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31 사사기 첫번째 에필로그: 미가와 단 지파 이야기 (사사기 17장~18장)

에훗으로 시작하여 삼손으로 끝이 나는 사사들의 이야기는 ‘부록’과 같이 두 개의 에필로그를 담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미가와 단 지파의 이야기’이며 다른 하나는 ‘레위인의 첩의 죽음으로 촉발된 이스라엘과 베냐민 지파의 전쟁 이야기’ 입니다. 오늘은 이 둘 중 첫 번째 에필로그인 ‘미가와 단 지파의 이야기’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미가와 신상 사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미가는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사람 입니다. 본래 사사기에서 사람이 소개 될 때는 ‘어느 지파, 누구의 아들’ 이런 식으로 사람을 소개 합니다. 그러나 사사기의 저자는 미가를 소개하며 그에 대한 계보나 지파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는 지금 이 이야기가 특수한 개인의 모습이 아니라, 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보편적인 모습이었음을 나타내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가’라는 이름의 뜻은 ‘누가 여호와와 같겠는가?’라는 뜻 입니다. 그래서 이 이름은 이스라엘이 섬기는 ‘여호와’만이 참된 신임을 고백할 때 많이 사용되는 구문 입니다. 그래서 이 ‘미가’라는 사람은 이름만 놓고 보면 참 신앙이 좋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미가가 그의 어머니의 돈을 도둑질했다는 것을 자백하는 장면으로 시작 됩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은 1,100개를 잃어버렸습니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그녀는 자신의 은을 훔쳐간 사람이 자신의 아들인지도 모르고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미가는 어머니의 저주를 듣고 두려워서 자신이 어머니의 은을 훔쳐간 도둑임을 자백하며 은을 도로 내놓았습니다. 이 한 장면만 봐도 이미 미가는 십계명 중 “네 부모를 공경하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와 같은 계명들을 대수롭지 않게 어기며 살아갔음을 보게 됩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지금 미가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이야기 입니다. 즉 사사 시대에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과는 전혀 상관 없는 모습으로 살아갔음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미가가 그의 어머니에게 자신이 은을 훔쳤다고 자수한 이유는 ‘하나님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어머니의 저주가 자신에게 임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죽은 모세가 보면 통탄을 할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비정상적인 미가의 모습에 반응하는 그의 어머니의 모습 역시 어딘가 비정상적으로 보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자신의 은을 도둑질한 아들을 나무래거나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아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복을 받기 원한다”고 축복했습니다. 자기 자식에게 임할 저주를 걱정하며 다시 자신의 입으로 아들을 축복함으로써 저주를 상쇄시키려 한 것이죠. 그러나 정말 신앙이 건전한 부모라면, 부모의 돈을 훔치고 거짓말을 하고 도둑질을 한 자녀를 훈계하거나 징계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 어머니는 자신이 잃어버린 돈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만 보고 안도의 한 숨을 쉬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미가의 어머니는 아들의 손으로부터 되찾은 은을 가지고 그 도둑질한 아들을 위해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서는 십계명 중 제 1계명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와 제 2 계명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을 어기는 모습이 보입니다. 사사기의 저자는 우리에게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보여주며, 이스라엘이 얼마나 영적으로 타락해버렸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미가의 집에는 신상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누가 여호와와 같겠는가?’라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이름으로 가진 사람의 집에 여호와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이 세워진 것입니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이스라엘 전체를 풍자 합니다. 즉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여야 하는 이스라엘이 실제로는 우상을 제작하고 그것들을 섬기며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악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 것이죠. 미가의 어머니는 입만 열면 ‘여호와’를 언급하지만, 실상 그녀가 하는 일들을 보면 여호와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일들만 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사 시대에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껍데기와 형식만 남았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과는 전혀 상관 없이 살아갔던 것입니다.
