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2 하나님의 충성스런 일꾼답게 (고린도전서 4장 1-5절)

(고전 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고전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 4: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고전 4: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고전 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얼마 전 한국에서 유치원 아이를 둔 한 어머니가 집에서 아이 옷을 갈아입히다 아이의 몸에서 푸른 멍자국을 보게 되었습니다.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어머니는 아이와의 대화 중 자신의 아이가 유치원 선생님에게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치원에 설치된 CCTV 비디오를 확인해보니 20대 젊은 여자 유치원 선생님이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점심 밥을 늦게 먹는다고 주먹으로 아이를 세게 때렸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몸에 멍자국이 든 것이죠. 만약 이 이야기 속 아이가 내 아이였다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만일 유치원에서 맞아 몸에 푸른 멍이 든 아이가 내 손주였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화가 치밀어 오르지 않겠습니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아이가 유치원에서 맞았다는 사실에 부모는 화가 머리까지 났습니다. 부모는 자신의 아이를 때린 선생님을 경찰에 신고했고, 결국 아동 폭행 행위로 구속 당했습니다.
이러한 사건이 터진 이후 대한민국 전국에 있는 유치원에는 CCTV 확인을 요청하는 학부모들이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혹시 부모인 나도 모르게 내 아이 역시 유치원에서 선생님들에게 맞고 있었던 건 아닐까?’하고 학부모 사이에 불안한 마음이 전염병처럼 확산된 것이죠. 실제로 앞서 말한 사건의 당사자인 부모는 아이를 이후에 유치원 보내기가 너무 힘들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더 이상 유치원 선생님들을 믿고 자신의 아이를 맡길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입니다.
믿고 무언가를 맡길만한 사람을 찾기 힘든 세상 입니다. 비즈니스 하시는 사장님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사람 찾기가 너무 힘들다”는 거에요. 일하러 오는 사람은 있어도, 믿고 가게를 비워도 될만한 사람은 거의 없다는 거죠. 가게 주인인 내가 자리를 비우면, 일 안하고 스마트폰 보고 놀고 있을게 뻔히 보여서 가게를 비울 수도 없다는 거에요. 또 어떤 경우는 주인이 없는 경우 가게 돈을 빼돌리거나 값비싼 물건들을 빼돌리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거죠. 일을 믿고 맡길만한 직원 한 사람은 가게 주인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바로 그와 같이 믿을만한 직원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사도 바울은 자신과 다른 사역자들이 바로 주식회사 ‘Kingdom of God’의 CEO이신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직원들’이라고 말했습니다. 1절에 ‘그리스도의 일꾼’이란 말이 바로 주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란 뜻 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나라를 위해 섬기는 일꾼들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맡겨 주셨습니다. 이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저를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복음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과 사역자들에게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비밀 즉 복음을 전파하고, 주님의 백성들이 자랄 수 있도록 양육하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복음의 일꾼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절 말씀을 함께 봅시다. “(고전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헌신예배 때 단골로 등장하는 본문 이죠? 여기서 ‘맡은 자들’이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맡은 자들’ 혹은 ‘복음의 비밀을 맡은 자들’을 의미합니다. 지금 본문에서는 사도 바울과 아볼로와 베드로와 같은 사역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실상 이 말씀은 구원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는 말씀 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도 바울과 같이 복음전파의 사명을 맡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다시 봅시다.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맡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충성’은 ‘신실함’ 즉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인이 보든 안 보든, 주인이 있든 없든, 늘 한결같이 성실하게 행동하는 사람 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맡은 자로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사역해 왔는지 판단하실 이가 바로 하나님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들의 평가에는 별로 마음 두지 않았습니다. “(고전 4: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여기서 분명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판단 받는 것이 ‘매우 작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자신의 사역이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 입니다. 심지어 바울은 자기 스스로도 자신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바울 스스로를 돌아보며 “음, 나 이 정도면 잘하고 있군.”하고 판단 내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복음 전파의 사명을 얼마나 열심히 감당해 왔는지, 자기 스스로 돌아보아도 양심에 거리낌이나 자책할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4절 봅시다. “(고전 4: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바울은 양심을 지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겼으나, 그와 같은 자신의 판단이 결코 그를 의롭게 하지는 못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사도 바울 자신의 판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감당해온 사역을 판단할 이는 다른 사람들도 아니요, 자기 자신도 아니라 했습니다. 진실로 최후에 이 모든 일을 판단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지금은 사람들의 마음 속 동기가 꽁꽁 숨겨져 있어서 무슨 생각과 마음으로 주님의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저 사람이 돈을 위해 목회하나?”, “저 사람이 명예를 위해 저 일을 하나?”, “저 사람이 겉으로는 주님의 일을 하지만 속으로는 어떤 자기만족을 위해 저 일을 하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시는 그 날이 오면, 모든 어두움에 감추어 있던 사람들의 마음 속 동기와 생각들이 환하게 들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날까지 그 어떤 사람도 판단할 필요가 없습니다. 5절 입니다. “(고전 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옛 말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불꽃 같은 눈으로 각 사람들이 어떤 마음의 동기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 왔는지 정확하게 보실 것입니다. 비록 겉으로는 평생 하나님을 위해 일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자기 사리사욕을 위해 일한 사람은 아무런 상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을지라도,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위해 살아갔던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은 몰라줘도 주님 한 분만 내 진심을 알아주시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 주님께서 마지막 날에 다시 오셔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잘하였도다!”하고 우리를 칭찬해 주시는 그 목소리를 듣는 사람은 얼마나 복 됩니까? 그러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 보실 때 ‘신실한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사람, 정직한 사람, 성실한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함으로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을 돌려 드리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