롱하며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을 즐겁게 구경했던 모습을 암시해 줍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도들을 마치 이 치욕스러운 원형 경기장의 피날레 무대의 주인공처럼 세우셨다고 말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바울과 사도들이 당하는 고난과 역경을 구경하며 조롱하고 비웃고 있었던 것이죠.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미련하고 약하고 마치 사형수와 같은 비천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교만했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도리어 자기 배만 불리우고, 부유함에도 가난한 이웃들을 도와줄 생각지 않았고,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처럼 다른 이들을 무시하고 분쟁을 일으키며 살았습니다.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사도들과 자신이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에도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얻어맞고, 정처 없이 떠돌고 있다고 했습니다. 12절을 봅시다. 사도들은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면서도 또한 생계를 위해 직접 손으로 힘들게 일했습니다. 누군가가 뒤에서 욕을 해도 도리어 축복해 주었고, 핍박과 박해를 당해도 그것을 참고 견디었습니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13절을 봅시다. 누군가 사도 바울과 사도들을 비웃고 헐뜯었을 지라도 여전히 따뜻한 말로 응대해주고 선한 말로 권면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자신과 사도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취급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세상의 더러운 것’이란 세상의 쓰레기란 말입니다. ‘만물의 찌꺼기’란 청소하고 밖에 버리는 오물을 의미합니다. 즉 더럽고 쓸모 없고 가치 없는 존재라는 뜻 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바울과 사도들을 오물과도 같이 여겼습니다.
바울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입니까? 자신과 사도들은 복음을 위해서 이와 같이 극심한 핍박과 고난을 지금 이 순간에도 당하고 있으나, 여전히 인내와 겸손으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마음이 거만하고 교만하여 자신들이 마치 왕인 듯 교회에서 행동하고 있는 어리석은 자들을 바울은 간접적으로 책망했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은사들을 받았다는 사실은 분명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자기 자신의 탁월한 경건이나 능력으로 이러한 은사들을 받은 것처럼 교만하게 처신하고, 그와 같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냉대했습니다. 이는 분명 그들에게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죄악 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과 다른 사도들은 열악한 환경과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며 겸손하게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예수 그리스도꼐서 보여주신 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모든 은사나 소유가 전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임을 기억하며 겸손하게 살아갑시다. 또한 사도 바울과 같이 고난과 역경 가운데도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더욱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