자신의 집안에 은으로 제작된 신상이 생기자 미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 중 하나를 세워 자신을 위한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본래 ‘에봇’은 레위지파 출신의 제사장만이 입을 수 있는 옷 입니다. 그런데 미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아론 계열만 입을 수 있는 에봇을 자기 아들에게 마음대로 입혔던 것입니다. 이는 분명 하나님 보실 때 큰 죄입니다. 미가가 만든 ‘드라빔’은 점을 칠 때 사용되던 작은 가정용 신상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는 집에서 드라빔을 이용해 점을 치는 일도 했던 것입니다.
더욱 황당한 사실은 미가가 이와 같은 큰 죄를 저지른 이유가 하나님께 복을 받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사사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해,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했는지도 전혀 몰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가는 철저하게 주변에 이방인들이 그들의 우상을 섬기는 방식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섬기려 했던 것이죠. 이에 관해서 사사기 저자는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남겨줍니다. 사사기 17장 6절 말씀 입니다. “(삿 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여기서 ‘왕이 없었다’는 말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거나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들이 왕이 되어 자신의 눈에 좋아 보이고, 마음에 좋은 대로 행동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주님의 말씀을 버리는 순간, 그의 신앙의 정체성은 사라져 버리고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육체를 위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겉으로는 교회를 다니고 십일조 생활을 하고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말씀)을 버리고 자신의 소견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을 버린 사람 입니다. 미가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바로 그러한 죄악을 하나님 앞에 저질렀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림으로써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눈에 좋아 보이는 대로 살아갔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을 버리시고 심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존중히 여기는 자들을 존중히 여기시지만,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경멸이 여기십니다. 우리들은 미가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빠진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늘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삶의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2. 미가 집의 제사장이 된 레위인
사사기 17장 7절을 보면 유다 베들레헴에서 온 어떤 레위인 청년이 등장합니다. 혹시 성경을 가지고 계신 분은 사사기 17장을 유심히 보십시오. 7절과 8절 그리고 9절에 연달아 반복해서 나오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유다 베들레헴’이라는 표현 입니다. 한 번 말씀을 다시 볼까요? “(삿 17:7)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소년이 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 우거하였더라 (삿 17:8) 이 사람이 거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서 행하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 (삿 17:9) 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뇨 그가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왜 이렇게 저자는 이 레위인이 ‘유다 베들레헴’ 사람임을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 레위인 청년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기업을 벗어나 떠돌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입니다. 여호수아서 21장을 보면 레위인들에게는 거주지가 따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레위인이 자신의 거주지를 떠나는 것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레위인은 다른 이스라엘 지파 사람들과 다르게 하나님께 제사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가르치는 특수한 사명을 받았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레위인이 유다 베들레헴 출신임을 강조하는 것은 그가 속한 거주지에서 이탈하여 에브라임 산지까지 오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이 레위인 청년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책임과 의무를 다 버리고 온 것입니다. 이 레위인 청년은 우연히 미가의 집에 이르게 됩니다.
미가는 이 레위인 청년이 거주지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자신의 가문을 위한 제사장이 되어 달라고 요청 했습니다. 미가가 그렇게 한 이유는 이 사람이 레위인이기 때문 입니다. 미가는 레위인이 제사장이 되면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3절 입니다. “(삿 17:13) 이에 미가가 가로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우리는 여기서 미가가 오직 레위인이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도, 이전에 자신의 아들을 제사장 삼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보다 자기 눈에 좋아 보이는 대로 행동했던 사람 입니다.
레위인 청년도 미가와 함께 지내는 것에 만족해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미가의 집에 머물게 된 순전한 이유는 바로 미가가 그에게 약속한 재물들 때문이었습니다. 미가가 그에게 해마다 은 열 개와 의복 한 벌과 먹을 식물을 준다는 제안에 뒤도 안 돌아보고, 하나님께 기도도 한 번 안 해보고 바로 결정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레위인 청년이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편하고 만족스러운 것을 더 중요시하는 삶을 사는 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위해 구별 받은 레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의 규례나 율법을 어기는 문제에 대해서 개의치 않는 삶을 사는 타락한 레위인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중심이 무엇이 있느냐가 그 사람의 삶을 결정 합니다. 우리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 중심에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살아갈 것입니다.

