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1 신실하신 하나님을 붙들라 (고린도전서 1장 1-9절)

(고전 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고전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전 1: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전 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고전 1: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고전 1: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고전 1: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고전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사도 바울은 총 세 차례에 걸쳐 선교 여행을 했습니다. 그 중 두 번째 선교 여행 중에 ‘고린도’라는 도시에 도착하게 됩니다. 고린도는 우리 한국처럼 3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반도에 위치한 항구 도시 입니다. 자연스럽게 무역과 상업이 발달했고, 로마와 아시아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그 결과 고린도는 정치적, 상업적으로 주목을 받는 요지가 되었고, 엄청난 부가 도시에 모여 들었습니다. 고린도 도시 한 가운데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의 여인 ‘아프로디테’를 섬기는 신전이 있었습니다. 이 신전에는 아프로디테를 섬기는 대략 1000의 매춘부들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사람들뿐만 아니라 무역과 상업을 하기 위해 도시를 찾은 수많은 사람들은 이 매춘부들과 돈을 주고 성적인 행위를 가졌고, 사람들은 그것이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고린도에는 태양의 신 아폴로를 섬기는 신전도 있었는데, 이곳에는 어린 남자 아이들을 두어 동성애의 온상지가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보면 ‘음행’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고린도 도시 전체가 성적 타락이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어 음행으로 가득한 도시였기 때문 입니다. 심지어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던 언어 중에 ‘고린도화하다’라고 말하면, 그 말은 ‘성적인 행위를 하다’란 뜻이 될 정도 였습니다. 따라서 이런 음란한 도시 안에 세워진 고린도교회의 성도들 역시 음행의 문제에 심각하게 노출 되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나중에 고린도전서 5장을 볼 때 살펴보겠습니다만, 실제로 고린도교회 안에는 음행, 간음, 근친상간 등 심각한 성적 죄악들이 만연하고 있었습니다.
고린도에는 그리스-로마 신들을 섬기는 우상들이 도시 곳곳에 가득했고, 로마 황제를 숭배하기도 했습니다. 배를 타고 다니는 무역상들이 많다 보니 그리스 신화에서 바다의 신이라 불리는 포세이돈을 섬기는 신전도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다양한 신들을 섬기다 보니 고린도 도시의 시장에서 파는 고기들이 대부분 다 이방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나온 제사용 고기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과연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이방 신들에게 바쳐진 제사용 고기들을 먹어도 되는가?’하는 질문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바로 이와 같이 우상숭배가 만연해 있고, 음행이 가득한 성적으로 타락한 도시 고린도에 사도 바울이 찾아왔습니다. 바울은 이 도시에서 자신과 똑같이 천막 만드는 일을 하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천막 만드는 일도 하고, 주님의 일도 함께 했습니다. 참 든든한 동역자들을 만나게 된 것이죠. 그러나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며 큰 핍박을 받았습니다.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우상 숭배와 음행이 만연하고 자연스러운 곳에서 그것이 ‘죄’라고 선포하는 바울의 복음이 얼마나 큰 박해를 받았겠습니까? 바울을 대적하여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바울도 두려움에 떨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느 날 밤 환상 중에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침묵하지 말고, 계속해서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도 너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 될 사람이 많다.”(행 18:9-10)라고 말씀해 주시며 친히 바울을 격려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음성에 힘을 얻은 바울은 1년 6개월 동안 고린도에 머물며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고린도의 회당장 그리스보는 자기 집안 식구들과 함께 주님을 믿는 신자가 되었고, 또한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도저히 교회가 세워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우상숭배의 도시이자 음행과 동성애의 온상지였던 고린도에 기적과 같이 주님을 믿는 자들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1년 6개월이 지난 후 바울은 고린도를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첫 번째 편지를 쓰게 됩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주로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의 ‘음행의 문제’를 다루고 있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바울이 보낸 이 첫 번째 편지는 성경에 있지 않습니다. 바울이 쓴 첫번째 편지를 받아본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편지에 대한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 편지에는 신앙생활에 대한 여러가지 질문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보내 준 답변에 다시 바울이 답장을 쓴 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고린도전서입니다. 따라서 사실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가 아니라, 두 번째 편지 입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는 세 번째 편지가 아니라 네 번째 편지 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 1절을 잠깐 보십시오. “(고전 7:1)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이 말은 “(고전 7:1) 이제 여러분이 편지에 써 보낸 질문에 대해 말하겠습니다.”는 뜻으로서 고린도전서는 성도들이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게 해줍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쓴 첫 번째 편지를 받고, 고린도교회가 당시 에베소에 머물고 있었던 바울에게 답장을 보낼 때 글로에의 집에서 온 사람들이 이 답장을 바울에게 전해 주었습니다.(고전 1:11) 바울이 이 사람들에게 들어보니 바울이 떠난 이후 고린도교회 안에 파벌이 생겼습니다. 교회가 네 개로 나뉘어진 거에요. 바울파, 베드로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교회가 난리가 난 거죠. 그 뿐만 아니라 편지를 전해준 이들은 고린도교회 안에 음행 하는 자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고전 5:1) 심지어 자기 계모와 결혼하는 사람도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은 얼마나 충격을 받고 또한 슬펐겠습니까? 고린도교회가 어떤 교회 입니까? 지난 1년 6개월 동안 목숨을 걸고, 밤낮 열심으로 천막 만드는 일하며, 자비량으로 전도하고 말씀 가르치며 세운 교회 입니다. 물론 나중에 실라와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 빌립보 교회가 사역을 위해 전해준 헌금을 받은 후에는 바울이 풀타임 사역으로 전환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고린도에서 사력을 다해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친 것이죠. 그런 교회가 서로 싸우고 분쟁하며 사분오열로 나누어져 있고, 게다가 이방 사람들도 잘 저지르지 않는 심각한 성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바울은 정말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미워져 왔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이 수많은 문제들을 겪고 있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고린도전서를 기록했습니다. 오늘은 이 편지의 서론, 인사말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오늘 말씀을 읽어보면, 바울은 편지를 쓰며 처음부터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정말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분쟁, 음행, 결혼과 음란, 우상 제물, 성례, 영적 은사, 몸의 부활을 부정, 지적 자만, 부도덕 등 수많은 문제들이 있는 교회였어요. 만일 누가 저보고 다니고 싶은 교회 고르라고 한다면 저는 고린도교회는 절대로 안 갈 것 같아요. 고린도교회는 너무 문제가 많은 교회에요. 그러나 오늘 바울은 이런 문제 많은 고린도교회를 무엇이라고 불렀습니까? 2절 말씀 보십시오. “(고전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교회 안에 다툼, 분쟁, 심지어 음행의 문제까지 있어서 교회라는 간판을 붙여 두기에도 부끄러운 곳 아닙니까?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교회를 누구의 교회라고 불렀습니까? ‘하나님의 교회’ 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이 참 은혜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죄 없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지은 죄가 많은 죄인들이 자신들의 지난날 죄와 실수와 잘못을 깨닫고 주님께 회개하며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 교회 입니다. 여전히 교회 안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 문제 없는 교회 보신 적 있으세요? 저 한 번만 소개해 주세요. 제가 한 달 안에 그 교회의 문제를 찾아드리겠습니다. 이 세상에 문제 없는 교회가 어디 있어요? 우리 코너스톤 교회도 마찬가지에요. 우리 교회에도 연약한 부분이 있어요. 목회자인 저는 하나님께 눈물로 용서를 구하며 회개하는 부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러나 소망이 있습니다. 여전히 여러가지 문제들이 많은 고린도교회였지만, 바울은 이 교회를 누구의 교회라고 불렀습니까? “하나님의 교회” 입니다. 그리고 이 안에는 자신의 지난 날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기로 결단한 성도들이 있습니다. 비록 부족하지만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잘하는 것들이 있었어요. 5절 보세요. “ (고전 1:5)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고린도교회는 성경에 대한 지식적 습득이 탁월했고, 성경에 대한 담론에 능했습니다. 물론 나중에 이것도 지적 자만에 빠지는 않 좋은 결과를 낳기는 했지만, 그래도 사도 바울은 영적 아버지로서 온유한 목소리로 이들의 장점을 추켜세워주며 칭찬해 주고 있는 거죠. 또 7절 보세요. “(고전 1: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고린도교회는 하나님께 받은 은사도 많았어요. 오늘 이 두 구절만 봐도 고린도교회는 타 교회와 비교해 볼 때 뒤지지 않을 만큼 풍성한 구원의 은혜도 받았고 은사들도 부족함이 없는 교회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보면, 내 자식의 장점도 보이지만 단점도 보이는 법입니다. 부모인 내가 볼 때, 내 아들이나 내 딸이 요런 장점들은 잘 살렸으면 좋겠고, 단점은 좀 더 부지런하게 살고 노력해서 커버해 갔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왜요? 그렇게 하면 내 자녀가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란 것을 부모는 알고 있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들을 보실 때 어떤 마음이실까요? 우리들이 우리의 자녀를 보는 것보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더 정확하게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우리들 모두도 여전히 부족함이 많은 성도들 입니다. 우리 중에 누가 떳떳하게 “하나님 나 정도면 괜찮죠?”하고 말하겠습니까? 신앙생활 하면 할수록 성도로서의 부족함과 내 안의 더러운 죄성만 보게 될 뿐 입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들을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부모가 자녀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듯이, 하나님은 문제 많은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의 교회’라 불러 주시고, 문제 많은 그 사람들을 향하여 ‘성도’라고 친히 불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부족하지만 우리들도 하나님의 교회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거룩한 성도들 입니다. 8절 말씀이 우리 소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전 1: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믿음으로 견고케 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날마다 주와 함께 주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