3. 단 지파가 레위인 청년을 데리고 감
그러던 어느 날 단 지파의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에서 거주지를 얻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미가의 집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단에게 주신 기업은 이곳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이 분배 받은 기업에는 강력한 아모리 족속들이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단 지파는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대신 ‘소알’과 ‘에스다올’로 물러가 새로운 정착지를 얻으려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땅 정복이란 위대한 사명을 뒤로하고 자신들의 만족을 위해 땅을 돌아다니는 단 지파의 모습은 앞서 살펴본 유대 베들레헴 출신의 레위인 청년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사사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한 대가를 지불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회피하고 살아가는 시대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보다는 적당히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추구 했습니다.
미가의 집에 잠시 머무르게 된 단 지파의 정탐꾼들은 그곳에서 레위인 청년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제사장이 된 그에게 자신들의 여정이 형통할지 하나님께 여쭤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이 레위인은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축복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여기서 사사기 화자는 레위인이 실제로 하나님께 여쭈어 보았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즉 그는 단순히 단 지파의 정탐꾼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들이 원하는 축복의 말을 해준 것이죠. 이 말을 듣고 정탐꾼들은 자신들의 지파가 머물 땅을 찾아 길을 나서게 됩니다. 이후 정탐을 끝낸 단 지파는 전쟁을 준비한 600명의 용사와 함께 다시 미가의 집에 이르게 됩니다. 이 때 단 지파 사람들은 미가의 집에 있는 에봇과 드라빔과 신상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레위인에게 미가의 집을 버리고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달라고 제안 합니다. 앞서 레위인이 미가의 집에 제사장이 된 것은 사명 때문이 아니라, 미가가 제시한 물질 때문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따라서 단 지파가 더 좋은 제안을 하자, 레위인은 자신을 아들 중에 한 사람처럼 대해준 미가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단 지파에 합류하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돈만 주면 어디든 가서 제사장이 되어주는 이 사사 시대의 타락한 레위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결국 미가는 그가 만든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을 다 빼앗기게 됩니다. 자신에게 복을 줄 것이라 생각했던 신상과 드라빔이 오히려 그에게 큰 손해를 입혔습니다. 사사기 18장 30절을 보니 이후 단 지파가 하나님을 버리고 미가에게서 훔쳐간 우상을 섬겼습니다. 또한 단 지파는 자신의 안락함과 만족을 위해 제사장 자리를 옮겨 다니는 레위인을 단 지파의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사사기의 저자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된 레위인 청년이 누구인지 밝혀 줍니다. 그는 바로 그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손자이며, 게르손의 아들인 ‘요나단’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모세의 가문이면 얼마나 대단한 가문 입니까? 그런데 불과 2세대 후에 모세의 손자 ‘요나단’은 하나님이 주신 자리를 벗어나, 자기의 구미에 따라 사역지를 정하고 돈과 재물과 명예를 보고 제사장직을 결정하는 세속적인 레위인이 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모세의 가문까지도 이와 같이 영적 타락을 겪고 있었다는 것은 우리 신자들에게 큰 충격을 줍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지 100년도 채 되지 않았으나, 이미 이스라엘은 그들 앞에서 쫓겨난 가나안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살아갔습니다.
사사기의 첫 번째 에필로그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을 고발하며 끝이 납니다. 미가 한 사람이 만든 신상이 결국에는 단 지파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결국에는 이스라엘 전체를 올무에 빠트리는 일을 하게 됩니다. 즉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올바른 신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볼 수 있습니다. 사사 시대 이스라엘이 영적 타락을 겪게 된 이유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섬기지 않고, 자신 스스로를 왕으로 삼았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나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내 삶의 왕은 누구입니까? 나 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하나님께서 존중히 여기십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